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종(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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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요나라의 제4대 황제.
2. 생애[편집]
요태종의 장남[1] 으로 951년 야율찰할이 세종을 살해한 후 황제를 참칭하자 그와 맞서 싸워 승리한 후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959년 후주의 시영이 연운 16주 탈환에 나서서 요군을 격파하고 유주를 되찾았다. 시영은 계속 진군하려 했으나, 갑자기 병환으로 쓰러져 원정을 중지하고 귀국하다가 사망했다.
목종은 세종과 같이 알콜 중독자로 폭력적이었고 이유없이 사람을 죽이곤 하였으며 사냥을 좋아하는 전형적인 암군의 면모를 보였다. 재밌는 건 본인도 자신의 성격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957년 12월에 "죄가 있으면 벌을 내려야 하지만, 내가 가끔 정신없이 분노해 무고한 사람을 처벌할 수 있으니 경들이 간하여 말리고 내 지시라고 해서 무조건 따르지 말라" 는 명령을 내리기도 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969년 2월 회주(懷州)로 곰 사냥을 떠나는 길에도 별다른 이유 없이 앞에서 행차를 인도하는 말급(末及)과 익랄(益剌)을 죽이고 그 시신을 잘게 썰어 내버리는 잔혹한 짓을 저질렀다. 이후 잔뜩 술을 마셔 만취한 채로 행궁에 들어왔고 근시인 소가(小哥), 세숫물 담당관인 화가(花哥), 요리사 신고(辛古) 등 6명이 모의해 목종을 시해했는데 이 때 황제의 보령 39세였다. 사후에는 경종이 즉위하였다.
엄청나게 게을러서 수왕(睡王)이라는 멸칭으로 불려졌다. 그나마 게으른 탓에 큰 사고는 치지 않았다는 게 다행이다.
3. 학살자로서의 면모[편집]
사냥을 좋아한 만큼 사냥 담당 인원들도 많이 죽어 나갔는데 그 이유도 사슴 떼를 잘못 몰았다던가 노루를 다치게 했다던가 관리를 못했다던가 등의 시답잖은 이유였다. 별다른 이유도 없이 분노에 사로잡혀 사람을 쉽게 죽였으니 정상이 아니었다. 963년 한 해에만 사냥에 관련된 인물을 4명이나 죽였으며 그 다음 해에는 몰이꾼들이 사슴을 잘못 몰았다는 이유로 7명이나 되는 인원을 한꺼번에 죽인 뒤 파묻고 이를 경계로 삼기 위해 흙더미를 높게 쌓았다.
966년 정월에는 만취한 상태에서 근신인 백해급(白海及), 가복인 삼복(衫福)과 압랄갈(押剌葛), 추밀대관 서리였던 노고(老古), 호종관 실어(失魯) 등을 마구 죽였으며 6개월 뒤에서야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는 백해급 등의 집에 백은과 비단 등을 내렸다. 이후에도 사냥 관련 인사들을 꾸준히 죽였고 967년 11월에는 분노를 주체 못하다가 꿩 담당자인 수가(壽哥)와 염고(念古)를 찢어 죽이고 44명(!)이나 되는 사슴 사육 담당자를 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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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모후는 정안황후 소씨(靖安皇后 蕭氏), 할머니인 술률평의 남동생 술률(소)실로(述律室魯)의 딸이다. 이렇게 되면 부모는 서로 사촌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