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아
덤프버전 : (♥ 0)
1. 개요[편집]
서고트 왕국 반왕. 레케스윈트 왕을 상대로 반란을 일으켰지만 진압당했다.
2. 행적[편집]
그의 기원에 대해 추방당한 유대인이라는 설이 있으나 반역자로 낙인찍힌 그를 깎아내리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로 추정되며, 역사학자들은 타라코나 지방의 공작으로서 바스크인들의 침략으로부터 왕국의 북동쪽 국경을 사수하는 임무를 맡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649년, 그는 친다수윈트 왕의 혹독한 귀족 탄압 정책에 숨죽여 있다가 친다수윈트 왕이 죽고 아들 레케스윈트가 왕위에 오른 틈을 타 반기를 들려는 귀족들의 선동에 따라 왕으로 추대되었다.
이후 프랑크 왕국의 영역인 에퀴타니아로 이동하여 일부 프랑크인을 포섭하는 한편, 바스크인들을 끌여들어 피레네 산맥 남쪽에 사는 고트족과 동맹을 맺게 했다. 이후 사라고사를 공략하여 서고트 왕국의 수도 톨레도에 대항한 원정 준비를 위한 군사 기지로 활용하려 했다. 이와 동시에 그의 도애맹자인 바스크인들은 에브로 강 계곡의 여러 마을을 파괴했다. 사라고사 주교 타요는 바르셀로나의 크비리크 주교에게 반란군이 여러 날 동안 요새를 포위 공격하는 걸 막느라 사라고사 주변 주민들을 돌볼 수 없었으며, 바스크인들이 수많은 기독교인을 죽이고 수천 명을 노예로 삼았다고 기술했다.
사라고사 주민들은 갈수록 암울해져가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항전했고, 반란군은 이 도시에 매달리느라 시간을 많이 잡아먹었다. 그 사이에 진압군을 편성한 레케스윈트는 사라고사로 진군하여 사라고사 성벽 아래에서 반란군-바스크 연합군과 맞붙었다. 양자 모두에게 큰 손실을 입힌 격전 끝에 반란군이 궤멸되었고, 프로이아는 체포된 직후 처형되었다. 하지만 레케스윈트는 아버지의 강경 정책으로 인해 불온해진 분위기를 수습할 필요성을 느끼고 653년 12월 16일 제8차 톨레도 공의회를 소집해 광범위한 사면령을 발표했다.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24 13:00:19에 나무위키 프로이아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