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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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군인, 관료.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사령관으로 군 핵심 지휘계통에 있었던 인물이다.
2. 생애[편집]
1924년 경상남도 고성군 상리면 무선리에서 출생하였다.
육군사관학교 8기 출신이다.[1] 38사단장, 수도사단장, 1군단장, 육군참모차장을 역임했다. 육군참모차장 재임 중 10.26 사건으로 중앙정보부장 자리가 공석이 되자 현역 육군 중장의 계급으로 중앙정보부장 서리에 임명되어 육군참모차장 직에서 물러났다.
2달 후 12.12 군사반란으로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이 이등병으로 강등되어 강제예편되자, 정승화의 뒤를 이어 1979년 12월 13일에 육군참모총장에 임명되며 육군 대장으로 진급하였다. [2]
이듬해인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사령관으로서 공식적인 지휘계통에 있었다. 이와 관련해서 김영삼 정권 때의 5.18 재판 당시 본인은 아무런 책임이 없으며 모든 것은 전두환이 주도했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하나회의 후원자인 유학성, 황영시와 함께 사실상 전두환과 공모한 것으로 판단하여 징역 7년을 선고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란거리이나 이후 언론 인터뷰를 통해 5.18 민주항쟁 진압과정에서 자신의 죄를 부정하고, 나아가 전두환의 결백을 주장했다. ##"지휘체계상 계엄사령관인 자신을 제치고 전두환이 발포명령을 내렸다면 상관인 자신이 가만히 있었겠느냐"는 논리이다. 2017년 4월 30일 그것이 알고싶다 인터뷰에서 "적이 총 쏘니까 총들고 그냥 쐈지" 라는 언급을 하며 자신의 주장을 고수하였다.
1981년 12월 육군 대장으로 예편한 이후에는 전두환-노태우 정권 아래서 방직협회장, 교통부(현 국토교통부) 장관, 주택공사(현 한국토지주택공사) 이사장을 지낸 바 있다.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조사대상으로 선정한 신군부 5인 중 한 명이었으나 지난 2022년 6월 6일 노환으로 사망하여 8일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서 새벽 발인 후 경남 고성 선영에 묻혔다. 그는 12·12 군사반란을 주도하고 5·18 광주 학살을 벌인 신군부 핵심 5인(전두환, 노태우, 이희성, 황영시, 정호용) 중 한 명이다.[3]
3. 여담[편집]
- 12·12 군사반란을 주도하고 5·18 광주 학살을 벌인 신군부 핵심 5인(전두환, 노태우, 이희성, 황영시, 정호용) 중 가장 장수한 인물이다(향년 97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