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레스티노 2세(대립교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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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교황 호노리오 2세에 대적한 대립교황.
2. 행적[편집]
로마 출신의 성직자로, 1103년 교황 파스칼 2세에 의해 산타 마리아 성당의 추기경으로 선임되었고, 1122년 교황 갈리스토 2세에 의해 산타아나스타시아 알 팔라티노 추기경으로 선임되었다. 1124년 12월 13일 갈리스토 2세가 사망하자, 로마 시는 신성 로마 황제를 지지하는 프란지파니 가문과 로마의 독자적인 행보를 꾀하는 피에틀레오니 가문으로 나뉘었다. 각 파벌은 자신의 교황 후보를 홍보했는데, 피에틀레오니 가문은 테오발도 보카페치를 지지했고 프란지파니 가문은 산티 코스마 에 다미아노 추기경인 람베르토 스칸나베키를 지지했다.
12월 15일에 산 판크라치오 알 라테라노 수도원 예배당에서 열린 콘클라베에서, 처음에는 람베르토 스칸나베키 쪽으로 여론이 쏠렸지만 피에를레오니 당파인 산티 코스마 에 다미아노 부제인 조나타스의 로비로 인해 테오발도 쪽으로 여론이 뒤집혔다. 그리하여 테오발도가 선출되었고 첼레스티노 2세라는 이름을 채택했다. 이리하여 즉위식이 거행되고 있을 때, 프란지파니 가문의 수장 로베르토 프란지파니와 무장한 무리가 수도원에 침입해 람베르토 스칸나베키를 일방적으로 교황으로 추대했다. 이후 벌어진 격투 도중, 테오발도는 중상을 입고 목숨을 건지기 위해 사임하겠다고 외쳤다.
다음 날, 테오발트는 공식적으로 사임했고, 피에틀레오니 가문은 막대한 뇌물을 받는 대가로 이를 용인했다. 람베르토는 그런 식으로 교황이 되고 싶지 않아 사임했지만, 1124년 12월 21일 다시 열린 콘클라베에서 재차 선임되자 이번엔 받아들이고 호노리오 2세로 즉위했다. 테오발도의 지지자들은 호노리오 2세가 폭력으로 집권했으니 인정할 수 없다며 테오발도를 교황 첼레스티노 2세로 계속 받들었지만, 테오발도는 노년에 폭행당한 충격으로 인해 1125년 또는 1126년에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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