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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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서고트 왕국 가톨릭 10대 국왕.
2. 행적[편집]
왕이 되기 이전의 생애와 왕위 계승 경과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학자들은 그가 제4차 톨레도 공의회에서 채택한 규범에 따라 636년 3월 12일 시세난드 왕이 사망한 직후 귀족과 주교 평의회에서 왕으로 선출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636년 6월 30일에 소집된 제5차 톨레도 공의회에서는 왕이 정당하게 취득한 재산은 차기 왕이 상속자들로부터 몰수할 수 없다고 명시했다. 또한 왕의 측근과 지지자, 고문 및 측근들은 왕이 죽은 뒤에도 왕이 하사한 선물을 그대로 가질 수 있었으며, 왕의 가족과 친구들의 재산을 침해한 죄를 지은 자는 저주를 받아야 했다. 그리고 선출된 왕은 반드시 귀족 출신이어야 하며, 성직가, 노동자, 외국인 중에서 선택될 수 없음을 확인했다.
그러나 제5차 톨레도 공의회엔 갈리아 나르본에서 단 한 명도 참석하지 않았고 이베리아 반도에서도 참석하지 않은 주교가 많았기에 권위가 떨어졌다. 이에 638년 1월 9일, 제6차 톨레도 공의회가 소집되었다. 이번에는 나르본에서 3명의 주교가 참석했으며, 이전 공의회에 참석하지 않았던 이베리아 주교들도 대거 참여했다. 공의회는 교회 조직에 손을 대는 한편, 살해된 왕의 후계자는 왕을 죽인 자를 처벌하지 않으면 영원한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포고했다. 여기에 외국으로 망명한 뒤 서고트 왕국에 해를 끼치거나 특정 범죄의 피고인이나 유죄 판결을 받은 자들은 파문되었다. 아울러 가톨릭을 따르지 않는 비기독교인의 국내 거주를 금지하는 법령을 채택했다. 이에 따라 기독교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유대인을 추방하고, 기독교로 개종한 이들에게 공개적으로 민중 앞에서 회심을 밝히는 것을 의무화했다.
두 공의회에서 결정한 사안을 볼 때, 친틸라는 왕위를 찬탈당하고 가족이 박해당할까 두려워했던 듯하다. 공의회를 통해 왕위를 보장받은 덕분인지 3년 6개월 만인 639년 12월 20일에 자연사했고, 아들 툴가가 새 군주로 등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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