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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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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여러분이 영국이나 영연방, 전 세계 영토 어디에 살든 그리고 배경이나 신념이 어떻든지 간에, 저는 평생 그랬던 것처럼 여러분을 충실함과 존경, 사랑으로 섬기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2022년 9월 9일 즉위 후 첫 연설 내용 중#
영국과 영연방 왕국의 현 국왕. 엘리자베스 2세와 에든버러 공작 필립의 장남이다.
2022년 9월 8일 어머니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사망하면서 70년 만에 영국과 영연방 왕국의 국왕으로 새롭게 즉위했다. 역대 영국 국왕 중 가장 고령(73세)으로 즉위한 국왕이다.[2] 엘리자베스 2세가 22살에 낳은 장남으로 3살의 나이에 후계자가 되어 70년간[3] 왕세자로 있었다. 2017년 9월 9일 부로 에드워드 7세[4] 를 제치고 영국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웨일스 공으로 재위했던 사람이 되었다.
1685년 찰스 2세 국왕이 세상을 떠난 지 337년만에 탄생한 찰스라는 이름을 쓰는 국왕이다.
2. 작위[편집]
- 에든버러의 찰스 공자 전하 His Royal Highness Prince Charles of Edinburgh (1948년 11월 14일 ~ 1952년 2월 6일)
- 콘월 공작 전하 His Royal Highness The Duke of Cornwall (1952년 2월 6일 ~ 2022년 9월 8일)[7]
- 스코틀랜드에서는 로스시 공작 전하 His Royal Highness The Duke of Rothesay (1952년 2월 6일 ~ 2022년 9월 8일)
- 캐릭 백작 Earl of Carrick (1952년 2월 6일 ~ 2022년 9월 8일)
- 렌프루 남작 Baron of Renfrew (1952년 2월 6일 ~ 2022년 9월 8일)
- 아일즈의 영주 Lord of the Isles (1952년 2월 6일 ~ 2022년 9월 8일)
- 스코틀랜드 공 겸 섭정 Prince and Great Steward of Scotland (1952년 2월 6일 ~ 2022년 9월 8일)
- 스코틀랜드에서는 로스시 공작 전하 His Royal Highness The Duke of Rothesay (1952년 2월 6일 ~ 2022년 9월 8일)
- 웨일스 공 전하 His Royal Highness The Prince of Wales (1958년 7월 26일 ~ 2022년 9월 8일)[8]
- 체스터 백작 Earl of Chester (1958년 7월 26일 ~ 2022년 9월 8일)
- 에든버러 공작 전하 His Royal Highness The Duke of Edinburgh (2021년 4월 9일 ~ 2022년 9월 8일)[E]
- 국왕 폐하 His Majesty The King (2022년 9월 8일 ~ 현재)
즉위 전까지의 칭호는 웨일스 공,[10] 체스터 백작, 콘월 공작, 로스시 공작,[11] 에든버러 공작[E] , 캐릭 백작, 메리오네스 백작[E] , 렌프루 남작, 그리니치 남작[E] , 아일즈의 영주, 스코틀랜드 공 겸 섭정, 가터 훈장의 기사, 씨슬 훈장의 기사, 바스 훈장의 대십자기사, 오더 오브 메리트의 회원, 오스트레일리아 훈장의 기사, 여왕 공로 훈장의 컴패니언, 여왕 폐하의 영광스런 추밀원의 의원이신 찰스 필립 아서 조지 왕자 전하(His Royal Highness Prince Charles Philip Arthur George, Prince of Wales and Earl of Chester, Duke of Cornwall, Duke of Rothesay, Duke of Edinburgh, Earl of Carrick, Earl of Merioneth, Baron of Renfrew, Baron Greenwich, Lord of the Isles, Prince and Great Steward of Scotland, Royal Knight Companion of the Most Noble Order of the Garter, Royal Knight Companion of the Most Ancient and Most Noble Order of the Thistle, Knight Grand Cross of the Most Honourable Order of Bath, Member of the Order of Merit, Knight of the Order of Australia, Companion of the Queen's Service Order, Member of Her Majesty's Most Honourable Privy Council, Aide-de-Camp to Her Majesty)'이다.하느님의 은총으로 그레이트브리튼과 북아일랜드의 연합 왕국과 다른 왕국과 영토의 국왕, 영연방의 수장, 신앙의 수호자이신 찰스 3세 폐하(His Majesty Charles the Third, by the Grace of God, of the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 and of His other Realms and Territories King, Head of the Commonwealth, Defender of the Faith)
영국에서의 칭호[9]
태어났을 당시 어머니 엘리자베스 2세는 왕위 계승 서열 1위의 공주였으나, 찰스는 부계출신 왕족이 아니여서[12] 법적으로는 어머니가 여왕이 되기 전까지 왕자 칭호를 가지지 못하고, 예우경칭(courtesy title)[13] 인 메리오너스 백작(Earl of Merioneth)이라 불려야 했다.[14] 그러나 출생 한달 전 조지 6세의 특명에 따라 찰스와 여동생 앤 공주는 엘리자베스가 여왕으로 즉위하기 전에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각각 왕자, 공주라는 작위와 더불어 전하[HRH] 호칭을 가질 수 있었다.[15]
영국 해군 장교로 복무하여 대위로 전역했으나 명예계급은 계속 진급하여 2012년에는 아버지와 동등한 영국 육군, 영국 해군, 영국 공군 원수 계급을 받았다. 2000년부터 2001년까지 스코틀랜드 장로회 총회 고등판무관(The Lord High Commissioner to the General Assembly of the Church of Scotland)직을 수행했다.
여기에 2021년 4월 9일, 부친 필립 공의 사망으로 인해 그의 생전 작위인 에든버러 공작, 메리오너스 백작, 그리니치 남작을 장자로서 물려받았다. 이 중 에든버러 공작위는 1999년에 어머니와 논의한 결과에 따라 즉위 후에 왕위와 합쳐 폐지했다가 2023년 3월 에드워드 왕자가 받았다.
즉위 전까지 흔히 한국 언론에서는 찰스 왕세자라고 불렸다. 현재 주한영국대사관은 왕태자나 황태자가 아닌 왕세자로 호칭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번역보다는 한국인에게 익숙한 조선조의 작위에 대응시킨 번안에 가까우며 엄밀히 말하면 틀린 호칭으로 원래 동양에서 왕세자는 왕국 중에서도 제후국의 왕위 후계자가 받는 칭호이고, 왕국 중 자주국의 후계자가 받는 칭호는 왕태자다. 영국이 제후국이 아닌 이상 crown prince를 왕세자로 번역하는 것은 어폐가 있다. 다만 동아시아와 유럽의 왕실 작위 체계는 개념과 인식부터 권한의 크기까지 완전히 달라 이를 1:1 대응시키는 것은 어려운 관계로, 주한영국대사관의 공식 번역을 따라 '왕세자'로 호칭한다.
다이애나 스펜서와 결혼했을 때에는 주로 찰스 황태자라고 불렸다. 다만 황태자 역시 황제의 후계자를 이르는 것이고, '대영제국'은 통칭이었을 뿐 정식 국명은 아니었으며, 대영 제국의 군주를 '황제(여제)'로 부르게끔 해 준 인도 제국 역시 폐지되었기에 영국의 군주는 어디까지나 '(여)왕'이다. 따라서 그 후계자에 대한 호칭은 '왕태자'가 가장 적합하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를 검색해보면 대략 1991년도까지는 국내 신문기사 대부분이 황태자로 호칭했으나 1992년부터 갑자기 왕세자로 호칭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2022년 9월 8일, 엘리자베스 2세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지 30분 후에 찰스 3세가 새 군주의 호칭으로 결정됨이 공포되었다. # 왕세자 시절 훗날 왕으로서의 호칭으로 찰스를 선택할 것인지가 호사가들 사이의 유구한 이야깃거리였는데, 대부분 유럽 군주들은 자기 이름을 그대로 호칭으로 쓰는 경우가 일반적이지만 영국 역사에서 찰스 1세와 찰스 2세가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는 국왕이 아니라는 점이 변수였다. 자코바이트들이 제임스 2세의 손자 찰스 에드워드를 찰스 3세로 참칭한 바 있어서 이를 피하고자 찰스를 왕명으로 선택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다.[16] 그러나 이러한 예측에도 불구하고 찰스 3세로 정해졌다.
3. 재위 국가[편집]
일반적으로 영국 국왕이라고 부르지만 2022년 9월 8일 즉위한 이래 영국 이외에도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영연방 왕국들의 국왕을 겸하고 있다. 찰스 3세가 현재 재위 중인 국가는 다음과 같다.
따라서 찰스 3세는 현재 3개 이상의 국가의 수장[17] 인 유일한 사람이다. 또한 현재 기준으로 가장 넓은 영토를 거느리는 국가원수이며, 가장 넓은 영토와 많은 인구를 거느리는 군주이다. 그가 거느리는 면적이 18,800,000km2 정도로 러시아보다 더 넓고, 인구는 135,000,000명으로 일본보다 많다.
4. 군사 경력[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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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공군 중위: 1971년 3월 8일 ~ 1977년 1월 1일
- 영국 해군 중위 대행: 1971년 9월 15일 ~ 1972년 9월 1일
- 영국 해군 중위: 1973년 7월 27일 ~ 1977년 1월 1일
- 영국 해군 사령관: 1977년 1월 1일 ~ 1988년 11월 14일
- 영국 공군 중령: 1977년 1월 1일 ~ 1988년 11월 14일
- 영국 해군 대위: 1988년 11월 14일 ~ 1998년 11월 14일
- 영국 공군 대위: 1988년 11월 14일 ~ 1998년 11월 14일
- 영국 해군 소장: 1998년 11월 14일 ~ 2002년 11월 14일
- 영국 육군 소장: 1998년 11월 14일 ~ 2002년 11월 14일
- 영국 공군 부사령관: 1998년 11월 14일 ~ 2002년 11월 14일
- 영국 해군 중장: 2002년 11월 14일 ~ 2006년 11월 14일
- 영국 육군 중장: 2002년 11월 14일 ~ 2006년 11월 14일
- 영국 공군 중장: 2002년 11월 14일 ~ 2006년 11월 14일
- 영국 해군 제독: 2006년 11월 14일 ~ 2012년 6월 16일
- 영국 육군 대장: 2006년 11월 14일 ~ 2012년 6월 16일
- 영국 공군 대장: 2006년 11월 14일 ~ 2012년 6월 16일
- 영국 해군 원수: 2012년 6월 16일 ~ 현재
- 영국 육군 원수: 2012년 6월 16일 ~ 현재
- 영국 공군 원수: 2012년 6월 16일 ~ 현재
- 영국군 원수(통수권자): 2022년 9월 8일 ~ 현재
- 영국 해병대 원수: 2022년 10월 28일 ~ 현재
4.1. 군 명예 직함[편집]
- 호주 육군 왕립 기갑부대 대장 (1977년~)
- 캐나다 육군 스트라스코나 경의 기마부대 대장 (1977년~)
- 캐나다 육군 왕립 위니펙 소총연대 연대장 (1977년~)
- 캐나다 육군 왕립 연대 연대장 (1977년~)
- 캐나다 육군 왕립 용기병대 연대장 (1985년~)
- 캐나다 육군 왕립 하이랜드 연대 연대장 (2004년~)
- 캐나다 육군 토론토 스코틀랜드 연대 연대장 (2005년~)
- 캐나다 육군 캐나다 총독의 근위대 총사령관 (2022년~)
- 캐나다 공군 예비군 대장 (1977년~)
- 캐나다 해군 준장 (2015년~)
- 캐나다 육군 명예 레인저 (2022년~)
- 캐나다 왕립 기마경찰부대 대장 (2023년~)
- 뉴질랜드 공군 준장 (1977년~)
- 파푸아뉴기니 왕립 태평양 제도 연대 연대장 (1984년~)
- 영국 육군 왕립 웨일스 연대 연대장 (1969년~2006년)
- 영국군 근위대 웰시 가드 연대장 (1975년~2022년)
- 영국 육군 체셔 연대 연대장 (1977년~2007년)
- 영국 육군 고든 하이랜더스 연대장 (1977년~1994년)
- 영국 육군 에드워드 7세의 제2구르카 소총 연대 연대장 (1977년~1994년)
- 영국 육군 낙하산 연대 연대장 (1977년~)
- 영국 육군 제5왕립 이니스킬링 용기병 근위대 연대장 (1985년~2022년)
- 영국 육군 왕립 용기병대 연대장 (1992년~)
- 영국 육군 항공대 연대장 (1992년~)
- 영국 육군 왕립 구르카 소총 연대 총사령관 (1994년)
- 영국 육군 하이랜더스 연대 부사령관 (1994년~)
- 영국 육군 여왕의 요만리 연대 왕실 명예 연대장 (2000년~)
- 영국 육군 여왕의 용기병 근위대 연대장 (2003년~)
- 영국 육군 왕의 연대 연대장 (2003년~2006년)
- 영국 육군 왕립 하이랜드 연대 연대장 (2003년~2006년)
- 영국 육군 스코틀랜드 왕립 연대 제3대대 블랙워치 연대장 (2006년~)
- 영국 육군 스코틀랜드 왕립 연대 제7대대, 제51고지 연대장 (2006년~)
- 영국 육군 메르시안 연대 연대장 (2007년~)
- 영국군 근위대 라이프 가드 총사령관[M] (2022년~)
- 영국군 근위대 블루스 앤 로열스 총사령관[M] (2022년~)
- 영국군 근위대 그레네디어 가드 총사령관[M] (2002년~)
- 영국군 근위대 콜드스트림 가드 총사령관[M] (2022년~)
- 영국군 근위대 스코츠 가드 총사령관[M] (2022년~)
- 영국군 근위대 아이리시 가드 총사령관[M] (2022년~)
- 영국군 근위대 웰시 가드 총사령관[M] (2022년~)
- 영국 공군 RAF 밸리 명예 준장 (1993년~)
- 영국 해군 플리머스 사령부 준장 (2006년~)
- 폐하의 해안 경비대 명예 준장 (2006년~)
- 영국 해군 항공모함 준장 (2019년~)
- 영국 해군 HMS 퀸 엘리자베스의 후원자 (2023년~)
- 영국 해병대 대장[M] (2022년~)
- 영국 육군 왕립 공병대 대장 (2023년~)
- 영국 육군 왕립 스코틀랜드 용기병 근위대 연대장 (2023년~)
- 영국 육군 왕립 기갑 연대 연대장 (2023년~)
- 영국 육군 왕립 포병 연대 연대장 (2023년~)
- 영국 육군 포병 중대 명예 대장 (2023년~)
- 영국 육군 왕립 스코틀랜드 연대 연대장 (2023년~)
- 영국 공군 RAF 마함 명예 준장 (2023년~)
- 영국 공군 RAF 연대 준장 (2023년~)
5. 생애[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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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즉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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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9월 8일 오후 어머니 엘리자베스 2세가 사망한 직후, 왕위 계승 예정자에서 약 70년 만에 왕위를 계승하며 국왕에 즉위했다. 9월 8일 오후 6시 30분경 버킹엄 궁전은 성명을 통해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평화롭게 눈을 감았으며, 찰스 왕세자가 새 왕이 되었다"고 알렸다.
이어서 엘리자베스 2세의 서거를 애도하는 찰스 본인의 성명이 발표되었고, 곧바로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가 다우닝가 10번지 총리 관저 앞에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서거를 애도하고, 찰스 3세 폐하에게 왕위가 계승되었다고 발표했다. 오후 7시 30분경 버킹엄 궁전은 새 국왕의 왕호가 찰스 3세로 확정되었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역대 영국 국왕 중 최고령으로 즉위한 국왕이 되었다.
어머니 엘리자베스 2세의 사망에 대한 찰스 3세의 성명문은 다음과 같다.#
7. 대관식[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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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가족 관계[편집]
8.1. 조상[편집]
8.2. 자녀[편집]
9. 대중매체에서[편집]
다이애나 스펜서가 등장하는 영화, TV 드라마 등에서는 당연히 나온다. 하지만 이런 작품들의 대다수는 다이애나에 동정적인 입장을 취하다 보니 그 반동으로 찰스 왕세자는 대부분 부정적인 모습으로 나온다.
- 엘리자베스 2세의 전기를 그린 넷플릭스 드라마 더 크라운 시즌 3에서 본격적으로 청년기의 찰스가 등장하면서 재조명받고 있다. 특히 불행했던 어린 시절과 순탄치 않았던 부모님과의 관계[24] 가 묘사되면서 동정과 연민을 받고 있다. 시즌 1부터 시즌 3까지는 암울했던 자신의 어린 시절과 여자 문제 등으로 큰할아버지인 에드워드 8세의 처지에 공감하는 모습을 보이며, 자신이 사랑한 카밀라와 강제로 헤어져야만 하는 현실에 대해 슬퍼한다.[25] 하지만 시즌 4에서 본격적으로 다이애나 왕세자비 스토리라인이 등장하면서 악역으로 변모했다. 정확히는 왕실의 일원 중 유일하게 자신을 아껴준 작은할아버지 루이 마운트배튼 백작이 IRA의 테러로 사망하기 직전에 보낸 편지에 쓰인 권고에 따라 과거사가 깨끗하고 정숙한 여성을 왕세자비로 몰색하고, 여기에 다이애나가 낙점된 것이다. 그 후 다이애나를 꼭두각시로 이용하며 카밀라와의 불륜을 저지르고, 심지어는 자신보다 다이애나의 인기가 높아지자 이를 시기하는 모습으로 나온다.[26] 영국 배우 조시 오코너가 연기했다.
시즌 5에서는 장년기가 된 모습으로 등장하며 도미닉 웨스트가 연기한다. 다이애나와의 불화가 여전하여 별거-이혼의 단계를 밟는 모습을 보여줌과 동시에 여전히 카밀라와의 불륜을 저지르는 부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와 대비되게 늙은 여왕에 대한 염증을 느끼는 여러 여론과 당대 분위기를 반영하여 왕실의 변화를 추구하는 보다 입체적인 모습을 보인다. 이를테면 다이애나의 폭로 전까진 새로운 시대(냉전이 끝난 90년대)에 걸맞는 젊은 새 국왕이 즉위해야 한다는 여론 때문에 존 메이저 총리에게 은근히 자신이 여왕에게 양위 받는 것을 희망하는 의욕있는 모습[27] 을 보이인다. 이를 통해 영국 왕실이 보다 대중에 친화적이고 현대적인 체제가 되어야 함을 역설하는 동시에, 여전히 다이애나를 냉대하고 카밀라와의 밀회를 지속하다가 끝내 불륜이 폭로되어 이혼하게 되는 것이 대표적이다.
마침내 다이애나의 죽음을 다루는 시즌 6 Part 1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결혼생활 내내 그토록 사이가 나빴는데도 불구하고, 두 아들인 윌리엄 왕자와 해리 왕자와 더불어 영국 왕실 일원 중에서 그 누구보다 다이애나의 죽음을 슬퍼하고 애도하는 모습을 보인다. 다이애나의 죽음을 전해들었을 때부터 오열하며 슬픔을 감추지 못했고 그녀가 사고를 당한 프랑스 파리로 날아가 다이애나의 시신을 직접 확인하고, 원칙적으로는 이미 이혼해서 더 이상 왕실의 일원이 아닌 다이애나의 시신을 기존의 관례도 깨고 왕실 문양이 새겨진 깃발로 관을 덮은 채 파리 병원에서 런던까지 운구하게 한다. 이때 영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다이애나의 환영을 보며 그녀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 2017년 영국 BBC에서 찰스 3세(King Charles III)라는 드라마를 방영했다. 어머니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노환으로 사망하고 찰스 왕세자가 왕위에 오른 후에 벌어지는 가상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흥미롭게도 극중에서 영국 의회가 안보 문제를 앞세워 언론 자유를 제약하려는 법안을 상정, 처리하려고 하자, 찰스가 직접 의회에 해군 예복[28] 을 입고 출석하여 의회 해산을 선언하는 장면이 나온다.[29] 찰스의 의회해산 장면 대사 해석
다시 말해서 일반 국민에 의해 선출된 대표들이 국민의 자유를 제한하려고 하자 세습 군주가 나서서 이를 저지하려는 상황을 묘사한 것이다.[30] 게다가 이름이 같은 찰스 1세가 권리청원을 통과한 의회를 해산했던 것과 정반대의 상황이다. 의도가 좋든 나쁘든 간에 국왕이 이런 짓을 하면 정치비개입을 통해 유지되어 왔던 영국의 입헌군주제가 흔들리게 되므로 작품 속 찰스 3세는 작게 보면 본인의 왕위, 크게 보면 왕실을 걸고 해산을 강행한 것이며, 극 중에서도 이 장면 후 런던을 비롯한 영국 전역에서 찰스에 대한 반발 시위가 일어나는 모습을 보여준다.
찰스 3세[31] 를 포함해 영국 왕실의 실존 인물들도 주요 배역으로 등장한다. 극중에서 왕세자가 된 윌리엄 왕자는 부왕의 의회 해산 선언 직후에 의회, 부왕을 중재하려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동생인 해리 왕자는 서민 출신의 흑인 여성, 그것도 공화주의자와 교제한다는 설정이다. 그로부터 1년 후 혼혈인 메건 마클과 결혼했으니 반은 들어맞은 셈이다. 여담으로 극중에는 이미 고인이 된 다이애나의 유령이 찰스와 대화하는 장면도 나오는데, 이건 고인모독같은 게 아니라 셰익스피어의 희곡에 나온 특징을 반영한 것이다.
- 시트콤 미스터 빈에서는 사진으로 나왔다. 미스터 빈이 이발소에 가서 이발사가 자리를 비운 사이 손님 3명의 머리를 망쳐 놓고, 손님들이 항의하러 오니까 찰스의 사진으로 얼굴을 가리고 빠져 나왔다.
- 미국 대체역사 드라마 포 올 맨카인드에서는 1983년에 카밀라와 결혼하여 영국 왕실에 분란이 일어나지 않게 된다.
- 2021년 영화 스펜서에서는 배우 잭 파딩이 찰스를 연기했다.
10. 여담[편집]
- 영국에서는 군주의 이름을 따서 시대명을 칭하는 관습이 있는데 예를 들어 엘리자베스 1세의 재위기간은 엘리자베스 시대(Elizabethan era), 빅토리아 여왕의 재위기간은 빅토리아 시대(Victorian era), 찰스 1세의 재위기간은 찰스 시대(Caroline era), 찰스 2세의 재위기간은 철자를 약간 달리해서 Carolean era라고 하는 식이다. 이에 맞추어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는 찰스 3세 즉위 직후 의회 연설과 유엔 총회 연설에서 "영국이 새로운 찰스 시대(New Carolean age)를 맞이했다"라고 발언했다.(의회 연설[원문1] 유엔 총회 연설[원문2] ) 그 외에도 여러 영미권 언론들도 기사에서 찰스 3세의 즉위에 대해 '찰스 시대(Carolean age/Carolean era)가 열렸다' 혹은 '찰스 시대가 돌아왔다'고 표현했다.[참조]
- 스포츠를 매우 좋아해서 어린 시절부터 1992년까지 폴로를 했다. 2005년까지 공무 포함 비공식적으로 폴로를 계속했고, 영국에서 동물사냥이 금지될 때까지 여우 사냥도 많이 했다.
- 식물도 매우 좋아한다. 자신이 직접 정원을 설계하고 만들어서 상을 수상한 적도 있다. 그러다가 1986년 한 인터뷰에서 "나는 내가 만나는 식물과 대화를 나눈다."라고 했다가 미친 것 아니냐며 언론에서 엄청난 조롱을 받았다.[32]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6년에는 큐 왕립 식물원의 새로운 후원자가 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지금도 나무를 직접 심고 있는데 다 심고 나면 마치 악수를 하는 것처럼 줄기나 가지를 잡고 흔들어 준다고 한다.
- 엘리자베스 2세에게 21살 생일 선물로 받은 애스턴 마틴 차량을 50년 넘게 타고 다니고 있다. 정확한 차종은 애스턴 마틴 DB6 컨버터블 모델. 2008년에 바이오에탄올 연료로 움직일 수 있도록 차량을 개조했는데, 영국산 화이트 와인과 치즈 제조공정에서 나온 유청을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운전을 할 때마다 차에서 맛있는 냄새가 난다고 한다. #
- 이러한 환경 친화적인 행동은 국왕이 된 후에도 이어지고 있는데, 왕이 된 후 모든 왕실 거주지의 요리에서 푸아그라를 금지시켰으며,# 왕이 된 후 비건 요리사를 채용하는 공고가 올라온 바 있다.#
- 도싯 주 내에 속해 있는 파운드버리의 도시 설계에 참여한 적이 있다. 도시는 찰스 3세의 평소 철학을 반영해 불필요한 동선을 줄였으며, 차량용 표지판과 신호등을 없애 차량의 통행이 불편하도록 만들어 보행자 중심의 도시로 설계되었다. 21세기에 들어서 본격적으로 시도되고 있는 차 없는 도시의 개념을 도입했던 것이다. 심지어 가로등이나 횡단보도, 표지판도 최소한으로만 설치했으며, 건물 외양도 모두 비슷한 색상으로 맞추었다. 그 대신 새들이 머무를 수 있는 새집과 야생동물 이동 구멍을 건물마다 설치하고, 바이오 연료를 도입하는 등 자연친화적인 도시 환경을 만들었다. 또 서민들을 위해 훨씬 저렴한 주택을 만들어 공급했다. 환경친화적인 개념의 도시 설계로 시대를 앞서나갔다는 평가가 있는 반면, 도시개발이 왕실 인형놀이인줄 아느냐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고 한다. 실제로 이곳의 주민들은 건물 유지, 보수, 관리를 할 때도 엄격한 규칙을 따라야한다.#
- 왕세자 시절부터 엘리자베스 2세를 대신해 해외 주요 국가를 방문하는 일이 많았는데, 특히 2010년대 이후로는 여왕의 고령으로 인해 대부분의 해외 일정을 찰스와 카밀라가 도맡았다.
- 1992년 11월에 3박 4일 일정으로 한국을 공식 방문했다. 이때의 한국 방문은 전처인 다이애나 스펜서와 별거하기 전에 부부 동반으로 수행한 마지막 공무이자 해외 순방이기도 했다.[33] 두 사람은 청와대를 방문해 노태우 대통령이 주최하는 만찬에 참석했으며, 파주에 있는 영국군 전적지를 찾아 헌화했다. 마지막 날에는 경주를 방문해 석굴암 등을 관광했다.당시 영상 당시 두 사람이 머물렀던 숙소는 그랜드 하얏트 서울이었는데, 그로부터 7년 후인 1999년 국빈으로 방한한 엘리자베스 2세와 필립 공이 같은 방에서 거처했다.
- 1997년 7월 1일 홍콩 반환 기념식에 엘리자베스 2세를 대신해 참석했다.[34] 왼쪽은 당시 중국 주석 장쩌민, 오른쪽은 당시 영국 총리 토니 블레어. 이날 행사에는 1980년대에 홍콩 반환 원칙에 합의한 양국 정상 가운데 마거릿 대처 전(前) 영국 총리는 참석했지만, 중국의 덩샤오핑은 아쉽게도 5개월 전 사망했다. 대신 덩샤오핑은 유언에 따라 화장된 유해가 홍콩에 뿌려졌다. 사진에 나온 장쩌민 주석 역시 엘리자베스 2세와 동갑인 1926년생으로 엘리자베스 2세가 사망한 후 2022년 11월 30일에 사망하였다.
- 웰시 코기를 좋아했던 엘리자베스 2세처럼 잭 러셀 테리어를 매우 좋아한다. 2017년 초에 입양한 블루벨과 베스라는 이름의 암컷을 키우고 있으며, 두 마리 모두 유기견 출신이다. 특히 블루벨은 숲에서 피부병으로 인해 다 죽어가는 상태로 발견되었다가 구조된 후 극적으로 회복했다고 한다. 유기견이 로열 펫이 된 것은 역사상 최초이다. 블루벨과 베스 전에는 푸(pooh)라는 이름의 잭 러셀을 키운 적이 있는데, 스코틀랜드의 밸모럴 성 근처에서 줄도 안 매고 산책시키던 중에 숲속에서 뭔가를 발견하고 쏜살같이 달려가는 바람에 실종되었다. 이때 왕세자가 직접 개를 찾는 광고를 신문에 올려 화제가 되었는데, 결국 찾지 못했다고 한다.
- 1980년에 '로크나가르의 노인(The Old Man of Lochnagar)'라는 제목의 아동 도서를 출간해 작가로 데뷔한 적이 있다. 찰스 3세가 어린시절 남동생 앤드루 왕자와 에드워드 왕자에게 들려준 이야기를 출판한 것이라고 한다. 그 외에도 평소 관심사인 자연과 환경에 대한 책을 저술했다.
- 키는 178cm로 전 아내 다이애나와 키가 같으며, 191cm인 장남 윌리엄, 186cm인 차남 해리, 183cm인 아버지 필립 공, 막내동생인 에드워드 왕자보다는 작다. 아들들인 윌리엄과 해리 모두 어머니 다이애나를 닮아 장신이다. 사실 찰스도 딱 현재 영국인 남성의 평균 키로[36] 키가 작은 건 아니다.
- 2012년 5월 11일에는 BBC 뉴스의 일기예보에 출연해서 눈길을 끌었다.
- 대체의학을 지지한 흑역사가 있다. 2004년 항암치료의 일환으로 커피를 이용한 관장 비법을 제안해 영국 의학계가 항의한 일이 있다.[37] 당연히 따라해서는 안되는 짓인데, 신체에서 가장 민감한 부위인 항문에 커피를 부었다가 대장에 화상을 입거나 천공(구멍)이 생기면 노폐물이 빠져나가는 대장의 특성상 세균에 감염되어 패혈증으로 죽을 수도 있다.
- 로렌스 밴 더 포스트의 열렬한 팬이었다. 더 크라운에서 카밀라의 대사 "웨일스 공은 절대로 점심을 안 먹어요, 이게 다 그 '구루' 때문이죠."로 언급되는 바로 그 인물. 탐험가, 환경보호가, 작가로서 상당한 명성을 누렸던 인물인데, 정신적 측면에서 찰스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인물 중 하나로 손꼽힌다. 찰스가 특별히 윌리엄의 대부가 되어줄 것을 부탁했을 정도. 문제는 이 양반이 죽고 나서 그가 저서에 쓴 내용들에 심각한 수준의 과장과 허풍이 너무 많고, 사실은 차별주의적 측면이 강했으며, 여러 여성들과 불륜 관계에 있었던데다, 심지어는 14세 소녀와 성관계를 가졌고 결국 그 소녀는 사생아를 임신, 출산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찰스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의 사람들은 로렌스 밴 더 포스트를 근거로 찰스의 사람 보는 눈이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하곤 한다. 참고로 신혼여행을 갔을 때 찰스가 다이애나에게 적극적으로 독서를 권했지만 다이애나는 읽기를 거부했다던 일화가 제법 알려져 있는데, 그 책들도 사실은 다른 철학서나 고전이 아니라 바로 이 문제 많은 로렌스 밴 더 포스트의 책들이었다.
- 아미 해머의 증조부 아만드 해머와도 상당히 가까웠다. 아만드 해머는 찰스의 여러 사업과 프로젝트에 거액의 기부와 투자를 했고, 본인이 소유했던 훌륭한 전용기를 찰스가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래서 찰스는 그에게 엄청난 호감을 가졌고 윌리엄의 대부로까지 삼으려 했는데, 다이애나의 격한 반대로 다행히 무산되었다. 아만드 해머를 비롯한 해머 가문 사람들의 여러 어두운 진실들이 밝혀진 지금은 찰스의 흑역사로 꼽힌다. 찰스에 대한 주요한 비판 중 하나는 그가 수상한 사업가들에게 너무 쉽게, 자주 끌리고 그들과 지나치게 긴밀한 유대를 맺어왔다는 것인데, 바로 그 근거로 아만드 해머와의 인연이 언급되곤 한다.
- 후안 카를로스 1세 전 스페인 국왕의 왕비 소피아, 그리스 왕국의 마지막 국왕 콘스탄티노스 2세와 6촌이다.(아버지들끼리 친사촌간) 또한 소피아와 콘스탄티노스의 고종사촌인 루마니아 왕국의 마지막 국왕 미하이 1세와도 6촌이다.
- 1969년에 웨일스 공으로 즉위하고 웨일스어를 배웠기 때문에 웨일스 방문 시 영어와 웨일스어로 연설했다.# 독일어에도 능통하며, 독일을 방문할 당시에는 독일 의회에서 독일어로도 연설을 했다.
- 영국 해외 성서공회가 발행했던 킹 제임스 성경 400주년 기념판 성경책 서문을 썼다.
- 1994년에 호주에서 맥쿼리 대학교의 한국계 학부생 ‘데이비드 강’에 의해 암살을 당할 뻔 했다. 암살 미수범은 공포탄 내지 신호탄을 사용하였는데 아무리 실탄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상당히 위험했던 순간이었다. 이 한국계 학생은 현장에서 즉시 체포되었고 곧 재판까지 갔지만 살상 무기를 쓴 게 아니라는 점과 반성하고 있다는 점, 정신병력 등으로 감형받고 사회 봉사만 하는 걸로 판결이 됐다고 한다. 그렇게 잊혀지다가 시드니 공과대학교와 시드니 대학교 졸업 후 2006년에 변호사가 되었다.#
- 2005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장례식에 참석했을 당시에 짐바브웨의 독재자 로버트 무가베와 악수했다가 논란이 된 적이 있다. 논란이 이어지자 클래런스 하우스에서 "무가베와의 악수는 피할 수 없었지만, 현재 짐바브웨 정권은 혐오스럽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 2023년 2월 23일, 잉글랜드 워릭셔주에 있는 한 주택의 다락방에서 찰스 3세가 어린시절 외할머니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에게 쓴 편지가 발견되어 화제가 되었다. 편지는 찰스 3세가 여섯 살이던 1955년 3월 15일에 작성된 것으로, 편지지에 버킹엄 궁전의 로고가 새겨져 있어 궁전에서 쓴 편지임을 알 수 있다. 편지에는 "할머니께. 편찮으시다는 소식을 들으니 마음이 아파요. 빨리 나으시기를 바래요. 사랑을 담아, 찰스"라는 내용이 담겨있다. 편지는 여왕의 호위부대에서 근무했던 롤랜드 스톡데일이 수집한 것이었는데, 오랫동안 다락방에서 먼지를 뒤집어 쓰고 처박혀 있다가 손자가 우연히 발견했다고 한다. 스톡데일은 1980년대에 이미 사망해 어떠한 경위로 편지를 갖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고 한다. 그 외에도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의 시종이 스톡데일 부부에게 보낸 편지와 왕실 만찬의 메뉴판, 밸모럴 성 댄스파티 초대장,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의 서명이 담긴 쪽지, 1955년 조지 6세 추도식 초대장, 1956년 엘리자베스 2세의 성탄절 연설 사본이 함께 발견되었다고 한다. # 이중에서 찰스 3세가 어린시절에 쓴 편지의 가치는 2,000~3,000 파운드로 책정되었다고 한다.
10.1. 에드워드 7세와의 공통점[편집]
재밌게도 외고조할아버지인 에드워드 7세와의 공통점이 꽤 많다.
- 둘 다 어머니가 여왕이다.
- 둘 다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독일인 혈통이 섞여있다.
- 둘 다 아버지가 외국 왕족 출신이며, 당대 미남으로 유명했다.
- 둘 다 어머니가 워낙 오랜 기간 영국 국왕으로 재위했기에 오랜 기간 웨일스 공으로 재위했다.
- 둘 다 왕세자 시절에 손주들을 보았다.
- 둘 다 아버지보다 키가 작다. 에드워드 7세의 키는 173cm, 찰스 3세의 키는 178cm이고, 에드워드 7세의 아버지인 앨버트 공의 키는 180cm, 찰스 3세의 아버지인 필립 공의 키는 183cm로 둘 다 아들들보다 키가 크다.
- 둘 다 고령의 나이에 즉위했다.
두 사람 모두 집안의 주선에 따라 당대 미녀로 유명했던 왕족 또는 상류층 여성과 결혼했으나, 결혼 생활이 평탄하지 못했고 정부(情婦) 앨리스 케펠과 카밀라 파커 보울스가 사실상 아내 역할을 대체하며 정신적 버팀목의 역할을 해주었다는 점도 은근히 비슷하다. 또 재위기간 동안 본인보다 왕세자인 조지 5세와 윌리엄에 대한 국민들의 호감도가 더 높다는 점도 같다.
사생활과 관련한 부분은 비판받지만, 국왕으로서의 대내외적인 평판은 나쁘지 않다는 점 역시 에드워드 7세와 겹친다.
뛰어난 외교술로 유명했던 에드워드 7세처럼 찰스 3세 역시 웨일스 공 시절에 쌓은 오랜 외교 경험과 유럽 경험으로 브렉시트 이후 영국에서 유럽 외교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며 비공식 유럽 담당 장관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는 반응도 있다. 실제로 즉위 후 첫 국빈 방문으로 독일과 프랑스를 방문했으며, 브렉시트 이후 유럽 국가와의 관계 회복에 기여하는 외교사절의 역할을 해냈다는 평가를 받고있다.
11. 둘러보기[편집]
[1] 즉위 후 공개된 첫 공식 초상화이다. 아직 대관식을 치른지 얼마 지나지 않아 대관식 초상화는 공개되지 않았다. 즉, 이 초상화는 재위 기간 중 제작될 여러 초상화들 중 하나일 뿐 국왕을 상징하는 대표 초상화는 아니다. 최근 알려진 바에 따르면 2023년 하반기에 공식 초상화가 공개될 예정이며, 캐나다 등 영연방 왕국에서는 그 국가만을 위한 초상화가 따로 제작된다고 한다. 새 대관식 공식 초상화는 기존 엘리자베스 2세 공식 초상화를 대체해 영국과 영연방 왕국 내 주요 학교와 공공기관, 해외 주재 대사관 등에 전시될 예정이며, 이를 위해 800만 파운드의 정부 재정이 투입된다.#[2] 64세에 즉위한 윌리엄 4세의 기록을 경신했는데 심지어 윌리엄 4세는 찰스 3세가 왕이 되기 전의 나이인 71세에 생을 마쳤다.[3] 엘리자베스 2세가 즉위했을 때부터 장남으로서 실질적인 왕위 계승자로 여겨졌던 것까지 따지면 70년인 것이다. 정확히 웨일스 공에 책봉된 것만 기준으로 계산하면 64년이다.[4] 에드워드 7세는 출생후 한달만에 웨일스 공에 책봉되어 60년 간 웨일스 공으로 재위하고 국왕으로 즉위했다.[5] 영국 국왕으로서 쓰는 문장으로, 어머니의 문장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전통에 따라 스코틀랜드에서는 위와 디자인이 다른 문장을 사용한다. 또 영국 이외에 찰스 3세가 국왕으로 있는 나라(영연방 왕국)에서 쓰는 문장은 나라마다 다르다. 영연방 왕국의 서로 다른 국장들이 곧 찰스 3세의 문장이므로 이들을 참고하면 된다.[6] 왕실 문장과 족보를 관리하는 기관 '암스 칼리지(College of Arms)'에서 내놓은 10개 디자인 시안 중에서 찰스 3세가 직접 선택했다고 한다. 엘리자베스 2세는 문자가 겹치지 않고 성 에드워드 왕관을 씌운 모노그램을 처음 도입했으나, 찰스 3세의 모노그램은 외할아버지 조지 6세까지의 전통대로 복합적인 알파벳 배치에 튜더 왕관을 씌운 고전적인 디자인으로 복귀했다. 앞으로 영국의 공공건물을 비롯해 국가문서, 제복, 군복, 우체통, 여권 등에 이 모노그램이 새겨진다.[7] 어머니 엘리자베스 2세가 즉위하자 장남인 찰스가 자동으로 받았다.[8] 왕세자에 정식으로 책봉되었다.[E] A B C D E F 2021년 아버지 필립 공이 사망하면서 장남으로서 작위를 물려받았다.[9] 영국 외에 찰스 3세가 국왕으로 군림하는 14개국에서는 각각 별도의 칭호가 정해져 있다.[10] 스코틀랜드를 제외한 지역에서 왕세자의 대표 칭호다. 스코틀랜드에서는 로스시 공작이 대표 칭호다.[11] 로스시 공작은 스코틀랜드 왕위 계승자의 작위로 스코틀랜드에서는 웨일스 공 작위와 동등한 위상을 가지기 때문에 스코틀랜드에서는 예외적으로 이 칭호가 왕세자의 대표 칭호로 쓰인다.[12] 왕자의 자녀들만 프린스(Prince)와 프린세스(Princess) 칭호를 받을 수 있었다. 공주의 자녀들은 아버지의 작위에 따라서 칭호가 결정되었다.[13] 영국과 프랑스에서 있던 것으로 귀족의 자식을 부르는 칭호다. 장남은 아버지의 주요 칭호 이외에 부수적인 칭호 중 하나를, 차남부터는 공작, 후작은 lord, 그 이하는 The Honourable로 부르며, 결혼하지 않은 딸은 백작까지는 lady, 그 이하는 The Honourable로 부른다.[14] 아버지 필립 공의 작위 중 하나인 에든버러 공작(Duke of Edinburgh)의 장남으로써의 칭호.[HRH] His/Her Royal Highness.[15] 통칭 에든버러의 공자 찰스 전하(His Royal Highness Prince Charles of Edinburgh). 원래 '~의 공자/공녀'라는 작위는 공주의 자녀들에겐 주어지지 않는다.[16] 구체적으로는 왕자시절 이름인 앨버트 대신 조지를 왕명으로 선택한 외할아버지 조지 6세처럼 조지 7세를 왕명으로 정할 것이라는 예상이었다. 조지 이름을 가진 왕들의 평가가 전반적으로 나쁘지 않은데다가, 조지 시대라는 명칭이 따로 있을 정도로 대영제국 시절의 전성기를 상징하는 이름이기 때문이었다.#[17] 2개 국가의 수장인 사람으로는 프랑스 대통령이자 안도라의 공동 공작인 에마뉘엘 마크롱이 있다.[M] A B C D E F G H 군 통수권자로서의 당연직 직함[18] 당시 해리 왕자의 자녀들은 태어나기 전이라 아치와 릴리벳은 없다.[19] 니콜라이 1세의 손녀이다.[20] 빅토리아 여왕의 외손녀이다.[21] 찰스 3세는 알아주는 스키덕후로, 아들들이 결혼하기 전에는 매년 스키 여행을 함께 갔다. 그러나 2023년에는 대관식을 앞두고 스키를 타다가 부상을 당할 것을 우려해 스키 여행을 가지 못했다.[22] 웨일스의 조지 공자, 웨일스의 샬럿 공녀, 웨일스의 루이 공자[23] 서식스의 아치 공자, 서식스의 릴리벳 공녀[24] 개인 소유의 하이그로브 저택을 방문한 어머니에게 자신의 샹그릴라이자 제나두라며 일장 연설을 하지만 엘리자베스 2세는 ‘자연을 직선을 거부한다면서 저 연못은 왜 직선으로 만들었냐.’라는 둥 쿠사리를 놓다가 집중이 안되었는지 밥이나 먹자고 한다.[25] 왕족은 커녕 남작의 외손녀 쯤 되는 카밀라가 미래의 왕인 왕세자와 결혼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여겼고, 찰스 왕세자와 사귀면서도 앤드루 파커 보울스(훗날 카밀라의 첫 남편)와 양다리를 걸치고 있다는 게 드러나 바로 왕실 일가의 공작으로 헤어진다. 결국 카밀라는 앤드루와 결혼한다.[26] 심지어 영연방 탈퇴 여론을 조성하던 호주 총리가 다이애나로 인해 계획이 틀어지자 찰스와 함께 다이애나를 증오하기까지 한다.[27] 물론 존 메이저 총리는 제 앞가림도 못하고 시대적 변화나 당면한 국정 과제에 유리되어 있고 구태의연한 왕실 인사들 모두를 냉소적으로 바라본다.[28] 원래 육군 관련 업무엔 육군 예복을 입고, 해군 관련 업무엔 해군 예복을 입지만, 지형적인 특성상 전통적으로 해군을 우대하던 경향이 있어 왔던 영국에서는 두 의복 중 고를 수 있는 상황이라면 육군 예복보다는 해군 예복이 좀 더 격식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29] 영국 국왕에게는 지금도 의회 해산권이 명목상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입헌군주제가 확립되면서, 국왕은 명목상의 사후 승인만 해주고 실질적으로는 총리가 의회 해산을 주도하는 형식으로 자리잡았다. 그런데 그 전통을 깨고 국왕이 직접 의회 해산을 해버린 것이다. 그리고 본래 영국 국왕은 영국 서민원에는 들어올 수 없으며, 귀족원에만 들어올 수 있다. 국왕이 참석해서 행하는 국회 개원식도 상원인 귀족원에서 행한다. 그런데 이 의회 해산할 때만은 국왕이 하원인 서민원에 직접 들어올 수 있다.[30] 이 때문에 이 영화가 찰스 왕세자를 미화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오히려 찰스는 물론 영국 왕실 전체를 현실보다 더한 콩가루 집안으로 그려냈다. 찰스는 극 초반부터 어머니를 잃은 것보다 자신이 왕이 된 사실이 더 크게 다가오고, 캐서린 미들턴은 권력욕에 사로잡혀 아버지에게 반기를 들라고 남편을 적극적으로 부추기고, 얌전하고 왕실의 규율을 중시하던 윌리엄도 결국 아내에게 설득당해 대놓고 아버지에게 왕위를 내놓으라고 대든다. 특히 작중 캐서린은 실존 인물과 이름만 같은 전혀 다른 인물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아주 저돌적이고 약삭빠르며 실리 계산에 밝은 사람으로 나와 논란이 되었다. 그나마 좀 덜 부정적으로 나온 해리도 친구들과 나이트클럽에서 술을 진탕 마시며 놀고, 왕자의 신분임에도 공화주의자 여성과 사귀며 한시라도 빨리 왕실을 벗어나고 싶어하는 등, 왕실에 하등 도움이 안되는 행동만 골라서 한다.[31] 배우는 팀 피것스미스로 브이 포 벤데타에서 피터 크리디를 연기했다. BBC 방영 한 달 전인 4월 7일 만 70세로 사망했다.[원문1] The British people, the Commonwealth, and all of us in this House will support him as he takes our country forward to a new era of hope and progress, our New Carolean age.[원문2] And as we say farewell to our Late Queen, the UK opens a new chapter – a new Carolean age – under His Majesty King Charles III.[참조] 더 타임스 - What could the Carolean era mean for the UK?, 더 가디언 - Carolean age dawns as Britain begins long goodbye to the Queen, CTV#캐나다 - 'Carolean era:' Understanding the label for King Charles III's reign, 데일리 메일 - The Carolean age returns: How the Elizabethan era ends as Britain comes under the reign of the THIRD King Charles[32] 물론 이 당시에는 조롱을 받았지만, 현재는 오랫동안 환경 친화적인 행동을 보여온 점이 오히려 높게 평가 받고있는 중이다.[33] 당시 부부 동반 한국 방문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적극적으로 밀어붙였다고 한다. 왕세자 부부의 불화설이 불거지기 시작한 상황에서 부부가 동반으로 해외를 방문해 공무를 수행하는 모습을 보여주어 부부 사이가 여전히 건재함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이 방법이 엘리자베스 2세가 즉위초기 에든버러 공의 염문설이 돌 때마다 써먹으며 효과가 있었기 때문. 하지만 엘리자베스 2세의 기대와는 달리, 오히려 두 사람의 갈등은 더 곪아갔고, 결국 한국 방문 후 별거로 이어졌다.[34] 엘리자베스 2세는 이때 홍콩에 방문하려고 했지만 고령에 따른 건강 문제가 거론되어서 찰스 왕세자가 대신 온 것이다. 하지만 엘리자베스 2세는 홍콩 반환 후로도 25년을 더 살았다. 다만 고령일수록 무리를 하지 않는 것이 상당히 중요하기는 하다.[35] 다이애나의 폭로 인터뷰에 의하면 둘째를 임신했을 당시 찰스가 딸이라고 생각하면서 결혼한 이래 금슬이 가장 좋아졌으나, 낳고 보니 이번에도 아들인 해리 왕자가 태어나자 급실망한 찰스로 인해 부부관계가 더 냉각되었을 정도였다고 한다.[36] 그의 연령대를 고려하면 오히려 평균보다 큰 키다.[37] 의외로 역사가 오래 되었다. 1917년 독일 의사 막스 거슨이 주장하기 시작한 것이 시초이다.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20년부터.[38] 어머니 엘리자베스 2세와 아버지 필립 공 모두 빅토리아 여왕의 현손들이다.[39] 유럽의 군주들 중에서 부계와 모계가 모두 빅토리아 후손인 상태로 왕위에 오른 첫 번째 인물은 루마니아 왕국의 마지막 국왕 미하이 1세로, 1927년에 찰스 3세보다 95년 먼저 즉위했다.(1차 재위 기준) 부왕 카롤 2세가 빅토리아 여왕의 차남 알프레드 왕자의 외손자였고, 모후 엘레니가 빅토리아 여왕의 장녀 빅토리아 황후의 외손녀였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인물은 그리스 왕국의 마지막 국왕 콘스탄티노스 2세로, 1964년에 찰스 3세보다 58년 전에 먼저 즉위했다. 부왕 파블로스가 빅토리아 여왕의 장녀 빅토리아 황후의 3녀 조피의 아들이었고, 모후 프레데리키는 빅토리아 황후의 장남 빌헬름 2세의 외손녀였다. 세 번째 인물은 스웨덴의 현 국왕 칼 16세 구스타프로, 1973년에 찰스 3세보다 49년 전에 먼저 즉위했다. 아버지 구스타프 아돌프 왕자가 빅토리아 여왕의 3남 아서 왕자의 외손자였고, 어머니 지빌라 왕자비는 빅토리아 여왕의 4남 레오폴드 왕자의 손녀였다. 네 번째 인물은 스페인의 현 국왕 펠리페 6세로 부왕 후안 카를로스 1세가 빅토리아 여왕의 5녀 베아트리스 공주의 장녀 바텐베르크의 빅토리아 유제니의 손자이고, 모후 소피아가 앞서 언급된 콘스탄티노스 2세의 누나이다.[40] 증조할머니 그리스의 올가 왕비가 니콜라이 1세의 친손녀다.[41] 73세의 나이에 즉위했기 때문에 재위 25주년 실버 주빌리 행사를 치른다고 해도 98세가 된다. 만약 실버 주빌리 행사를 치른다면, 엘리자베스 2세가 가졌던 영국 역사상 최장수 군주 타이틀도 찰스 3세가 보유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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