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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학(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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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
2. 생애[편집]
1904년 강원도 홍천군 서면 팔봉리에서 태어났다.# 1924년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였으며, 경성제국대학 예과에 진학하여 1929년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영어영문학전공)를 졸업했다. 이후 공무원으로 근무하였으며 1944년 충청북도 단양군수를 지냈다.
2.1. 정계 활동[편집]
8.15 광복 후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강원도 홍천군 선거구에 출마해 당선되었다. 이후로도 강원도 홍천군 선거구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 대한국민당 소속으로 당선되었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와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는 자유당 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되었다. 1956년부터 1958년까지 국회부의장을 역임하였다.
그러나 1960년 3.15 부정선거에 관련되어 구속되면서 국회의원직을 사임했다. 1960년 7월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 강원도 홍천에서 무소속으로 옥중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결국 1961년 2월 국회의원 자격을 상실했다. 직후 치러진 1961년 재보궐선거에서는 아들 이교선이 당선되었다.
2.2. 말년[편집]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강원도 홍천군-인제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이승춘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70년 재야인사 신분으로 신민당에 입당하였다.
이후에는 낚시와 바둑으로 시간을 보냈으며 특히 바다낚시를 많이 다녔는데 짧게는 2~3일, 길게는 열흘 이상 하기도 했다.
1969년 삼선개헌반대범국민투쟁위원회 고문으로 참여하였고 1969년 12월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훈받았다.
1973년 11월 23일에 오전 9시 40분에 택시를 타고 이동하던 중[2] 마주오던 유조차와 정면으로 추돌하여 중상을 입고 바로 한양대학교 부속병원에 옮겨져 응급치료를 받았지만 사망했다.[3] 향년 69세.
2.3. 사후[편집]
서울특별시 종로구 동숭동 201-7 소재의 자택에서 사회장으로 거행되었고 경기도 수원시 파장동에 안장되었다.
3. 선거이력[편집]
4. 둘러보기[편집]
[1] 성수동 2가에서 택시를 타고 이동하다가 유조차와 충돌하여 응급치료를 받았으나 사망하였다.관련 기사[2] 남의 차를 타는 것은 부담스럽다며 택시를 타고 다니곤 했었다.[3] 경향신문 1973년 11월 23일자, 7면 정치면.[4] 홍천군[5] 홍천군[6] 홍천군[7] 홍천군[8] 1960.05.26: 의원직 사퇴[9] 1961.02.21 의원직 상실 (공직선거법 위반)[10] 홍천군·인제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