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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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전라북도지사는 전라북도를 대표하고, 그 사무를 총괄하는 광역자치단체장이다.
1910년까지는 관찰사(觀察使)라고 했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전라북도 관찰사는 1908년에 부임한 친일인사 이두황(李斗璜)이며 국권침탈 이후에도 계속해서 전라북도장관을 맡았다.
특히 김완주 - 송하진 전 지사는 둘 모두 재선 전주시장을 바탕으로 재선 도지사가 된 케이스다.[1]
그 외에도 대구광역시장, 경기도지사와 함께 3선은 커녕 선거에 3번 출마한 후보조차 없는 몇 안되는 광역자치단체이다. 송하진 전 지사는 3선 도전을 시사하긴 했으나 경선에서 컷오프되면서 결국 도전하지 못했다.
1.1. 전라북도지사 선거 100% 적중 지역[편집]
1995년 전국동시지방선거 도입 이후 전라북도지사 선거는 지금까지 총 8번 있었다. 이 중 고창군과 부안군을 제외한 모든 지역이 전라북도지사 선거 적중 지역이다. 민주당계 정당의 텃밭이라 대체로 민주당계 정당 유력 후보가 완승하는 편이지만 민주당계 정당 후보가 난립할 경우 접전이 펼쳐지기도 한다. 실제로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때 열린우리당과 민주당 간 경쟁 구도에서 비교적 접전이 일어났는데 이 때 민주당 정균환 후보의 정치적 근거지였던 위 두 지역이 적중 지역에서 탈락했다.
2. 목록[편집]
2.1. 일제강점기[편집]
전라북도지사라는 직함은 1919년 8월에 기존의 전라북도장관을 전라북도지사로 개칭한 것이 최초이다. 여기서는 편의상 전라북도장관을 포함했다.
2.2. 미군정[편집]
2.3. 대한민국[편집]
2.3.1. 관선 1차[편집]
2.3.2. 민선 1차[편집]
2.3.3. 관선 2차[편집]
2.3.4. 민선 2차[편집]
3. 역대 선거 결과[편집]
3.1. 1960년[편집]
3.2. 1995년[편집]
민주당 유종근 후보가 모든 시군에서 승리를 거두며 더블 스코어 차이로 압승을 거두었지만, 민주자유당 강현욱 후보도 30%대 득표율을 기록하며 선전했다. 특히 군산시에서는 무려 49%를 득표했고, 특히 군산시 갑(舊 군산시)에서는 승리했다. 그리고 이듬해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국당 소속으로 군산시 을 지역구에 출마해 당선되는 기염을 토했다.
3.3. 1998년[편집]
3.4. 2002년[편집]
3.5. 2006년[편집]
17개 광역자치단체 중에서 유일하게 열린우리당 후보가 당선된 곳이다. 반면 민주당은 전라북도지사 탈환에 실패해 한화갑 전 대표이 두고두고 아쉬워했다고 한다. # 그래도 정균환 후보가 나름 선방했지만.
3.6. 2010년[편집]
민주당 김완주 후보가 텃밭에서 압도적으로 당선되었으나, 한나라당 정운천 후보가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이래 15년 만에,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이래 처음으로 선거비 전액 보전 하한선을 넘기는 저력을 과시했다.
3.7. 2014년[편집]
예상대로 새정치민주연합 송하진 후보가 69.23%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새누리당 박철곤 후보는 비록 패배하였지만, 20.45%의 득표율을 얻으면서 만만치 않은 저력을 과시했다.[19]
3.8. 2018년[편집]
친노계>동교동계 성향을 보이며 광주광역시·전라남도와 차별화됐던 2006년때와는 정반대로 지금은 거꾸로 제일 민주평화당의 총 득표수가 많은 지역으로 등극했다. 되돌아보면 1995년에도 DJ 중심 민주당으로부터의 가장 두드러지는 이탈을, 2002년에는 반대로 지금처럼 가장 높은 결집을 보여준 적이 있다.
정리하자면 (어디까지나 광주광역시·전라남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1995:(상도동계/여당) 2002:(동교동계/여당) 2006:(친노계/여당) 2018:(동교동계/야당)인 셈이다. 호남 민심의 속사정, 임정엽 후보가 민선 완주군수를 지낸 인물 경쟁력 측면으로 해석할 수 있다.
3.9. 2022년[편집]
바른미래당 출신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민주평화당 출신 국민의힘 후보의 결전이 벌어졌다. 비록 더불어민주당 김관영 후보가 5배 격차로 낙승하였지만, 국민의힘 조배숙 후보도 15% 이상 넘은 득표율을 내서 나름 선전한 성과를 거두었다. 다만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새누리당 박철곤 후보의 득표율에는 미치지 못했다.
한편 김관영 후보는 이번 지방선거에 출마한 광역자치단체장 후보 중 가장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으며, 유일하게 80%대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이는 호남 지역에서 유일하게 전라북도지사 후보에만 제3정당 후보가 없었기 때문.[20]
4. 역대 정당별 전적[편집]
5. 역대 후보별 순위[편집]
- 사퇴, 사망, 등록 무효 후보 제외.
6. 도정 구호[편집]
7. 이야깃거리[편집]
- 김완주 전 지사와 송하진 전 지사는 민선 전주시장 출신인데, 두 사람 모두 재선 전주시장 출신의 재선 전라북도지사라는 행보가 똑같다. 그런데 비슷하게 도청소재지 청주시가 도에서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는 충청북도는 아직까지 청주시장 출신의 충청북도지사가 나오지 않았다.
- 역대 민선 전북지사 6명이 모두 전북에서 나고 자란 인물들이지만 정작 전주시 출신 지사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정읍시와 군산시 출신이 각각 2명, 김제시와 임실군 출신이 각각 1명씩 배출됐다.
8. 관련 문서[편집]
[1] 둘 모두 5급 공채 출신인데 상대적으로 한직으로 여겨지는 광역단체장일수록 직업 정치인 출신보다는 관료 출신이 많은 편이다. 보통 재선~4선의 국회의원들이 광역자치단체장에 도전하는 편인데 직업 정치인들에게는 해당 선수 정도되면 시류에 따라 국회의원을 계속 역임하다가 중앙에서 힘을 쓸 수 있는 당 대표, 원내대표나 장관 등을 노려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공채 출신은 기관장 역할을 할 수 있는 고위공무원 영전을 목표로 삼는 경우가 많아 한직이라 하더라도 단체장 자체가 기관장인 고위공무원인만큼 이에 만족한다. 때문에 현직 단체장일수록 관료 비중이 높은 편이다.[전라북도장관] A B [2] 1919년 8월부터 도지사.[3] 창씨명 리노이에 겐포(李家源甫)로 활동함.[4] 창씨명 가네무라 야스오(金村泰男)로 활동함.[5] 창씨명 구사모토 젠키(草本然基)로 활동함.[6] 현역 미 육군 중령.[7] 당시 동아일보에 가포불지 중좌라는 표기로 등장.[8] 재취임.[9] 현역 미 육군 중령.[10] 정부 수립 후 인선 지연으로 유임.[11] 선거 당시 당적.[12] 선거 당시 당적.[13] 1995.
탈당.
1995.
ta-hash-start=w-3a5a9f0d5c34043b619d6d279dfe88a2[[파일:새정치국민회의 흰색 로고타입.svg
탈당.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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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당.[14] 2000.1.20.
ta-hash-start=w-a5a01195b62ec3932464c27c412ccab1[[파일:새천년민주당 흰색 로고타입.svg
으로 당명 변경.[15] 2004.3.11.
ta-hash-start=w-e4b0b923a3ec85a83669b734db4318b7[[파일:새천년민주당 흰색 로고타입.svg
탈당.
2004.
ta-hash-start=w-294bddee41e339dfe1f4958be6c30968[[파일:열린우리당 로고타입.sv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