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2010년
덤프버전 : (♥ 0)
||
무한도전의 2010년 방영분을 정리한 문서.
가장 특징적인 부분이라면 2008년 초 공익근무요원 복무를 위해 일시적으로 하차한 하하가 2010년 3월 11일 소집해제가 되어 3월 27일 예능의 신 특집부터 복귀했다는 것. 이로 인해서 2014년 5월 초까지 4년이 약간 넘는 기간동안 지속될 7인 체제가 완성된 해라는 의의가 있다. 하지만 복귀를 한 하하는 그동안 방송을 쉰 영향으로 부족한 예능감을 선보이며 부진했고 적응해 간다는 이미지가 강해 아쉬움을 남겼다.
한편 다른 멤버들도 익숙지 않은 7인 체제 때문인지 다소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곤 했지만 장족의 발전을 거듭하며 새로운 캐릭터를 장착한 경우가 많아 호평을 받았다. 특히 정형돈은 그간 맡아왔던 '웃기는거 빼고 다 잘하는 애' 라는 개그맨으로서 무능력한 기믹 때문에 마음고생을 심하게 했는데, 작년부터 그늘에서 벗어나 슬슬 자신감을 표출하는 모습을 보여 주더니 레슬링 특집 WM7과 무한도전 시크릿 바캉스를 통해 미존개오 캐릭터를 장착해 본격적으로 기량이 만개하기 시작했고, 이를 바탕으로 유재석 & 노홍철과 함께 무한도전의 중핵 역할을 맡게 되었다. 정준하 또한 2008년부터 시작된 부진한 활약과 2009년 김치전 사건으로 인해 엄청난 구설수에 시달리며 힘든 시기를 보내던 와중 WM7 특집에서 보여준 우수 교보재 + 열심히 하는 모습 등이 호평을 받고 시크릿 바캉스에서 그 유명한 쿨가이 + 정총무 기믹의 기반을 닦으며 그간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대폭 쇄신한 점이 돋보였다. 반면 전진의 빈자리를 효과적으로 대체할 기미를 보이던 길은 지나친 무리수 덕분에 부정적인 반응에 시달리며 하락세를 겪었다.
2010년은 역대 가장 호불호가 갈리는 해 중 하나로 꼽히고, 2009년부터 사라지던 무한도전 특유의 B급 감성과 초창기 분위기가 완전히 사라지고 판이 커지기 시작한 시기이다. 무한도전은 그동안 웃음에만 초점을 맞췄던 것과는 다르게 2010년대부터는 당시 이명박 정부를 비롯해 각 정부의 개입이 시작되면서 공익성을 띠기 시작했으며 원초적 웃음보단 감동과 여운에도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1][2] 재미에 초점을 맞춘 2009년 무한도전과 스케일이 커지기 시작한 2010년 무한도전을 비교하면 많이 차이가 난다.
스포츠와 관련된 특집이 3개(복싱, 카레이싱, 레슬링)이 있었고 이런 스포츠를 좋아하는 이들에겐 호평을 받았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에겐 흥미도 없고 지루하게 만 느껴졌다. 더군다나 분량도 많아서 이 3개 특집만 합쳐도 반년 이상 잡아먹었다.[3]
여기에 더해서 방송 분량을 다소 과하게 늘려서 이야기가 늘어지고 지루해졌던 특집이 있었고 반절 이하 분량으로 줄였다면 호평을 받았을 것이라는 의견이 있다. 특히 본방 기준으로 1주일에 한 편씩 보는 시청자 입장에선 더더욱 지루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이외에도 시작은 거창했으나 여러 이유로 끝이 흐지부지돼 망한 특집으론 박명수 게릴라 콘서트, 일곱 개의 시선, 미드나잇 서바이벌, 크리스마스 싱글 파티 등이 있다.
2010년 시청률 그래프
1. 설명[편집]
무한도전의 2010년 방영분을 정리한 문서.
가장 특징적인 부분이라면 2008년 초 공익근무요원 복무를 위해 일시적으로 하차한 하하가 2010년 3월 11일 소집해제가 되어 3월 27일 예능의 신 특집부터 복귀했다는 것. 이로 인해서 2014년 5월 초까지 4년이 약간 넘는 기간동안 지속될 7인 체제가 완성된 해라는 의의가 있다. 하지만 복귀를 한 하하는 그동안 방송을 쉰 영향으로 부족한 예능감을 선보이며 부진했고 적응해 간다는 이미지가 강해 아쉬움을 남겼다.
한편 다른 멤버들도 익숙지 않은 7인 체제 때문인지 다소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곤 했지만 장족의 발전을 거듭하며 새로운 캐릭터를 장착한 경우가 많아 호평을 받았다. 특히 정형돈은 그간 맡아왔던 '웃기는거 빼고 다 잘하는 애' 라는 개그맨으로서 무능력한 기믹 때문에 마음고생을 심하게 했는데, 작년부터 그늘에서 벗어나 슬슬 자신감을 표출하는 모습을 보여 주더니 레슬링 특집 WM7과 무한도전 시크릿 바캉스를 통해 미존개오 캐릭터를 장착해 본격적으로 기량이 만개하기 시작했고, 이를 바탕으로 유재석 & 노홍철과 함께 무한도전의 중핵 역할을 맡게 되었다. 정준하 또한 2008년부터 시작된 부진한 활약과 2009년 김치전 사건으로 인해 엄청난 구설수에 시달리며 힘든 시기를 보내던 와중 WM7 특집에서 보여준 우수 교보재 + 열심히 하는 모습 등이 호평을 받고 시크릿 바캉스에서 그 유명한 쿨가이 + 정총무 기믹의 기반을 닦으며 그간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대폭 쇄신한 점이 돋보였다. 반면 전진의 빈자리를 효과적으로 대체할 기미를 보이던 길은 지나친 무리수 덕분에 부정적인 반응에 시달리며 하락세를 겪었다.
2010년은 역대 가장 호불호가 갈리는 해 중 하나로 꼽히고, 2009년부터 사라지던 무한도전 특유의 B급 감성과 초창기 분위기가 완전히 사라지고 판이 커지기 시작한 시기이다. 무한도전은 그동안 웃음에만 초점을 맞췄던 것과는 다르게 2010년대부터는 당시 이명박 정부를 비롯해 각 정부의 개입이 시작되면서 공익성을 띠기 시작했으며 원초적 웃음보단 감동과 여운에도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1][2] 재미에 초점을 맞춘 2009년 무한도전과 스케일이 커지기 시작한 2010년 무한도전을 비교하면 많이 차이가 난다.
스포츠와 관련된 특집이 3개(복싱, 카레이싱, 레슬링)이 있었고 이런 스포츠를 좋아하는 이들에겐 호평을 받았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에겐 흥미도 없고 지루하게 만 느껴졌다. 더군다나 분량도 많아서 이 3개 특집만 합쳐도 반년 이상 잡아먹었다.[3]
여기에 더해서 방송 분량을 다소 과하게 늘려서 이야기가 늘어지고 지루해졌던 특집이 있었고 반절 이하 분량으로 줄였다면 호평을 받았을 것이라는 의견이 있다. 특히 본방 기준으로 1주일에 한 편씩 보는 시청자 입장에선 더더욱 지루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이외에도 시작은 거창했으나 여러 이유로 끝이 흐지부지돼 망한 특집으론 박명수 게릴라 콘서트, 일곱 개의 시선, 미드나잇 서바이벌, 크리스마스 싱글 파티 등이 있다.
2. 방영 목록[편집]
3. 시청률[편집]
2010년 시청률 그래프
평균: 15.7%(전국), 17.5%(수도권)
4. 편성 변경/결방 사유[편집]
5. 연출진[편집]
- 기획: 이민호 → 송승종 → 사화경
- 연출: 김태호, 조욱형, 김준현
- 조연출: 하승지, 김민종, 황지영, 손창우, 최행호, 박창훈, 장승민
- 외부조연출: 김은지, 성아미, 문건이
- 대본: 주기쁨, 공지현, 최혜정, 이민정
- 구성: 이민정, 김민지, 명민아, 최혜란, 이향숙, 서화정, 김정은, 정지혜, 배경숙
6. 기타[편집]
- 2010년 4월 3일엔 천안함 피격 사건으로 인한 사회적 애도 분위기로 인해 본방을 취소하고 대신 복싱 특집을 재방송 했으며, 4월 10일 이후로는 파업 사태로 계속 재방송만 했다. 5월 14일 파업이 끝났을 때도 누적된 촬영 분량이 부족해 한 주 재방을 때웠다가 5월 22일이 돼서야 본방이 재개됐다.
[1] 2010년 당시에는 대표적으로 나비효과 에피소드가 있다. 그나마 이 에피소드는 상당히 잘 만들었다는 평이 강하나, 다른 에피소드는 호불호가 갈린다.[2] 사회 공익에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들을 박살내며 방송을 장악하는 과정에도 무한도전만큼은 정부가 부술 수 없을 정도로 위상이 강했던 점을 고려해 정책 홍보용으로 무한도전을 사용했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12월에 방영된 나비효과(도로명 주소 홍보)와 뉴욕상륙작전(한식의 세계화 광고)이 이에 해당한다. 하지만 뉴욕상륙작전은 무작정 외압이라고 보기 힘든 게, 김태호 PD 자신도 생각하고 있었던 아이템이기 때문이다. 식객 특집을 진행한 걸 보면 알 수 있다. 그리고 2010년과는 별개로, 훗날 박근혜 정부는 아예 창조경제 특집(...)을 만들라고 1년 동안 강요했다고 한다.#[3] 다만 복싱 특집은 멤버들이 주인공이 아니었고 단순히 복싱에 초점을 맞춘 게 아니라 참가한 두 선수를 서포트 해주는 역할이었다.[4] 평소 가지고 있던 공황장애 때문이라는 평가가 많다. 본인도 운전석에 앉았을 때 서서히 목을 조르는 듯한 느낌이라고 말한 걸 보면 무더운 날씨+처음 와보는 장소+갑갑하고 시야도 좁은 운전석 등등 딱 공황장애가 오기 좋은 환경들이다.[5] 시트 때문에 고생하고 있는 형돈 바로 옆의 홍철은 적응을 하다 못해 아예 선풍기까지 틀어 놓고 시트에 누워 오침을 즐기는 모습으로 완벽한 대비를 보였다.[6] 차가 뒤집어질 경우 머리가 지면에 닿아 중상을 입을 수 있기 때문에 앉은키가 큰 사람은 당시 규정 상 오픈 휠 출전이 안 된다. 참고로 2014년 F1 드라이버인 쥘 비앙키가 일본 GP 도중 발생한 사고로 사망한 이후 FIA 주도로 만들어낸 안전장치 헤일로 덕분에 안전이 확보되어 현시점에선 정준하도 포뮬러 차량 운전이 가능하다.[7] 사실 이들의 도전이 끝났을 때 바로 형 라인인 유재석, 박명수, 정준하도 이어서 도전하기로 되어있었으나 흐지부지 됐다. 만약 유재석, 박명수, 정준하가 도전했다면 정준하도 이들과 같이 다이어트, 박명수는 금연, 유재석은 영어공부 정도가 도전 목표가 됐을 가능성이 높다. 정준하의 경우 특집과는 별개로 WM7을 위해 따로 13kg 가량을 감량했다.[8] 하지만 이는 일밤 촬영 중에 걸렸다고 한다. 당시 옆에는 김용만이 있었는데 촬영하고 있는 카메라맨이 무한도전 팀이라고 못을 박았다.[9] 마스코트 지방이로 유명한 365mc에서 촬영에 협조했다.[10] 신체 발달 셋 중 최하, 생활 습관 위험, 내장 지방 기준치 한참 초과. 병원 직원도 수술해야 할 수준이라고 충고했고, 정형돈은 길의 내장지방 그래프를 보고 "야 너 순대냐?"라며 드립까지 쳤다.[11] 이후 후속특집인 스피드레이서 가 방영되었고 이때 포뮬러가 아닌 아반떼,벨로스터등 양산차량 경주인 KSF로 바뀌었다 해당클래스에 스톡카,GT클래스도 있지만 멤버들은 일반인이라 아마급인 아반떼,벨로스터클래스로 출전[12] 판사 출신 변호사로 재판장 역할을 맡았다.[13] 이 때 나오는 악마의 목소리를 김기현 성우가 맡았다.[14] 악마의 유혹을 위해 3월 31일이 아닌 하루 전날인 3월 30일에 열었다.[15] 사실 마사지용 초콜릿은 카카오 성분이 대부분이고 당분은 거의 없으니 먹는다고 살이 찌는 건 아니지만, 초콜릿 향으로도 노홍철의 기를 빼기엔 충분했다.[16] 이 장면은 당시에는 넘어갔지만, 훗날 유튜브에서는 스테로이드맞은 로이더들이랑 복근 비교를 한다고 까이는 감도 있다. 실제로 섭외한 보디빌더들은 복근 밑에 내장비대 현상(일명 팔룸보이즘)이 노골적으로 보여서 약투 운동이전에 얼마나 로이더에 문외한이었나를 볼 수 있는 장면.[17] 다만 심사위원이 로이더였던 것과는 별개로 노홍철의 복근은 좀 많이 불안정했다. 기침을 하고 힘을 억지로 줘야 보이고 안 그러면 아직 다 빼지 못한 뱃살이 부각되기까지 했다. 그래도 꽤 살이 빠져서 몸은 좋아진 편이었던 것은 맞고, 심사위원 중 한 명은 그럭저럭 복근이 보인다며 합격으로 인정했다. 사실 3개월 기간 동안 이정도로 몸을 만들었으면 약간 아쉽긴 해도 제법 성실하게 운동을 해온 것은 맞다. 복근은 만드는 것이 아니라 드러내는 것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체지방 관리가 중요한데, 선명한 복근을 만드려면 성인 남성 기준으로 못해도 10%까지는 체지방률을 낮춰야 한다. 다이어트 시작 전 노홍철의 체지방률은 약 19%였으니 3개월 내에 복근을 만드는 건 무리였던 셈. 더욱이 단 음식을 좋아하는 노홍철에게는 더더욱 힘든 목표였다.[18] 약 10.9kg을 감량하면서 비교적 여유있게 성공했다. 사실 이틀전 최종 점검때도 이미 9.8Kg나 뺀 상황이어서 성공이 아주 유력한 상황이긴 했다.[19] 1차 측정에서는 82.5kg으로 400g을 초과했는데 정형돈이 팬티와 팔토시를 한 무게때문이라고 주장을 해서 2차 측정을 했다. 그래서 가림막을 한 채 팬티와 팔토시도 모두 벗은 나체상태로 측정했지만 그래도 82.25kg으로 조금 모자랐다.[20] 그런데 2월 촬영 당시 벌금 걸고 중간 점검을 하기 전에도 음식에 아예 손을 대지 않았다면 굳이 유예 시간을 내지 않아도 목표 달성에 성공 할 수도 있었다.[21] 덧붙여 이 방영 분의 주제인 "은혜 갚은 제비"의 뜻을 방영 분 내용 중에 언급한 게 없어서 이런 의혹에 불을 붙였다.[22] 무한도전 에피소드 중 PD가 정치적 메시지가 들어갔다고 밝힌 건 공식적으론 좀비 특집 정도다.[23] 이때 노홍철은 말도 안된다고 했으나 다른 멤버들이 처음부터 이겼으면 본인을 골랐어야 했다며 반박하고, 마지막 가위바위보에서 박명수가 또 이겨서 자신을 선택했다.[24] 완뽕(국물까지 남김없이 다 먹어야 한다는 뜻이다.)이라는 말이 이 때 나왔으며, 멤버들 중 유일한 경험자인 정준하가 으름장을 놓았다. 왕게임에서 준하의 제안으로 신길동에 도착해서 홍철없는 홍철팀이 2인 1조로 도전했으나 국물만 남겨진 상황에서 극도의 강한 매운맛을 이기지 못하고 단 한 팀도 완뽕에 성공하지 못하고 결국 좌절하고 말았다. 박명수도 번외로 한 그릇을 시켰는데 처음에는 국물만 남겨진 것을 보며 제안했던 정준하를 질타했지만 곧 매운 맛을 느끼며 정준하의 제안이 옳았음을 깨닫고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25] 하하 초기 시절의 새 자세로 얼음땡을 하는 것이었는데 아무도 해주지 않았다...[26] 등짝이 매우 찰져 일어선 상태에서 등에 던져도 패가 붙었다. 이 게임은 명수팀 승리.[27] 명수팀과 재석팀 둘 다 걸렸으나 성공했다.[28] 다만 이것도 반박을 하자면 비슷한 시간대의 1박 2일에서도 2008년에 고스톱을 친 적이 있다. 외연도 편에서 저녁 재료를 걸고 친 것.[29] 거기다 방송 내용도 고스톱보단, 찰 지게 패를 던지는 멤버들과 그때마다 고통 받는 정준하의 등짝(...)이 메인이었다.[30] 평소 그 시간대에(가족시간대) 프로그램들에선 고스톱을 소재로 개그를 해도 잠깐 지나가는 개그인 경우가 많았고, 굳이 비중 있는 장면으로까지 쓰진 않았다. 신정환의 도박사건(9월 5일)이 터지기 전인 9월 2일에 촬영된 점으로 볼 때 촬영 당시엔 그다지 문제될 거란 예상은 못했던 듯 하다. 다만 도박 사건이 터진 후 편집 과정에서 어느 정도 예상했을 텐데도 굳이 논란의 빌미를 만들 필요가 있었는진 의문. 방송에 활용할만한 분량이 모자랐던 건지.[31] 무도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던 A모 매체의 최모 기자의 시청자들 뿔났다는 제목의 기사를 깐 것으로 보이지만 하필이면 한창 논란이 일고 있었던 때라... 시기와는 별도로 김태호의 반응도 문제였고.[32] 사행성에 대한 기사를 작성한 신문사가 이후 전화 인터뷰를 시도했다.[33] 박명수 사인으로 X닦으라고 하는 정형돈의 발언이라든지, 초반 2행시에서 박명수의 '옆집 누나가 낙화암에서 뛰어내렸어요'(...) 드립 등[34] 농구, TV는 사랑을 싣고 패러디, 리얼 결혼식, 일본 특집, 추억의 놀이 대항전, 철인 3종경기, 로봇 태권V 제작(...) 등[35] 추억의 놀이 대항전 아이디어를 내는 중 정준하가 구슬치기 이야기를 할 때 하하가 "나랑 깐부 먹자!" 하는 장면이 있다. 오징어 게임의 흥행 덕분에 11년 만에 발굴되었으며, 이걸 본 사람들 반응은 역시 없는 게 없는 무도 유니버스라고 감탄했다고.[36] 심지어 무도갤러들 조차 "이건 망했다"며 쉴드를 포기했으며, 김태호 PD도 이를 인정했다.[37] 대표적으로 TV 사랑의 싣고, 일본 특집. 추억의 놀이 대항전은 명수는 12살. 길이의 아이디어 후보 중 하나였던 무도 캐릭터로 만화 만들기는 2016년 릴레이 툰으로 제작되었다.[38] Dynamic Korea의 패러디로 추정된다. Dynamic Korea는 2002 한일 월드컵을 계기로 국가 이미지의 긍정적인 인식 전환을 위한 2001년 슬로건 공모에서 당선된 문구.[39] 박명수와 길은 탈춤, 정준하와 하하는 북청사자놀음, 노홍철과 유재석, 정형돈은 풍물놀이패에 들어갔다.[40] 2초 가량의 트레이닝 영상으로서 방송 중간에 나갈 예정이었으나 통편집 됨.
이 문서는 개편이 필요합니다.
이 문서는 리그베다 위키에서의 수정 로그 삭제로 인해 과거 로그의 일부가 누락된 문서이며, 문서 개편이 필요합니다. 이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은 나무위키:로그 누락 문서를 참고해주세요. 또한 이 틀을 다실 때는, 문서 최상단 혹은 최하단에
이 문서는 리그베다 위키에서의 수정 로그 삭제로 인해 과거 로그의 일부가 누락된 문서이며, 문서 개편이 필요합니다. 이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은 나무위키:로그 누락 문서를 참고해주세요. 또한 이 틀을 다실 때는, 문서 최상단 혹은 최하단에
[[분류:로그 누락 문서]]
를 달아 주세요.로그가 누락된 본 문서의 기여자 내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28 12:42:26에 나무위키 무한도전/2010년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