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링 스톤스
덤프버전 : (♥ 1)
1. 개요[편집]
2. 상세[편집]
1962년 브라이언 존스에 의해 결성되었으며, 이후 몇 번 멤버 교체를 겪다가 1963년 찰리 와츠가 드러머로 영입되고 이안 스튜어트가 퇴출되면서 최종적으로 밴드가 완벽하게 결성되었다. 당시의 수많은 록 밴드들처럼 초창기에는 고전 블루스 혹은 로큰롤 곡들을 커버하거나 비틀즈가 써준 곡을 발매하는 등 소위 말하는 ‘아이돌 밴드’의 행보를 보였다. 그러나 1965년 키스 리처즈의 자작곡인 (I Can't Get No) Satisfaction이 전 세계적으로 대히트를 치면서 작사 작곡에도 눈을 뜨게 되었다. 이후 전곡을 자작곡으로 채워서 발매한 Aftermath가 미국에서 히트를 치면서 더 후와 함께 1960년대 중반 브리티시 인베이전을 이끄는 밴드가 되었다. 이후 롤링 스톤스 4대 명반이라 불리는 앨범들을 발매하면서 세계 최고의 록밴드의 자리에 올라섰다.
‘구르는 돌’이라는 이름답게 롤링 스톤스는 비틀즈, 레드 제플린, 퀸 등과 더불어 다양한 장르를 시도한 밴드였다. 이들은 블루스 음악을 바탕으로 다양한 음악을 시도하여 하드 록, 블루스 록 등 록 음악의 하위 장르를 개척해 나갔으며, 이에 안주하지 않고 삼바, 디스코, 레게, 컨트리 뮤직, 펑크, 더 나아가 80년대에는 팝 스타일과 일렉트로니카를, 90년대에는 현대적인 록 사운드를 흡수해 나가는 행보를 보였다.
롤링 스톤스 음악의 특징은 섹스, 마약, 심지어 인종차별이나 성차별적 내용까지도 스스럼없이 노래하는 특유의 퇴폐성과 음악 전반에 깔린 '자유'라고 할 수 있다. 복잡하지 않으면서 흥겹고 풍부하고, 때로는 직설적이고 풍자적인 가사도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 대중음악에서 음악가들과 평론가들이 꼽는 록 음악의 정신이 '자유', '저항', '퇴폐' 등으로 요약되므로 어쩌면 가장 록다운 록을 들려주는 밴드라고 평가할 수 있다. 롤링 스톤스는 이러한 행보를 록 음악이 형성되기 시작했던 1960년대 중반부터 보여왔기에, 록이라는 정체성을 확립한 밴드라고 평가받고 있다.
거친 흑인 스타일의 블루지한 보컬 믹 재거의 거리낌없이 자유롭게 노래하는, 속된 말로 '깡패 창법'은 고음과 괴성이 아닌 진정한 보컬의 표현력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는 롤링 스톤스의 상징이다. 또 다른 핵심 멤버 키스 리처즈의 화난 듯 거침없이 긁어대는 기타 사운드와 전설적인 리프들 역시 롤링 스톤스 음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라이벌이라고 불리는 비틀즈가 공연장보다는 스튜디오에서의 실험에 집중한 것과 달리 롤링 스톤스는 공연장에서 수많은 퍼포먼스를 시도하면서 소위 말하는 ‘관객 조련’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 2000년대 라이브 공연 중 하나인 코파카바나 해변 공연에서는 150만에[4] 가까운 인파를 휘어잡는데, 롤링 스톤스는 이러한 행보를 1960년대부터 보여왔었다.
단순히 비평적으로 성공한 것을 넘어서 상업적으로도 매우 성공하였다. 공식적인 음반 판매량이 무려 2억 장 이상인데, 이는 록밴드로만 한정할 시 6위에 달하는 수치이다.[5] 현재에도 비틀즈, 레드 제플린, 핑크 플로이드, 퀸, 너바나, AC/DC, 메탈리카와 함께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밴드이며, 록씬의 쇠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높은 인기를 자랑한다. 또한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해체 없이 활동 중이기에[6] 팬덤의 세대 또한 베이비 부머 세대부터 밀레니엄 세대까지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인지도가 워낙 처참하다보니[7] 롤링 스톤스의 음악도 모르는 경우가 많지만, 패션 업계에서도 이름이 높은 밴드다.##
이러한 업적들과 위상 때문에 비틀즈, 데이비드 보위, 레드 제플린 등과 더불어 영국 대중문화를 대표하는 아티스트들 중 하나이자,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아티스트들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8]
3. 상징[편집]
3.1. 밴드 명[편집]
대중들이 현재 알고 있는 5인조 밴드로 자리잡기 전 롤링 스톤스는 아직 이름이 없는 상태였다. 브라이언 존스가 구인 광고를 내걸고 밴드 멤버들을 모집하긴 했으나, 당시 믹 재거와 키스 리처즈, 그리고 딕 테일러가 소속된 밴드였던 ‘더 블루 보이스’의 모든 멤버들이 가입했기 때문에 밴드명은 그대로 더 블루 보이스로 갈 가능성도 있었다.
더 블루 보이스 전체가 브라이언 존스의 밴드로 들어오긴 했으나 구인 광고를 내걸고 새로운 밴드를 결성한 사람은 브라이언 존스였기에 밴드의 명명권은 브라이언 존스에게 있었다.
한편 브라이언 존스를 포함한 밴드의 모든 멤버들은 블루스 음악, 특히 머디 워터스를 굉장히 좋아했다. 키스 리처즈가 전화를 하고 있던 브라이언 존스에게 밴드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도 근처에는 머디 워터스의 앨범이 있었다. 그렇기에 브라이언 존스는 머디 워터스의 곡인 ‘Rollin’ Stone’을 밴드 이름으로 정했고, 나머지 멤버들도 이에 찬성하여 밴드의 이름은 이를 살짝 변형시킨 ‘롤링 스톤스(The Rolling Stones)’가 되었다.
3.2. 로고[편집]
AC/DC, 건즈 앤 로지스, 레드 제플린 등과 더불어 로고가 엄청나게 유명한 밴드중 하나이다. 이 입술 로고는 세계적으로 의류와 캐릭터 상품으로서 활발하게 소비되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의류 로고로 굉장히 유명하기에, 록 음악에 문외한인 사람이라도 단번에 아는 수준이다. 그래서 록 음악의 인지도가 떨어지는 국내에서는 롤링 스톤스를 밴드가 아닌 의류 브랜드로 알고 있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으며, 더 나아가 이 입술 로고가 롤링 스톤스라는 밴드의 로고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대다수이다.
롤링 스톤스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입술 로고는 영국의 디자이너인 ‘존 파시(John Pasche)’가 디자인했다. 이 로고는 단돈 50파운드에 제작되었는데, Sticky Fingers 발매 시기인 1971년부터 밴드의 로고로 사용되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 로고가 믹 재거의 입술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되었다고 알고 있지만, 사실 인도 신화에 등장하는 신인 칼리에게서 영감을 얻은 로고이다.[9] 인도 신화에서 칼리는 툭 튀어나온 입과 뾰족하고 큰 혀를 갖고 있다고 묘사되는데, 로고에 이러한 점을 담아낸 것. 또한 반권위적이고 반항적인 이미지를 로고에 담아냄으로써 ‘악동’이라는 이미지를 가진 롤링 스톤스의 특징을 잘 담아냈다는 해석 또한 존재하며, 믹 재거는 이 로고에 섹스에 대한 이미지도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10]
글자 로고는 상단에 제시된 글자 로고가 대표적이지만, 이 외에도 여러 개의 글자 로고가 존재한다. 사실 그 중 일부는 실제로 밴드에서 썼던 것은 아니었는데, 밴드의 로고가 패션 상품으로 활발하게 소비되면서 여러 디자이너들이 자체적으로 글자 로고를 제작한 것이다.
4. 멤버[편집]
- 리더인 믹 재거는 록 프론트맨의 이미지를 최초로 구축했다고 평가받는 전설적인 아티스트다.[13] 그는 1960년대 당시 폭발적인 무대 매너를 통해 보수적이었던 대중들에게 큰 충격을 주어서 진보적인 사회를 이끌어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으며, 이러한 무대 매너로 흔히 말하는 ’관중 조련’을 하고 무대를 장악하는 등의 시대를 앞서간 활약으로 인해 대중 음악 역사상 최고의 프론트맨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또한 특유의 막 부르는 듯한 거칠고 투박한 보컬이 트레이드 마크인데, 이는 후대의 여러 록밴드들에게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14] 또한 재거-리처즈의 일원인 것에서 알 수 있듯 송라이팅에서도 엄청난 두각을 드러냈는데, 동료인 키스 리처즈가 작곡을 잘 했다면 믹 재거는 작사에 매우 능했다.[15] 흔히 롤링 스톤스의 대표곡이라고 불리는 Sympathy for the Devil, Gimme Shelter, Rocks Off 같은 곡들은 전부 그가 작사했는데, 이 곡들은 락 역사를 넘어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뛰어난 가사들로 뽑힌다. 다만 아쉬운 점은 Some Girls 이후부터는 이런 입체적이고 복합적인 가사들을 지양하게 되었다는 것.
- 키스 리처즈는 피트 타운젠드, 말콤 영과 더불어 대중 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한 리듬 기타리스트로 평가받는다. 그는 뛰어난 리프 작곡 능력을 선보여서 록씬에서 리프 중심의 음악을 유행시키고 리듬 기타리스트라는 개념을 확립하였는데, 오늘날 록밴드에서 리드 기타리스트뿐만 아니라 리듬 기타리스트의 역할 또한 매우 중시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가 록씬에 미친 영향력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아무래도 포지션 자체가 리듬 기타리스트다 보니 그의 기타 솔로는 상당히 단조롭고 여백이 많은 편이지만, 2015년 라이브 등 여러 라이브를 보면 이 사람이 집중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알 수 있다. 펜더 텔레캐스터를 애용하는 것으로 유명하고[16] 그의 대부분의 곡들이 오픈 g튜닝 혹은 오픈 e튜닝으로 작곡되어있다.[17]
- 찰리 와츠는 록 음악 최고의 드러머 중 한 명이자 더 나아가서 영국 록씬을 상징하는 드러머이다. 재즈 드러머였기 때문에 찰리 와츠 특유의 리듬, 그루브나 비트는 흉내내기 매우 까다로우며, 이러한 특유의 개성적인 비트는 롤링 스톤스 음악의 그루브를 형성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당장 록씬에서 그의 드럼 연주를 능가하는 드러머는 존 본햄, 키스 문 정도밖에 없다고 평가받을 정도이다.[18] 아이러니하게도 원래는 명망 높은 재즈 드러머였으나 브라이언 존스로 인해 록 드러머로 전향했다.
- 빌 와이먼은 밴드 조력자로서의 베이스 연주를 지향한 베이시스트였다. 그는 무대를 장악하는 믹 재거와 키스 리처즈의 뒤에서 묵묵히 베이스를 연주하며 곡의 중심을 잡아주었다. 다만 그의 베이스 실력 또한 매우 상당한 수준인데, 록 베이시스트로만 한정하면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수준이다. 록씬 3대 핵이빨 중 한 명인 키스 리처즈가 빌 와이먼의 베이스 실력을 칭찬할 정도. 이러한 베이스 실력으로 그는 지미 페이지, 에릭 클랩튼, 제프 벡 같은 전설적인 기타리스트들과 함께 세계 투어를 다니기도 할만큼, 롤링 스톤스라는 거대 밴드에 어울리는 훌륭한 베이시스트로 평가받는다. 다만 고령으로 인해[19] 현재는 밴드를 탈퇴했다.[20]
- 믹 테일러는 롤링 스톤스의 전설적인 전성기를 이끌은 핵심 인물 중 한 명이라고 평가받으며[21] , 무수한 명반들을 쏟아내던 당시의 밴드에서 뛰어난 기타 솔로를 선보였다. 비록 롤링 스톤스를 탈퇴하고 이후의 커리어가 아쉽긴 하지만 그가 활동하던 전성기 시절에는 지미 페이지, 제프 벡, 리치 블랙모어, 데이비드 길모어 등과 더불어 최고의 기타리스트로 평가받았으며[22] , 지미 헨드릭스도 그의 기타연주를 극찬 했을 정도라고 한다.# 롤링 스톤스 음악에서 보기 힘들었던 화려한 속주 연주, 그리고 라틴 음악과 블루스에서 영향을 받은 연주가 유명했다. 보틀넥 주법도 브라이언 존스 못지않게 뛰어났다. 그가 재적하던 시절의 밴드는 앞의 브라이언 존스 재적 시기 혹은 뒤의 로니 우드 재적 시기보다 음악적으로나 인기로나 더욱 절정에 다랐었다.[23] 또한 지미 페이지와 더불어 깁슨 레스폴을 즐겨 쓰는 인물이기도 하다.
- 창립자이자 초대 리더였던 브라이언 존스는 프린스, 폴 매카트니, 존 폴 존스, 게디 리와 더불어 대중 음악 역사상 최고의 멀티 인스트루멘탈리스트를 꼽을 때 반드시 거론되는 전설적인 멀티 플레이어이다. 이 중에서도 브라이언 존스는 원조라고 평가받는다.[24] 그가 다룰 수 있는 악기는 수도없이 많았는데, 마림바같은 타악기부터 기타같은 현악기, 심지어 시타르 같은 동양의 전통 악기들까지 다룰 수 있었다. 특히 기타와 하모니카 연주에 특화되었다고 평가받는데, 그는 밴드음악에서 보틀넥 주법을 최초로 도입한 아티스트로 평가받는다. 이러한 다양한 악기를 다루는 능력으로 그는 롤링 스톤스의 곡을 한층 더 풍부하게 만들어주었으나, 키스 리처즈와의 갈등 및 여러 문제로 인하여 밴드에서 탈퇴하고 얼마 안 가 사망했다.
멤버 대부분의 나이가 70세가 넘는다. 데뷔한지 60년이 되는 밴드이다 보니 어찌보면 당연하다. 가장 어린 멤버가 2023년 기준 76세인 로니 우드. 여담으로 밴드의 프론트맨인 믹 재거와 기타리스트 키스 리처즈는 유치원 동문이라고.
전성기 시절에는 리드 기타리스트를 제외한 다른 멤버들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후두암으로 사망한 찰리 와츠, 고령으로 은퇴한 빌 와이먼을 제외하면 초창기 라인업들이 밴드를 그대로 지키고 있다. 리드 기타리스트는 1960년대 후반까지는 브라이언 존스, 1970년대 중반까지는 믹 테일러, 그리고 현재까지는 로니 우드가 맡고 있다.
4.1. 재거-리처즈[편집]
자세한 내용은 재거-리처즈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 역사[편집]
자세한 내용은 롤링 스톤스/역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 평가와 영향력[편집]
자세한 내용은 롤링 스톤스/평가와 영향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7. 인기[편집]
미국 베이비 부머 세대를 상징하는 밴드이기에 베이비 부머 세대들에게 엄청난 사랑을 받고 있다. 또한 전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하드 록 장르의 시초 중 하나라고 평가받는 동시에 하드 록 외에도 다양한 장르를 시도했기 때문에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가장 인기있는 록밴드 중 하나로 자리잡고 있다. 다만 젊은 세대는 레드 제플린이나 밴 헤일런같은 밴드들처럼 악기를 통해 롤링 스톤스에 입문한다기 보다는 비틀즈처럼 영향력 때문에 입문하는 경우가 많다.[25]
1960년대에 롤링 스톤스의 인기는 어마어마해, 브리티시 인베이전의 대표 주자를 말할 때 비틀즈 다음으로 바로 언급되는 수준이며 60년대 전체를 씹어먹던 비틀즈의 유일한 대항마였다.[26] 이들이 1965년에 발매한 싱글인 (I Can't Get No) Satisfaction은 미국과 영국 양쪽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이후 발매된 Aftermath도 북미에서 인기를 끌면서 마찬가지로 1965년에 침공을 시작한 더 후와 함께 브리티시 인베이전을 대표하는 밴드가 되었다.
록 음악의 춘추전국시대라고 불리는 1970년대에도 롤링 스톤스의 인기는 1960년대 못지않게 강했는데 레드 제플린, 핑크 플로이드 등 차트 경쟁력을 가진 후배 밴드들이 속출하는 가운데서도 롤링 스톤스는 1971년에 Sticky Fingers로 빌보드 200에서 1위를 기록했으며, 이후 롤링 스톤스의 침체기에 나온 Goats Head Soup, It's Only Rock 'n Roll, Black and Blue 세 앨범도 미국과 영국 양쪽 차트에서 동시에 1위를 기록하는 등의 무시무시한 행보를 보였다.[27] 앨범 이외에도 Brown Sugar, Angie, Miss You라는 서로 다른 스타일의 곡들로 빌보드 핫 100 1위곡을 세곡이나 가지게 되었다. 실제로 펑크 음악과 디스코 음악의 강세로 수많은 록밴드들이 1980년대까지 인기를 이어가지는 못했지만 롤링 스톤스는 Tattoo You와 Start Me Up이라는 초대형 히트곡으로 인기를 이어갔다.[28] 그리고 1990년대에는 Voodoo Lounge라는 앨범으로 그해 그래미 최우스 록 앨범을 수상하였고 그 인기는 21세기까지 이어진다. 21세기에는 음반 작업을 하기보다는 투어를 더 열심히 하고 있는 중이다. 2021년에는 2위 해리 스타일스를 크게 제치고 투어 수익 1위를 기록하였다.#
다만 롤링 스톤스의 음반 판매량은 약 2억 장으로[29] , 약 3억 장 이상을 판매한 레드 제플린이나 약 2억 5천만 장 이상을 판매한 핑크 플로이드에 비해서 음반 판매량이 떨어지는 건 사실이다. 사실 이는 레드 제플린과 핑크 플로이드가 각각 헤비 메탈, 프로그레시브 록의 상징으로 일컬어지는 밴드들인데, 이 두 장르는 팬층이 두터운 록 음악 중에서도 특히나 더 팬층이 두터운 장르들이기 때문이다. 또한 롤링 스톤스는 컨셉 앨범이나 유기성을 중요시한 음반을 거의 발매하지는 않았다.[30] 실제로 Let It Bleed나 Sticky Fingers 같은 롤링 스톤스의 대표작들은 유기성, 통일성보다는 다양성을 중요시한 앨범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롤링 스톤스는 유럽과 동아시아에서 어마어마한 인기를 끌었던 퀸, 하드 록의 상징인 AC/DC, 미국에서 어마어마한 인기를 끌었던 이글스와 거의 비슷한 음반 판매량을 올렸다.[31] 또한 2019년 빌보드 선정 올타임 앨범 차트에서 비틀즈에 이어 2위를 기록하였다. 그리고 싱글도 많이 발매했던 만큼 판매량은 록밴드 중에서는 비틀즈 다음으로 높고[32] 빌보드 핫 100 1위를 차지한 곡들도 8개나 있다. 투어 수익은 후배 밴드인 U2와 메탈리카를 누르고 1위를 오랫동안 차지하였지만 최근에 U2에게 따라잡혀 2위가 되었다.
1960년대에 결성된 밴드라 베이비 부머 세대들에게만 인기가 높을 것 같지만, 위에서 서술하였듯이 하드한 사운드를 선호하는 현 젊은 세대들에게도 높은 인기를 자랑한다. 비틀즈, 레드 제플린, 퀸, 핑크 플로이드와 함께 현 세대들에게 인기 있는 록밴드 top 5 안에는 꼭 들어간다. 미국의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최고의 록밴드를 묻는 투표에서 롤링 스톤스는 2등을 차지했다.[33] 그리고 2018년 월스트리트 저널이 음반 판매량, 유튜브 및 음원 조회수, SNS 등을 종합한 통계 산출을 통해 '역사상 가장 인기있는 록밴드' 순위를 산정했는데, 롤링 스톤스는 여기서 5위를 기록했다.[34]#
서구권 록밴드 중에서는 드물게 라틴 아메리카에서도 엄청난 사랑을 받고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중에서도 아르헨티나의 롤링 스톤스 사랑이 가장 유명하고 각별하다.[35] 심지어 아르헨티나의 한 지역에는 롤링 스톤스를 숭배하는 ‘롤링가’라는 부족들까지 존재한다고 하며, 아르헨티나인들도 본인들이 롤링 스톤스 공화국으로 유명하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기는지 피켓을 만들어 롤링 스톤스가 투어하는 곳마다 따라다니는 것으로 유명하다. 아르헨티나의 축구 영웅들 또한 대부분 롤링 스톤스의 팬이며, 심지어 아르헨티나 축구 대표팀은 2018 러시아 월드컵 때 롤링 스톤스의 전용기를 타고 러시아로 갔다고 한다. 멤버들도 이런 아르헨티나의 사랑을 잘 아는지 인스타그램에 아르헨티나에 대한 애정을 담은 게시글을 자주 올리기도 한다.[36] 또한 고향인 영국에서도 인기가 당연히 좋으며, 의외로 중국과 일본 같은 아시아 국가들에게도 엄청난 사랑을 받고 있는 밴드다.[37]
높은 인기와는 별개로 의외로 안티들도 많은 밴드이다. 물론 진지하게 음악적으로 비판을 받는것은 아니지만 이들의 방탕한 사생활, 키스 리처즈의 독설[38] 때문에 반감을 가지는 이들도 존재하는 듯하다. 또한 베이비 부머 세대를 상징하는 밴드가 지금까지도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는 사실에 반감을 가지는 젊은 세대들도 많으며[39] , 특히나 최근에는 PC주의자들이나 페미니스트들에게 레드 제플린과 더불어 여성혐오 밴드라고 디스당하기 일쑤이다.[40] 물론 사생활적인 이미지나 독설 같은 부분에서 비판하는 사람들은 있어도, 일반적으로는 나머지 주장들은 헛소리로 치부되는 경우가 많다.[41] 또한 롤링 스톤스는 힙스터들에게 유독 찬밥 신세를 받는 밴드이기도 한데 대표적으로 Rate Your Music 차트를 보면 롤링 스톤스 앨범 중 가장 높은 순위는 Sticky Fingers로 고작 145위이다. 이는 힙스터들이 블루스, 하드 록을 선호하지 않는 취향차이에서 기인한다고 봐야한다. 이와 비슷하게 레드 제플린 또한 유독 RYM에서만 평가가 박하다. 가장 높은 앨범이 Led Zeppelin IV로 43위이지만 다른 앨범들은 롤링 스톤스처럼 100대 후반으로 떨어진다. 다른 예시로 더 후 역시 취급이 좋지 않으며 에어로스미스는 아예 차트에도 없다.[42]
7.1. 한국에서의 인지도[편집]
한국이 워낙에 록 불모지이지만, 이것을 감안하더라도 롤링 스톤스처럼 전 세계적인 인지도와 한국에서의 인지도가 심하게 차이나는 밴드 혹은 뮤지션은 없을 것이다. 당장 국내 인지도가 해외에 비해 많이 떨어져 내한 공연조차 한번도 안온 프린스나 마돈나만 해도 이들의 이름이나 각종 히트곡들은 국내에 잘 알려져 있지만[43] , 롤링 스톤스는 밴드 인지도는 커녕 히트곡 인지도도 거의 제로에 가까우며, 로고만이 잘 알려져 있다. 심지어 로고마저도 음악가의 로고가 아니라 롤링 스톤스라는 패션 브랜드의 로고로 잘못 알려져 있으며(…), 더 심한 경우에는 잡지 롤링 스톤을 롤링 스톤스와 혼동하기도 한다.
롤링 스톤스 외의 다른 밴드 중에서는 U2 정도가 세계에서의 인지도와 한국에서의 인지도의 괴리감이 롤링 스톤스만큼 심한 편이다. 물론 U2의 히트곡도 기본적으로 널리 알려진 편은 아니지만 보노같은 경우에는 사회 운동으로 잘 알려져 있기도 하고, 무엇보다 U2는 얼마전에 내한 공연을 했다. 그러나 롤링 스톤스는 내한 공연을 한 번도 오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80을 바라보는 멤버들의 나이를 감안하면 앞으로도 내한 공연을 올 것이라는 보장도 없는 것이 사실이다.[45] 참고로 롤링 스톤스의 내한 공연과 관련된 충격적인 통계가 존재하는데, OECD 38개국 중에서 한번도 공연하지 않은 나라는 코스타리카, 아이슬란드,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대한민국 이렇게 7개국뿐인데, 이중 대한민국을 제외한 나머지 6개국은 인구가 수십만명에서 많아봐야 600만명을 넘지 않는 나라들이다. 한마디로 인구와 경제규모가 어느정도 되는 대국 중 롤링 스톤스의 공연이 열리지 않았던 나라는 한국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한국이 음반 판매량이 높은 국가는 기본적으로 아니지만 유독 롤링 스톤스의 인지도가 떨어지는 나라라는 점은 이토록 분명하다. 실제로 롤링 스톤스는 동아시아 투어에서는 다른 록밴드들처럼 일본까지밖에 가지 않았기에 밴드 멤버들도 한국에서는 본인들의 인지도가 제로에 가깝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확률이 높다.[46]
지금 시대보다 록 음악의 인기가 높았던 70, 80년대에 해외 록 음악을 향유하던 사람들에게도 인지도가 높은 편이 아니다. 그나마 Angie나 As Tears Go By 같은 부드러운 발라드 곡이나, 베트남 전쟁을 다루던 영상 매체에서 단골로 쓰였던 Paint It Black 정도만 유명하다. 그러나 영미권에서는 록 음악을 듣지 않는 세대들까지 다 아는 60년대 최고의 히트곡이었던 Honky Tonk Women이나, 불후의 명곡이며 이들의 삐딱한 태도를 대표하는 (I Can't Get No) Satisfaction[47] 같은 곡들마저도 아무도 모른다. 그렇기에 국내에서는 팬들이나 심지어 평론가들에게도 평가 절하를 당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이 문서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롤링 스톤스는 일반적으로 비틀즈, 밥 딜런과 비슷한 수준의 평가를 받는 것에 비해, 국내에서는 일반적으로 이 음악가들 다음 가는 수준이라고 평가받는 레드 제플린, 데이비드 보위보다도 낮은 평가를 받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는 국내 평론가들을 대상으로 20세기 최고의 뮤지션을 뽑았는데 롤링 스톤스는 여기서 고작 8위를 기록했고, 청취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했을 때는 아예 순위에도 없었다.[48] 그나마 한국의 7080 뮤지션들 중에서는 인지도가 낮진 않았는데, 조용필이 Jumpin' Jack Flash를 가장 좋아하는 곡으로 뽑았거나, 봄 여름 가을 겨울과 배철수가 이들을 가장 존경하는 밴드로 뽑았던 적이 있다.
그렇지만 이렇게 처참할 정도로 낮은 인지도는 스트리밍이 발달한 현대에 와서도 나아지지 않고 있다. 음악을 향유하는 젊은 세대들 대부분은 RYM과 포스트락 갤러리로 새로운 음악과 과거 거장들의 음악을 접하는데, RYM 유저들 자체가 롤링 스톤스의 음악들을 선호하지 않는다. 또한 포스트락 갤러리에서는 허구한 날 틀내난다고 욕먹는다. 요약하면 한국에 로큰롤 붐이나 블루스 붐이 오지않는 이상 롤링 스톤스의 이미지가 반등해 내한 공연까지 진행되는건 영원한 꿈인듯 싶다. 그래도 마룬5의 Moves Like Jagger 같은 곡이나 여러 일화들로 믹 재거와 롤링 스톤스의 이름이 조금이나마 알려졌고, 유튜브에 롤링 스톤스의 플레이리스트와 가사 영상들도 올라오는 등 인지도가 조금씩 오르고 있기는 하다.[49] 여담이지만 신해철은 롤링 스톤스의 실황 다큐 샤인 어 라이트 시사회를 진행하면서 "롤링 스톤즈가 거쳐간 나라와 안 거쳐간 나라의 음악 수준이 달라진다. 우리나라는 굿 보이즈 비틀즈까지는 받아들였지만 배드 보이인 롤링 스톤즈를 겪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 음악계가 이렇게 후지다”' 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이렇게 한국에서 롤링 스톤스의 인지도가 유독 떨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롤링 스톤스의 블루스 음악이 한국 감성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정교한 연주와 신비주의적인 이미지가 아닌 그루브한 연주와 가벼운 이미지는 한국인들과 익숙한 느낌은 아니다. 영미권과 라틴 지역은 춤추는 문화가 발달되었고 5,60년대부터 대중음악을 접해 블루스와 로큰롤이 익숙하지만, 한국의 5,60년대는 6.25 전쟁으로 모든게 박살난 상태라 잊혀진 기억이기 때문이다. 전쟁으로 나라가 박살난 상태고 정부는 경제만을 살리기 위해 급급한데 이 상태에서 록 음악이 발달하고 로큰롤 음악과 블루스 음악을 즐기는 일은 있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아픈 역사가 아니더라도 블루스 음악의 끈적끈적한 리듬과 쾌락적이고 퇴폐적인 감성이 한국인의 성향과 맞았을지는 의문이다. 물론 난 항상 그대를이나 취중진담, 빗속에서같이 블루스 음악을 한국인의 입맛에 맞추어 대성공한 히트곡들은 몇 개 있긴하지만, 90, 00년대의 주류 음악은 댄스 혹은 록발라드였으며, 현대에도 아이돌 그룹의 댄스 음악이 대세이며 블루스 음악은 극히 생소한 음악이다. 한국이 록 불모지이지만 펑크나 메탈, 얼터너티브같은 록의 세부 장르들의 계보가 끊기지 않고 꾸준히 인기를 유지하고 있는 반면에, 한국에서 블루스 음악은 비주류인 록 음악 중에서도 가장 비주류였기 때문이다.[50][51]
또한 록 팬들은 롤링 스톤스의 방탕한 사생활로 인한 악동 이미지, 그리고 쾌락적인 내용이 많은 가사들이 한국같은 비교적 보수적인 국가들과 안 맞아서라고 생각을 한다. 그러나 롤링 스톤스에 버금가는 막장적인 사생활과 쾌락적인 내용의 가사들로 가득한 레드 제플린은 한국에서 상당히 유명한 편이며, 방탕한 사생활과 수위 높은 가사들로 유명한 각종 흑인 힙합 아티스트들도 국내에서 인기가 많기에 이는 너무 나간 생각인 듯하다.[52] 하지만 북한 측에서 롤링 스톤즈의 북한 공연을 거절한 이유가 그들이 너무 퇴폐적이라는 일화를 생각해보면 보수적인 국가들이 롤링 스톤스를 싫어하는 것은 지나치게 퇴폐적인 이미지도 한 몫 할지도 모른다.[53]
7.2. 유명한 팬들[편집]
- 스티브 메리엇
레드제플린과 롤링스톤즈의 음악에서 가장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후에 롤링스톤즈와 같은 무대에 서기도 한다.
점핑 잭 플래시를 가장 좋아하는 곡으로 뽑은 적이 있다.
1985년 라이브 에이드에서 Bad를 부를 때, 보노가 후반부에 Ruby Tuesday와 Sympathy for the Devil을 반주에 맞게 편곡해서 몇 소절씩 불렀다.
8. 시도한 음악 장르[편집]
자세한 내용은 롤링 스톤스/시도한 음악 장르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9. 논란 및 사건 사고[편집]
자세한 내용은 롤링 스톤스/논란 및 사건 사고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0. 밴드 관련 인물[편집]
10.1. 세션 멤버[편집]
이하의 멤버들은 비록 정규멤버는 아니지만 롤링 스톤스 4대 명반을 비롯하여 전성기 시절에 기여한 공이 워낙 크기 때문에 이들의 팬들이라면 무조건 알고 있는 이름들이다. 특히 바비 키스, 니키 홉킨스, 짐 프라이스 등은 지금까지도 본인들 분야의 원탑 소리를 들을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어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전설의 이름들이다. 가히 롤링 스톤스 음악의 특급 조연이라고 할 수 있다.
- 이안 스튜어트
- 지미 밀러
- 바비 키스
- 니키 홉킨스
- 짐 프라이스
10.2. 기타 관련 인물[편집]
- 알랙시스 코너
- 타지 마할
- 앤드류 올드햄
- 아나타 팔렌버그
- 마리안느 페이스풀
- 제리 홀
11. 기타[편집]
- 해외에서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미국의 전설적인 영화감독 마틴 스코세이지가 롤링 스톤스의 광팬인 것으로 유명하다. 마틴 스코세이지 자체가 록 음악 덕후지만 그중에서도 롤링 스톤스의 음악이 자신의 갱스터 영화들과 정서가 어울리다고 느꼈는지 자주 삽입하였다. 특히 Gimme Shelter는 좋은 친구들과 카지노, 그리고 디파티드까지 총 3번이나 나왔으며, 카지노 한 영화에서만 롤링 스톤스의 노래가 5번이나 나왔다. 더 자세한 것은 링크 참조. 그리고 스코세지는 후에 ‘샤인 어 라이트’라는 롤링 스톤스의 공연 실황을 담은 다큐까지 제작을 맡게 된다.[62]
- 1963년, 즉 비틀즈와 비슷한 시기에 데뷔한 밴드임에도 불구하고 프론트맨 듀오인 믹 재거와 키스 리처즈의 나이가 상당히 어린 편이다. 이 둘은 1943년 생인데, 동료 밴드인 비틀즈의 막내인 조지 해리슨과 동갑인 것이다.[65]
11.1. 대중매체 속 롤링 스톤스[편집]
- 죠죠의 기묘한 모험 5부의 스탠드 롤링 스톤즈, 스티키 핑거즈, 6부의 스탠드 점핑 잭 플래시
- 머나먼 정글(Tour of Duty, 1987~1990)의 인트로로, 그리고 스탠리 큐브릭의 풀 메탈 재킷의 엔딩 삽입곡으로 'Paint It Black'이 쓰였다. 이후 이 곡은 전쟁물을 상징하는 곡 중 하나가 되었다.
- 2014년 7월 31일 방영되었던 SBS 예능 프로그램 "백년손님"에서 남재현 일행이 캠핑카 여행을 떠났을 때 나온 브금이 Under My Thumb이다.
- Windows 95의 영어권 국가 TV 광고에 배경음악으로 "Start Me Up"가 사용되었다.
- 콜 오브 듀티 시리즈
-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 미션 중 추락현장에 PT보트를 타고 ZPU와 타워를 제거할 때 Sympathy for the Devil이 나온다.
-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 3의 여러 트레일러에서 'Paint It Black'이 쓰였다.
- 도와줘! 리듬 히어로의 수록곡 중 하나인 Jumpin' Jack Flash
- 지옥의 묵시록에 보트 위에서 '(I Can't Get No) Satisfaction'을 틀고 춤을 추는 장면이 나온다.
- 맨 인 블랙 3에서 J가 1969년으로 타임워프한 초반에 2000 Light Years From Home이 나온다.
- 짱구는 못말려 16기 1화, 2화 '볼링 대결을 해요' 에서도 장미반 치타 친구로 나오는 아이가 본인은 롤링 스톤즈 음악만 듣는다고 언급한다.
-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Doom And Gloom이 나온다.
- 어도비 포토샵 광고에 배경음악으로 She's a Rainbow가 사용되었다.
- 나이브스 아웃의 엔딩곡으로 Sweet Virginia이 사용되었다.
- LE SSERAFIM의 김채원 티저가 롤링스톤스의 Ride 'Em On Down 뮤직비디오를 오마주했다.
- 크루엘라의 메인 테마곡으로 Sympathy for the Devil이 사용되었다.
- 웬즈데이에서 웬즈데이 아담스가 첼로로 Paint It Black을 연주한다.
11.2. 비틀즈와의 라이벌리[편집]
이 두 밴드가 라이벌로 꼽혔던 이유는 인기 뿐만 아니라 대조되는 이미지와 특성 탓도 있었다. 먼저 비틀즈가 신사나 모범생의 이미지로 유명했다면 롤링 스톤스는 악동이라는 대조되는 이미지로 유명했다.[68] 그리고 비틀즈가 다소 팝적인 음악을 발매하거나 스튜디오에서의 실험에 집중한 반면, 롤링 스톤스는 블루스와 로큰롤에 기반한 정통 하드 록 및 블루스 록적인 음악을 발매하거나 라이브 투어를 중시했다.[69]
이렇게 라이벌리가 유명하지만 밴드 멤버들끼리는 서로 음악적인 영향도 자주 주고받고 서로 교류도 자주하는 친한 사이이다.[70] 하지만 라이벌답게 서로 은근히 디스를 주고받은 적도 많은데, 몇 가지 사례로 존 레논이 믹 재거의 춤이 Faggot스럽다고(…) 디스를 한 적도 있고, 키스 리처즈는 페퍼 상사가 똥같다고 디스를 한 적이 있다. 그리고 비교적 최근인 2020년에도 폴 매카트니가 롤링 스톤스는 블루스 커버 밴드라는 묘한 말을 남겼고, 이에 대응해 믹 재거는 비틀즈는 매디슨 스퀘어 가든같은 큰 규모의 공연장에서 공연한 적이 없고 투어 비즈니스가 자리를 잡기 전에 해체를 했기 때문에 롤링 스톤스와 비교대상이 될 수 없다라는 묘한 말을 남겼다.[71]
팬들끼리의 관계는 두 밴드의 음악을 같이 향유하는 팬들이 가장 많지만, 가끔 나이가 지긋이 든 팬들끼리는 서로 싸우기도 한다.[72]
이렇듯 이들의 라이벌리가 너무 유명하다보니까 현재에도 라이벌을 표현할때 비틀즈와 롤링 스톤스 같다고 표현하기도 한다.[73]
11.3. 관련 도서[편집]
- The Rolling Stones/Unzipped
- 롤링 스톤즈 50년의 악행 50년의 로큰롤[74]
12. 롤링 스톤스에 대한 언사[편집]
롤링 스톤스는 최후에는 진정 가장 위대한 로큰롤 밴드로 영원히 남을 것이다. 메탈, 랩, 펑크, 뉴 웨이브, 팝 록, 어떤 것이든 당신은 모두 롤링 스톤스의 영향력을 찾을 수 있다. 그들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며 아무도 그들을 뛰어넘을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롤링 스톤스에게 어떠한 경쟁 심리도 느끼지 않는다. 롤링 스톤스는 언제나 최고의 자리에 있었으며, 믹의 가사는 그냥 놀라움 그 자체이다.
롤링 스톤스는 영국 음악계에서 10대 초중반의 아이들에게 여러 음악을 선사해 준 주된 선구자이자 공급자이다.
롤링 스톤스가 다녀온 나라들은 롤링 스톤스가 공연을 한 이전과 이후의 음악 수준이 확연히 바뀔 정도인데, 한국이 굿 보이 비틀즈는 받아 들였지만 배드보이 롤링 스톤스는 못 받아들였기 때문에 한국 음악이 후진 것이다.[76]
롤링 스톤스는 나의 밴드에 대한 기준을 만든 밴드이다. 하지만 난 그들처럼 투어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왜냐하면 내 무릎이 버틸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롤링 스톤스는 우리가 한 번도 같이 연주를 하지 않은 밴드지만 항상 같이 연주를 하고 싶었던 밴드이다.
많은 뮤지션들은 본인들이 롤링 스톤스라도 된것처럼 착각하기 시작하면서 망가지기 시작한다.
적어도 펑크가 도래할 때까지 아무도 그들처럼 몰아(沒我)의 에너지로 철저히 록을 한 사람들은 없었다.
만약 당신이 미국에서 자랐다면 당신은 레드 제플린. 블랙 사바스, 그리고 롤링 스톤스의 영향을 받았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왜냐면 그들의 음악이 항상 라디오에서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롤링 스톤스의 일부 노래들은 기절초풍(Stunner) 그 자체이다 .
비틀즈, 필 스펙터, 그리고 롤링 스톤스 이들이 저의 우상입니다.
어린 시절 나의 우상들인 비틀즈, 핑크 플로이드, 롤링 스톤스의 음악을 들으면서 자랐다.
13. 디스코그래피[편집]
자세한 내용은 롤링 스톤스/음반 목록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3.1. 싱글[편집]
13.1.1. 빌보드 Hot 100[편집]
13.1.2. 그 밖의 싱글[편집]
- It's All Over Now (1964) - 영국차트 1위
- Little Red Rooster (1964) - 영국차트 1위
- Living In A Ghost Town (2020)
13.1.3. 대표곡[편집]
자세한 내용은 롤링 스톤스/대표곡 문서를 참고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