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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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사단법인 한국영화인총연합회가 주최하고 문화체육관광부와 영화진흥위원회가 후원하는 영화 시상식의 명칭. 3대 영화상 중 가장 역사가 깊으나 애니깽 사태, 배우에 대한 협박, 지나치게 보수적인 문화, 박근혜 정부의 개입 논란, 영화와 관계 없는 시상자 등의 잦은 논란을 일으켜 불참과 대리수상이 이어지며 58회에서는 수상자의 절반 이상이 불참하며 주목도, 참여도 등이 실추되었다.
영화제가 아니라 시상식이지만 왜인지 주최 측에서 '대종상 영화제'라는 명칭을 고집하고 있다.[1] 시상식의 전야제 개념으로 후보작과 역대 수상작을 상영하는 상영회를 가진 적이 몇 번 있긴 하지만 꾸준히 열리지도 않을 뿐더러 그것만으로 영화제라고 부르기엔 무리가 있다.
2. 역사[편집]
제1회 대종상 시상식
전신(前身)인 우수국산영화상을 포함할 때 현존 영화상 중에서는 역사가 제일 깊다.[2] 1957년에 문교부에서 우수국산영화상이라는 명칭으로 시상하기 시작했고(1957년, 1958년, 1959년, 1960년) 1961년 주관이 공보부로 바뀌면서[3] 제1회 한국최우수영화상 시상식(영상)이 열렸으며, 1962년 대종상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우수국산영화상과 한국최우수영화상 시절은 대종상의 역대 수상 목록에서 제외되어 있으나 그렇다고 이 시절과 단절을 선언하냐면 그런 것도 아니다. 웹사이트 연혁에는 공식적으로 언급하고 있다.[4]
1969년과 1970년에는 '대한민국 문화예술상'의 영화 부문으로 통합[5] 되었는데 수많은 잡음 속에 1969년은 영화 부문 수상자 없이 끝났다. 1970년에는 영화 부문에서 시나리오 작가 최금동이 본상을 수상했다.[6] 1971년부터 다시 대종상으로 환원되었다.
1988년에는 영화계 내분으로 이듬해로 연기되었고, 1998년에는 IMF 외환위기로 후원사를 찾지 못해 무산되었으며, 2019년에는 시상 방식 변경으로 이듬해로 연기되면서 개최되지 못했다. 과거에는 한국 최고 권위의 영화 시상식이었다. 사실은 애초부터 공정성과는 담 쌓은 후진국형 이권다툼 행사였다는 것이 1990년대 들어 시민들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서 만천하에 들통났다.
국가 주도에서 민간 주도로 넘어간 것은 1992년으로 삼성이 단독 후원을 맡아 영화인협회와 공동 주최했다.
조직위원회와 영화 단체의 갈등, 영화 단체들의 파벌 싸움과 공정성 논란 속에서도 꾸준히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메이저 영화상' 중 유일하게 언론사가 아닌 '영화인'들이 직접 꾸리는 시상식이기 때문이다. 주기적인 위기 속에서 위와 같은 이유로 되살아나기를 반복해왔다.
남녀주연상 수상자가 다음 해 홍보대사를 맡는 전통이 있다.
2015년 남녀주연상 후보 전원 불참 사태와 2016년부터 TV 생중계가 지상파인 KBS에서 케이블 방송, 종합편성채널로 바뀌며 위상이 하락했다. 당시 대종상은 흥행 대작 위주의 시상으로 여론이 좋지 않았는데, 대종상 이후 열리는 청룡영화상이 2년 연속 독립영화에 여우주연상을 안기며 비교적 공정하다는 이미지가 생겼다. 결정적으로 2016년 청룡이 대종상엔 불참한 뒤 청룡에 참석한 여우주연상 후보들을 제치고 유일한 불참자[7] 에게 여우주연상을 주며 화제성과 함께 국내 최고 권위의 영화상 타이틀을 거머쥐었다.[8] 2인자 포지션도 JTBC에서 중계하는 종합 시상식인 백상예술대상에게 넘겨주었다. 그럼에도 꾸준히 TV에 생중계 되며 '3대 영화상'이라 불리고 있다.[9]
2017년 제54회 대종상영화제는 '리부트'를 선언하며 대대적인 개편에 나섰다. 외부 심사위원 비율을 높이고 국내 시상식 최초로 심사위원 명단과 함께 심사결과를 방송에서 실시간으로 공개했다. 설경구, 송강호, 이병헌 등 배우들을 비롯한 영화인들의 참석률도 높아졌다. 출품제 심사 방식 역시 폐지됐다. 제55회 대종상영화제까지 TV조선이 생중계를 맡았다.
제56회 대종상영화제부터는 1월부터 12월 개봉작을 심사하기 위해 개최 시기를 11월에서 다음 해 2월로 변경했다.[10] 당초 2020년 2월 개최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사태로 연기되어 6월 3일 개최됐다. 중계 방송사는 MBN으로 바뀌었다.
2021년 제57회 시상식은 코로나19로 무산되었고, 2022년 12월 9일 제58회 시상식이 건국대학교 새천년홀에서 열렸다.
2023년 12월 대종상을 주최하던 한국영화인총연합회(이하 영연)가 서울회생법원에 의해 파산선고를 당했다.[https://www.yna.co.kr/view/AKR20231212154951004] 이번 파산신청은 과거 영연 임원의 파산신청을 법원이 인정한 것으로 영연은 회생절차를 신청했다. 이런 상황으로 당장 24년 겨울로 계획된 60회 대종상의 향방도 어려워질 전망이다.
3. 역대 주최·주관자[편집]
- 문교부 (1957~1960)
- 공보부 (1961~1966)
- 한국영화인총연합회 (1967~1968)
- 문화공보부 (1971~1978)
- 영화진흥공사 (1979~1986)
- 한국영화인총연합회 (1987~)
- 삼성그룹 (1992~1993)
- 삼성문화재단 (1994~1996)
- 쌍방울 (1997)
- 영화인회의 (2001)
- SBS (2004~2010)
- SBS프로덕션 (2004~2009)
- 중앙일보 (2006~2009)
- 대성그룹 (2006~2009)
- 서울특별시 (2007)
- 동아일보 (2011~2012)
- 한국방송공사 (2013~2015)
4. 시상 부문[편집]
2017년 기준으로 다음과 같다.
- 최우수작품상
- 감독상, 신인 감독상
- 남녀 주연상, 남녀 조연상, 신인 남녀상
- 기획상
- 시나리오상
- 촬영상, 조명상, 미술상, 의상상
- 편집상, 음악상
- 기술상
5. 역대 수상[편집]
5.1. 우수국산영화상[편집]
5.2. 한국최우수영화상[편집]
5.3. 최우수 작품상 및 감독상[편집]
5.4. 남우 / 여우 주연상[편집]
5.5. 남우 / 여우 조연상[편집]
5.6. 신인상[편집]
5.7. 기록[편집]
- 작품상
- 최다 수상 - 광해, 왕이 된 남자[12] (15개 부문 석권)
- 감독상
- 음악상
- 최다 수상 - 정윤주[34] (4회 수상)
- 미술상
- 최다 수상 - 김유준[35] (7회 수상)
- 의상상
- 최다 수상 - 권유진[36] (5회 수상)
- 6회 수상자
- 5회 수상자
- 4회 수상자
- 3회 수상자
- 2회 수상자
6. 역대 후보[편집]
6.1. 남우주연상[편집]
6.2. 여우주연상[편집]
7. 연도별 수상[편집]
7.1. 2022년[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http://obj-sg.the1.wiki/d/2a/c3/2af8a3cde73220d4d2ce2a2d6cd7ab6096df203a6cf8021431522ae01d6c0ecb.png)
7.2. 2023년[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http://obj-sg.the1.wiki/d/2a/c3/2af8a3cde73220d4d2ce2a2d6cd7ab6096df203a6cf8021431522ae01d6c0ecb.png)
8. MC[편집]
- 1986년 제25회 이창호, 유혜선
- 1987년 제26회 이덕화, 김청
- 1989년 제27회 차인태
- 1994년 제32회 이덕화, 강수연
- 1995년 제33회 안성기, 강수연
- 1996년 제34회 손범수, 지수원
- 1999년 제36회 이계진, 김혜수
- 2000년 제37회 유정현, 정지영
- 2001년 제38회 유정현, 정지영
- 2002년 제39회 홍은철
- 2005년 제42회 손범수, 정지영
- 2006년 제43회 유정현, 이보영
- 2007년 제44회 유정현, 김아중
- 2008년 제45회 최기환, 김아중
- 2009년 제46회 최기환, 한예슬
- 2010년 제47회 신동엽, 김정은
- 2011년 제48회 신현준, 장서희
- 2012년 제49회 신현준, 김정은
- 2013년 제50회 신현준, 하지원
- 2014년 제51회 신현준, 엄정화, 오만석
- 2015년 제52회 신현준, 한고은
- 2016년 제53회 김병찬, 공서영, 이태임
- 2017년 제54회 신현준, 스테파니 리
- 2018년 제55회 신현준, 김규리
- 2020년 제56회 이휘재, 한혜진
- 2022년 제58회 김태훈, 강나연
- 2023년 제59회 차인표, 장도연
2011년부터 2016년을 제외하고 2018년까지 진행을 맡았던 신현준은 생방송 중 후보자, 작품 이름을 헷갈리는 등 어수선하고 웃기려는데에만 치중하다는 비난도 있었으나, 2015 대종상 시상식 논란 당시에는 MC, 시상, 대리수상까지 하며 '신현준의 일당백', '신현준의 고군분투'라는 호평을 받기도 했다.
2016년에 전문 진행자가 진행을 맡아 시상식이 다소 안정되어 보인다는 평도 있으나 메인 진행자인 김병찬의 진행 방식이 올드하다는 평 또한 있었다.
9. 심사 위원[편집]
9.1. 2017년[편집]
김홍준(심사위원장, 영화감독, 영상원 교수), 강성률(영화평론가, 광운대교수), 강유정(영화평론가, 강남대교수), 김형준(한맥문화 대표), 달시 파켓(영화평론가, 부산영화아카데미 교수), 오동진(영화평론가, 마리끌레르영화제 집행위원장), 윤성은(영화평론가), 정성일(영화감독, 영화평론가) 정수완(영화평론가, 동국대교수)
2017년부터 생방송으로 수상자들의 심사 결과를 공개했다.
9.2. 2018년[편집]
강유정(영화평론가, 강남대교수), 김영(미루픽쳐스 대표,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집행위원), 김형준(한맥문화 대표, 아시아필름어워드 국제고문), 김홍준(영화감독, 영상원 교수), 달시 파켓(영화평론가, 부산영화아카데미 교수), 전진수(제천국제음악영화제 프로그래머), 정성일(영화평론가, 영화감독), 정수완(영화평론가, 동국대 교수), 채수진(프로듀서, 전 영화진흥위원회 다양성소위원회 위원)
9.3. 2020년[편집]
이장호(영화감독, 한국영화 100년 추진위원장), 김영 (영화 기획제작자), 김형준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필름마켓 운영위원), 문재철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 교수), 백현주 (동아방송예술대 창의융합교양학부 교수), 변성찬 (인디다큐페스티벌 집행위원장), 성승택 (촬영감독), 양경미 (한국영상콘텐츠산업연구소장, 영화평론가), 전철홍 (시나리오 작가)
10. 문제점[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http://obj-kr.the1.wiki/d/2a/c3/2af8a3cde73220d4d2ce2a2d6cd7ab6096df203a6cf8021431522ae01d6c0ecb.png)
11. 여담[편집]
- 1999년 제36회 시상식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영상 메시지를 보내 "영화는 21세기 무한한 세계문화시장을 이끌어갈 전략상품의 핵심이 되고 있다"며 "좋은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야 말로 이 시대의 영웅이며 신지식인"이라고 영화인들을 격려했다.
- 2013년 제50회 대종상에 롯데엔터테인먼트 배급작이 출품되지 않았다는 서술이 있었고 해당 나무위키 내용이 담긴 기사까지 났으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출품은 배급사가 아닌 제작사에서 담당해 배급사와는 무관하며, 당시 롯데 배급작으로는 간첩, 연애의 온도, 더 테러 라이브 등이 출품됐다. 이 중 더 테러 라이브는 이후 상영 자료를 보내지 않아 예심에 오르지 못했다.# 소원, 친구 2는 심사 기간, 시상식 이후 개봉작이며 2014년 51회 대종상 후보에 올랐다.
- 2013년 제50회 대종상은 KBS2에서 생방송으로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2013년 한국시리즈 7차전 중계로 취소되었고, 녹화방송으로 진행되었다. 그런데 대종상 측이 7차전까지 가지 못할 거라고 해명했고 대충상이라고 욕을 먹은 적이 있다.
- 2017년 제54회 시상식에서 박열의 최희서가 대종상 역사상 최초로 신인여우상과 여우주연상을 함께 수상하였다. 신인상 후보가 주연상 후보에 오른 경우는 여러번 있었지만 수상까지 이어진 경우는 처음이다. 이전과 달리 주최측인 한국영화인총연합회와 전혀 무관한 영화계 인물들로 심사단을 구성했고, 심사위원들의 투표과정과 결과를 공개하였기에 가능한 시상이었다고 볼 수 있다. 공교롭게도 여우주연상 후보 중 최희서만 참석했으나, 다른 부문 수상자 중 불참자는 사전에 촬영해둔 수상소감 영상을 방송하였으므로 불참했다고 주최측이 심사위원단의 결과를 번복하여 수상자를 바꿨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볼 수 있다.
- 2020년 시상식부터 인기상이 폐지됐다.
12. 관련 문서[편집]
[1] 반대로 청룡영화상은 정식 명칭이 청룡영화'상'인데도 청룡영화'제'라고 곧잘 불린다. 물론 청룡영화상도 영화제가 아니다.[2] 참고로 대한민국 최초의 영화상은 1956년 1월 3일 열린 제1회 금룡상(金龍賞)이다. 전신을 제외하고 대종상만 따지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영화상은 1958년 시작된 부일영화상이다.[3] 1961년 정부조직법 개정으로 문화 및 예술에 관한 사무가 공보부로 이관되었다.[4] @1 @2 @3[5] 대종상, 무궁화상, 방송문화상, 출판상, 3·1연극상, 문예상, 신인예술상, 국악상 등 8개 시상 제도와 6개 경연대회 등의 시상 제도를 단일화하여 본상 10개 부문으로 통합하였다.[6] 일부 자료에는 최금동이 1970년 제9회 대종상 시나리오상을 수상한 것으로 나오기도 하는데 엄밀하게는 대한민국 문화예술상의 영화 부문 본상이다. 영화 부분 본상은 작품상, 감독상, 연기상 등으로 각각 시상하는 것이 아니라 통합해 1인에게 주었다.[7] 영화 아가씨의 김민희. 칸 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작으로 연기 호평에도 불구하고 홍상수 감독과의 불륜으로 국내 각종 협회 시상식에 불참, 대중들의 비난 여론으로 1개의 여우주연상에 그쳤었다. 대종상에는 아예 작품을 출품하지 않아 후보에 오르지 않았다.[8] 2019년 기준 지상파에서 중계되는 유일한 영화 시상식.[9] 2010년 초반까지는 MBC가 주최한 '대한민국 영화대상'이 SBS에서 중계했던 대종상, KBS에서 중계를 맡은 청룡영화상과 함께 ‘3대 영화상’으로 불렸다.[10] 제56회 대종상 영화제는 2018년 9월부터 2019년 12월까지 1년 4개월간 개봉한 영화들이 후보에 올랐다.[11] 《무명의 교사》는 극영화가 아닌 문화영화로서 '최우수문화영화작품상'을 수상했고, 극영화 최우수작품상 수상작은 없다. # #[12] 최우수작품상, 감독상, 시나리오상, 남우주연상, 남우조연상, 촬영상, 편집상, 조명상, 음악상, 의상상, 미술상, 기획상, 영상기술상, 음향기술상, 인기상[13] 1979년 족보, 1981년 만다라, 1986년 티켓, 1987년 연산일기, 1993년 서편제[14] 최초 2연속 수상[15] 2003년 살인의 추억, 2007년 괴물, 2009년 마더, 2013년 설국열차, 2020년 기생충[16] 2006년 왕의 남자, 2008년 즐거운 인생, 2014년 소원, 2015년 사도, 2017년 박열[17] 1982년 철인들, 1983년 안개마을, 1985년 깊고 푸른 밤, 1994년 투캅스, 2007년 라디오스타[18] 2001년 공동경비구역 JSA, 2003년 살인의 추억, 2007년 괴물, 2008년 밀양, 2010년 의형제, 2013년 관상, 2014년 변호인, 2016년 밀정, 2017년 택시운전사, 2020년 기생충, 2022년 브로커, 2023년 거미집[19] 1959년 어느 여대생의 고백, 1960년 동심초, 1961년 이 생명 다하도록, 1962년 상록수, 1965년 청일전쟁과 여걸 민비, 1966년 민며느리[20] 1999년 약속, 2000년 내 마음의 풍금, 해피엔드, 2001년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2004년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2005년 인어공주, 2006년 너는 내운명, 2008년 밀양, 2010년 하녀, 2014년 집으로 가는 길, 2020년 생일[21] 1982년 꼬방동네 사람들, 1983년 불의 딸, 1990년 수탉, 2010년 시[22] 2006년 왕의 남자, 2010년 이끼, 2011년 부당거래, 2014년 해적: 바다로 간 산적, 2015년 베테랑[23] 2010년 방자전, 2013년 7번방의 선물, 2015년 국제시장, 암살, 2016년 터널[24] 1963년 새댁, 1968년 갯마을, 1968년 엄마의 일기[25] 2008년 무방비도시, 2012년 도둑들, 2015년 사도[26] 2008년 무방비도시, 2009년 박쥐, 2012년 도둑들, 2015년 사도, 2017년 재심[27] 1997년 초록물고기, 2000년 박하사탕, 2010년 시[28] 2000년 유령, 2003년 살인의 추억, 2013년 설국열차, 2020년 기생충[29] 1971년 화녀, 1974년 국회 푸락치, 1978년 과부, 1982년 만추, 1983년 안개마을, 1991년 젊은 날의 초상, 1993년 서편제[30] 1971년 화녀, 1974년 국회 푸락치, 1978년 과부, 1982년 만추, 1983년 안개마을, 1991년 젊은 날의 초상, 1993년 서편제, 1996년 본 투 킬, 1997년 아버지, 2000년 춘향던, 2001년 침향[31] 1978년 망명의 늪, 1981년 만다라, 1983년 여인 잔혹사 물레야 물레야, 1991년 젊은 날의 초상, 1992년 개벽[32] 1996년 은행나무 침대, 1997년 비트, 1999년 태양은 없다, 2001년 인터뷰, 2002년 무사, 2003년 살인의 추억, 2005년 역도산, 2007년 괴물[33] 1996년 테레리스트, 1997년 접속, 피아노맨, 1998년 정사, 2001년 공동경비구역 JSA, 2005년 얼굴없는 미녀, 2008년 황진이, 2009년 신기전, [34] 1962년 연산군, 1963년 지옥문, 1965년 벙어리 삼룡, 1982년 삐에로와 국화[35] 1975년 불꽃, 1979년 깃발 없는 기수, 1982년 낮은 데로 임하소서, 1984년 사약, 1985년 길소뜸, 1996년 금홍아 금홍아, 1997년 창[36] 1994년 그 섬에 가고 싶다, 1997년 창, 2009년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2012년 광해, 왕이 된 남자, 2016년 덕혜옹주[37] 당시 25세 3개월 3일[38] 당시 20세 6개월 26일[39] 당시 55세 5개월 7일[40] 당시 76세 10개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