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멘스 8세(대립교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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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교황 마르티노 5세에 대적한 대립교황.
2. 행적[편집]
1369년경 아라곤 왕국의 테루엘에서 에스크리체 남작 페드로 2세 산체스 무뇨스와 카탈리나 산체스 드 카르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코스메딘의 성 마리아 성당 부제이자 추기경을 맡고 있던 페드로 마르티네즈 드 루나의 신임을 얻었다. 1394년 페드로 마르티네즈가 아비뇽 교황 베네딕토 13세로 등극하자 아비뇽 교황청의 일원이 되었고, 1396년 카스티야 연합 왕국의 지원을 얻으라는 지시를 받들어 발렌시아 주교이자 교황 특사로 부임했고, 나중에는 테루엘의 대주교가 되었다. 1422년 11월 27일 임종을 눈앞에 둔 베네딕토 13세로부터 추기경에 정식으로 발탁되었다.
1423년 5월 23일 베네딕토 13세가 페네콜라 성에서 사망한 뒤, 그를 비롯한 추기경 3명은 차기 교황 선출을 놓고 논의했다. 그 결과, 그가 교황 클레멘스 8세로 등극했다. 그러나 네 번째 추기경인 툴루즈 인근 로데즈의 부제 장 카리에는 그가 교황 선출을 위해 성직 매매를 벌였다고 비난하며 베르나르 가르니에를 베네딕토 14세로 선출했다. 이에 클레멘스 8세는 장 카리에를 파문했다.
그는 아라곤 국왕 알리폰소 5세에게 전적으로 의존했고, 알리폰소 5세가 시칠리아 왕국과 나폴리 왕국 모두를 공략하기 위한 원정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그러나 알리폰소 5세를 대신해 아라곤 국정을 이끌었던 카스티야의 마리아 왕비는 그를 인정하지 않았고, 아라곤 주교들 역시 로마 교황 마르티노 5세를 지지했다. 심지어 마리아 왕비는 페네콜라 성을 봉쇄하고 사임을 요구하기까지 했다. 알리폰소 5세는 아내의 조치를 곧 취소시켰지만, 아내와 주교들을 설득하려는 노력을 딱히 기울이지 않았다.
1428년, 알리폰소 5세는 마르티노 5세의 측근이자 자신의 친척인 피에르 드 푸아 추기경의 설득을 받아들여 마르티노 5세를 유일한 교황으로 받들기로 했다. 알폰소 5세로부터 마르티노 5세를 인정하고 물러나라는 권유를 받자, 이제는 대세를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직감한 그는 1429년 7월 26일 퇴위를 선언하고 그동안 자신을 따랐던 추기경들에게 마르티노 5세를 받들게 했다. 그는 마르티노 5세에게 참회서를 제출한 뒤 마요르카 주교직을 하사받고 그곳에서 조용히 지내다가 1446년 12월 28일에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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