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길라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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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서고트 왕국 가톨릭 19대 국왕.
2. 행적[편집]
그에 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으며, 단지 주화와 중세에 제작된 서고트 왕 목록의 필사본에서만 확인할 수 있다. 그의 주화는 지로나, 타라코나, 사라고사 및 나르본 등지에서 발견된다. 이로 볼 때, 그는 서고트 왕국 북부 지역에서 왕권을 행사했을 것이다. 학자들은 그가 위티자의 아들이며, 710년경 아버지가 사망한 후 로데리크가 톨레도와 남부 이베리아 일대에서 왕으로 행세하자 추종자들과 함께 이곳으로 피신한 뒤 왕을 칭했다고 본다.
그가 왕을 칭한 시기는 학자들마다 엇갈린다. 일부 학자들은 로데리크가 집권한 710년일 거라고 추정하며, 아길라의 영토에서 로데리크의 동전이 발견되지 않은 점을 증거로 내세운다. 하지만 로데리크의 통치가 1년 남짓에 불과했기 때문에 그랬을 가능성이 높다. 로데리크의 동전은 그가 통치했던 두 도시인 메리다와 코르도바 같이 주조소가 활발하게 활동했던 도시에서도 발견되지 않았으며, 오직 톨레도와 포르투갈 등지에서만 발견되었다. 다수의 학자들은 로데리크가 과달레테 전투에서 전사한 711년에 비로소 왕을 칭했다고 본다.
서고트 왕 목록 필사본에 따르면, 그는 3년간 재위했다고 한다. 한편, 톨레도에서는 오파스라는 인물이 톨레도에서 왕을 선포했는데, 로데리크가 전사하기 전에 그랬는지, 아니면 로데리크가 전사한 후에 왕을 칭했는지는 불분명하다. 어떤 경우든 갈라키아, 아스투리아스, 바스크, 에브로 강 계곡을 제외한 거의 모든 이베리아 반도는 로데리크가 사망한 지 2년 이내에 아랍인들에게 공략당했다. 714년경 아랍군이 사라고사를 점령하고 에브로 계곡을 정복하기 시작했는데, 아길라 2세의 이베리아 반도에서의 왕권은 이즈음에 무너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아르도라는 인물이 피레네 산맥 북쪽의 나르보넨시스에서 왕을 칭했으나 721년 아랍군이 그곳을 침략하면서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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