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
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손제석
덤프버전 :
분류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정치학자. 본관은 경주(慶州). 법명은 '서주'.
서울대학교 외교학과 교수 및 제27대 문교부 장관을 역임하였다.
2. 생애[편집]
1931년 경상북도 영일군 포항면 포항동(현 포항시 북구 남빈동)에서 대한불교진각종의 창종자인 손규상(孫珪祥, 1902. 5. 10 ~ 1963)[1] 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 손규상은 울릉군 남면 사동(현 울릉군 울릉읍 사동리) 출신으로, 증조부 손병수(孫秉秀, 1859 ~ 1937)는 본래 경상도 경주부 기계면(현: 포항시 북구 기계면)에 살다가 1883년경 울릉도에 입도하였다.
경북중학교[2] 및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1957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3] 를 취득했다.
이후 1959년 신설된 서울대학교 외교학과에 교수로 부임하였다. 대학에서는 국제기구론을 담당하였으며 1960~70년대에 걸쳐 해외 대학 방문학자로 파견을 가거나 적십자 등 각종 국제회의에 연사로 참여하는 등 활발한 대외활동을 벌였다. 1979년에는 한국국제정치학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제5공화국이 출범하면서 당시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의 학장을 맡고 있던 그는 1982년 대통령비서실 교육문화수석으로 적을 옮기게 된다. 이후 1985년에는 권이혁의 뒤를 이어 문교부 장관에 기용되었다. 장관 시절 민주화운동의 불길이 거세게 일던 당시 정국에서 소위 학원 안정화를 담당해야 했으나 재임 기간 중 6월 항쟁이 일어나는 등 시대의 흐름을 막지는 못했다. 한편 대학 관계 업무에 있어서는 일정 부분 대학에 정책적 개입을 수행해야 하는 교육 당국의 대표로서 당시 대학 교수진들로부터 학원의 자율성을 주장하던 학계에 있을 때와는 달리 개입 일변도라는 비판을 받았다.
퇴임 후에는 진각종 재단이 설립한 위덕대학교의 초대 총장으로 취임하였다.
2016년 1월 11일 별세했다.
[1] 아명 손덕상(孫德祥). 1926년 손규상(孫圭祥)으로 개명했다가 1936년 손규상(孫珪祥)으로 재차 개명했다.[2] 당시에는 6년제였다.[3] 석사 학위 논문 : 地域措置 및 集團的 正當防衛 條約과 國際聯合과의 關係에 對하여(지역조치 및 집단적 정당방위 조약과 국제연합과의 관계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