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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하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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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일본의 애니메이션 감독이자 애니메이터, 영화 감독.
애니메이션 영화를 넘어 일본 영화계에서 상업적으로 가장 흥행에 성공한 감독으로 그가 만든 애니메이션 영화들은 자국 일본에서 엄청난 흥행을 기록하였으며 세계적으로도 그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2. 생애[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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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성향[편집]
3.1. 작품 스타일[편집]
오오츠카 야스오의 작화 기술과 타카하타 이사오의 연출 기술을 모두 흡수해서 탄생한 기획, 각본, 디자인, 연출, 작화를 혼자 다 하는 괴물 애니메이션 감독이다.
기본적으로 애니메이션이라는 분야는 집단 창작이지만, 미야자키 하야오는 특히나 자신이 감독한 작품에 대한 영향력이 굉장히 큰 편이다. 그 자신이 만화가나 일러스트레이터를 했던 걸 봐도 알겠지만 그림 실력이 굉장히 뛰어난 편인데, 특히 콘티를 정확하고 세밀하게 그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콘티는 각본의 상황을 표현하기 위한 구도나 연출 방법을 표현하는 데 목적이 있기에, 나중에 대충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만 그리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 사람은 그런 거 없고 콘티랍시고 원화를 그려 놓는다. 아예 미야자키의 콘티는 만화책으로 내도 위화감이 없을 지경이다.[3] 심지어 기획도 알아서 하고, 시나리오도 자신이 체크하고 레이아웃까지 하면서 콘티도 자신이 한다. 심지어 애니메이터들이 만든 원화가 실제로 사용되기 전에 그의 체크를 거치므로 작화감독까지 겸하고 있다. 일반적인 애니메이션은 이 과정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다 따로있다. 라이벌이라는 토미노마저도 기획, 연출, 콘티만을 담당하지 작화나 각본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게 보통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 참여한 애니메이터들은 창작 작업보다는 정말 물리적으로 손 두 개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동화, 원화와 배경의 디테일 추가, 채색 만을 하는 단순노동만을 담당하게 된다. 이 정도로 하는 감독은 미야자키 하야오 외에는 오토모 카츠히로, 곤 사토시, 야스히코 요시카즈 등 극히 일부 밖에 없다.
이런 독특한 작업 스타일 때문에 더더욱 그가 연출한 작품은 그의 개성이 듬뿍 담겨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가 만든 것이기에 미야자키의 작품이라는 것을 한 눈에 보자마자 알아 볼 수 있을 정도다. 효율을 따지자면야 비효율적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지만, 그의 작품들에 독특하고 개성적인 그의 세계관이 그토록 진하게 표현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바로 이런 장인정신 수준의 작업 스타일인 것이다. 쿠츠나 켄이치는 이에 대해서 "미야자키의 작품은 미야자키가 꾸는 꿈을 들여다 보는 것 같다." 라고 하기도 했다.
사실 이러한 작업 스타일 덕이 체력에 한계가 있는 노년으로 갈수록 제작 기한이 늘어나고 있고 본인도 힘들어서 은퇴하겠다고 징징대지만 그럼에도 나이치고는 저런 작업을 소화해내는 엄청난 체력까지 가지고 있다. 아마도 일본 애니메이션 역사상 이런 짓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앞으로도 찾기 힘들 것이다.
현대카드 컬쳐프로젝트 일환으로 유치된 스튜디오 지브리 레이아웃전에선 미야자키 감독의 진짜 레이아웃을 가져다 전시했는데, 작화지 한 장에 다 담을 수 없는 거대한 사물들은 작화지 3-4장을 테잎으로 고정하여 통으로 사용하는 거대한 스케일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보다 더 거대한 레이아웃 작품도 일부 있다. 일본에서 콘티집을 시중에 발매한 최초의 애니메이션 감독이 미야자키라고 하니 말 다한 듯. 이렇게 자세하게 서술하는 타입인데도 작품을 제작할 때 "대충 적어놔서 미안합니다"라고 할때도 있다고 한다.
연출 성향은 레이아웃은 리얼하게 잡고 등장인물의 행동은 리얼하게 하지 않는다. 미야자키는 컷인과 같은 화면분할 연출은 거의 하지 않으며 눈으로 직접 정경과 인물을 바라보는 것처럼 화면을 구성한다. 이는 그의 제자들 작품에서도 공통되게 나타난다. 반면 캐릭터의 행동은 현실을 잘 관찰하고 만들어 리얼한 면도 있으나 과장 또한 들어가 반드시 리얼하지는 않다. [4]
그의 초창기 작품들을 보면 미야자키가 그린 원화는 미국 애니메이션 스타일의 만화적인 과장을 과감하게 사용하는 표현이 눈에 띈다. 물론 그렇다고 황당무계하거나 비현실적인 표현은 거의 없고[5] , 극장용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위해 설립된 토에이 동화 출신답게 동화(動画)매수를 풍부하게 사용한 캐릭터의 움직임을 중시하는 작풍을 보여준다.
일단 그가 감독한 작품에서 보여지는 특유의 동화풍 그림체가 눈에 띄는데, 감정표현에서 입이 굉장히 커지거나 눈동자가 작아지는 다채로운 변화가 특징이다. 특히 후반으로 갈 수록 어린 아이들이 주연이 되는 작품이 많다보니 더 부각된다.
- 특유의 꿀렁꿀렁거리는 실감나는 액체 질감표현이 인상적이다. 예를 들면 모노노케 히메의 사슴신 데다라봇치 버전, 센과 치히로의 오물신 이라든가 가오나시 광폭화라든가. 이런 몽글거리는 표현은 군중신에서도 볼 수 있다. 대규모의 인원이 하나의 점에 집중되어 부딪힐 때, 각각의 인물의 묘사를 게을리하지 않으면서도 전체적으로 조수가 부딪히듯이 표현한다.
- 머리 부풀리기
- 이런 몽글거리는 표현은 무생물에도 표현되어 파괴되는 표현을 보면 찢어지거나 갈라진다는 느낌보다는 뭉그러진다는 인상을 준다.
다만 의외로 업계에서는 그는 애니메이터로선 충분히 A급이었지만 전설급 까지는 아니라는 평을 많이 받는다. 캐릭터는 예쁘게 그리고 움직임도 풍부하지만 못 그리는 구도나 표현이 있고, 움직임을 부드럽게 연결하는 애니메이팅 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미야자키의 스승인 오오츠카 야스오는 "작화만 보면 사다모토 요시유키가 더 천재였을지도 모른다." 라고 했다. 제자 안노 히데아키는 "미야자키 씨는 못 그리는 구도나 작화의 연출이 머리에서 떠오르면 "이건 내가 그리기 귀찮은데.", "이건 다른 애니메이터가 못 그리는데." 하고 주저하면서 빼버리는 습관이 있다.[6] " 라고 평했다. 코가와 토모노리는 "내가 미야자키보다 잘 그린다. 나보다 잘 그리는 건 오오츠카 야스오와 스다 마사미 정도다." 라고 했다. 키타쿠보 히로유키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팅 능력은 모리 야스지, 오오츠카 야스오, 야스히코 요시카즈 같은 전설급 애니메이터와 비교하면 낮은 수준이다. 다만 작화의 연기력은 풍부했다." 라고 평했다. 스즈키 토시오는 "혼다 타케시가 미야자키 하야오보다 잘 그린다고 생각한다. 미야자키가 자기도 못 그리는 걸 시키는데도 다 그려냈다." 라고 하기도 했다. 미야자키 본인도 "콘도 요시후미는 내가 못 그리는 걸 그릴 수가 있다." 라면서 지브리의 몇몇 애니메이터[7] 가 자신보다 실력이 뛰어나다 하기도 했다. #
단지 이건 애니메이팅이라는 영역만 이야기한 것이며 알기 쉽고 아름다운 레이아웃을 짜는 능력과 종합적인 연출력은 일본 역사에서 만랩을 찍었다고 평가받으며 이것은 그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가 연출을 하면 작화를 미야자키보다 더 잘 그리는 슈퍼 애니메이터가 대신 그려주면서 보완되기도 한다. 미야자키의 진짜 재능은 원래부터 연출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실력과 별개로 젊을 때는 그리는 속도가 복사기급 이라고 불렸으며 그리는 속도로는 매우 유명했다.
성장 환경 덕에 상당한 수준의 비행기 덕후로, 그의 상당수의 작품들에는 비행기, 혹은 비행이라는 요소가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그의 그러한 성향을 가장 확실하게 보여준 작품이 바로 붉은 돼지라고 할 수 있는데, 실제로 작중 등장하는 비행기를 전부 그가 디자인했다. 심지어는 비행기가 존재하지 않는 세계관이라면 비행기 비스무리한 것이라도 넣어서 어떻게든 '띄우는' 것을 보면 꼭 비행기가 아니더라도 그냥 날아다니면 되는 모양이다(…). 러닝 타임 내내 신나게 날아다니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말할 것도 없고, 비행기하고는 정말 하등 상관이 없는 이웃집 토토로에서 조차 팽이를 타고 날아다닌다.
마찬가지로 성장 환경 덕인지 모노노케 히메 같은 옛이야기풍 내지는 포뇨같은 정말 동화같은 배경이 아니면 작품에 세계대전 당시의 전쟁 무장이나 차량을 모델로 한 병기들이 자주 보여진다.
이탈리아 관련된 것들이 상당히 자주 나온다. 천공의 성 라퓨타에서의 장교인 모우로와 군인들은 2차대전 당시 이탈리아군과 많이 유사하며, 붉은 돼지는 아예 배경이 이탈리아다. FIAT제 트럭과 군대, 공간적 배경 등 아무리 봐도 이탈리아.[8] On Your Mark의 결말 중 탈출에 성공해 지상으로 나가는 결말에서 타는 노란색 컨버터블도 알파 로메오 차량이다. 마지막으로 귀를 기울이면(애니메이션)에서 주인공 세이지는 바이올린 장인이 되기 위해 이탈리아로 향한다. 애초에 스튜디오 지브리의 이름부터가 이탈리아어인 Ghibli로 모래폭풍이라는 뜻이다[9] . 이외에도 어딘가 모르게 이탈리아 냄새 나는 장면들이 자주 나온다.
주인공을 비롯한 여성 캐릭터들을 강인하고 지혜롭게 그리는 경우가 많다. 그의 대부분의 작품에서 주요 여성 등장인물들은 디즈니의 고전 애니메이션 등 여러 대중매체에서 등장하는 고정적 성 역할의 전형적 여성 등장인물과 상반되는 성격을 가진다[10] . 이러한 작품 특성에 대하여 미야자키 하야오가 말한 바가 있다.
나의 많은 작품들에는 강인한 여성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용감하고 의존적이지 않으며 자신의 신념을 위해 싸우는 것을 망설이지 않는다. 그들에게 있어서 친구나 조력자가 필요할 수는 있으나 구원자는 절대로 필요로 하지 않는다. 모든 여성은 어느 남성과 같이 영웅이 될 역량이 있다. (Many of my movies have strong female leads - brave, self-sufficient girls that don't think twice about fighting for what they believe in with all their heart. They'll need a friend, or a supporter, but never a saviour. Any woman is just as capable of being a hero as any man.)
소피를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주인공으로 세운 이유는 '남성으로부터 정복당해온 여성과 문명으로부터 고통 받는 자연이 닮았다고 믿기 때문'이며 '남자 주인공으로는 그냥 악과 맞서 싸우는 관습적인 이야기밖에 만들 수 없다.' 라고 말한 바 있다. 또 주인공의 조력자나 조언자 포지션에 있는 할머니 캐릭터 역시 자주 등장한다. 예를 들면 천공의 성 라퓨타의 도라와 시타의 친할머니,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제니바, 이웃집 토토로에 나오는 켄타의 할머니, 마녀 배달부 키키의 빵 만드는 할머니, 모노노케 히메의 무녀 등. 그리고 가부장적인 태도의 남성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도 에코 페미니즘에 근거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작품 내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실생활에서도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존재로 대우하며 매우 신사적으로 대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아이가 있는 여성 애니메이터들이 일에 집중할 수 있게 스튜디오 지브리에 탁아소를 두기로 한 것도 유명한 일화.
1957년에 만든 소련 애니메이션 눈의 여왕을 보고 주연인 게르다보단 조연인 이름없는 산적 소녀에 매료되어 그의 여자 캐릭터에 크나큰 영향을 끼쳤다. 여성이지만 칼을 뽑고 맹활약하며 겁이 없는 이 소녀는 종전 애니메이션에서 나약하던 여성 이미지와 상반되어서 잊을 수가 없다고 직접 밝힌 바 있다. 애니메이션은 움직임을 넣으려면 단순하게 그릴 수 밖에 없는데 잘 그린 그림을 추구하던 신인 시절의 미야자키는 일을 그만둘까도 생각했다. 그러나 눈의 여왕을 보고 그림이 단순해도 진심으로 그리면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걸 알게되어 애니메이터를 계속 했다고 한다. 눈을 윤곽선으로 닿지 않고 선을 열어두고 색으로만 표현하면 상냥한 눈처럼 보인다는 것도 이 애니를 통해 배웠다고 한다. 이건 미야자키가 여성 캐릭터의 눈을 그릴 때 쓰는 기본 작법이 되었다. #
순수하면서도 주체적인 여자아이를 주인공으로 많이 내세우기도 하는데, 판의 미로에서 비극적이고 동화적인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는 멕시코인 영화 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는 2017년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향을 받았음을 고백했다. 기예르모 델 토로는 젊은 시절에 이웃집 토토로를 보고 눈물을 흘렸다며 미야자키는 어린아이의 순수함을 너무나 놀랍고 아름답게 포착했다고 말했다. # 그러면서 미야자키는 순수함에서 나오는 설명할 수 없는 아름다움의 힘을 표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본 인터뷰에서도 미야자키를 따라한 게 많다고 여러 번 말했을 정도이다. #
그럼에도 레디컬 페미니스트들에게는 성 상품화를 빌미로 비난을 받는다. 토미노 요시유키는 "미야자키는 무의미한 장면에 간접적인 성묘사를 넣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라고 비판한 바가 있다. [11] 작품에 여자 아이 팬티가 많이 나오는데 이웃집 토토로나 마녀 배달부 키키에도 이러한 장면이 있다. 미야자키는 귀를 기울이면을 만들 때 콘도 요시후미가 여자애가 팬티를 가리면서 활동하는 연출을 하자 "진짜 순수한 여자 애는 남에게 팬티가 보이는 건 신경쓰지 않고 움직인다. 팬티를 신경쓰는 건 남자를 아는 여자가 하는 행위이다. 자의식 과잉이다." 라며 소녀를 그릴 때 이런 연출을 하지 말라고 주장했다. #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DVD 코멘터리는 미야자키의 제자인 안노 히데아키와 카타야마 카즈요시가 했는데 미야자키를 두고 '좀 엉큼한 분이시다. 야한 걸 노리고 그린 장면도 있다.' 라고 표현하며 공감하기도 했다. 다만 안노와 카타야마는 "미야자키 씨는 소녀 캐릭터를 자기 딸이라고 생각하고 만든다. 일정한 선은 넘지 않는다."라고 하기도 했다.
사람이 달리는 장면을 그릴 때 진짜 빠르게 그리는 경향이 있다. 동작에서 중력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오래 달려도 페이스가 느려지지 않는다. 미래소년 코난 같은 작품이야 만화적 과장이라고 치더라도, 바람이 분다 같은 작품에서조차 100미터 10초 끊을 기세로 달린다. 모노노케 히메에서 아시타카가 평지도 아니고 험난한 산을 들개와 맞먹는 속도로 달려내려가는 장면을 보면 이건 아주 그냥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달리기다. 아시타카는 스튜디오 지브리 세계관의 주인공들 중에서도 무술 만렙을 찍은 초인 중 하나니 이상할 건 없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사실 직후 들개가 느리다고 아시타카더러 올라타라고 일갈한 걸 보면, 아마 들개가 아시타카 속도에 맞춰주고 있었던 걸로 보인다. 적은 프레임으로 빠른 속도감을 보여줄 수 있고 해당 테이크를 빠르게 넘길 수 있으니 애용하는 노하우인 듯.
여러 작품에 식사 장면이 자주 들어가며 음식을 매우 맛있게 묘사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나온 오기노 부부의 무전취식 장면과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 하울이 아침식사를 조리하는 장면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들에는 그의 젊은 시절의 세계명작동화의 스타일이 녹아들어 있고 악한 캐릭터라고 해도 미워할 수 없는 매력적인 악당을 그린다는 특징이 있다. 물론 구제불능의 악인이 등장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칼리오스트로의 성'에서 라살 칼리오스트로, 코난의 레프카, 라퓨타의 무스카가 그러하다. 다만 이 셋은 사실상 동일인물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캐릭터성이 일치한다. 미야자키의 악역에 대한 관점이 잘 드러나는 부분이다.
캐릭터는 시대와 함께하는 것이라는 지론이 있다. 그래서 캐릭터가 인기가 있다 해서 사자에상 시공에서 무한 반복으로 사골처럼 우려먹지 않는다. 이웃집 토토로는 그 뒤에 어떻게 되었냐고 물으면 메이와 사츠키는 결혼해서 이제는 할머니가 되었다고 대답한다. 등장하는 캐릭터는 작품을 만들고 있는 당시의 시대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대상을 반영하되, 그렇다고 시대의 유행에 영합하지 않는다.
위대한 거장으로 불리는 감독이며 스티븐 스필버그 같은 헐리웃 감독들의 존경도 받고 있다. 아카데미에서 이들의 추천으로 공로상을 받기도 했었다.
그런 그도 못 하는 게 하나 있는데 바로 음향 분야. 우선 음악은 잘 모르기 때문에 작중 배경음악은 아예 음악 분야의 거장 중 한 명인 히사이시 조에게 일임하였다. 성우 캐스팅도 직접 지명한 몇몇 캐스팅을 제외하면 프로듀서인 스즈키 토시오에게 일임하며 별로 터치하는 경우가 없다고 한다. 미야자키가 직접 지명한 캐스팅은 시마모토 스미[13] 를 제외하면 그다지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다. 이런 반응의 대표작(?)이었던, 바람이 분다에서의 미야자키 고로 역에 안노 히데아키를 꽂아넣은 것도 미야자키 감독의 외고집이었다.
미국처럼 미국 애니메이션을 전담하는 성우나 영화배우를 기용하기로 유명한 감독이기도 하다. 보통 애니메이션 영화를 영화로써 인지하며 배우를 주로 기용하는 서양풍조에 합류한 것. 미야자키 하야오 본인은 "성우가 내는 '애니메이션화된 목소리'에 반감이 있다"고도 여러 차레 밝힌 바 있으며, 실제로 1990년대 초반작 이후로 모노노케 히메부터는 일본 애니메이션 발성 특유의 맑고 깨끗한 톤의 성우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다.
3.1.1. 자주 다루는 주제와 요소[편집]
그의 작품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테마 중 하나는 바로 평화주의이다. 한 마디로 전쟁은 등지고 환경을 생각하자는 고전적이고 뻔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이 고리타분하거나 뻔하다는 평가를 받지 않는 이유는 그가 가진 사상이 꽤 입체적이며, 단순한 주제도 재미있고 깊이있게 풀어내는 대단한 작품성과 더불어 이러한 사상이 미야자키 하야오가 가진 일본인이라는 정체성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많은 수의 작품에서 전쟁에 대한 은유가 드러나는데, 그가 그리는 전쟁은 장엄하거나 비장한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백해무익한 파괴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전쟁의 원인은 탐욕과 광기에 있으며 그 전쟁으로 인해 파괴되는 수 많은 생명과 터전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이는 일본 제국주의 치하에서 자라난 그가 전쟁에 대해 가지는 시선에서 비롯된 것이다. 말 그대로 국민 전체를 광기 속으로 밀어 넣었던 제국주의를 주입받고 자랐지만 결국 일본은 전쟁에서 패배하였고 남은 것은 가해자라는 역사적 사실뿐이었다. 그리고 중장년이 된 미야자키가 본 것은 그 허무함을 감추기 위해 더더욱 광기에 빠져드는 모습이었다. 그렇기에 그의 작품 속의 전쟁에 대의나 명분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고, 옳은 전쟁이란 있을 수 없다. 빗발치는 포화 속에 삶의 터전이 무너지는 모습만이 있을 뿐이다. 그의 반전사상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작품이 천공의 성 라퓨타나 하울의 움직이는 성, 그리고 붉은 돼지다. 이 작품들 속에서 전쟁은 말 그대로 아무런 가치도 의미도 없이 생명을 파괴하는 쓰레기같은 행위로 그려진다. 비판의 정도가 아니라 아예 일방적으로 비난하고 있다.
그의 전쟁 혐오가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작품인 붉은 돼지에서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자신을 투영한 주인공 포르코의 입을 빌어, 있는 힘껏 전쟁을 비웃고 거부한다. 붉은 돼지를 통해 미야자키 하야오는 지성을 마비시키고 반목과 전쟁의 핑계가 되는 국가와 민족 역시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 수 있다. 그의 작품에서 취급이 좋은 군인 캐릭터는 손에 꼽히는데, 모두 군인의 본분인 국가와 민족은 안중에도 없거나, 그를 초월하는 인간성을 중요시하는 인물들이다.
또다른 주요 주제는 바로 생태주의이다. 파괴와 대비되는 생명의 이미지로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자연, 그리고 그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삶이다.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자연은 말 그대로 날 것 그대로의, 냉혹하고도 풍요로운 자연이다. 마치 정교한 톱니바퀴처럼 흘러가며, 인간 또한 그 속의 나사 하나에 불과하다는 은유가 자주 등장한다. 결국 인간은 결코 자연을 뛰어넘을 수 없으며, 인간이 행하는 무자비한 파괴행위는 마치 그 자연을 영원히 끝낼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나면 결국 더 큰 자연의 흐름 속에 파묻히게 된다. 자연의 질서를 무시하고 존중하지 않는 인간은 결국 그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잃을 뿐이다. 미야자키의 생태주의적 메시지가 가장 잘 담긴 작품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와 원령공주다. 더욱이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만화판은 영화판의 이야기를 다듬고 확장해, 평면적인 인간과 자연의 대립이 아닌, 생명이란 무엇인가와 생명 그 자체의 추구를 다루기도 한다.
그의 생태주의적 메시지는 무작정 자연에 파묻혀야 한다는 식의 극단주의로 흐르지 않는다.
생명을 희망에 찬 멋진 것으로 묘사하면서도, 생명은 무조건 찬양해 마땅한 완전무결의 빛이 아니라 아름다움과 함께 잔혹하고 어두운 이면도 가지고 있는 입체적인 것이고, 그런 이면을 제거한다면 그것은 생명이라고 부를 수 없다는 의식도 담아냈다. 이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만화판의 서사에서 핵심적으로 묘사된다.
3.2. 픽사와의 관계[편집]
미야자키 하야오는 픽사의 수장 존 라세터의 막대한 존경을 받고 있다. 존 라세터는 미야자키야말로 월트 디즈니와 함께 애니메이션의 역사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사람이라며 찬사했다. 본인이 애니메이터였던 시절, 존 라세터는 당시 자신이 소속되어있던 디즈니를 비롯한 할리우드의 모든 회사들이 '애니메이션은 아이들용이다'는 고정관념에 빠진 것을 보고 크게 상심했다. 그러던 어느날, 미야자키의 첫 영화인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을 보고 인생이 바뀌었다고 했다. 이 작품을 본 라세터는 이전에 월트 디즈니가 보여주었던 것처럼 애니메이션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심지어 청혼하기 전에, 아내가 자신의 소울메이트가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루팡을 같이 봤다고 했을 정도로 라세터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라세터는 미야자키의 모든 영화는 하나도 빠짐 없이 명작이고 한 사람이 이걸 다 상상하고 스토리 보드를 손수 그렸다는 게 믿겨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야자키는 라세터와 개인적인 친분을 가지게 되었고, 때문에 에머리빌에 있는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를 직접 방문하기도 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나 《하울의 움직이는 성》 등의 작품의 영어 더빙 감독도 픽사의 수장 존 라세터와 그의 동료와 제자 감독들이 맡기도 했다. 참고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깡총거리며 뛰는 전등이 나온 적이 있었는데 픽사의 룩소 주니어의 오마주라고 한다. 한편 그에 대한 보답인지 2010년에 개봉한 토이 스토리 3에서는 토토로 인형이 나오기도 했다.
3.3. 한국과의 관계[편집]
스튜디오 붐붐을 진행한 적도 있는 송락현이 '송락현의 애니스쿨'에 기재한 "미야자키 하야오는 인종차별주의자고 한국을 싫어한다"는 이야기는 1990년대 중반부터 하이텔 애니동을 비롯한 애니메이션 동호회에 계속 돌면서 루머가 정설처럼 자리잡았다. 이런 내용이 온라인을 넘어서 퍼져가는 데는 밀리터리 소설인 데프콘에서의 묘사도 한몫을 했다. 이는 전혀 근거가 없는 이야기이며, 당시 일본에 대한 정보 부족[14] 으로 만들어진 헛소문이다.
미야자키가 한국을 싫어한다는 말은 예전에 한국 쪽에 하청을 줬다가 그 완성도에 실망했던 일에 대한 표현이 와전되면서 생긴 것으로, 미야자키 하야오 본인이 혐한인 것은 아니다. 애초에 이 사람은 상술되었든 엄청난 수준의 장인정신과 완벽주의을 가진 양반이라 평소에도 어마어마하게 깐깐하고 냉정한 것으로 유명해 맘에 드는 작화, 연기가 나올 때까지 스탭, 성우를 들들 볶는 것은 예삿일도 아니며 자기 아들의 작품인 게드전기을 보고도 성에 안 차 거의 대놓고 욕을 하는 사람이다. 또한 한국의 모 기자는 미야자키 하야오를 인터뷰하곤 모든 답변이 단답형이라 성의가 없다며 그가 한국을 우습게 보는 것 같다고 했는데 # 미야자키는 일본에서도 인터뷰를 그렇게 한다. 특별히 한국에만 성의 없이 대한 것이 아니라, 성격 자체가 까칠하고 불친절한 사람이다.[15]
그리고 한국 쪽에 하청 주는 걸 꺼리는 것도 이젠 예전 이야기.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제작하던 시기에 스튜디오 지브리는 촉박한 스케줄 속에 어쩔 수 없이 한국의 DR무비 쪽에 하청을 넘겼는데, 미야자키는 DR에서 만든 결과물을 보고 굉장히 만족했다고 한다.[16] 얼마나 만족했는지 제작에 참여한 직원들만을 초청해 한국에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시사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이는 DR무비 관계자들 사이에 전설처럼 전해내려오는 이야기다. 이후 DR무비는 고양이의 보은 등 지브리의 애니메이션에 꾸준히 참여하게 된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10억 원 받고 하청했다는 소문이 있는데, 보통 이런 류의 이야기는 내부 기밀이므로 흘려듣는게 좋다.[17]
이 감동(?)이 컸는지 어쨌는지 벼랑 위의 포뇨에서 직접 한글 로고를 그려주기도 했다. 이는 전 세계에서 한국에서만 유일하게 한 것이라고.
바람이 분다가 한국에서 우익논란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자 "반일 감정은 혐한을 일으키는 원인이다. 나는 그렇게 만들지 않았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반일감정 때문에 전쟁을 비판한 자신의 작품에 색안경을 끼고 보고 있고, 니들이 그렇게 매사를 보니까 일본에서도 한국을 싫어하는 거다라는 발언. 상당히 불쾌해하는 뉘앙스가 강하다. 바람이 분다는 반전을 테마로 한 작품임을 생각하면 이렇게 불쾌해 할 만도 하다. 실제로 바람이 분다는 극우주의자들이 좋아할 만한 배경 소재일지언정 절대 그들의 사상과 같거나 그에 동조하는 주제 의식을 담은 작품이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로 일본 제국주의가 한 소년의 꿈을 서서히 망가뜨려가는 내용은 극우주의자들이 싫어할 만한 이야기다.
3.4. 오타쿠에 대한 비판[편집]
오타쿠와 모에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나타내고 있으며, 인터뷰를 통해 오타쿠에 대한 생각을 자주 엿볼 수 있다. 이 때문인지 몰라도 팬들은 세간 사람들에게 오타쿠 취급을 받지 않고 있다. 이 의견에 동의하는 사람들과 실망하거나 적대적인 시각을 보이는 사람들이 서로 대립을 벌인 적도 있다. 찬사를 받는 명작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왔지만, 예술가로서의 고집이 굉장히 강한 사람 중 하나이기 때문에 이런 발언들은 각자 생각해 볼 문제일 것이다.
오타쿠나 모에 문화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다른 발언을 첨가하자면,
"이런 건 말야, 실제로 어린애를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야. 그런 관찰 못하면 못 그리지.[19]
이걸 안 하고 아무것도 못 보고, 자기 자아밖에는 관심이 없고 그런 일상 생활만 보내고 있고. 인간 관찰을 싫어하는 인간이 하고 있는 거야. 그러니까 오타쿠 소굴이 되는 거지."
"난 정열도 인생 경험도 없는 오타쿠를 고용할 생각은 없다. 불을 표현하려면 불을 접하지 않으면 안 된다. 누군가의 작품을 따라 만들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앞으로의 애니메이션을 맡길 수는 없다."
다시 말해, 미야자키의 예술관 자체가 "현실을 직접 경험하고 그것을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현실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남이 이미 만들어 놓은 컨텐츠에 열광하여 그것의 재해석에 머무는 사람을 싫어하는 것이다. 미야자키가 생각하는 '만들어 낸다'는 행위 자체가 세상을 보고 느끼고 그것을 자신이 표현하는 것인데, 누군가가 만든 것을 보고 그것을 따라 만든다면 진짜 세상이 아니라 누군가가 이미 해석한 세상을 모방하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분명한 건 타인이 오덕을 자처하는 언동을 싫어한다는 점으로 이는 지브리 작품에 참여한 적이 있는 안노와의 에피소드에서도 알려져 있고, 아소 다로 전 총리의 오덕 행적에 대한 질문에 비판적 태도를 견지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다만 본인은 상당한 실력의 모델러이자 중증 밀덕후이기도 하다. 재미있는 것은 만드는 프라모델이나 모형지 "모델 그래픽스"를 통한 단편 만화들의 주인공들은 창작물을 제외하고는 전부 추축국 병기들이다. 이 때문에 이 양반도 마츠모토 레이지처럼 그 시절에 대한 어렴풋한 동경을 갖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는 전쟁이나 혹은 무기 등에 대한 이상이 아니라 과거의 도시화/산업화가 이뤄지지 않았던 시절에 대한 동경에 가깝다. 출생 대목을 다시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어릴 때부터 비행기나 군인들을 많이 보면서 자란 탓에 무기나 군인 복장 등을 그리게 되면 아무래도 어릴 때부터 보아 익숙한 양식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유년의 향수처럼 드러나게 되는듯하다.
참고로, 위 미야자키 하야오의 발언은 그만의 발언이 아니다. 신만이 아는 세계의 작가인 와카키 타미키도 이러한 생활을 했었고, 후에 당시 그때의 삶을 후회한다고 할 정도. 즉, 단순히 컨텐츠를 소비하는 것을 넘어서서 직접 창조는 못하더라도, 모방이나 자신의 삶에 반영을 하려는 시도를 안하는 것에 대한 비판 정도로 인식을 하면 될 것이다. 쉽게 말하면, 모두가 록음악이나 힙합음악을 듣는다고 밴드나 래퍼, DJ가 될 필요는 없지만, 무작정 듣지 말고 직접 리뷰를 하거나, 악기를 다루는 시도를 하는 것은 해당 컨텐츠를 소비할 때 자신을 녹여낼 수 있는 것 정도는 해야 되지 않냐는 것이다. 그냥 취미로 삼는 사람이 그래야 할 의무는 전혀 없지만, 그 취미를 직업으로 삼기 위해서는 관련된 것을 배워가야 한다는 의미이다.
다만 경험을 중시하는 건 미야자키 하야오의 인생관일 뿐이다. 반례로서 후지코 F. 후지오는 경험을 하지 않아도 공부와 취재로 이를 보완할 수 있다고 주장했고 실제로 본인이 그런 경험이 없음에도 작품으로 이를 증명했으며[20] 타카하시 루미코는 경험하지 않은 것을 상상력으로 커버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며 "경험하지 않으면 좋은 걸 못 그려내는 사람은 그냥 재능이 없는 것이다." 라고 하기도 했다. 사토 준이치처럼 애니메이션과 만화의 영향으로 연출을 하는데도 좋은 평가를 받는 감독도 있으며 아메미야 아키라는 "내가 경험하지 않은 걸 만들어야 좋은 게 나온다." 라고 하기도 했다. 미야자키의 제자 안노 히데아키는 미야자키의 가르침대로 인간 관찰과 자기 경험[21] 을 연출에 도입하기도 했지만 그에 못지 않게 다른 상업 작품 연출도 다방면으로 차용한다. 창작자와 창작법은 여러 유형이 있으며 경험 없이 만드는 창작법도 엄연히 존재한다.
거기다 미야자키 하야오도 현실 관찰로 애니를 만들긴 했지만 애니메이션이나 만화를 아예 모방 안 한 것이 아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또한 많은 애니메이션과 만화를 즐겨보는 사람이었고 슈퍼맨, 눈의 여왕, 장 지로의 만화 'Arzach', 왕과 새,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만화[22][23] 에서 연출과 디자인을 차용한 바 있다. 따라서 위 발언은 무슨 창작물을 절대 보아서는 안된다는 그런 것이 아니라, 창작의 방향성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미야자키의 철학이므로 너무 무겁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4. 평가[편집]
애니메이션이나 영화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미야자키 하야오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싫어도 알 수 밖에 없으며 그의 활동기에 살았던 사람이라면 적어도 한 번 쯤은 그의 이름을 들어 보았을 것이다. 특히 팬덤 형성에 초점을 맞춘 시리즈물이 아니라 완결성을 갖춘 단독 영화를 주로 만들어 왔기에 대중적으로 가장 이름이 널리 알려진 감독 중 한 명이다. 일본 애니메이션계의 역사 뿐만 아니라 전 세계 만화계의 역사를 논할 때도 미야자키의 이름은 절대로 빠지지 않는다.
남녀노소 모두가 감동하고 공감하고 즐길 수 있는 작품을 만드는 데에 도가 텄는데, 가볍고 마음 따듯한 이야기도,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 격정적인 이야기도 그의 전매특허인 동화같은 그림체로 자유자재로 그려낸다. 한국의 일반 대중에게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모노노케 히메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만화판을 보면, 삭막하고 잔인한 장면도 얼마든지 그려 보일 수 있다.
그림 작화와 디자인, 서사, 연출을 고루 할 줄 아는 것을 넘어 대단히 잘하는 실력, 사람의 감정과 동작, 마음에 관한 이해도가 특유의 철저한 완벽주의 성향과 맞물려, 그의 영화들은 단순히 재미있거나 흥미로울 뿐 아니라 영상물로서의 완성도가 빼어나, 가장 실력 발휘가 덜 된 작품조차도 수작 이상으로 평가받고, 개중 돋보이는 걸작들은 가히 완벽에 가깝다.
스튜디오 지브리 애니메이션 영화들 중, 일반적으로 만인의 사랑을 받는 작품들은 십중팔구 그가 제작을 맡은 것들이고, 그가 부분적으로 기여하거나 제작 중간에 대타로 들어가거나 하지 않고 온전히 총괄한 작품들의 완성도는 흠잡을 데가 없다.
다채로운 이야기를 하기 보다는, 한두 가지의 주제를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나가는 작품들을 냈다. 본인 역시 작가란 같은 말을 다른 식으로 반복하는 사람이라고 발언한 바 있으며, 그의 작품들은 공통적으로 기둥이 되는 주제의식들을 어느 정도 공유한다. 대표적인 것이 반전인데, 미야자키 하야오는 개인적인 기호로 밀리터리에 관한 것을 그리고 디자인하는 것은 즐기면서도, 신념적으로는 대놓고 전쟁 반대를 외치며 단 한 번도 군대와 전쟁을 좋게 묘사한 적이 없다. 그의 작품에서 전쟁은 항상 어리석고 무의미하며, 생명을 앗아가고 파괴를 낳는 끔찍한 짓으로, 전쟁을 추구하는 자들은 무조건 악당으로 나온다.
그는 1990년대까지 일부 일본 만화, 애니메이션 팬들에게나 알려져 있었고, 일본 외에서 유명하지 않았는데, 1999~2000년에 명작인 모노노케 히메가 서방 국가에서 개봉되며 세계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마침내 2002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세계적으로 다시 없을 불후의 걸작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알려지지 않았던 과거의 걸작들이 발굴되어 서방에 알려졌고 스튜디오 지브리와 미야자키 하야오는 범지구적 거장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사실상 일본 애니메이션이 세계적인 명성을 얻는 데, 나아가 애니메이션이란 매체의 비평적, 예술적 지위를 영화의 그것에 근접하도록 끌어올리는 데 기여한, 애니메이션이란 매체의 역사를 논하는 데 있어서도 빠질 수 없는 인물이다.
특히 지리적으로 가까운 한국에서는 그의 최전성기라 할 수 있는 2000년대의 작품들을 직접 접한 20~30대들 중에선 모르는 사람을 찾는 것이 더 힘들 것이다. 일본 애니메이션에 관심이 하나도 없는 사람들은 그의 이름과 작품 제목까지는 몰라도 대표작 몇 개쯤은 어릴 때 본 적이 있을 테고, 심지어 그의 작품을 보지 않았더라도 그의 이름과 대표작 몇 개 정도는 교양, 상식 수준으로 알고 있는 사람도 드문드문 있다.
4.1. 단평[편집]
In stature, in influence, and the range and quality of his body of work, there will never be another to rival him.
위상, 영향, 그리고 자질과 작품의 완성도에 있어서 미야자키 씨와 어깨를 견줄 사람은 앞으로도 없을 것입니다.
- 존 라세터. 픽사,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전 CCO #
Miyazaki has taken the art of anime and brought it to new heights through an inimitable vision and sense of storytelling.
미야자키 씨는 모방할 수 없는 스토리텔링의 감각과 비전을 통해 애니메이션을 새로운 경지로 올려 놓았습니다.
저는 특히 미야자키의 전체 세계와 그의 취향과 스토리텔링 능력에 감탄합니다. 그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지금까지 만들어진 가장 위대한 애니메이션 영화 중 하나인데, 제가 본 어떤 디즈니 영화보다 더 나을지도 모릅니다.
이건 못 이기겠다.
저뿐만 아니라 그 누구도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경지에는 도달하지 못할 겁니다. 하야오 감독은 그만큼 거대한 존재입니다.
미야자키 하야오를 일본 애니메이션의 대부로 묘사하는 것은 과언이 아닐 것이다 - 일부는 심지어 세계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20세기 초 그 형태가 등장한 이래 가장 위대한 애니메이션 영화 감독이자 모든 장르의 가장 위대한 영화 감독 중 한 명.
영원히 애니메이션에 깊은 영향을 끼쳐, 여러 세대의 아티스트들이 우리 매체에서 작업하고 무한한 잠재력을 조명하도록 영감을 주었다.
5. 다른 인물들과의 관계[편집]
5.1. 토미노 요시유키[편집]
미야자키와 가장 대척점에 서있는 인물은 토미노 요시유키로 봐야 할 것이다. 둘은 동갑이고[25] 오랜 친분을 가지고 있지만, 서로에게 라이벌로 여겨질 정도로 자주 싸우고 동시에 서로를 인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토미노도 80년대에는 일본 애니메이션계를 미야자키와 함께 양분했던 거장이었다.[26]
두 사람의 성향은 정 반대이다. 연출 성향부터가 반대인데 미야자키는 화면 구성은 리얼하게, 캐릭터의 연기는 리얼하지 않게 하는 반면 토미노는 화면 구성은 리얼하지 않게, 캐릭터의 연기는 리얼하게 하는 방향을 추구한다.
토미노는 기술의 발전이 인류의 삶에 공헌한다고 여기지만, 미야자키는 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본질과 별다른 관계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미야자키는 많은 제작비로 많은 동화를 이용한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선호하지만, 토미노는 동화 작업 컷수를 줄이는 연출 방법을 선호하고, 창시했다. 또한 미야자키는 데즈카 오사무를 상당히 부정적으로 보지만, 토미노는 긍정적으로 본다.[27]
토미노는 미야자키 외에도 안노 히데아키, 호소다 마모루, 신카이 마코토등 후배와 다른 크리에이터에 대한 언급도 자주 하며, 다양한 연출을 하는 제자를 키워냈지만 미야자키는 다른 크리에이터에 대한 이야기는 잘 안 하며 [28] 제자를 키울 때도 자신의 방식을 강요한다고 한다. [29] 실제로 토미노는 지금까지도 미야자키를 의식하고 질투한다는 암시를 남기지만, 미야자키는 토미노에 대한 발언이 거의 없다. 토미노에 대한 이야기는 지인들에게만 한다고 한다.
토미노는 특히 미래소년 코난을 질투해서 코난을 의식하고 전투메카 자붕글을 제작했고[30]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의식하고 성전사 단바인을 제작, 모노노케 히메를 의식하고 브레인 파워드를 제작했다. 반대로 미야자키 작품에는 토미노의 영향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거신병 연출은 토미노의 기동전사 건담과 유사한데, 이건 거신병을 그린 안노 히데아키가 중증 건덕후라서 그런 것이고 딱히 미야자키가 토미노를 의식하고 작업했다고 말하기는 어려워보인다. 근래에도 바람이 분다를 보며 "완패(完敗)했다"고 말한 것을 보면 지금까지도 그를 의식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토미노는 안노 히데아키와의 대담에서 "그 인간은 자기가 로리콘이라는 걸 솔직히 인정해야 해!"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31][32] 여기서 안노는 "토미노 선생님의 작품은 토미노 선생님께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자지를 덜렁거리며 춤을 추는 느낌이라 존경한다. 하지만 미야자키 선생님의 작품은 '나 지금 벌거벗었다~'라고 외치면서도 하반신에는 멋드러진 팬티를 입고 있는 느낌"이라고 비유했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지나치게 체면을 차리면서 멋부리고 있는 느낌이라 꼴불견이라는 것이다. 다만 이 대담에서만큼은 안노가 폭주하며 미야자키를 까고 토미노는 오히려 미야자키를 옹호하는 느낌이었다. 동년배인만큼 그 기분만큼은 전부 이해를 한다고. 오히려 머리도 좋고 기술도 있으며 센스도 나쁘지 않은 사람이라고 칭찬하기까지. 로리콘 취향에 관한 부분만 빼고.
일로 만난 사이지만, 개인적으로 서로 아는 사이다. 둘 다 타카하타 이사오에게 연출을 배우던 입장으로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 빨강머리 앤, 꼬마 너구리 라스칼, 미래소년 코난 같은 몇몇 작품에서는 함께 일한 적도 있다. 사실 두 사람은 신인 시절 같이 일한 경우가 꽤 많다. 1970년대 후반부터 다른 길을 걸었을 뿐이다. [33] 어떤 강연에서 토미노가 미야자키를 대놓고 언급하면서 '미야자키 본인에게 말해도 괜찮다. 아는 사이이므로' 같은 이야기도 하고. 오시이 마모루 말로는 미야자키와 토미노는 평소에도 전화할 정도로 친한 사이이며 미야자키는 토미노를 매우 좋아한다고 한다. 미야자키는 무시 프로덕션을 매우 싫어하는데[34] 유일하게 좋아하는 인물이 토미노라고. # 2018년 지브리 미술관에서 있었던 타카하타 이사오 송별회에서는 둘이서 친밀하게 이야기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또한 두 사람은 성장기 때의 가정 환경도 상당히 비슷한 편이다. 두 사람 모두 아버지가 2차 대전 당시 일본군에 납품하는 군수 회사의 관계자였으며, 이 때문에 비교적 유복한 생활을 하였다. 게다가 아버지가 이런 전쟁 시절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해서 크게 대립하였고, 이후 작품에 이러한 성향이 진하게 남게 되었다.
5.2. 안노 히데아키[편집]
참고자료: 미야자키 하야오와 안노 히데아키 사이의 에피소드 모음(일본어 사이트)
참고자료: 안노 히데아키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회상록(일본어 사이트)
안노 히데아키와는 허물없는 스승 제자 사이. 안노는 원래 토미노 같은 감독이 되려고했지만 토미노와는 취향이 맞지 않아 제대로 연출 기술을 사사하지 못했다. 하지만 미야자키하고는 밀덕이라는 공통점이 있어서 사적으로 친해지고 많은 연출 기술을 하사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 둘은 그냥 서로 스승과 제자라는 걸 미디어에 공언하고 다닐 정도이다.
2021년 방영된 다큐멘터리 '프로페셔널의 유의' 안노 히데아키 편에서 미야자키는 안노를 처음 봤을 때 "외계인이 왔다고 생각했다." 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딱 봐도 재밌을 것 같은 놈이라 바로 일을 시켰다고 한다. #
안노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거신병 전투씬을 그린 적이 있다. 감독으로써의 역할을 배웠다고 한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NHK에 기획안을 낸 해저 2만리를 모티브로 이야기가 있었는데 이게 폐지되고, 훗날 안노가 그 기획안으로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를 만들었다. 당시 이미 천공의 성 라퓨타가 개봉했었는데 두 작품의 모티브가 애초에 같았다.
또한 안노의 첫 번째 총감독 작품인 톱을 노려라!에 자신이 참여했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포스터가 그대로 등장하는 등, 확실히 나우시카에 대한 애정과 팬심, 존경심이 큰 듯 하다.[36]
이후 안노가 토미노/미야자키같은 거장밑이 아닌 감독으로서 독립하고 신세기 에반게리온으로 제대로 된 초대박을 냈을 때 미야자키는 그에게 "솔직하게 만들어서 좋았다." "너는 너 자신에겐 아무것도 없다는 걸 에반게리온으로 증명했다." 라고 비판하기도 했다.[37]
TV판의 종영 이후 안노는 완전히 폐인이 되었는데, 소문을 들은 미야자키 하야오가 회사로 전화를 걸어서 "나도 그랬다. 쉬면 된다.!"고 "만들고 싶을 때가 될 때까지 쉬면 된다. 그 때가 되면 사람도 돈도 반드시 모인다."고 말을 해줘서 마음이 편해졌다고 한다. 그리고 곧바로 극장판을 만들어야 할 사정이라서 압박을 느껴서 위험할 때도 여러 사람 특히 미야자키 하야오의 도움이 컸다고 한다. 안노의 에반게리온 제작 비화 인터뷰 동영상 이후, 극장판을 만들 때도 그만두고 싶으면 그만 둬도 된다고 말하고, 다음 번에는 아니, 만들어라고 하기도 하고 이랬다 저랬다 말이 바꼈다고 한다.
가까운 스승과 제자 사이다. 실제로 그가 모 잡지사에서 진행한 인터뷰에 따르면 인생 최고의 애니메이션 10가지를 고르라고 할 때 당당히 미래소년 코난을 골랐다.
그와 지속적으로 연락하며 지내기도 하고 자신의 후계자로서 은근히 점찍어둔 것으로 보인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속편을 안노가 만들고 싶어하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고 한다.
2011년, 바람이 분다(애니메이션) 제작이 시작되었을 때 안노 히데아키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을 찾아가서 "제로센은 반드시 내가 그리게 해 줘요!"라고 부탁했는데[38] 미야자키 감독은 "그보다는, 주인공 목소리를 자네가 맡는 게 어떤가?"하며 호리코시 지로 역의 성우를 맡겨버리기도 했다.
2023년에도 여전히 티격태격하며 잘 지내고 있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제작 당시, 안노의 회사인 '스튜디오 카라'의 수석 애니메이터를 지브리에서 캐스팅하자 안노는 길길이 날뛰며 "팀이 일본 시리즈에 진출했는데 4번 타자를 빼가는 법이 어딨냐고!"라고 했다고 하는데, 그런 것 치고는 나중에 스튜디오 카라의 다른 스태프들도 지브리 측에 파견해서 제작을 도왔다고 한다.(...)
5.3. 오시이 마모루[편집]
한국에선 잘 알려져있지 않으나 토미노는 라이벌, 안노는 제자 격이라면 오시이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인생의 친구라 할 수 있다. 미야자키는 평소 자신과 영화, 종교, 철학, 밀리터리에 대한 교양이 비슷한 인물이 없어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마땅치 않아 고민하고 있었는데 이때 스즈키 토시오는 나이 차는 나지만(열살 차이) 교양 수준이 맞는 사람으로서 말친구로 삼으라며 오시이 마모루를 소개시켜줬다고 한다. 그리고 두 사람은 정말 수준이 똑같아서 말이 통했다고 한다. 그러나 견해는 완전히 달라서 두 사람은 만나자마자 서로 반대의견을 늘어놓으며 몇시간 씩 토론을 하고 언쟁으로 치닫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오히려 미야자키는 오시이 마모루를 좋아했고 나이차가 꽤 남에도[39] 두 사람은 친구로 남았고 서로 정기적으로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은 물론 여행도 같이 가는 사이로 발전했다. 오시이는 미야자키의 제자는 아닌데, 작품 활동 초기부터 미야자키와 오시이는 서로의 경지가 비슷함을 인정하고 있다. 서로에게서 배울 점을 찾을 필요가 없다는 것. 그리고 보면 알게 되지만 두 사람은 작품 성향과 내용이 완전히 달라서 도저히 융화될 수 없다.
두 사람의 작품론은 완전히 달라서 서로의 작품에 대한 비판도 많은 편이다. 당시의 애니메이션 잡지에서도 이 두 사람의 대담과 서로의 작품 비판을 정기적으로 실을 정도로 두 사람의 관계와 독설 배틀은 매우 유명했고 지금도 서로 작품에 대한 날 선 비판을 나누고 있다. 한국에선 두 사람의 서로에 대한 비판이 너무 날이 서 있고 독해서 [40] 이 탓에 두 사람이 별로 친하지 않거나 심지어 앙숙인 걸로 잘못 아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런 대담은 서로 거리낄 것이 없는 절친한 친구 사이에서 욕지거리를 마구 뱉으며 떠드는 느낌으로 편한 분위기에서 나온 것이다. 가족끼리도 친한지 오시이랑 하야오의 아들 고로랑 대담을 나누기도 했다.
오시이 마모루는 미야자키 작품은 연출 외에는 별로 마음에 안 든다고 하면서도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과 천공의 성 라퓨타,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높게 평가하고 있다. 심지어 칼리오스트로의 성은 자신의 작품에서 따라하기까지 했고 미야자키는 "이 자식 내 걸 따라했구만"하고 반응했다고. 미야자키는 오시이의 시끌별 녀석들 TV판과 시끌별 녀석들 2 Beautiful Dreamer를 극찬한 바 있다.
6. 논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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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포스트 미야자키?[편집]
존 라세터의 말대로, 현재까지 일본 애니메이션 계에 미야자키 하야오 급의 영향력을 보여준 감독은 없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감독한 애니메이션은 100억 엔은 기본으로 흥행했지만 2016년 너의 이름은.이 개봉할때까지 이 100억엔을 넘은 작품은 지브리 스튜디오의 작품을 제외하곤 단 한 작품도 나오지 않았다. 이 문제는 지브리 스튜디오뿐만이 아니라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 전체에서도 큰 고민이다.
흔히 일본 내외로 포스트 미야자키에 가장 가깝다고 평가되던 인물들은 아래와 같다.
원래 신카이도 초창기에는 지브리 스튜디오를 의식했던 것으로 보인다. 일례로 신카이의 작품 별을 쫓는 아이가 지브리 스튜디오의 작풍과 상당히 비슷하다는 평을 들었다. 하지만 너무 지브리를 의식한 탓인지 신카이 본인의 매력이 묻혔을 뿐 아니라, 작품 자체도 산만한 진행으로 좋지 못한 평가를 들었다. 이후로는 지브리의 영향에서 벗어나 본인의 스타일을 추구하여 성공을 거두었다. 사실 신카이 마코토는 연출 스타일이 미야자키와 완전히 다르다. 미야자키는 토에이 애니메이션 초기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동적인 연출을 이어받은 감독이지만 신카이는 화면에 움직임이 적고 미장센에 중심을 둔 정적인 연출을 하는 연출가이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포스트 미야자키'라는 말에, "미야자키 하야오가 되기 위해서 애니메이션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미야자키류 작품 같은 것은 미야자키씨가 하면 된다."는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실제로 호소다는 토에이 애니메이션에서 연출 기술을 배웠던 사람이라서, 미야자키에게 뭔가 배운건 하나도 없다. 제자는커녕 별개의 성장과정을 거친 사람이다. 호소다에게 연출을 배웠던 이토 토모히코는 "호소다 씨의 연출 스타일은 타카하타 이사오지 미야자키가 아니다." 라고 하기도 했고 호소다 본인도 자신이 존경하는 연출가는 타카하타 이사오라고 여러 번 밝혔었다.
국제적인 주목도로 따지면 가장 유력하다. 미래의 미라이로 칸 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되고, 제9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 장편 애니메이션상으로 노미네이트되는 기염을 토했다. 최근에는 용과 주근깨 공주로 칸 영화제 칸 프리미어 부문에 초청되었다. 과거 국제적인 명성은 가장 높은 축에 속하며 세계 3대 영화제를 오가는 인물은 현역중엔 이 사람뿐이었으나 이후에 신카이도 베니스 베를린 국제 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되었다.[43]
결정적으로 안노는 미야자키의 제자이지만, 본인은 토미노 요시유키처럼 되고 싶어하는 사람이다.
이 정도가 포스트 미야자키라며 오르내리는 사람들인데, 이중에서 딱히 미야자키의 후계자를 자처한다거나, 스스로 되려는 인물은 없다.
한국에선 신카이와 호소다가 자주 거론되지만, 일본에서는 하라 케이이치, 유아사 마사아키, 카타부치 스나오도 애니메이션 작가로 가능성이 높은 감독으로서 언급되기도 한다. 물론 이들도 자신들이 포스트 미야자키라는 것에 대해선 당치도 않은 소리라며 부정하고 있다.
사실 '포스트 미야자키'란 단어 자체가 결국 일본의 애니메이션 잡지같은 곳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만들어낸 일종의 떡밥에 가까우며 진지하게 나오는 소리가 아니다.[45]
애초에 천재 크리에이터 개인을 대체할 수 있는 완벽한 타인은 없다. 사실 여기서 언급된 인물들도 마찬가지로, 누군가의 대체자 감으로 치부당할 사람들이 아니라 이미 오리지널리티가 있는 창작자들이다.
스튜디오 지브리에서는 미야자키 하야오와 다카하타 이사오의 뒤를 이을 신인을 육성하거나 외부에서 감독을 불러오는 시도를 했지만 다른 감독들은 작품스타일부터 소속까지 다르고, 관련 비화나 모리타 히로유키의 발언처럼 하야오의 방향과 맞지 않아서 후계자 발굴은 요원해지고 말았다.
8. 작품 목록[편집]
참가 작품 리스트 일본 작화 위키 참조.
8.1. 감독, 연출, 기획 작품[편집]
8.1.1. 애니메이션 영화[편집]
※ 미야자키 하야오가 직접 연출·각본을 담당한 장편 애니메이션은 굵게 표시함.
8.1.2. TV 애니메이션[편집]
8.2. 그 외 참가 작품[편집]
※ 디자인, 작화, 레이아웃으로 참가한 작품이다. 미야자키 특유의 작품색, 연출색은 약하나 디자인, 작화는 미야자키가 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 소년 닌자 바람의 후지 마루 (1964) - 원화
- 레인보우 전대 로빈 (1966) - 원화
- 태양의 왕자 호루스의 대모험 (1968) - 원화·장면 설계 (레이아웃)
- 장화신은 고양이 (1969) - 원화
- 하늘을 나는 유령선 (1969) - 원화 / 로봇이 거리를 파괴하는 장면 작화. 콘티 수정도 했다고 한다.
- 비밀의 아코짱 (1969) - 원화
- 무민 (1969) - 원화(21, 23화)[54] 원작자가 이 버전의 무민 애니를 싫어하는데 캐릭터의 성격이 원작과 다르고, 특히나 미야자키 하야오가 원화를 그린 에피소드는 전투기나 탱크 같은 전쟁병기가 잔뜩 나와서 무민의 세계관을 훼손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 동물 보물섬 (1971) - 아이디어 구상, 설정, 디자인, 원화
- 팬더와 친구들의 모험 (1972) - 원안, 캐릭터 디자인, 레이아웃, 원화
- 팬더와 친구들의 모험: 우천 서커스 편 (1973) - 원안, 캐릭터 디자인, 레이아웃, 원화
- 정글 쿠로베 (1973) - 캐릭터 원안[55]
- 사무라이 자이언츠 (1973) - 원화 1[56]
- 황야의 소년 이사무 (1973) - 원화
-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 (1974) - 장면 설정·화면 구성, 레이아웃. 전편 참여
- 플랜더스의 개 (1975) - 원화 15
- 엄마찾아 삼만리 (1976) - 화면설정, 레이아웃 전편 참여
- 꼬마 너구리 라스칼 (1977) - 원화 4, 5, 6, 10,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4, 25, 26, 27, 28
- 빨강머리 앤 (1979) - 장면 설정·화면 구성 레이아웃. 1~15까지 참여하고 그만두었다.
- 철인 28호 (1980) - 원화(8화)
- 극장판: 코브라 SPACE ADVENTURE (1982) - 원화논크레딧
- 슈나의 여행(그림 동화) (1983) - 원작, 삽화
- 게드전기: 어스시의 전설 (2006) - 원안
9. 수상 경력[편집]
10. 관련 인물[편집]
흔히 미야자키는 후계자를 못 키웠다는 소리가 많은데 이건 다소 과장된 얘기라고 보면 된다. 바로 아래에 제자 리스트가 있으니 알 수 있겠지만, 제자들도 상당한 실력파이다. 제자들의 인터뷰를 보면 연출을 배우겠다는 사람들에게는 투덜대면서도 기술을 가르쳐주긴 했다는 증언이 공통적으로 나온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DVD 코멘터리에서 안노 히데아키와 카타야마 카즈요시는 "미야자키 씨는 가르쳐주는 게 많다. 뭐든 가르쳐주려고 한다. 배운 것이 많다." 라고 하기도 했다. 단지 스튜디오 지브리는 미야자키와 타카하타 이사오 작품이 아니면 다른 연출가는 감독할 작품도 없고 투자자도 안 붙으니 회사를 나갔을 뿐이다. 미야자키는 자신의 제자들이 능력을 보이면 퇴사(...)를 권고한다고 한다. 이러니 지브리 내에 미야자키의 후계자가 없는 것이다.
미야자키가 혼자 다 하는 독불장군 스타일이라 제자를 못 키웠다는 소리도 있지만 이건 어느정도 낭설. 거장의 지시를 받고 더 좋게 수정된 걸 보고 느끼면서 배우는 것도 분명히 존재한다. 예로 미야자키와 비슷한 방식으로 작품을 만드는 야스히코 요시카즈나 카와지리 요시아키도 출중한 실력의 제자들을 배출한 바 있다. 다만 미야자키 본인은 제대로 된 제자를 키우지 못했다고 생각하는지 한 다큐멘터리에서 "제자의 재능을 키우는게 아닌 집어 삼켜버렸다" 라는 발언을 한 바 있다.
이런걸 보면 "미야자키가 제자를 못 키운다" 보단 "미야자키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취향을 만족시켜줄 유사한 스타일의 제자를 키우지 못했다"에 가깝다. 팬들은 미야자키 하야오 스타일의 원하는데 미야자키가 키운 제자들은 정작 그런 스타일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경우가 많다. 당장 안노 히데아키도 미야자키가 키운 제자고 상당히 가까운 사이지만 그 스타일은 완전히 반대되는 타입이다.
또한 아이와 여성에 대한 이해가 높으며, 아이와 여성을 위한 작품을 만들어 그쪽 팬이 많은[57] 미야자키와 달리 제자들은 남성의 시선에서 연출을 하는 경우가 많아 미야자키 작품을 좋아하던 사람들이 봤을 때 큰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제자 중에서는 카타부치 스나오가 여성을 중심으로 둔 연출을 하며 여성팬이 더 많은 편이다.
- 오오츠카 야스오 - 그림 스승
- 타카하타 이사오 - 파트너. 연출 스승
- 스즈키 토시오 - 프로듀서
- 히사이시 조 - 음악
- 미야자키 고로 - 아들
- 야마모토 니조 - 미술감독
- 토미노 요시유키 - 라이벌. 같이 작업한 작품도 많다.
- 오시이 마모루 - 친구 겸 라이벌.
- 야스다 미치요 - 채색
- 시마모토 스미 - 성우
- 연출 제자
- 애니메이터
11. 여담[편집]
- 미야자키는 그의 강연에서, 자신은 비정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보다는 "이랬으면 좋겠는데"라는 것을 늘 만들고 싶어하며, 그런 것밖에는 만들 수 없는 사람이라고 자인한 바 있다.
- 한편 그는 일본인들이 겪었던 전쟁의 고통을 일본이 한국과 중국, 필리핀, 동남아시아 각국에서 저지른 여러 학살 및 갖가지 일들과 비교하면서 역시 일본인 전체는 가해자일 수밖에 없다고 분명히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따라서, 미야자키의 애니메이션에 담겨 있는 이상주의는 전쟁의 본질 속에 작가 자신이 말해주고 싶고 보여주고 싶은 미래적 희망들의 동화적 표현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감독의 작품 중에는 그런 모습들을 풍자적으로 희화화해 더없는 웃음과 유쾌함을 보여주는 때가 많았다.
- 고상한 거장이라는 이미지가 있고 오타쿠가 싫다고 해서 안 볼 것 같지만 1990년대 까지만 해도 유행하는 만화, 애니메이션 작품은 장르 불문하고 다 보고 있었다. 도라에몽, 시끌별 녀석들, 쇼난폭주족, 공각기동대 (원작 만화)[58] , 기생수 같은 작품을 호평한 바 있다. 호평은 안 했지만 기동경찰 패트레이버도 보았다. 기생수는 스즈키 토시오와 함께 애니화도 고려했지만 흐지브지 되었다고. # 미야자키의 콘티에는 "이 작품은 이 만화, 애니처럼 그려줘" 라는 지시가 들어가는 경우도 많다. 키타쿠보 히로유키는 지브리에는 시사회실이 있고 스즈키 토시오가 최신 극장판 애니메이션 필름을 구해와서 틀어 다 같이 본다며 미야자키가 다른 사람 작품 안 본다는 건 뻥이라고 한다. # 키타쿠보와 안노 히데아키가 같이 만든 야애니인 크림레몬을 보고 [59] "안 야하잖아! 이걸 포르노라고 만들었냐!?" 라고 화를 내기도 했다고 한다. #
- 고상한 거장이라는 이미지를 밀고 있어서 진지한 사람일 것 같지만 안노 히데아키와 오시이 마모루 말로는 진짜 웃긴 사람이라고 한다. 상상을 초월하는 논리에 기반한 농담 혹은 헛소리를 자주하고, 리액션도 웃겨서 같이 있으면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고 한다. 인생이 시트콤이라고. 안노는 시마모토 카즈히코와의 대담에서 "너(시마모토)도 만화보다 작가 본인이 웃기지만 미야 씨도 그렇지. 미야 씨는 본인이 제일 재밌고 그 다음이 콘티, 그 다음이 영상 그렇게 가면서 재미가 열화돼." 라고 한다. 엔도 마사아키, 혼다 타케시도 같이 일하면 즐거운 분이라고 한다.
- 바람계곡의 나우시카가 비디오 게임으로 제작된 적이 있는데, 이 게임의 내용이 나우시카가 건십에 탑승하여 벌레들을 학살하는 내용의 게임이었던지라 게임이라는 존재를 싫어하게 됐다고 한다. ……는 도시전설이 정설처럼 떠돌고 있으나, 해당 게임은 평화적인 교섭 목적으로 하는 것이며 벌레는 피해다녀야지 죽이면 감점을 받거나 게임이 일찍 끝나게 된다. 자세한 사항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문서를 참조. 참고로 미야자키는 80년대에 이미 애니메이션은 매니아들만의 전유물이 되어가고 있으며 미래에는 비디오 게임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될 것이다는 내용의 칼럼을 쓴 바 있으며 미야모토 시게루와 대담을 하면서 게임 산업을 긍정적으로 보았다. 게임에 부정적인 라이벌 토미노 요시유키와는 정반대.
- 코라의 전설의 백합 엔딩에 간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자세한 것은 마코(코라의 전설) 6번 항목 참조.
- 고등학생 시절 밀덕 잡지에 기고한 글이 발굴되기도 했다.
- 오너캐는 흔히 안경 낀 돼지로 나온다. 메인 작품에선 등장하지 않지만 사내 엽서 등에서 나오며, 모 단편 애니메이션에서는 하야오 본인이 해설역으로 나온 이 캐릭터의 성우를 맡았다. 붉은 돼지의 주인공 포르코가 이 캐릭터와 비슷하다.
- 90년대 초반, 국내 영화잡지에서는 그의 이름을 미야자키 슌이라고 소개하기도 했었다.[61]
-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 세계와 창작 방식을 더 알고 싶다면 황의용의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렇게 창작한다!>는 책을 추천한다. 절판된 책이므로 도서관에서 찾아야하겠지만.
- 2021년에 개관한 아카데미 영화 박물관의 첫번째 기획전으로 미야자키 하야오 전시회를 가졌다.
- 오시이 마모루는 미야자키가 마블 코믹스 영화를 보냐는 질문에 "반미주의자인 미야자키 씨가 캡틴 아메리카 같은 걸 볼 리가 없다. 아예 존재조차 모르는 게 아닐까" 라고 하면서도 "슈퍼맨, 배트맨 같은 DC 코믹스 쪽은 본 것 같다." 고 말했다. # 루팡 3세 2기 시리즈 마지막화와 천공의 성 라퓨타에 나온 로봇 디자인의 모델이 플라이셔 스튜디오가 제작한 슈퍼맨 애니메이션에 나왔던 로봇이란 설도 있으므로 적어도 슈퍼맨은 보긴 본 모양.
- 상당한 골초이다. 작업할 때도 회의할 때도 담배를 입에 물고 있다. 건물 흡연이 금기시 되는 2000년대 이후로도 알게 뭐야 라고 계속 피워 다큐멘터리나 취재 영상에서도 작업 중 자연스럽게 담배를 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62] 본인도 타인에게 피해가 가는 것을 인식하고 있어서 미야자키의 책상 주변에는 공기청정기를 2대를 설치했다. 루팡 3세에서도 흡연 장면이 상당히 많이 나오고, 미래소년 코난에서는 어린이들이 담배를 나눠 피기도 하며 바람이 분다에선 등장인물들이 담배를 뻑뻑 핀다. 일본이 다른 나라에 비해 흡연에 관대한 것도 있지만 그걸 감안해도 미야자키는 다른 감독에 비해 흡연 신을 자주 넣는 감독에 들어간다. 반면 라이벌 토미노 요시유키는 저서에서 자신은 흡연 신을 의도적으로 잘 안 넣는다고 밝혔다.
- 2000년대 이후 신작을 내면 국제 영화제에 반드시 초청되는 감독이나, 유독 칸 영화제랑 인연이 없다. 하야오 감독 애니 중 칸에서 상영된 애니는 2008년 회고전에서 상영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가 전부. 2010년대 후반부터 동료 타카하타 이사오 (가구야 공주 이야기), 후배 오시이 마모루 (이노센스), 코사카 키타로 (나스 안달루시아의 여름), 호소다 마모루 (미래의 미라이), 심지어 아들 미야자키 고로 (아야와 마녀)까지 관련 인물들은 칸에 초청받았는데 [63] 정작 본인은 초청이 없는 기묘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대신 베니스 영화제 단골로 꼽힌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 이후 작품은 전부 베니스 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받았을 정도. 칸 영화제 측에서도 내심 눈독 들이고 있는지,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을 경쟁 초청하려고 했으나 [64] , 스즈키 토시오의 신비주의 마케팅으로 무산되었다.
- 귀멸의 칼날 극장판의 흥행 성적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제치고 역대 애니메이션 흥행 1위를 기록했을 때, 어느 기자에게 "귀멸의 칼날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흥행을 바짝 따라오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라는 질문을 받았다. 미야자키는 심드렁하게 "나랑은 별로 상관없는 일인 것 같습니다. 쓰레기 줍기를 하고 있는 은퇴한 할아버지입니다"라고 답했다.
Q: 귀멸의 칼날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흥행을 바짝 따라오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요?이 인터뷰라고 할 수도 없는 인터뷰는 사전에 미리 콘텍트를 한 것도 아니고, 미야자키가 평소처럼 아침에 자택 근처에서 쓰레기를 줍고 있는데 대뜸 튀어나와서 코멘트를 요구한 대단히 무례한 행각이었다. 당연히 해당 기사를 작성한 기자는 두고두고 까이는 중이다.[65]
미야자키 하야오: 나하고는 상관 없는 일인것 같습니다. 흥행성적을 가지고 티격태격하지 않는 것이 평화에 좋습니다. 열심히 일해야지.
Q: 귀멸의 칼날은 보셨나요?
미야자키 하야오: 안봤습니다. TV도 잘 안보고, 다른 것들도 안보고 있습니다. 영화도 잘 안봅니다. 나는 쓰레기 주우러 다니기를 하는 은퇴한 할아버지일 뿐입니다.
Q: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1위 기록이 없어져서 아쉬워하는 팬들도 있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상관 없습니다. 이 세상은 인플레이션이 이뤄지고 있으니까. (저는 이만) 쓰레기 주우러 가야 합니다.
- 저 인터뷰 사건이 일어난 뒤 미야자키는 스즈키 토시오를 찾아가 "귀멸의 칼날이 뭔데 저렇게 히트하냐?" 라고 물어봤다고 한다. 스즈키 토시오에게 대략적인 스토리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뒤 미야자키는 "그런 내용이라면 히트할 만하군. 내 라이벌이네." 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
- 2021년 1월 9일, 스튜디오 주변을 산책하는 모습이 구글 지도 스트리트 뷰[66] 에 포착되자 이를 일본의 한 트위터리안이 공개하였다. # 얼굴은 프라이버시 보호때문에 모자이크되어 있지만 입은 옷이나 뒷모습만 봐도 빼도박도 못하게 미야자키 하야오임을 알 수 있다.
- 자신의 작품에 나오는 캐릭터를 자신의 주변인을 모델로 만드는 경우가 많다. 명탐정 홈즈에 콘도 요시후미와 토모나가 카즈히데를 모델로 한 캐릭터가 나온 건 유명한 이야기고, 토토로는 이이다 우마노스케가 모델, 유바바는 스즈키 토시오가 모델, 포뇨는 콘도 카츠야의 딸이 모델이었다. 그 외에도 본인이 직접 말한 적은 없으나 지인들이 칼리오스트로 백작은 츠키오카 사다오, 피오는 카가와 메구미를 모델로 한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인간 관찰로 작품을 만드는 스타일이라 주변인의 행동이나 외모가 많이 반영된다고.
- 미야자키의 스승 오오츠카 야스오에 따르면, 젊은 시절의 미야자키 하야오는 쉽게 사랑에 빠지는 금사빠였다고 한다. 그래서 고백을 상당히 많이 했다는데, 얼굴이 못 생겼다는 이유로[67] 대부분 차였다고 한다. 그래서 미야자키는 자신이 짝사랑한 여성을 모델로 애니메이션의 히로인을 만들곤 했다. 근데 이게 아는 사람이 보면 티가 확 나서 오오츠카는 어느 작품의 히로인의 모델이 누구인지 전부 알고 있었다고 한다.
- 그런데 미야자키의 아내는 의외로 미야자키가 먼저 좋아한 사람이 아니었다고 한다. 처음으로 먼저 자신을 좋아한다고 한 사람이라 결혼을 했다고 한다. 미야자키 고로는 아버지가 워커 홀릭이라 가정에 소홀해 서운했다고 했지만 오시이 마모루는 미야자키는 아내에게 잘 해준다고 했으므로 그건 정말로 워커 홀릭이라 그랬던 것 같다. 미야자키의 동네에선 미야자키와 아내가 산책하는 것이 자주 목격된다고 한다.
- 2021년 6월 경부터 한국 커뮤니티 사이트를 중심으로 미야자키 하야오가 갑질을 해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스태프들이 다 도망갔다는 글이 떠돌고 있는데 누군가가 그럴싸하게 지어낸 거짓 정보이다. #, #, #, # 애초에 나우시카의 스태프가 다 도망갔다는 것부터가 낭설이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스튜디오 지브리 설립 이전이라 다른 애니메이션 하청사의 프리랜서 애니메이터를 다수 불러와서 일부 스태프가 떠났을 분이며 그 작품의 스태프 중 몇 명은 스튜디오 지브리 창립 멤버로 남아 계속 일했다. 미야자키가 일에 대해서 깐깐한 건 사실이지만 사생활 면에서는 문제가 없어 콘도 요시후미, 카나다 요시노리, 코사카 키타로, 요네바야시 히로마사 등 많은 애니메이터들이 그의 인격을 칭찬하면서 계속 작업을 같이 했으므로 사실이 아니다. 위에 작성되어 있는 같이 일하는 애니메이터들 리스트를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지브리의 천재들'이라는 서적의 리뷰의 내용을 왜곡해서 지어낸 이야기로 보인다. 스태프가 도망갔다는 소리는 리뷰어의 감상이지 실제 이 책의 내용이 아니다. 삐딱한 시선에서 읽은 왜곡된 감상이 마치 사실처럼 돌아다니고 있는 것이다.#
- 지브리는 디즈니 못지 않게 저작권을 챙기는 회사임에도 불구하고 지브리 캐릭터들을 라이센스 삼아 캐릭터 상품을 판매하는 디저트 가게가 일본에 있다. 그런데 그 디저트 가게의 주인이 미야자키 하야오의 셋째동생인 미야자키 유타카다. 미야자키가 만든 작품의 저작권은 미야자키에게 있고 그걸 관리해주는 회사가 지브리이므로 미야자키의 허가만 받으면 쓰는데 문제가 없다. 이 가게에는 미야자키가 직접 그린 그림도 있는데 미야자키 유타카를 붉은 돼지처럼 돼지로 그려주었다. #. 장사가 잘 되는 편인지 [68] 분점이 키치죠지에 있다.
- 콘티와 레이아웃을 그리다가 생각이 바뀌어서 새로 그릴 때는 이전에 그린 걸 잘게 찢어서 버린다고 한다. 어차피 실패작이므로 남길 이유가 없다고. 스즈키 토시오는 미야자키가 이렇게 찢어서 버릴 때마다 "역사적인 유물이 사라졌다." 라고 슬퍼한다고 한다. 그래서 콘티 책이나 전시전에서 볼 수 있는 미야자키의 콘티와 레이아웃은 대부분 실제 영화 제작에 사용된 최종판이고 초안은 없다.
- 마녀 배달부 키키의 주제가를 정할 당시, 전 날 처음으로 마츠토야 유미 콘서트를 다녀왔던 스즈키 토시오가 얼떨결에 마츠토야 유미 곡을 제안하였고 그중 ‘やさしさに包まれたなら(따스함에 안겨진다면)’와 ‘ルージュの伝言(루즈의 전언)’을 삽입했다. 평소 미야자키 하야오는 작업 중에도 라디오 카세트로 매일 들을 정도로 마츠토야 유미의 열렬한 팬이었음을 밝히며 “당신이 없었다면 이 영화는 성립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단언하기도 했다. 또한, 바람이 분다의 주제가로 마츠토야 유미의 ひこうき雲를 삽입했는데 미타카의 숲 지브리 미술관에 전시되어있는 글에 의하면, 대학을 졸업하고 애니메이션 작업에 종사하던 미야자키 하야오가 가혹한 노동의 나날을 보내며 제작자로서의 실적을 쌓아 올리던 시절에 테이프가 늘어날 때까지 반복하고 반복해서 들었던 노래라고 한다. 자신이 젊은 시절에 들었던 추억의 곡이라고도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