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지키스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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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1991년 소련 해체에 따라 독립한 중앙아시아 국가. 면적은 143,100km², 인구는 10,194,363명이며 이란계 민족인 타지크인이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한다. 수도는 두샨베다. 상하이 협력기구의 정회원국이다. 옛 소련 구성국간의 모임인 독립국가연합 회원국이며, 더불어 더 높은 단계의 재통합 계획인 유라시아 경제 연합의 가입후보국이기도 하다.
중앙아시아 국가들 가운데서 출산율이 높은 편이다. 러시아 제국 시절 1898 ~ 1905년 사이 인구 조사에서는 타지크인 인구가 350,000여명으로 조사되었는데 한 세기가 조금 넘는 기간 동안 우즈베키스탄 내 타지크인들을 제외하고도 인구가 25배 이상 증가한 셈이다. 일찍이 1960년대 후반 소련 시절부터 소련의 공화국 중 출산율이 가장 높은 구성국으로 꼽혔으며, 덕택에 1950년에 1,530,000명이었던 인구가 소련 붕괴 직전인 1991년에는 5,300,000명으로 3배가 넘는 증가세를 기록했다. 1980년대 중반부터 출산율이 떨어졌고, 1990년대 내전으로 우즈베크인들과 러시아인들이 대거 떠나면서 인구증가세는 감소했지만 2000년대 중반에 인구증가세가 다소 올랐고 현재는 출산율 2.8명을 기록중이다. 일자리를 구하러 러시아로 이민하는 타지크인이 많은데도 연 2%대로 인구가 계속 증가하는 중이다. 2022년 7월 10,000,000번째 아기가 태어났다.
소련 시절 독소전쟁으로 구성국들은 모두 여초가 심했는데 중앙아시아 구성국들은 출산율이 높고[1] 남녀 수명 격차가 크지 않아[2] 여초가 약화되었고 소련 붕괴 이후 1998년에 타지키스탄은 구 소련 구성국 중 최초로 여초에서 남초 국가가 되었다.
타지키스탄은 2015년 주한대사관을 개관하였고[3] , 한국은 2021년 3월 주(駐)두샨베 분관[4] 을 정식 대사관으로 승격했다.
2. 국가 상징[편집]
2.1. 국호[편집]
타지키스탄이라는 국호는 민족명인 타지크에 페르시아어 접미사 스탄(ستان / stân)이 붙은 형태이다. 여기서 타지크라는 민족명은 그 유래가 확실하지 않다. 페르시아어로 왕관을 뜻하는 타지(تاج / tâj)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널리 알려져 있으나 오늘날 학계에서는 부정된다. 타지크어로는 토지키스톤(Тоҷикистон [tʰɔːd͡ʒikʰɪsˈtʰɔːn])이라 한다.
2.2. 국기[편집]
중앙에 노란 별 7개와 왕관 문양이 들어간 삼색기다. 공식적인 해설로는 삼색기의 색깔인 빨간색, 흰색, 초록색 중 빨간색은 국가 통일과 승리, 일출 등을 뜻하고 이 나라를 지킨 전사들의 피와 소련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흰색은 순수함과 도덕, 그리고 이 나라에 흔히 보이는 눈과 얼음을 의미한다. 녹색은 이슬람과 페르시아식 새해 첫날(노루즈, 타지크어로 나우루즈·Наврӯз)를 의미한다.
중앙의 왕관은 트란스옥시아나 일대에서 번영하며 중앙아시아에 순니 이슬람-페르시아 문화를 부흥시킨 사만 왕조를 의미하며, 7개의 별은 타지크인들이 숫자 7을 완벽과 행복의 상징으로 여긴데서 유래했다.
또한 1991년 소련으로부터 독립 당시에는 타지크 SSR 시절 공화국기에서 낫과 망치를 빼고 초록색이 더 짙어진 국기를 임시로 사용했으나 1992년부터 오늘날의 삼색기로 변경하였다.
국기의 제작자이자 소련의 유명 화가, 타지키스탄의 인민예술가인 주후르 하비불라예프(Зуҳур Ҳабибуллаев, 1932~2013)는 타지크인의 기원이 된 고대 아리아인을 대표하는 3가지 색을 배경으로 하고, 앞서 말한 것처럼 타지키스탄의 민간어원인 '왕관의 땅'을 모티브로 하여 타지키스탄의 3개 지방을 대표하는 왕관, 그리고 국가의 페르시아적 전통을 나타내는 7개 별을 그리려는 의도가 있었다 하나 에모말리 라흐몬이 앞의 내용대로 해설을 못박아 다들 그냥 그렇게 받아들인다.
2.3. 국장[편집]
자세한 내용은 타지키스탄/국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4. 국가[편집]
타지키스탄 국가는 국가(Суруди Миллӣ)다. 굴나자르 켈디(Гулназар Келдӣ, 1945년 9월 20일 ~ 2020년 8월 13일)가 작사하고 술라이몬 유다코프(Сулаймон Юдаков, 1916년 4월 14일 ~ 1990년 11월 5일)가 작곡했다.
이 국가는 1946년에 타지크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국가로 사용되었고 1991년에 소련 해체로 타지키스탄이 독립한 이후에도 독립국 타지키스탄의 국가로 사용되어왔다가 1994년에 가사만 교체한 것이다.[5] 특이하게 가사를 제거하고 음원만 쓰거나, 가사를 바로 교체한 다른 중앙아시아 국가와는 달리, 가사도 1994년까지 소련 시절 국가를 그대로 썼다.
3. 역사[편집]
자세한 내용은 타지키스탄/역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 지리[편집]
국토의 93%가 산악 지역으로, 동부의 파미르 고원은 평균고도가 5,000m가 넘는다. 비교적 지대가 낮은 서쪽도 험준한 산맥이 가로지르고 있으며 모든 땅이 최소 해발 300m 이상이다. 타지키스탄 내전에 반군 세력을 지원하기 위해 참가했던 사우디아라비아 출신 무자헤딘 이븐 알하타브(ابن الخطاب, Ibn al-Khattab)는 "강을 건너는 것과 산을 넘는 것 자체가 지하드" 였다고 회고했다.
굉장히 척박한 환경의 나라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인구는 북쪽의 페르가나 계곡과 서부 산악지역의 강가 주변, 그리고 서남부의 강가 유역에 형성된 분지에 모여있으며 동부의 파미르 고원은 행정구역을 기준으로 면적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지만 인구는 20만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기후는 전반적으로 건조한 대륙성 기후로, 1월 평균기온은 0℃ 전후, 7월 평균기온은 27 ~ 30℃로 따뜻하지만 산악국이므로 지형에 따라 차이가 많다. 기온은 일교차, 연교차가 크다. 저지는 연강수량 350 ~ 450mm고, 200일 이상 계속되는 여름에는 건조하고 해발고도 1,000 ~ 2,000m인 산중턱에는 습윤한 편서풍이 불어온다. 북부의 페르가나분지는 1월 평균기온이 -3 ~ -1℃나 된다. 파미르고원은 겨울이 300일 이상이며, 1월 평균기온 -19.7 ℃이고, 7월 평균기온 13℃로써 황량한 산악 스텝이다. 하천은 모두 4 ~ 5월, 7 ~ 8월 연 2회 고수기가 있는데 목화 재배지의 관개용수로 이용된다. 전체 국토면적 중에 경작 가능지 6.52%, 농경지 0.89%, 황무지 기타 92.59%이다.
현재 타지키스탄의 최고봉이자 구 소련 시절 최고봉이었던 이스모일 소모니 봉(해발 7,495m)이 있다. 그 옆에는 해발 7,105m인 코르제넵스키 봉이 있다. 인근에는 구 소련 전체에서 세 번째로 높은 봉이었던 레닌 봉(해발 7,134m)도 있는데, 레닌 봉은 7,000m대 산 중에서는 굉장히 등반 난이도가 낮은 산으로 평가받기 때문에 오히려 이 쪽이 유명한 편이다. 레닌 봉은 소련 해체 이후 타지키스탄이 이븐 시나 봉(Қуллаи Ибни Сино)으로 개명하였다.
▲ 파미르를 걷다 타지키스탄
아프가니스탄 근처에 있고, 아프가니스탄과도 비슷한 점이 많아서(북부 지역 타지크 한정) 간혹 남아시아의 일부로도 보는 경우도 있다.
행정구역은 서부의 수그드 주, 하틀론 주, 공화국 직할구(또는 공화국 직할지)와 동부의 고르노바다흐샨 자치주 등 모두 4곳으로 나눈다. 공화국 직할구에 수도인 두샨베가 있다.
5. 민족[편집]
타지크인은 구소련권의 중앙아시아 국가의 5개 민족[6] 들 중 유일하게 튀르크계 언어가 아닌 페르시아계 언어를 사용한다. 다만 힌두쿠시 산맥 너머의 아프간 타지크인과는 분단되어 있어, 같은 중앙아 초원 지역 민족과 가깝다.
한때나마 타지크인들의 인구비율이 50-60% 선에 불과했을 때도 있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타지크인의 비율이 높아지는 추세인데, 내전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빠져나간 데다가 전쟁이 종식된 이후로도 타지키스탄의 열악한 경제 사정 때문에 주류민족인 타지크인들도 중동의 산유국이나 카자흐스탄, 러시아 일대로 일하러 떠나는 판이기에 우즈베크인이나 러시아인 같은 다른 민족들도 더 나은 삶을 위해서 본국에 귀환하는것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오늘날 타지키스탄 국민들은 자신들이 과거 페르시아 제국의 후예, 구체적으로 페르시아 제국을 멸망시킨 이슬람 칼리프 제국들이 약화되는 시기에 타지키스탄 서부 지역들을 비롯하여 부하라, 발흐, 사마르칸트 일대를 중심으로 번영했던 이란계 국가인 사만 왕조(Samanids, 819–999)의 후예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이란계 유목민들 자체가 튀르크 유목민들과 서로 옛부터 영향을 주고 받아왔고 같은 장소에서 거주하였다. 19세기 이후 범세계적인 민족주의의 득세와 아래 서술된 영토 문제 때문에 이 같은 반감이 더 심해진 측면이 있다. 이란계의 후예를 자처하는 나라답게 민족과 언어 모두 이란과 유사하다.
오늘날 타지크라 하면 타지키스탄 국민 및 그 종족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중세에는 페르시아인(Fārsī)과 거의 같은 의미로 쓰였다. 특히 튀르크 계통의 유목민 집단들이 서아시아 일대의 주도세력이 되면서, 발달된 정주문화를 이룬 이란계 집단들을 자신들과 구분해 "타지크"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사파비 왕조 시대 페르시아인 관료들과 대립하던 키질바시 계열 투르크멘 부족들이 이란 본토에 살던 페르시아인들을 가리켜 타지크라고 불렀던 식이다.
타지크인들은 타지키스탄보다 아프가니스탄에 더 많이 살고 있기 때문에 미국의 아프간 전쟁 초기에 이 나라에 대한 미국의 지원이 부쩍 늘어나기도 했다. 하지만 타지크인들과 이란과는 형제로 알아주기에 미국과 거리를 좀 두고 있는데, 주로 쓰는 언어인 타지크어도 페르시아어와 방언 수준의 차이밖에 나지 않아서 말이 통한다. 그런데 인구 대다수는 이슬람 수니파라서 시아파가 대다수인 이란과 좀 다른 갈등도 있다. 이는 터키-아제르바이잔 관계와도 비슷한 모양새.
우즈베크인들의 비율이 높은 편으로, 인구의 1/4 가까이를 차지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내전의 여파가 있는 데다가 내전이 끝난 이후로도 타지키스탄이 경제적으로 어렵다 보니까 타지키스탄을 떠나는 경우가 많아서 인구 비율이 줄어들고 있는 추세이다. 소련 시절에 러시아인들이 꽤 많이 들어왔기 때문에 러시아인이 인구의 10% 이상을 차지했을 정도로 꽤 많이 살았지만, 1991년 소련해체로 타지키스탄이 독립국으로 독립하고, 이후 발발한 타지키스탄 내전의 영향으로 러시아인 대부분이 러시아로 되돌아 오면서 현재는 자국 내 러시아인의 인구가 3-4만 명 정도에 불과하다. 우즈베크인 다음으로 키르기스인, 러시아인, 투르크멘인들이 있다. 그 외에 타지크로 이주해온 소수 해외인들인 아르메니아인, 아제르바이잔인, 우크라이나인, 벨라루스인, 독일인, 고려인 등이 있다.
6. 문화[편집]
문화적으로 우즈베크와 많이 비슷하다. 이들 유목민들은 이란계 유목민 출신인 타지크인들의 영향을 받았다. 예를 들어 음식만 해도 빵 종류와 고기 요리, 플로프 (중앙아시아 및 서아시아 북부식 볶음밥), 만두 종류인 만티, 펠메니 등은 우즈베크 요리와 똑같다.[7]
과거 소련 체제의 영향으로 유럽 (특히 동유럽) 문화의 영향을 받기도 했었다. 도시 시가지를 보면 러시아와 비슷하기도 하다.
현재 타지키스탄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과거에는 비단길로 인한 동서 문화왕래, 교류가 흔해서 인도 및 중국 등으로부터 불교가 들어온 적도 있었다. 그래서 타지키스탄에는 불교 또는 불교의 영향을 일부 받은 종교(예를 들면 마니교 등)와 관련된 흔적들도 있다. 수도 두샨베에 있는 타지키스탄 국립 박물관에는 와불상(臥佛像)[8] 이 있는데, 이 와불상은 타지키스탄에서 꽤 알려진 옛 불교 문화재이자 점토로 빚어만든 조각상이다. 그 외 불교관련 그림이 그려진 벽화도 있는 편이다.
7. 언어[편집]
공용어는 타지크어이며 헌법에서 민족간 상용어를 러시아어로 지정했다.
러시아어는 타지키스탄의 주요 외국어이자 러시아로 건너가 일하는 타지크인들이 상당하기 때문에 현재에도 주요 외국어로 쓰이지만, 2012년 기준 모어로 사용하는 사람은 인구의 0.5%에 불과하다.
다만 TV 시청시 해외 러시아어 채널을 병행하여 즐긴다는 인구가 절반에 달하였던 것에 비추어 볼 때, 여전히 러시아어의 입지가 크단 사실을 알 수 있다.
그 외에 타지키스탄에서는 페르시아어, 파슈토어, 파미르어에 속한 언어들(슈그니어 등) 등도 소수 언어로 쓰이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도 아랍인들이 일부 거주하고 있지만, 중앙아시아 아랍어 방언의 화자수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8. 정치[편집]
1989년부터 이슬람교 단체의 활동이 활성화되어, 1991년 9월 독립한 직후의 선거에서 공산당 계열이 승리하자 민주화 운동 세력과 이슬람계 집단이 손을 잡고 반정부세력이 되어 내전이 터졌다. 이는 1992년 12월 러시아군의 무력 개입을 부르기도 했으며, 이에 대응해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무자헤딘과 이란이 이슬람 세력을 지원하면서 분쟁이 장기화되었다. 그동안 사망자는 40,000명, 난민은 600,000명에 이르렀다. 게다가 아프간 내전 당시에 아프간 피난민들이 타지키스탄에 이주하면서 이주민들의 적응 문제도 존재해 있다.
2003년 아프간 전쟁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내전 세력은 여전히 살아있었다. 1994년(혹은 1992년)부터 장기독재를 하는 에모말리 라흐몬(Эмомалӣ Раҳмон) 대통령에게 품은 불만도 커 정치문제로 비화될 조짐이 있다. 2015년 8월 25일에 타지키스탄은 유튜브와 페이스북 등을 차단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9월 4일에는 경찰과 무장단체가 충돌하고 경찰 8명과 무장조직원 9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되면서 내전이 일어날 가능성을 점쳐본 이들도 있지만# 9월 16일에 타지크 정부는 반군을 완전히 소탕했다고 발표했다.# 2016년 5월 21일에 열린 국민투표에서 대통령의 임기제한을 없애는 개헌안이 통과되면서 라흐몬 대통령이 종신집권을 할 법적 근거를 마련하였다.#
민주주의 지수는 현재 우즈베키스탄보다 더 낮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9] 2024년 기준으로 세계의 자유 지수도 중앙아프리카공화국과 동점으로 정치적 권리 0점, 시민의 자유 5점으로 총합 5점[10] 에 불과한데, 이는 적도 기니, 중앙아프리카 공화국과 동점이며, 타지키스탄보다 세계의 자유 지수가 낮은 나라는 북한&에리트레아(3점), 투르크메니스탄(2점), 시리아&남수단(1점) 5개국뿐이다. 이들 국가의 실태를 고려하면 이들과 비견되는 수준으로 평가받는 타지키스탄의 독재가 어느 정도인지를 알 수 있다.
8.1. 행정구역[편집]
8.2. 강력한 세속주의[편집]
강압적으로 세속주의 정책을 실시 중이다. 국가 주도의 이슬람교 관리기구를 조직하여 국가 차원에서 이슬람교를 관리하고 9.11 테러 당시에도 타지키스탄 출신 알카에다 대원이 연루되었다는 것을 명목으로 모스크 상당수를 폐쇄했다. 최근에도 이슬람 근본주의의 확산을 막기 위해 여성의 검은색 복장 착용을 막는 조항을 시행했고, 히잡 착용과 수염 기르기를 금지하는 조항을 계획하였다.# 실제로 히잡을 착용하는 여성을 매춘부로 규정하고 수염을 기른 남자 13,000명에게 강제로 면도를 시키는 동시에# 아랍-이슬람풍 이름을 불법화했다. 미성년자를 종교시설에 데려가는 것도 불법이다.
시아파 이스마일파의 아가 칸 학교. 이슬람 명절인 이드 행사를 이렇게 하는 건 와하브파 무슬림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11] 무엇보다도 남자와 여자가 같은 장소에서 히잡 같은 것도 없이 함께 모여 있다.
현재 타지키스탄의 집권세력은 민족주의, 세속주의 정책을 내세워 이슬람주의를 표방하는 야당을 해산시켰다. 종교극단주의 세력을 차단하기 위함으로 그 원수지간인 우즈베키스탄도 타지키스탄과 비슷한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그외에도 러시아와 협력하여 이슬람 극단주의의 세력 확장을 막으려 한다.
이슬람이 아니더라도 얄짤없으며 기독교 활동도 금지시킨다. 크리스마스나 할로윈 같은 기념일을 챙기는 행위를 금지하는 등 강력하게 반 서구화 정책을 펼치고도 있다. 한편으론 타지크족의 전통 의복 착용을 강제하고, 종합적으로 본다면 정권 유지를 위해 독자 노선을 추구하는 모습이다.
2018년 7월 31일에 타지키스탄 남서부에서 외국 관광객 4명이 자전거를 타다가 살해당한 사건이 발생되었는데, 다에쉬가 자신들이 저지른 일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타지키스탄 북부 지역의 교도소에서 폭동이 일어났는데, 이 과정에서 다에쉬가 재소자들을 주도했다고 밝혔다. # 2019년 11월 6일에 타지키스탄의 국경초소에서 다에쉬가 공격하여 17명이 사망했다.#
8.3. 영토 분쟁[편집]
소련 시대 무리하게 설정된 국경 탓에 주변국인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과 영토 분쟁을 겪고 있다. 소련 시절 스탈린이 억지로 타지크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을 만들며 인구 기준을 맞추기 위해 국경선이 후잔트, 이스파라 등 우즈베크인과 키르기스인들이 많이 사는 지역은 타지키스탄으로 편입되고, 타지크인들이 많이 살던 사마르칸트와 우르구트(사마르칸트 근처의 마을) 지역은 우즈베키스탄 영토에 편입되었다.
그 결과 다수의 민족월경지가 생겼으며 소련 당시에는 같은 국가였기 때문에 문제가 덜했을지라도 이 국경선대로 독립하는 바람에 민족분규의 불씨가 남게 되었다. 1989년 당시 타지키스탄 내 우즈벡인은 120만으로 인구의 23.5%에 달했고, 같은 시기 우즈베키스탄 내 타지크인은 93만으로 인구의 4.7%였지만 정치적 목적으로 조작되었으며 실제로는 아무리 적게 잡아도 25%가 넘는다는 것이 중론이다.[12] 역사적으로도 우즈베키스탄은 티무르 왕국의 영역을, 타지키스탄은 이스모일 소모니 왕국의 영역을 근거로 연고권을 제기하는 식으로 영유권 분쟁을 벌인다. 우즈베키스탄과는 영토뿐 아니라 가스 문제로도 사이가 좋지 않다. 다만 국경을 접해있지 않은 먼 중앙아시아 나라인 카자흐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과는 사이가 그런대로 나쁘지 않은 편이다.
2000년대 와서 중국이 당초 주장한 28,000km²에 이르는 영토를 포기하게 하는 대신에, 1,000 km²에 이르는 영토를 넘겨주기로 협정을 체결했다.# 그래서 CIS 국가 중 유일하게 중국과 국경 문제를 완전히 해결한 나라기도 하다.
8.4. 마약 문제[편집]
중앙아시아 여러 국가들 중에서도 특히 마약을 재배하여 중국 등에 수출해 골머리를 앓는다. 투르케스탄(지금의 키르기스스탄 영내)에 살던 위구르인과 둔간인들이 중국과 거래한다고 양귀비꽃을 재배한 것이 시초라고 한다. 19세기 말에 이곳에서 유통되던 아편과 해시시의 양은 100톤에 달했다고 한다. 중앙아시아의 마약 밀거래가 줄어든 것은 소비에트 정권이 들어서며 당국이 철저히 단속한 덕분이었다.
그러나 소련이 붕괴하고 러시아를 비롯한 CIS 국가들이 극심한 정치/경제적 혼란에 빠져들면서 다시 불법 마약재배가 시작되었다. 다만 중앙아시아의 마약 재배량 자체는 아프가니스탄에 비하면 적다고 한다. 진짜 문제는 아프간에서 재배된 마약이 중앙아시아를 통해 세계 곳곳으로 퍼지는 것. 타지키스탄은 그중에서도 핵심 마약 수송루트로 급부상했는데, 타지키스탄 UNDP 대표 커헤인(Matthew Kahane)의 추산에 따르면 타지키스탄 국내총생산의 30%가 마약 거래로 창출되었다고 한다. 타지키스탄 마피아들은 아프간 마약 거래로 굉장히 악명이 높다.
타지키스탄의 마약 문제가 심각한 건 여러 가지 원인이 있다. 먼저 세계 최대 마약 생산국인 아프가니스탄과의 지리적 접근성과 문화/민족적 친밀성을 지적할 수 있다. 타지키스탄은 아프가니스탄과 1,206km에 달하는 국경을 맞대고 양국 국경 주변, 특히 판지(Панҷ) 강 주위로 많은 타지크인들이 거주하므로 문화적 동질성이 강하다.
또한 타지키스탄은 중앙아시아 국가들 가운데서 가장 가난한 국가이고, 소련 붕괴 직후부터 5년 간 계속된 내전과 러시아로부터 지원 중단으로 경제가 황폐화되면서 극도의 빈곤에 시달리게 된 타지키스탄 주민들을 마약산업이 유혹하고 있는 것이다. 애초에 소련 시절에도 타지키스탄은 가장 낙후된 지역으로 손 꼽혀왔던지라 중앙정부의 지원으로 근근이 먹고살던 국가였다.
1,000km가 넘는 국경을 제대로 통제할 만한 행정력 부족하다. 그나마 2005년 이전까지는 러시아군이 타지키스탄 국경 통제를 담당했는데 문제는 타지크군의 국경 통제 능력이 형편없다는 것이다. 2015년 기준으로도 타지키스탄 영내에는 대규모 러시아군 부대가 주둔 중이긴 하다. 국경 통제를 담당하는 군대가 바뀐 이후 마약 몰수량이 절반으로 급감했다고 한다. 물론 마약 밀매량이 줄어든 게 아니라 단속 실적이 떨어진 것. 그렇다고 러시아군의 능력은 기똥찼냐면 그것도 아닌 게 심지어는 러시아군 수송기가 마약밀매에 사용되었다는 보고도 존재한다.
이러한 이유로 타지키스탄은 오늘날에도 마약 수송 루트의 핵심으로 기능하고 있다. 그 와중에 결코 적지 않은 타지크 국민들이 마약중독자로 전락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대통령은 나름대로 부패와 전쟁을 선언하며 국제사회의 도움을 받아 노력하긴 하지만, 나라 사정이 워낙 열악해 이마저도 성과를 보지 못하는 실정이다.[13]
8.5. 국제결혼[편집]
인접국과 비교해도 외지인과의 통혼에 보수적 문화를 지니고 있다.[14]# 혼인이 자유롭던 2010년대 초에는 연간 국제 결혼 건수가 500건 가량이었으나, 2012년 도입된 규제에 의해 규모가 반으로 줄었다.# 이후 국제 결혼의 건수는 2014년 193건, 2018년 220건 남짓한 것으로 집계 발표되었다. 2018년 기준 전체 결혼 82,556건 대비 0.26%다. 그마저도 주로 인접국인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의 국경지대의 씨족 간 혼인이다.
현재 타지키스탄에서는 외국인 남성이 타지키스탄 여성과 결혼할 시 그에 앞서 아내에게 주택을 구매해주고 타지키스탄 내에서 1년간 거주해야 결혼을 허가하고 있다. 외국인은 부동산을 소유하지 못한다. 또한 외국인 남편은 여성의 권리를 보장하는 혼전계약서 체결을 의무적으로 해야한다.[15] 2018년에는 외국인 남편이 신부대로 5만 불을 지급하여, 절반은 신부 측에, 나머지 절반은 국가의 각종 복지 재원에 사용될 것이 제안되었으나 무산되었다.
참고로 타지키스탄 내에서는 결혼식을 사전 신고해야 하며, 이를 감찰하는 담당관이 각지에 배치되어 있다.[16] 또한 여권 발급, 비자 발급, 출국 허가 인터뷰 등으로 인해 타지키스탄 여성과의 결혼 장벽은 매우 높은 상황이다. [17]
상기와 같은 사유로 인해, 타지키스탄 여성의 경우 2012년 국내 배우자 비자(F-2-1) 신규 취득 1건을 마지막으로 단 한 건의 혼인 성사도 이뤄진 바가 없는 것으로 집계되었다.[18] 2000~2021년까지의 누적 결혼 이민자 수는 여성 11명, 남자 2명으로 추산된다.[19]
9. 스포츠[편집]
유라시아 나라 대부분이 그러듯 축구가 가장 인기가 많다. 그러나 인기와 달리 축구 실력은 아시아에서도 하위권이지만, 그 하위권에선 꽤 강호로 아시아 하위권 나라들이 참가하는 대회 AFC 챌린지컵에서 1번 우승, 1번 준우승으로 2번 우승한 북한에 이어 2번째 우승기록이 많은 나라이다. 프로리그 우승팀은 AFC프레지던트컵에 나가는데 4번 우승, 1번 준우승한 최다 우승국이다. 이런 하위권 대회에서 좋은 성적 때문인지 피파 랭킹은 2022년 3월 기준 114위. 같은 유라시아 나라로 AFC 소속이었다가 유럽 축구연맹으로 간 카자흐스탄보다 순위가 높다. 2023 AFC 아시안컵 카타르에선 역사상 최초로 본선에 진출했을뿐만 아니라 무려 8강까지 올라가는 이변을 일으켰다. 타지키스탄 축구에 관한 자세한 건 타지키스탄 축구 국가대표팀 항목 참조.
신의손이 러시아계 타지크인이었다.
축구이외에도 복싱, 유도와 같은 격투계열 스포츠 또한 축구에 버금갈 정도로 인기있다.
10. 경제[편집]
근대까지만 해도 중계무역으로 번영을 누렸던 지역이었지만 근대에 들어 무역이 제한을 받고 중앙아시아에서 말을 비싸게 수입하던 무굴 제국이 몰락하면서 타지키스탄을 비롯한 중앙아시아 지역들뿐만 아니라 타지키스탄의 대부분의 경제 상황은 좋지 않고 그 여파가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소련 시절에는 목화 농장과 공장이 세워지는 방식으로 산업화가 진행되었다고는 하지만 입지 조건이 그리 좋지 않았던 터라 사실상 변경 국경지대 겸 노동력 공급기지로 운영되었다. 경제적으로 그리 넉넉지 않아서 소련 중앙 정부가 소련군 기지에 보내주는 지원금으로 대충 먹고 살던 수준이었다. 소련붕괴 이후에는 소련군 기지가 해체되면서 이러한 지원금이 끊어진 데다가 러시아인, 우크라이나인들은 대부분 본국으로 돌아가고 내전까지 겹치며 중앙아시아 내 최빈국으로 굴러 떨어졌었다. 교육 수준이 비교적 높고 이슬람 극단주의를 억제했기에 망정이다.[23]
현재 타지키스탄의 상황도 국가 인지도가 낮아서 잘 드러나지 않을 뿐이지 썩 좋은 상황은 아니다. 과거 구소련에서 독립한 나라 중에서 가장 가난한 최빈국이다. 경제 사정이 좋지 못한 중앙아시아 국가 가운데서도 아프가니스탄을 제외하면 유달리 가난한 나라에 속하며[24][25] , 성장기 아동의 30% 정도가 충분한 영양을 공급받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타지키스탄은 2022년 기준으로도 1인당 GDP가 1,014달러 남짓으로, 194개국 중 170위를 차지한 명백한 최빈국이며, 아시아에서 타지키스탄보다 1인당 GDP가 낮은 나라는 내전에 시달리는 시리아(800$대 후반~900$대 초반)와 예멘(873$), 최악의 독재국가인 북한(600$대 초중반)과 아프가니스탄(611$)[26] 4개국밖에 없다.
타지키스탄의 경제는 러시아의 영향이 절대적이다. 비슷한 언어를 쓰는 이란은 실업률이 높아 타지크인들을 자국으로 취직시킬 여유가 못되고, 아프가니스탄은 못사는 나라라, 자연스럽게 대다수의 해외 구직자들이 러시아로 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러시아 경제상황에 따라서 타지키스탄의 GDP가 큰 폭으로 출렁거리는 수준이다. 타지키스탄의 많은 가정들이 가장이나 성인 자녀들이 러시아에서 일해서 본국의 가정으로 송금하는 돈에 의존해서 살고 있으며, 이들 대부분은 러시아에서 1~2만 루블 수준의 최저 임금도 안되는 월급(한화로 17~35만원 남짓, 최빈국인 캄보디아[27] , 라오스 사람들보다도 더 적은 수준)으로 일하고 있다. 이러한 개인 송금의 규모는 2022년 기준 타지키스탄 GDP의 50.9%에 해당하는 규모였다#. 타지키스탄 본국은 목화 산업이 망한 이후에는 알루미늄 제조를 주력 산업으로 삼아서 근근이 연명하는 수준. 타지키스탄 서부의 소도시인 투르순조다(Турсунзода)에는 크고 아름다운 알루미늄 공장이 있는데, 주요 산업 지역이긴 하지만 동시에 타지키스탄 전기의 상당수를 잡아먹어 타지키스탄을 전력 수입국으로 만드는 원인이기도 하다. 해외에서 들어오는 송금액 자체는 많지만, 정작 타지키스탄의 인프라 수준이 낮고, 대출금리도 높아서 기업을 차리기 쉽지 않기때문에 자체 산업의 성장으로 이어지지 않고, 귀국한 사람들 대다수도 기업을 만들어서 산업생산에 뛰어드는 대신에 소규모 자영업에 종사하는 실정이라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하지만 경제 상황이 암울하기만 한 것도 아닌데, 강대국이던 소련 시절 교육 시스템의 유산으로 인해 타지키스탄은 경제 수준에 비해서 교육 수준이 높으며, 국민 상당수가 러시아어를 비롯한 주변국 언어를 어느 정도 이상 구사 가능하다. 고질적인 부정부패 문제가 심각하긴 하지만 다행히 빈부 격차는 적다. 특히 경제성장률은 2000년대 들어서 꾸준히 6~8% 이상을 유지하는 상황. 옆나라 키르기스스탄이 최근 3~4%대로 떨어진 것과 상당히 대조적이다. 러시아와 투르크메니스탄, 카자흐스탄의 경제력이 향상되거나, 체질이 개선되는 경우 순영향을 그대로 받게 되는 구조이긴 하지만, 의외로 실질적으로는 1%대 정도만 영향을 받았다. 적어도 희망은 보이는 국가라고 할 수 있다.
11. 외교[편집]
자세한 내용은 타지키스탄/외교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2. 관광[편집]
대한민국 여권 소지자는 무비자 입국이 가능하다.[28] 동부 파미르 고원 지역을 여행하고자 할 경우 추가 $20를 지불하여 허가를 받아야 한다.
크고 아름다운 산이 즐비한 자연환경은 역으로 설산과 빙하 등 절경이 잠재적인 관광자원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나마 중앙아시아 안에서도 옆동네 키르기스스탄만 해도 비슷한 설산고봉과 청정호수 자연관광 휴양지 이미지를 선점하고 러시아 등지에서 관광객을 불러 모으고 있고 그에 비해 타지키스탄의 관광인프라나 정책은 과거에 오랜 내전과 이로 인한 혼란으로 한참 뒤떨어진 게 현실이다. 물론 그렇다고 아예 없진 않지만[29]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을 통해서 방문할 수 있는 등 여기도 간단하게 입국하기 쉽지는 않다. 물론 타지키스탄의 자연 휴양지와 맑은 환경이 알려지면서 해외 관광객들이나 사진작가들도 조금씩 오고 있다. 해외 관광객들은 주로 두샨베, 후잔트, 이스트라브샨(우라테파), 판자켄트, 쿨롭, 쿠르곤텝파(보흐타르) 등의 도시를 주로 간다고 한다. 또는 때때로 동부의 파미르 고원을 보기도 한다. 파미르 고원 지역도 휴양지로 떠올랐다.
타지키스탄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은 사라즘(Sarazm)이 있으며, 타지키스탄 서부 지방의 고대 도시 유적지이고 2010년 7월 유네스코에 등록되었다.[30]
타지키스탄 수도 두샨베에는 한국기업 K&T international 이종택 대표가 DABANGCAFE(다방카페)라는 커피숍 문을 열고 한국 음식과 음료를 제공하며 한국관광객들의 길잡이 역할을 하며 관광객들이 도움을 요청할 때 도움을 주고 있다. 쉐프와 현지 직원들은 한국어를 사용하기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1] 한국, 중국과 달리 중앙아시아에서는 성별 선택 낙태는 없었지만 자연 출생 성비는 남녀 105:100으로 기본적으로 남초 사회다.[2] 중앙아시아도 남자들이 술을 마시기는 하지만 이슬람 때문에 슬라브인들처럼 과음해서 알콜 중독자가 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3] 이전까지는 주일본 대사관에서 대한민국을 겸임했다.[4] 2008년 개관하여 우즈베키스탄 대사관에서 통괄하였다.[5] 다만 국가 속도가 소련 시절보다 더 빨라졌다.[6] 카자흐, 우즈베크, 투르크멘, 키르기스, 타지크[7] 그 외 시시 케밥(샤슐릭) 등도 있다.[8] 석가모니가 열반할 적에 사라수 두 그루 사이에 누웠다고 하는데, 그 모습을 묘사한 상을 누울 와(臥) 자를 써서 와불(臥佛)이라고 한다.[9] 이슬람 카리모프 집권기까지만 해도 우즈베키스탄 역시 강압적인 정책을 펼치기로 악명 높았었다. 하지만 소련에서 독립 이후에 철권 독재정치를 펼치던 이슬람 카리모프가 사망하고 온건주의 성향의 샤브카트 미르지요예프가 새 대통령이 되면서 점차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있다.[10] 2023년 대비 시민의 자유가 2점 줄었다.[11] 일단 하나만 말하지면, 순니 와하브파는 음악을 절대 금기시한다.[12] 이것이 사실이면 타지키스탄보다 우즈베키스탄에 타지크인이 더 많이 산다는 것이다. 참고로 아프가니스탄 내 타지크인도 타지키스탄의 타지크인보다 훨씬 많다.[13] 이상 타지키스탄 마약 문제에 대한 서술은 <현승수, 아프가니스탄 산 마약의 지구적 확산과 중앙아시아: 문제의 기원과 경과, 타지키스탄의 사례를 중심으로, 슬라브학보 제25권 4호, p381-415>를 참고하였다.[14] 타지키스탄 인구의 절반인 키르기스스탄의 국제결혼은 연간 2천 건을 기록했다.[15] (1)재산 분할과 관련된 권리, (2)배우자의 자녀 부양 의무와 양육비, (3)제공된 주택에 대한 권리의 확인, (4)장애 배우자에의 혼인 유지와 부양 의무[16] 국제결혼뿐 아니라 결혼식에 과다 지출하는 것을 막기 위한 목적도 있다. 가족 중심적 타지키스탄인들의 일생에 있어 결혼식은 핵심이 되는 행사로, 이들은 자식 한 사람의 결혼식에만 3~5년치 연봉을 지출해왔다.[17] 현지 지역 사무소에서만 한국 내 배우자 비자 발급과 혼인 신고를 위한 미혼증명서 발급이 가능하다. 해당 서류 발급 후 타지키스탄 법무부의 확인 서류와 민사등기소장의 서명날인을 추가로 받아야 한국에서 유효한 문서가 된다. #[18] 남성은 14년과 18년 각각 1건씩 신규 발생.[19] 연간 국적/체류자격별 외국인 입국자, 국적(지역)별 결혼이민자 현황, 국적처리 국적(지역) 및 취득유형별 현황을 참조하여 추산하였으나 부정확할 수 있음[20] https://en.wikipedia.org/wiki/Tajikistan [21] https://mir24.tv/news/16535209/naselenie-tadzhikistana-po-itogam-perepisi-prevysilo-10-millionov [22] http://en.wikipedia.org/wiki/List_of_countries_by_public_debt [23] 이마저도 아니었다면 아프가니스탄 수준이었을 가능성도 있으며 탈레반도 득실거렸을 확률도 높다.[24] 심지어 내전 종결 3년 뒤인 2000년에는 1인당 GDP가 꼴랑 137.2달러로 집계되기도 했는데, 이는 2023년 환율로 환산해도 239.7달러 정도에 불과하다. 참고로 2022년 기준 세계 최악의 최빈국인 부룬디의 1인당 GDP가 292달러다.[25] 그나마 아프가니스탄은 현재도 혼란에 있는 걸 생각해야 하지만 여기는 내전도 끝났는데 이런 상황이다.[26] 이들은 한술 더 떠 그 콩고민주공화국보다도 1인당 GDP가 낮다.[27] 이쪽은 2024년 최빈국을 벗어났다.[28] 기존에는 전자비자를 신청하여야 하였으나 2022년 1월부로 면제되었다.[29] 투르크메니스탄은 가기 까다로워서 여행유의로 지정되었고, 아프가니스탄도 분쟁 중인데다가, 가장 안정적인 북부 지역 역시 한국에서는 아프가니스탄 자체가 여행금지국가라서 아프가니스탄의 모든 지역을 갈 수 없다. 다른 나라들은 경우마다 다르겠지만 아프가니스탄 북부 지역 역시 때때로 소규모 분쟁이 일어날 때도 있어서 해외 관광객들이 많이 방문하는 것도 아니다. 반면 타지키스탄은 투르크메니스탄 마냥 까다롭거나 경찰 및 군인들의 극단적인 감시가 있는 것도 아니고(감시하는 경찰이 많다고 해도 투르크메니스탄처럼 많지는 않다), 아프가니스탄처럼 전쟁이 많이 나는 곳도 아니라서 이들에 비하면 갈 수는 있다. 다만 두샨베와 호루그를 잇는 도로를 따라가면 강 너머로 아프가니스탄을 볼 수 있다.[30] 판자켄트(Panjakent)에 있으며 이 소도시는 우즈베키스탄의 일부 국경과도 접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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