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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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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정치인. 계파는 친이재명계에 속한다.
제19·20·21대 (서울 중랑구 갑) 국회의원으로 당적은 더불어민주당이다.
2. 생애와 정계 입문[편집]
1964년 11월 11일, 경상북도 상주군(現 경상북도 상주시)에서 태어났다. 이후 가족들을 따라 서울로 이사하여 서울중곡초등학교, 면목여자중학교(現 장평중학교), 혜원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으며[1] , 1983년 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했다.
1986년 이화여자대학교 총학생회[2] 장을 역임했고, 이대 정외과를 졸업한 후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공공정책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그 후, 같은 학교 대학원 동아시아학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나중에 졸업했다. 1988년부터 중랑구 면목동에서 주부들 대상으로 무료도서대여사업을 했다.
2000년 새천년민주당 창당 당시 발기인으로 참여하면서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다 2003년에는 민주당 부대변인으로 일약 출세하여 화제를 모았다. 2004년부터 3년간은 열린우리당 부대변인으로 활동하였다.
그 후 2007년에는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춘추관장 겸 보도지원 비서관으로 발탁되었는데, 전임자 김현 비서관도 여성 386 출신이었기 때문에, 여성 386 출신끼리 바통을 넘겨주고 받았다는 말이 나왔다.[3]
2008년 총선때 통합민주당 비례대표 공천을 받았으나 뒷순번이라 공천을 반납하였다.
그리고 2011년에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박원순 당시 후보의 유세본부 본부장을 맡아 박 시장 당선에 일조했다.
그후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명숙 대표의 추천에 의해 서울 중랑구 갑에 민주통합당 후보로 공천을 받았다. 이때 한명숙 대표가 주도한 이른바 '노이사 공천'[4] 의 덕을 봤다는 소문도 있었다. 관련 기사 어쨌든 이때 현역 국회의원인 무소속 유정현 후보를 꺾고 당선되면서 금배지를 달게 되었다.
제19대 국회의원 시절의 대표적인 입법 발의로는 '청소년보호법 개정안'이 있다. 미성년자들이 식당이나 술집에서 술을 마셔도 당사자는 처벌받지 않고 식당 사장님들만 처벌받게끔 되어 있었던 법을 개정해 처벌 수위를 크게 낮춰주거나 면제해 주는 내용.
미성년자들 또한 처벌 대상으로 하는 '쌍벌제'의 바로 아랫 단계로 위의 설명을 보다 더 자세히 첨부하자면 '미성년자의 강박 및 신분증 위조˙변조˙도용 등 적극적인 방법으로 인해 주류나 담배 등을 판매한 경우에는 과징금과 영업정지기간 등 행정처분을 감경하거나 면제할 수 있도록 해 선량한 자영업자를 보호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법 개정안이다.#1#2
서영교 의원은 '쌍벌제로 하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이는 법을 만들고 여러 법을 개정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일단 있는 청소년 보호법부터 개정해 식당 사장님들을 이러한 위험에서 건져올리는 것이 더 시급하다'며 보호법 개정안에 앞장선 이유를 밝힌 바 있다.
2016년 3월에는 테러방지법 필리버스터에 참여하여 6시간 59분 동안 테러방지법의 독소조항을 개정할 것을 주장했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공천을 받았으며, 당선되었다.
아래에 소개된 가족 채용, 로스쿨 편들기, 석사논문 표절 논란 등으로 징계를 받았다.
결국 더불어민주당의 당무감사원이 서영교 의원에 대하여 중징계 결정을 내렸다. 당무감사원이 최종 징계수위에 대한 판단을 윤리심판원에 넘김으로써 제명 또는 당원자격 정지 판정이 예상되었다. 그러자 2016년 7월 12일 열릴 예정이었던 윤리심판원 전체회의 하루 전날인 7월 11일에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하였다.[5]
그리고 1년여 넘게 무소속 의원 신분으로 의정 활동을 해오다가 상대 후보에 대한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는 혐의로 진행되었던 재판이 1심, 2심, 3심 모두 무죄 판결이 났으며 2017년 9월 13일 더불어민주당에 다시 복당하였다.
2.1. 민주당 탈당 후 복당과 이후의 활동[편집]
‘가족채용’ 논란에 휩싸였던 때인 2016년 7월 11일에 자신에 대한 징계수위를 정하는 윤리심판원 전체회의를 하루 앞두고 전격 탈당했다. 이미 당무감사원이 중징계 결정을 내렸고, 최종 징계수위에 대한 결정은 윤리심판원에 넘어간 상태였으며, 징계수위는 제명 또는 당원 자격 정지 판정이 예상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버텨봤자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당원 자격 정지 처분을 받게 되면 더 이상 당에서 국회의원 후보로 공천을 받을 수 없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하루 전날까지도 버팅겨보다가 결국 포기하고 자진 탈당했다. 자진탈당 이후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물러난 뒤 비교섭단체로서 국방위원회로 상임위를 옮겼다. 원래는 더불어민주당 서울시당위원장 경선에 출마해 서울·제주 권역 최고위원으로 지도부에 입성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었으나 이때의 탈당으로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그렇지만 선거법 재판 종료 후 민주당 서울시당에서 복당을 결정하였으며, 이를 중앙당에서도 받아들이면서 1년 만에 민주당으로 돌아왔다.
2.2. 21대 국회의원[편집]
2020년 21대 총선에서는 경선에서 승리해 공천을 받으면서 3선에 도전했다. 그리고 미래통합당 김삼화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숟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21%p 차이로 완승했는데, 서영교 의원의 지역구 관리 능력이 좋았던 것이 영향을 끼친 듯 하다. 게다가 상대였던 김삼화 후보는 바른미래당 시절 서울 강남구 병 지역위원장을 맡으며 활동해 오다 중랑구에 공천된 낙하산 인사였는데, 앞서 언급하였듯 서영교 의원은 이 지역에서 50년 가까이 살아왔던지라 대진운도 좋았다.
2021년 12월 19일, 더불어민주당의 대한민국대전환 선대위 총괄상황실장을 맡은 서영교 의원이 "국민의힘 등 일각에서 특정 후보 폄훼를 위한 목적으로 사적 통화 녹취 일부 배포·재생산 행위가 벌어지고 있다."라고 발표했으며, 이와 관련된 욕설 영상을 타인에게 보일 시, 낙선이나 비방 목적이 있다며 무조건 위법이라고 말하며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을 예고하였다.#
2022년 8월 28일 열린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으로 선출되었다.
3. 비판 및 논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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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4. 선거 이력[편집]
5. 소속 정당[편집]
6. 여담[편집]
- 이대 총학 출신답게 목소리가 대단히 우렁차다고 한다. 국회 대정부 질문을 할 때에도 마치 판소리 명창이 웅변하는 듯한 톤으로 사자후를 토하여 눈길을 모았다. 관련 동영상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개콘 코너 9시쯤 뉴스의 개콘유치원에 나오는 김준현 어린이의 웅변을 연상케 한다는 평도 있었다. 관련 동영상 목소리의 변곡이 커서 집중을 유도하는 능력과 스토리텔링 능력[9] 이 발군이라 다른 부분에 대한 평가는 별론으로 하고도 연설능력은 지역구인 중랑구에서 상당히 인정받는 편.
- 2023년 9월 18일에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단식 19일 만에 녹색병원에 입원했는데 친명계답게 공교롭게도 본인의 지역구인 면목동에 위치해 있다. # # 게다가 병원에 방문하는 모습이 보이기도 하다. #
7. 둘러보기[편집]
[1] 이러한 이력을 무기로, 중랑이 낳고 기른(...) 진정한 중랑의 딸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자신의 세일즈 포인트로 삼고 있다. 하지만 정작 그 당시엔 중랑구가 아닌 동대문구인 게 함정(중랑구 분리는 1988년에 이뤄졌다). 또한 중랑의 딸이란 이름을 걸고 중랑구에 있는 초, 중, 고등학교 졸업식에서 "내가 이 학교를 졸업했다"라고 말하고 다닌다.[2] 이 당시 전임 이화여자대학교 총학생회장은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아내 남영신이었다. 이로인해 남영신과는 언니와 동생관계로 굉장히 각별한 사이로 알려져있으며 송영길 전 대표는 서영교 의원을 처제라고 부른다.[3] 김현은 한양대 사학과 84학번으로 한양대 총학생회 간부 출신이고, 서영교는 이화여대 정외과 83학번으로 이대 총학생회장 출신이다. 참고로 청와대 춘추관은 출입기자실, 보도지원비서실, 기자회견장 겸 브리핑룸 등이 있는 곳이다. 춘추관장은 출입기자들과 동고동락하며 춘추관 운영을 책임지는 역할을 맡고 있다.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은 물론 남다른 언론 감각과 기자들과의 원만한 관계 등이 요구되는 자리이다.[4] '노이사'란 한명숙이 2012년 총선 당시 당 대표로 공천권을 거머쥔 동안 민주통합당 내에서 유행했던 말이다. ‘친노, 이화여대, 486 운동권’을 일컫는 말로 거기에 속하지 못하면 공천은 물 건너간다는 의미로 통했다. 당시 총선 초반 판세는 야당에 절대적으로 유리했는데, 한명숙은 마치 총선에서 이미 다 이긴 듯 자신의 아바타들을 꿀지역구에 심는 데 분주하다가 결코 질 수 없다던 선거에서 패했다는 평을 들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사실과 다르다는 견해도 있다. 당시 한명숙은 관리형 대표로서, 각 계파의 입장을 조율하는 역할이었지 당내 주도권을 가지고 있지는 못한 상태였다는 것. 무능한 리더가 각 계파의 이권을 조율하다 보니 파열음이 나왔다는 주장이다. 관련 기사 [5] 서영교 의원의 탈당으로 더민주 의석은 121석으로 줄어들었다.[6] 열린우리당의 흡수 합당.[7] 시민통합당 등과의 야권 대통합[8] 새정치연합과의 합당[9] 가장 대표적인 것은 본인의 이름을 삼행시로 지어 '서민의 영원한 다리(다리 교)'로 이름 석 자를 기억하게끔 하는 것은 물론 자신이 '상대적으로 약자의 편을 들고있다.' 는 본인이 주장하는 정책방향을 유권자들에게 각인시키고 있다. 거기에 지역구의 명소나 특이한 이력이 있는 지역에 가면, 거기에 걸맞는 이야기를 준비해 연설의 서두로 시작하는 기민함을 보여준다. 용마폭포공원의 경우, "어린 시절 오래된 탄광일 때의 기억이 있는데~" 로 시작하는 식이며 옹기테마파크에 가면 "어릴 적에 근처를 지나면서도 화약고가 놓여있어서 늘 공포에 떨었습니다!" 는 식이다. 그저 단순히 행사의 축하사, 구민들의 칭찬을 하는 중랑구 내의 다른 지역정치인들과는 확실히 차별화되는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