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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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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정치인, 前 정무직공무원, 前 기자. 제34-36대 전라남도지사(민선 3-5기)를 지냈다.
2. 생애[편집]
1946년, 전라남도 영암군 삼호면에서 태어났다. 서울특별시의 인창고등학교, 성균관대학교 정치외교학과(66학번)를 졸업하였다. 이후 중앙일보에 사회부 기자로 입사하였다.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신문 제작 거부를 주도해 신군부에 의해 강제 해직됐다가 7년만에 복직하여 외신부 기자, 차장이 되었다. 이후 1995년 중앙일보 편집부 부국장까지 역임하였다.
2.1. 정치 활동[편집]
1999년 김대중 정부 때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공보수석비서관 겸 대변인이 되었다. 2001년 국정홍보처장이 되었다. 같은 해 5.18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인정받았다. 2003년 동국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겸임교수에 임명되었다.
2.1.1. 전라남도지사 시절[편집]
2004년 4월 29일, 박태영 전 전남지사의 자살[2] 로 인하여 치러진 전라남도지사 재보궐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출마하여 전 해남군수인 열린우리당 민화식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도 민주당 후보로 전라남도지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도 민주당 후보로 전라남도지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전라남도지사 시절 전라남도청 이전, 2012 여수 엑스포 유치에 성공했다.
전라남도지사 퇴임 2개월 전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가 일어난 거도 박준영 지사 시기었다. 참고로 본인도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에 대한 후술할 논란으로 국민들에게 비난을 받았다.
2.1.2. 퇴임 이후[편집]
강봉균 전 의원과 함께 박근혜 정부의 호남총리 후보로 물망에 오르기도 했다. 이후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하여 신민당을 창당하였고, 2016년 1월에 김민석 전 의원의 원외 민주당과 통합해, 김민석 전 의원과 공동대표를 맡았으나, 안철수 의원이 창당한 국민의당 통합문제로 갈등을 보이자, 통합한지 두 달만인 2016년 3월에 탈당해 국민의당에 합류하였고, 본인고향인 영암군이 포함된 영암군·무안군·신안군 선거구에 출마선언하였다. 자세한 사항은 새정치민주연합 분당 문서 참조.
2.1.2.1. 제20대 국회[편집]
2016년 3월 14일 국민의당에 입당했으며 전남 영암·무안·신안 선거구 후보로 공천 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되었다.[3]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합당 당시 처음에는 안철수계로서 통합파로 분류되었으나 호남 민심이 양당의 합당에 부정적이자 국민의당을 탈당해 민주평화당에 합류했다.
그러나 민주평화당 창당 이틀만인 2018년 2월 8일 대법원에서 선거법 위반으로 징역 2년 6개월의 형이 확정되면서 의원직을 상실했다. 기사 이후 수감되었다가 2020년 3월 30일 가석방되어 출소했다.
3. 논란[편집]
- 전라남도지사 퇴임 2개월 전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가 일어났을 때 출동하는 전라남도 소속 소방헬기가 전남도청을 들러 도지사와 전남소방본부장, 행정부지사를 태우고 간 것이 밝혀져 논란이 되었다.#
- 서남수 전 교육부장관이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당시 황제라면 논란이 있었는데, 수차례 거부했음에도 불구하고 박준영 전 전남지사가 이를 먼저 직접적으로 제안하는 등 주도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큰 비난을 받았다.#. 물론 언론들이 이 사안을 크게 키운것도 있지만 당시 분위기를 보면 사려깊지 못한 행동임에는 틀림없다.
- 본인의 고향에 무리하게 진행했다 실패한 지자체 사업의 대표적인 케이스로 잘 알려진 F1 코리아 그랑프리와 경기를 위해 건설된 영암서킷이 수천억대의 빚을 남기고 결국 실패하게 되자 시민단체 등에서 2011년 현직에 있을 때 한 번, 퇴임 후인 2015년에 다시 한 번, 모두 두 번이나 고발당했다. 전남지사 시절 추진된 사업이며, 본인 스스로가 엄청나게 홍보하고 열을 올리며 5조원 이상의 경제효과를 가져온다고 수없이 말했었다. 물론 고발에 대해서는 무혐의 처리되었다. # 무리한 투자는 맞지만, 투자가 실패했다고 죄를 물을 수는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현재의 기준에서 보자면 재판까지는 갔을 가능성이 높다. 무혐의 처분을 받았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다시 들춰질 수는 있으나 가능성이 높지는 않다.
4. 여담[편집]
- 목포중학교[4] 재학 당시 부친의 병환으로 가세가 기울면서 고교 진학을 1년 미루고 농사일을 했다. 좌절할 법도 했으나 학업에 대한 꿈을 놓지 않았고 상경하여 서울 인창고 야간부로 진학했다.
-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신문제작을 거부하다 강제해직을 당한 적이 있다.
5. 소속 정당[편집]
6. 선거 이력[편집]
7. 둘러보기[편집]
[1] 읍으로 승격된 건 2003년이다. #[2] 박태영이 건강보험공단 이사장 재직 시절(2000년 전후)에 납품 비리를 저질렀다는 의혹으로 2004년 4월 27일과 28일, 검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았고, 4월 29일, 세번째로 조사를 받기 위해 검찰에 출석하려다가 기사에게 차를 세우라고 하고 한강에 투신했다.[3] 무안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서삼석 후보에게 패했지만(서삼석 후보는 전 무안군수 출신), 영암, 신안에서 승리하여 당선의 요인이 되었다.[4] 목포고등학교와 동계학교로 중학교 입시 폐지와 함께 폐교됐다.[5] 새천년민주당에 흡수 합당.[6] 중도개혁통합신당과 신설 합당.[7] 대통합민주신당과 신설 합당.[8] 시민통합당과 신설 합당.[9] 새정치민주연합에 흡수 합당.[10] 당내 노선 차이로 인한 탈당.[11] 민주당과 통합.[12] 당내 노선 차이로 인한 탈당.[13] 당내 노선 차이로 인한 탈당.[14] 바른미래당, 대안신당과 신설 합당.[15] 전임 박태영 사망.[16] 2018.2.5. 국민의당 탈당.
2018.2.6. 민주평화당 창당.
2018.2.8. 당선 무효.
2018.2.6. 민주평화당 창당.
2018.2.8. 당선 무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