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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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릭터 · 밈 ]


무한도전의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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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한국방송대상 심볼.svg 한국방송대상
대상
정도전
(2014년)
무한도전
(2015년)
[1]
SBS
(2016년)[2]
연예/오락 부문 작품상
해피선데이
(2008년)
무한도전
(2009년)
개그콘서트
(2010년)
예능 버라이어티 부문 작품상
1박 2일[시즌3]
(2016년)
무한도전
(2017년)
집사부일체
(2018년)

파일:백상예술대상_로고.png
파일:구백예대 트로피.png
TV부문 예능 작품상
미녀들의 수다
(2007년)
무한도전
(2008년)
개그콘서트
(2009년)

한국PD대상
예능부문 작품상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2007년)
무한도전
(2008년)
1박 2일[시즌1]
(2009년)
1박 2일[시즌1]
(2009년)
무한도전
(2010년)
남자의 자격
(2011년)
자기야 - 백년손님
(2014년)
무한도전
(2015년)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2016년)


파일:MBC 로고.svg 방송연예대상
올해의 예능 프로그램상
느낌표
(2004년)
무한도전
(2006년~2009년)
세바퀴
(2010년)
라디오 스타
(2012년)
무한도전
(2013년~2016년)
나 혼자 산다
(2017년)
[1] 당시 멤버이던 유재석, 정형돈, 박명수, 정준하, 하하, 황광희, 그리고 김태호 PD[2] '한국형 전투기 KF-X 핵심기술 이전 거부' 단독보도 및 KF-X 사업 관련 연속보도[시즌3] [시즌1] A B

파일:무한도전 로고.svg무한도전
Infinite Challenge
||
방송 기간
및 횟수
2005년 4월 23일 ~ 2005년 10월 22일 | 26부작
2005년 10월 29일 ~ 2006년 4월 29일 | 26부작
3기
2006년 5월 6일 ~ 2018년 3월 31일 | 563부작
총합
4,725일[1] | 615부작[2][3]
시청 등급파일:MBC12.png 12세 이상 시청가[4]
방송 시간토요일 오후 6시 25분 ~ 오후 7시 55분
채널문화방송
제작문화방송
출연진[5]유재석, 박명수, 정준하, 하하, 양세형, 조세호
이전 출연진[6]전진, , 노홍철, 정형돈, 황광희
제작진기획권석(1기)김태호(2기~3기)[7][8]
역대 연출김태호, 전성호, 제영재, 조욱형, 노시용, 김준현, 김민종, 박창훈, 강성아, 손창우, 박진경, 황지영[9] , 임경식, 김선영, 정다히, 오미경, 이윤화 外
역대
조연출
김준현, 박진경, 이재석, 강성아, 장승민, 김지우, 손수정, 장우성, 한승훈, 박현석, 전재욱, 소인지, 이정아 外
작가
대본
이언주
구성
김란주, 이유정, 김정미, 장종현, 최은솔, 최혜진, 김수경, 송인영
제작 여부
1회~134회 (2006년 5월 6일~2008년 12월 13일)[10]

1회~236회 (2006년 5월 6일~2011년 2월 12일)[11]

237회~563회 (2011년 2월 19일~2018년 3월 31일)[12]
추가 채널MBC M, ENA PLAY, ENA DRAMA, iHQ
스트리밍
Wavve

|
Coupang Play

링크[13]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 파일:네이버TV 아이콘.svg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14]

1. 개요
2. 특징과 영향력
3. 인기와 위상
4. 쇠퇴기
5. 종영
5.1. 시즌 2 (무산)
6. 시대적 변화를 볼 수 있는 프로그램
7.1. 오프닝 자리 배치
7.2. 역대 무한도전 고정멤버표
12. 방영 목록
15. 여담
15.1. 재방영
16. 중국판 무한도전
17. 관련 문서
18. 둘러보기




1. 개요[편집]


파일:무도2006.jpg
파일:무도2008.jpg
왼쪽부터 노홍철, 정준하, 하하, 박명수, 유재석, 정형돈
1회부터 함께한 6인 체제 시절의 원년 멤버들[15]이다.
왼쪽부터 정준하, 정형돈, 전진, 유재석, 박명수, 노홍철
하하 입대 이후 전진 합류 6인 체제[16]
파일:무도2011.jpg
파일:external/img.tenasia.hankyung.com/2015051311354514242-540x336.jpg
[17] 왼쪽부터 정형돈, , 하하, 노홍철, 유재석, 정준하, 박명수
무한도전의 7인 체제[18]멤버들이다.
왼쪽부터 정준하, 하하, 유재석, 박명수, 광희, 정형돈
길, 노홍철 하차 이후 광희 합류 6인 체제이다.[19]
파일:무한도전 전 출연진,스탭 사진.jpg
왼쪽부터 정준하, 조세호, 하하, 박명수, 유재석, 양세형
▲ 종영을 기념하며 촬영한 멤버들과 제작진의 마지막 단체 사진이다.[20]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무한~ 도전![21]

무한도전2005년부터 2018년까지 대한민국 MBC에서 방영되었던 MBC 간판 예능 프로그램이었다.

2005년 4월 23일부터 무모한 도전이라는 프로그램으로 방송을 시작했으며 '무리한 도전'을 거쳐[22] 2006년 5월 6일 무한도전으로 재탄생했다. 이후 2016년 10월 1일 500회 방영 돌파, 2018년 3월 31일 563회 방송을 끝으로 13년 간 이어졌던 긴 대장정에 마침표를 찍었다.[23]

2. 특징과 영향력[편집]


프로그램의 제목대로 도전을 메인으로 내세웠다. 그래서 특집들을 보면 무언가에 도전하는 내용들이 상당히 많았다.

무한도전의 성공 요인은 기존 리얼 버라이어티와는 다르게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고정 멤버들이 서로 부딪히면서 생기는 예측 불가한 상황들이다. 변칙적이면서도 현실적인 멤버들의 모습은 정해진 틀 안에서 진행하고 게임하던 기존의 예능 프로그램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또한 육체적인 혹사만을 강조하던 무한도전 이전의 초창기 리얼 버라이어티와도 전혀 다른 것이었다. 또한 매주 다양한 포맷으로 변화하는 모습은 무한도전만의 예능적 정체성을 가지게 했으며 앞서 언급한 현실적인 캐릭터쇼와 호환을 일으키며 단숨에 당대 최고 인기 예능 프로그램으로 등극하고 대한민국 예능 프로그램계의 판도를 완전히 뒤바꿔버렸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각 인물들에게 카메라를 배치해 캐릭터를 살리는 영상 기법을 처음 시도했고 대한민국에서 캐릭터 예능 프로그램이라는 컨셉 자체도 무한도전이 시초이며 또한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장르 자체도 무한도전이 최초로 내세웠다. 또한 기존에 예능들은 항상 출연자들만이 카메라에 등장했지만 무한도전은 매니저, 코디 심지어 PD까지 서슴없이 출연하는 등 예능계의 센세이션을 일으켰으며 이후로 너나 할 거 없이 예능에서 출연자만이 아닌 매니저, 코디, PD들이 나오는 등 예능계의 발전을 일궈냈다.

무한도전 이전에도 '대단한 도전', '천하제일 외인구단', '감개무량'과 같은 초창기 리얼 버라이어티는 분명 존재했고 각자의 인기도 상당했었다. 하지만 순간적인 인기에 불과했으며 당시 예능계의 주류 스튜디오 게임쇼, 토크쇼의 아성을 무너뜨리지는 못했다. 무한도전 역시 초창기 무모한 도전 포맷까지는 기존의 리얼 버라이어티의 실패를 답습해가는 모습을 보였으나 퀴즈의 달인 아하 포맷을 기점으로 수시로 바뀌어가던 멤버들도 고정이 되기 시작하며 전성기를 맞이한다. 리얼 버라이어티 쇼 성격의 무한도전이 대박을 터트리자 많은 방송사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리얼 버라이어티 장르의 예능 프로그램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사실상 대한민국 예능계의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장르를 정착시킨 건 무한도전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24]


이전의 많은 예능 프로그램들은 제작진들이 준비해온 대사나 대본을 스튜디오에 모인 출연자들이 리허설을 통해 숙지한 다음 그대로 녹화를 진행하는 방식으로 제작됐지만, 무한도전의 흥행 이후로는 프로그램의 출연자들이 개인적인 역량을 발휘해 프로그램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면서 제작진들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형식의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들이 대폭 늘어난 것이다. 무한도전 식목일 특집이나 무한도전 좀비 특집 28년 후, 2010년 달력 특집에서 엘리베이터 고장났다고 스태프들이 단체로 번지 점프를 하는 장면까지 보면 대본이 없다는 것을 특히 알 수 있다. 그리고 이후 리얼 버라이어티 장르는 리얼입대 프로젝트 진짜 사나이아빠! 어디가?, 나 혼자 산다, 미운 우리 새끼, 전지적 참견 시점 등 제작진의 개입이 더 최소화된 '관찰 예능' 형식으로 진화하게 되는 등[25] 대한민국 예능계에 엄청난 변화와 영향력을 주게 되는데, 단순히 TV 예능 프로그램과 같은 00년대 ~ 10년대의 레거시 미디어 뿐만 아니라 20년대 이후의 인터넷 방송, OTT 예능, 웹예능까지 전성기 시절 무한도전의 컨셉과 코너를 여전히 벤치마킹하고 있을 정도다.

또한 리얼 버라이어티의 유행 이외에도 2010년대 이후, 한국 예능의 예술주의적 접근과 다양한 장르 발전도 무한도전의 역할이 매우 컸다. 대부분의 예능 프로그램들은 출범 후 불안한 형태에서 자리가 잡히면 포맷을 유지, 보수, 유지, 보수하는 형식으로 국소적인 변화를 추구했지만 무한도전은 이름 그대로 매 회 전혀 다른 특집으로 예능의 보수적 전통의 한계를 돌파했다. 추격전, 쿡방, 다큐, 드라마, 음악, 스포츠, 교육 등 셀 수 없이 많은 분야들을 리얼 버라이어티의 형식 아래서 끊임없이 선보였고, 대중적으로도 대성공을 이루었다.

이렇게 무한도전의 선구적인 시도로 후발 예능들은 마음껏 장르 탐구와 조합을 시도할 수 있었고, 2010년대를 주도한 예능들(1박 2일[26], 아빠 어디가, 우리동네 예체능, 진짜 사나이, 나영석 예능, 썰전, 런닝맨, 나 혼자 산다, 냉장고를 부탁해 등)에 큰 영향을 주어 사실상 장르적 모태가 되며 예능 프로그램이 2010년대 가장 성공한 방송 분야가 되는 데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수많은 대중들과 전문가들이 언급하는 문장인 대한민국 예능은 무한도전 이전과 무한도전 이후로 나뉜다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닌 것이다.

즉 단순한 예능이 아닌 이미 예능 그 이상이라는 평가와 기사가 있고 선구자이자 개척자라는 기사가 있을 정도이다. 쉽게 말해 예능의 정석을 하나 쓴 셈.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농반진반으로 대한민국 최후의 예능 소리를 듣기도 한다. 무한도전 종영 이후 마땅히 그 뒤를 이을 만한 위상의 프로그램이 없는 상황이고, 비슷한 시기에 대한민국 예능이 서서히 쇠락의 길을 걸었기에[27] 여러모로 아쉬움과 비꼼을 담은 표현이다.[28] 이후 대한민국 방송계에 큰 변환점이 나타나지 않는 한 이것이 바뀔 여지가 보이지 않기에, 사실상 무한도전이나 비슷한 위상을 자랑했던 1박 2일과 같은 프로그램은 다시는 등장하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물론 가장 큰 원인으로는 텔레비전이라는 물건 자체가 아예 대중매체의 중심에서 밀려난 것과 예전처럼 출연진을 혹사시키면 프로불편러들이 나서서 설치기 때문인 것도 있다.

즉 정리하자면 최초이자 최고이자 최후마저도 되는 예능이다.

3. 인기와 위상[편집]


파일:무한도전 연말정산 뒤끝공제.jpg

한국 예능무한도전 이전과 무한도전 이후로 나뉜다.

김성원 작가의 평가[29]

명실상부 2000년대 중후반~2010년대 초중반을 대표하는 MBC를 넘어 대한민국 최고의 예능이란 엄청난 인기를 장기간 지속했다. 이는 MBC 방송연예대상의 수상 기록으로 알아볼 수 있는데, 2006년부터 2016년까지 대상 7번,[30] 올해의 예능 프로그램상 8번, 최우수상 8번,[31] 우수상 4번,[32] 공로상 2번[33]까지 독보적인 기록이 있다.[34] 거기에 2007년에는 아예 팀원 6명 전원이 연예대상 '대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특히 2007~2010년에는 KBS의 국민예능 1박 2일의 전성기와 겹쳐서 토요일의 무한도전 / 일요일의 1박 2일이 각각 맡아 지상파 리얼 버라이어티의 황금기라고 불렸다.

다만 높은 위상에도 불구하고 2011년 2월 19일 방영분부터 뒤늦게 HD 방송으로 전환되었다. 무한도전은 야외에서도 촬영되지만 스튜디오에서도 촬영하는 프로그램이며 스튜디오 촬영 한정으로 뉴스 스튜디오, 드라마, 음악방송 촬영에 쓰이는 스튜디오 전용 카메라인 EFP 카메라를 사용했고, 야외촬영은 ENG 카메라 장비를 사용했다. 그런데 야외촬영 당시에 방송국에 장비가 얼마 없는 고가의 HD 장비를 사용했다가 장비가 파손되면 방송국 내부와 프로그램 모두 엄청난 타격이 있기 때문에 HD 방송에 비중을 낮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2010년 이전까지는 지상파 방송사에서 일부 다큐멘터리나 음악방송, 드라마를 한정으로만 HD 장비로 제작했지만 예능 프로그램이나 시사는 대부분이 HD 제작을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HD로 제작된 프로그램조차도 화질이 별로 안 좋았을뿐더러 크게 주목받은 프로그램도 많이 없었다.

그러다가 무한도전이나 1박 2일 같은 인기 예능 프로그램들이 HD 방송을 시작하자 지상파 방송 프로그램의 HD 방송의 비율은 폭발적으로 늘어나 지금에 이르게 된다.[35] 아무튼 무한도전은 2010년 말 미드나잇 서바이벌과 크리스마스 싱글파티를 HD로 시험 방송을 채택하며[36] HD 방송의 전환을 준비하고 시기상 새해인 2011년 1월 1일 연말정산 뒤끝공제 편부터 본격적으로 HD 방송 체제로 전환할 계획이었지만 무슨 이유인지 계획이 취소되면서 연말정산 뒤끝공제는 4:3 비율 SD로 제작되었다.

그 후 2월 12일 동계올림픽 편까지 이어지다가 2011년 2월 19일 방영분부터 HD 방송으로 완전히 전환되어 유재석이 "드디어 HD 방송이 시작되었다!"라고 오프닝에서 소개하면서 HD 방송의 시작을 선포했다. 그리고 4:3 비율의 SD로 제작되던 시절보다 훨씬 방송이 대형화되었고 이전의 프로그램의 주된 컨셉이었던 B급 컨셉은 완전히 사라졌다.

또한 종영 이후에도 인기는 여전하다. OTT 플랫폼 왓챠에서 최근 한달간 시청률 상위 5% 작품이며 왓챠피디아 회원들이 가장 보고 싶어하는 상위 1% 작품으로 랭크되어 있다. 지상파 다시보기 서비스를 운영하는 웨이브(wavve)에서도 예능 차트에서 꾸준히 1~3위권을 유지 중이다. 2020년대에 들어서도 무야호, 북극곰은 사람을 찢어, 없는 게 없는 무한도전을 비롯한 밈들이 생성되면서 여전히 트렌드를 이끌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무한도전이 도전한 스포츠 종목이 큰 관심을 얻게 된 사례도 있다. 대표적으로 봅슬레이는 무한도전이 도전할 때만 해도 열악한 환경으로 타국에 가서 훈련하는 신세였는데 무한도전이 도전한 이후 감명 받아 선수로 들어온 사람도 있고 2018년 시점으로 전용 훈련장이 국내에 생기는 등[37] 비인기 스포츠 종목이 무한도전의 버프를 받아 잘 나가게 되는 사례가 있다. 이외에도 무한도전 조정 특집이나 레슬링 특집 WM7 등을 들 수도 있다.
파일:무한도전대한민국최고의프로그램.png
2013년부터 한국갤럽에서 1달에 1회씩 조사하기 시작한 여론조사 '한국인이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에서 조사가 시작된 2013년 1월부터 무한도전이 종영한 2018년 3월까지 총 61회 조사 중 무려 48회 1위를 차지했고, 2014년 10월부터 2016년 12월까지 27개월 연속 1위를 하기도 하였으며, 한국 갤럽의 조사이래 역대 최고 기록인 16.0% 포함 무려 31번이나 10.0%를 돌파한 전무후무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이 사실이 더욱 놀라운 것은 무한도전의 인기가 절정이었던 시기는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였고, 그 뒤로는 조금씩 하락세였다는 것. 전성기가 지난 프로그램이 5년 내내 대한민국 최고의 TV 프로그램이었다는 얘기다. 무한도전이 시작된 2000년대 중반부터 이 조사가 있었다면 100회 이상의 1위를 기록했을 수도 있다. 다른 프로그램에게 1위를 빼앗기는 일이 있지만 대부분은 해당 연도 최고 인기 드라마에 밀리는 경우고, 2016년까지는 다른 예능 프로그램에 밀리는 일은 거의 없었다.[38] 2015년 광복 70주년 기념으로 한국갤럽에서 '광복 이후 최고의 TV 프로그램'이라는 조사를 진행했는데, 2위에 랭크된 전원일기와는 거의 2배 차이로 1위를 했다.

또 2006년 10월 7일 방송부터 2017년 1월 21일 방송까지 통틀어서 무한도전 응원단 7부, 무한도전 스피드 레이서 4부를 제외하고 시청률이 10% 아래로 내려간 적이 없을 정도로 꾸준하게 인기를 유지했다. 무한도전 응원단은 월드컵 성적 폭망이라는 프로그램 외적인 요인으로 인해 뭘 어떻게 해도 도저히 살릴 수 없는 상황임에도 월드컵이란 특수성 때문에 억지로 분량을 채워서 방송해야 했기에, 사실상 10년 넘게 10% 이상을 유지했었던 것이다.

또한 인디 가수, 반짝 히트하고 침체기에 빠진 연예인, 오래 활동했으나 아는 사람만 아는 연예인, 중고 신인 등이 무한도전에 얼굴을 비추면 순식간에 큰 관심을 얻게 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정재형, 10CM, 장미여관, 유재환, 스컬, 혁오, 데프콘, 김정남이 그 예다. 10CM와 장미여관, 혁오는 인디 가수라 인지도가 그저 그랬고 정재형과 스컬, 데프콘, 김정남은 오래 활동했지만 아는 사람만 아는 가수고 유재환은 연예인도 아니었다. 그러나 이들 모두 무한도전을 통해 얼굴을 알린 후 폭발적인 인지도 상승을 경험했다.

MBC 내에서 무한도전의 위치를 보여주는 사례로, 2016년에 능력자들에서 MBC 예능 조직도가 공개됐는데 무한도전 제작팀은 단독으로 '부' 급의 대우를 받는 것이 알려졌다. MBC 예능은 가장 위의 예능 본부장 아래에 예능 1, 2'국'이 있고, 각 국 산하에 3~4개의 '부'가 있으며, 그 '부' 하나가 적게는 하나에서 많으면 3~4개의 예능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구조인데, 무한도전은 '부'급으로 취급되는 '무한도전 팀'이란 명칭으로 예능 2국 바로 밑에 단독으로 위치한다. 참고로 '무한도전 팀'과 조직도 상으로 동급에 위치하는 '기획 제작부' 산하엔 쇼! 음악중심, 마이 리틀 텔레비전, 듀엣가요제 제작팀에 신규 프로그램 개발팀까지 묶여 있다. 즉 무한도전 팀은 거의 하나의 부서로 취급되며, 김태호 PD 역시 부장급 대우를 받는다. 타 예능계 프로그램이 특정 부서 산하에 있는 것과 달리 아예 하나의 독립된 부서 대우를 받는다는 것. 이러한 구조상 현재 김태호 PD가 CP의 직위에 기획자로 스탭 롤 앞에 나와도 여전히 무한도전의 편집과 제작에 관여하는 것이다. 2017년 12월 13일 MBC의 조직 및 인사개편이 이뤄지면서 김태호 PD가 예능본부[39] 예능 5부장으로 승진했는데, 무한도전의 연출로 부장 승진을 미루고 있던 김태호 PD의 승진을 더는 미룰 수 없어 무한도전 제작팀이 그대로 예능 5부로 승격된 것이다.

이러한 무한도전의 위상을 반영한 MBC 내에서는 예능국에 신입 PD가 오면 이유 불문하고 첫 발령지를 무한도전 팀으로 해서 예능 제작을 익히게 하는 것이 관례였다. 한국 최고의 예능 프로그램에 가서 제대로 배우라는 의미였다. 이런 시스템 덕에 이후 MBC에서 스타급 PD 반열에 오른 사람 중에는 무한도전을 거쳐가지 않은 사람을 찾는 것이 오히려 어렵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마이 리틀 텔레비전으로 유명해진 박진경 PD[40], 나 혼자 산다를 연출했던 황지영 PD 등이 있다.

방송 기간 내내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의 관심 대상이었고 어지간한 특집 편은 전부 인터넷 게시물로 만들어져서 돌아다녔다. 또한 심의 등으로 정부 기관도 주시하는 프로그램이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가 사회 공익에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들을 박살내고 연출진을 아이스링크장으로 보내며 방송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무한도전도 예외가 되지는 않았다. 당시 낙하산 사장은 김태호 PD를 해고하고, 무한도전을 외주업체 제작으로 전환하려고 했다가 김태호 PD 없이는 무한도전이 이전만큼의 완성도와 재미를 기대할 수 없다는 의견이 나오자 아예 무한도전을 폐지하려고 한 것이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이 시기 포털사이트에 김재철을 치면 김재철 암살이라는 단어가 연관검색어로 뜰 정도로 격앙되었다. 이미 2010 MBC 방송연예대상 조작 논란 당시 예능 프로그램 멘트할 때 자사 예능국의 예산을 책임지는 무한도전만 쏙 빼놓고 말하는 등 애초에 김재철이 어떻게 무한도전을 인식하는지는 세간의 모두가 알고 있었다.

이처럼 무한도전만큼은 정부가 부술 수 없을 정도로 위상이 강했던 점을 고려해 이명박 정부는 정책을 바꿔 정책 홍보용으로 무한도전을 사용했다. 우선 김태호 PD를 건드리지 못하자 주변 인물들을 죄다 아이스링크장을 비롯한 비제작부서로 좌천시켰다.[41] 반면에 김태호 PD에게는 정책 홍보 프로그램을 만드라고 강요했다. 대표적으로 12월에 방영된 나비효과(도로명 주소 홍보)와 뉴욕상륙작전(한식의 세계화 광고)이 이에 해당한다. 훗날 박근혜 정부는 아예 창조경제 특집을 만들라고 1년 동안 강요했으나 이 때 김태호 PD는 할 수 없다고 끝까지 버텼다.

여담으로 뉴욕상륙작전 당시 무한도전은 계속 제작비가 깎이고 간만에 정책 홍보 프로그램으로 뉴욕 출장 기회를 얻자 비맞추고(악마는 구리다를 입는다), 추격전(갱스오브뉴욕), 달력 촬영을 뉴욕상륙작전과 병행해서 촬영하는 강행군을 펼쳐 역대 특집 중 촬영하기 상당히 힘들었던 특집으로 남았다. 4박 5일 동안 무려 6주치 분량을 촬영해야 할 정도로 빡빡하게 움직였다. 당시 하루에 2시간씩 자고 남은 시간은 모두 촬영했을 정도였다. 계단에서 졸고 있는 스태프를 본 유재석이 껴안고 눈물을 흘렸으며, 유재석이 김태호 PD에게 이건 너무한 거 아니냐고 했을 정도였다. 무한도전 쉼표 특집에서도 정말 힘들었다고 정형돈이 회고할 정도.영상

이렇듯 갈등이 지속되자 타 프로그램은 그냥 넘길만한 사소한 문제도 끊임없이 지적받는 것이 일상이며, 유독 무한도전에는 더욱 엄격한 잣대가 적용되었다.

그러자 무한상사에서 2012년 공영방송 총파업 당시 논란의 당사자인 배현진을 초청해 나쁜 말 고치기 특강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대놓고 방통위를 풍자했다. 박명수는 배현진에게 "데스크에만 계시지 마시고 현장에서 보세요 좀!"이라며 일격을 날렸으며, 이날 가발 쓴 정준하는 애드립이 폭발해 욕을 순화한다는 명목으로 모자라지만 착한친구야, 키스가 나빠요? 키스가 나쁘냐고요 그러면 뽀뽀뽀 없애! 뽀뽀뽀없애라고, 아파하지 말라고~라며 방통위에게 일격을 날렸다.

또한 무한도전 스피드 특집에서 방통위는 "전문가의 소견에 따라 안전하게 촬영되었습니다' 나 '절대 따라하지 마시오"등의 자막을 넣지 않았다고 징계에 회부했다. 방통위가 징계한 그 특집은 휴스턴 국제 영화제 TV 예능부문 은상을 수상했다.[42]

이외에도 2010 MBC 방송연예대상 조작 논란의 최대 피해자였으며, 2011년에도 쇼/버라이어티 부문 남자 최우수상(유재석)과 시청자 투표로 선정되는 베스트 커플상(박명수 & 정준하) 등 지난해와 똑같이 트로피 2개에 그치고 정형돈은 수상조차 하지 못하는 등 계속해서 푸대접이 지속되었다. 이에 그 성인군자인 유재석조차도 내년에는 방통위에 계신 분들도 웃길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뼈있는 소감을 날렸으며, 노홍철8주년 특집 무한상사에서 "우리는 잘하고 있어요. 저희는 잘하고 있는데, 윗물이 이런 거야."라며 저격했다. 그리고 모든 인기 프로그램들의 숙명인 극성 팬층도 등장했다.

종영 이후에도 wavve에서 가장 인기 있는 예능 순위에서 계속 등장하며 여전한 인기를 보여주고 있다. 출처

종합하자면 무한도전은 대한민국 예능업계를 이끄는 대표자였음에도 계속해서 외부의 공격을 많이 받아 꼬이기 시작한 프로이다.


3.1. vs 1박 2일[편집]


유난히 다른 프로그램보다 비슷한 시기에 방송되었던 1박 2일과 비교가 많았다.

여행이라는 대중적 소재와 복불복이라는 알기 쉬운 게임을 주 컨셉으로 잡고 영유아층~중장년층까지 부담없이 볼 수 있는 편안한 편집을 내세워서 국민 예능이라고 불렸다. 주로 멤버와 캐릭터를 비추기보다는, 여행이라는 테마 자체에 중점을 두고 방송되었기에, 멤버나 캐릭터를 잘 모르고 중간부터 시청해도 이해하기 쉬웠다는 평이 많다. 장기 프로젝트도 거의 없었고. 강호동의 파워풀한 시골형 사투리 진행도 한몫했다.
결국 캐릭터와 멤버 한 명 한 명의 애정과 팬심이 원동력은 아니었기에, 시즌2로 넘어가면서 명성에 금이 많이 갔지만, 전성기 시절에는 폭넓은 시청자층을 확보하여 시청률 40~50%에 가까운 기록으로 당시 무한도전보다 압도적인 실적을 냈다.[43]

매주매주 다른 소재를 선택해 방송을 했고, 인터넷 최신 유행어와 패션을 도입했으며 발빠르게 당시 트랜드를 캐치하여 그때마다 소재를 유연하게 활용했다. 여기에 신조어를 바로바로 받아들이고 빠른 진행 및 센스있는 편집이 더해져서, 젊은 층의 절대적인 지지를 한 몸에 받게 되었다. 당시 1박 2일보다 시청률이 낮았고, 시청연령폭도 좁았지만, 젊은 시청층의 엄청난 골수 팬을 보유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연말정산 뒤끝공제 특집에서도 아이유가 언급했듯이 리모콘을 쥔 어른들이 인터넷 신조어와 젊은 감성으로 무장한 무한도전보다는 동시간대 스타킹을 선택해 젊은 층은 DVD로 내려받아 시청했기 때문이다. 또한 무한도전이 한창 전성기였던 2000년대 후반~2010년대 초중반[44]은 현재처럼 주 5일제 같은 제도들이 아직 순차적으로 실시되고 있었고, 무한도전의 주 시청연령층이었던 젊은 층은 토요일에 대부분이 놀러 나가는 경우가 많아서 상대적으로 1박 2일보다 시청률이 낮을 수밖에 없었다는 반론이 있다.
장기 프로젝트는 매주 챙겨보는 젊은 팬이 아니면 룰도 숙지하기 힘들고, 캐릭터나 멤버들의 기본배경을 잘 모르면 드립이해도 어려웠지만,[45] 반대로 그만큼 젊은 층에게 캐릭터 개개인의 팬덤과 노출빈도는 엄청나게 거대했다. 개개인의 캐릭터성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무한도전의 멤버 한 명 한 명이 빠져나갈 때마다 입은 타격이 어마어마했다는 것에서 증명된다. 이밖에도 유재석의 미려하고 스탠다드한 진행도 가점요소였다.
그래서 시청률이나 시청연령폭은 1박 2일보다 낮았으나, 무한도전은 젊은 팬덤의 팬심을 중심으로, 주요 멤버들이 빠진 2015년경까지 10년 가까이 장기적인 인기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후 스마트폰의 시대가 오고 TV보다는 유튜브나 OTT로 여러 컨텐츠를 접하게 되면서 젊은 층부터 중장년층까지 조회수나 화제성, 파급력에 큰 영향을 미치는 현재, 유튜브나 OTT 조회수가 시청연령폭이 넓은 1박 2일보다 오히려 무한도전이 훨씬 높게 나오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요약하면 1박 2일은 프로그램 자체의 대중성과 여행+복불복을 바탕으로 한 모두가 편하게 볼 수 있는 방송이 인기 요인이었다면, 무한도전은 캐릭터 한명한명의 캐릭터성과 매주 다른 소재나 젊은 층의 절대적인 수요가 인기 요소였다고 할 수 있다.

또한 1박 2일은 가인박명이라고 멤버들이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빠르게도 줄줄이 하차하며 전성기를 2년 반도 보내지 못했지만, 무한도전은 노홍철, 정형돈 등의 핵심 멤버들이 하차하는 2015년[46]까지는 여전한 인기를 자랑했기 때문에 대한민국 최정상급 예능이라는 자리를 '거의 10년 가까이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었다. 주로 10대~20대 소비자가 스트리밍이나 다시보기 등의 인터넷을 통해 보기 시작한 2010년대 이후부터는 TV 시청률 30%를 찍기도 했던 2000년대 후반에 비해서 시청률이 낮아지긴 했지만 보통은 10%대에 머물렀고 간간이 관심도가 높은 회차의 경우에 20%를 넘겼다.

양 프로그램을 대하는 방송사의 태도도 확연히 달랐다. KBS에서는 1박 2일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제작진에게 인센티브를 지급한 것은 물론이고, 1박 2일 촬영에 항공 촬영을 위한 KBS 소속 헬기 지원과 이동수단 복불복 차량으로 예능국장의 자가용(차종은 그랜저 XG)까지 내줬으니 말 다 했다. 그러나 무한도전은 2010 MBC 방송연예대상 조작 논란 당시 예능 프로그램 멘트할 때 자사 예능국의 예산을 책임지는 무한도전만 쏙 빼놓고 말하는 등 낙하산 사장이 어떻게 무한도전을 인식하는지는 세간의 모두가 알고 있었다.

이것으로도 모자라 낙하산 사장김태호 PD를 해고하고, 무한도전을 외주업체 제작으로 전환하려고 했다가 김태호 PD 없이는 무한도전이 이전만큼의 완성도와 재미를 기대할 수 없다는 의견이 나오자 아예 무한도전을 종영하려고 했다가 강력한 반발[47]에 휩싸여 계획을 포기하고 무한도전 스태프를 아이스링크장 등 비제작 부서로 좌천시킨 다음 김태호 PD에게는 정권 홍보 프로그램을 만들게 한다. 대표적으로 12월에 방영된 나비효과(도로명 주소 홍보)와 뉴욕상륙작전(한식의 세계화 광고)이 이에 해당한다. 훗날 박근혜 정부는 아예 창조경제 특집을 만들라고 1년 동안 강요했으나 이 때 김태호 PD는 할 수 없다고 끝까지 버텼다.

굳이 공통점을 찾자면 나영석 PD김태호 PD 둘 다 이명박 정부의 방송장악으로 인해 일어난 2012년 공영방송 총파업에 참여했다는 것 정도. 이 당시 2012년 공영방송 총파업에 참여한 유명한 기자로 박대기 기자가 있다. 둘의 차이점으로 나영석 PD는 2012년 공영방송 총파업 직후 KBS에 학을 떼고 이명한 PD[48] 등 본인의 동료가 즐비한 tvN으로 이적했지만, 김태호 PD는 이명박 정부의 방송장악 블랙리스트와 비슷한 MBC 블랙리스트 사태로 일어난 2017년 공영방송 총파업에서 한 번 더 파업에 참여한 뒤 놀면 뭐하니?를 마지막으로 2022년 MBC에서 물러났다.


4. 쇠퇴기[편집]


무한도전의 높은 인기와 위상은 2005년부터 2018년 종영 시까지 13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유지되었지만 종영 전 4년여간은 내부적으로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2014년 5월과 11월에 각각 노홍철이 음주운전으로 연이어 하차하고 2015년에는 정형돈공황장애로 출연을 중단하고 하차하면서 출연진 라인에 공백이 갑자기 늘어나게 된다.[49] 출연자 문제는 황광희가 군 입대로 하차한 뒤 양세형조세호가 정식으로 고정이 되면서 조금 누그러지긴 했지만 이들의 활약에 대한 평도 다소 갈린 편이었다. 족발당수와 미존개오로 날아오른 정형돈도, 슈퍼7 이후로 훌륭한 센터백 역할을 수행한 길도, 인성 문제가 꾸준히 언급되던 정준하도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들을 떨쳐내고 기량을 만개하는 데에 대략 3년이 걸렸다. 심지어 셋 모두 무한도전이 첫 예능도 아니었는데도 이 정도이니, 이미 오랫동안 형성된 관계와 구도에 끼어들어 적응을 하고, 다양한 포맷을 소화하고, 실수하거나 부진할 때마다 시청자 게시판의 폭격을 감당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양세형, 황광희에게는 분명히 어려운 미션이었다.

무한도전에서의 하차는 매우 비극적으로 이루어진 케이스라고 볼 수 있는게 일단 무한도전의 원년멤버 노홍철과 정형돈, 후에 합류한 전진과 길의 하차는 매우 씁쓸하게 마무리했기 때문이다. 노홍철은 무한도전의 핵심 멤버로서 전성기를 이끌었고, 막강한 존재감으로 시청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지만 음주운전으로 인해 별다른 마무리 인사도 못한 채 신기루처럼 증발하듯 하차했고, 정형돈은 공황장애로 잠시 출연을 중단했다가 후에 복귀하는 방향으로 합의를 본 상태에서 출연을 중단했지만 결국 2016년 여름에 영원히 하차했다. 전진은 소속사의 갑질로 무리한 스케줄을 소화한 탓에 무한도전에도 지장이 생기자 존재감이 급격히 줄어들었고, 결국 2009년 10월에 군입대로 하차해 방송에서 사라졌다. 길 역시 슈퍼 7사태 이후에 무한도전에서 출연을 중단하기로 결정했으나 시청자 및 멤버들의 만류에 출연 연장이 가까스로 합의되어 방송에 다시금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음주운전으로 인해 2014년 5월에 영원히 하차했다. 하하의 일시 하차나 황광희의 군입대로 인한 하차 시에는 나름 호화롭게 송별회를 열어주었으나 노홍철, 정형돈, 전진, 길의 하차는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이루어졌으며 노홍철을 제외한 이들은 이탈 이후로 더 이상 김태호 PD의 연출작에는 고정으로도 게스트로도 더 이상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었다.

무려 13년을 진행한 예능이기에 기존 멤버들의 고령화 문제도 심각했다. 무한도전이 종영을 했던 해인 2018년에 멤버들을 보면 20대 상꼬마로 처음 합류했던 막내 하하는 세 아이를 둔 40대 아버지가 되었고 처음 무도 시작할 때는 30대 중후반이었던 형님 라인업 박명수와 정준하 그리고 메인 MC인 유재석은 40대 후반 ~ 50대가 되었다. 유재석은 철저한 자기관리 덕분에 지금도 현역으로 날아다니고 있고 하하 또한 10년 동안 런닝맨에 고정 출연하며 매주 추격을 비롯한 다양한 게임을 하느라 체력이 아직도 유지되고 있겠지만 문제는 다른 멤버들이었다. 박명수는 간염 직후부터 점점 체력이 떨어지기 시작해 완전히 바닥을 쳤고 힘이라면 자신 있는 정준하조차도 나이가 들면서 힘은 여전하지만 지구력은 옛날만큼은 못 해졌다. 이것이 시청자들 눈에 체감이 되기 시작됐을 무렵에는 흥행 소재 중 하나였던 추격전조차도 많이 줄었고, 멤버들의 성장과 노력을 볼 수 있는 스포츠 장기 프로젝트 특집은 아예 시도조차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할 만한 소재들이 하나씩 하나씩 줄어들다 보니 소재 고갈 문제도 여전히 무한도전의 발목을 잡았다. 워낙 정해진 포맷없이 한 회 한 회 다른 아이템으로 구성되던 무한도전이니만큼 10년 넘게 프로그램이 지속되다 보니 자연스레 말기에는 할 만한 아이템이 남아있질 않았으며, 제작진도 지속적으로 소재 고갈을 호소해왔다. 소재 고갈이 어느 정도로 심각했는지 보여주는 일화가 있는데, 2022년 방영된 런닝맨의 600회 특집에서 지석진이 무한도전 팬들에게는 정말 죄송하지만 무한도전에 약간 불만인 게 매주 다른 소재로 10년을 넘게 해 무슨 프로그램을 해도 무한도전에서 이미 한 번 했던 포맷이 나온다는 한탄을 한 적 있다. # 그러니 새로운 걸 하려고 애쓰지 말고 그냥 런닝맨이 하면 런닝맨이 하는 거라고 받아들이자는 말을 했다.

그렇게 소재 고갈이 점점 심해지는 2017년 들어서 무난하게 단발성 게스트에만 의존하는 특집, 시간 때우기용 카페 오프닝 등이 눈에 띄게 많아졌고 편집과 자막 센스도 예전만 못했다. 일각에서는 이 부분에 대해 런닝맨의 전철을 밟아가는 게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다. 오히려 런닝맨은 20년도 후반부터 멤버들의 케미를 중점으로 이끌며 다시 전성기를 맞고 현존하는 최장수 리얼 버라이어티가 되었다.

게다가 무한도전 초기의 평균 이하 이미지는 시간이 지날수록 옅어지고, 특유의 깐족거림보다는 공익으로 치우쳤던 점도 문제였다. 또한 위에서 서술한 풍자성 아이템이 2017년 5월 19대 대선에서 압도적인 정권 교체와 함께 사라지고 무한도전도 하락세가 뚜렷해지자 2018년 3월 31일 종영을 선택해 결국 대한민국 풍자의 고질적인 문제점인 선택적 풍자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 점은 무한도전의 위상이 천지차이로 달라졌기 때문이다. 무한도전은 시작 당시 존폐가 위험하던 프로그램이었다. 초창기 당시엔 출연자들도 걱정하고 방송가에서도 "저거 바꿔야 되는 거 아니냐"고 할 정도로 시청률이 안 나왔기에 거꾸로 말해요 시절 20회 특집이라고 온갖 오버를 떨며 기념하기도 했다. MC인 유재석이 방송에서 "시청자 여러분 20회라고 무슨 특집이냐고 하실지 모르겠지만 저희에겐 큰 겁니다"라고 할 정도였다.

이걸 막아준 게 당시 2005년에 MBC 예능국장으로 취임했던 김영희 PD고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 유재석이 그를 인터뷰할 때 이 얘기가 나오기도 했다. 거기에 이미 정상급 MC던 유재석만 톱스타였을 뿐, 박명수는 과거 인기는 있었지만 비호감 이미지, 정준하는 노브레인 서바이벌 시절 단물이 다 빠졌으며, 정형돈은 개콘에서 버라이어티로 넘어와 적응 못했고, 하하는 인기도 예능감도 없었으며 노홍철은 문자 그대로 길거리 출신에 좀 특이한 걸로만 알려졌었다. 그런데 인기 없는 연예인들의 인기 없는 예능이던 무한도전이 봅슬레이나 조정 레슬링 등 말도 안 되는 도전들을 죄다 성공시키며 말 그대로 무한도전에 성공하며 주말예능의 압도적인 최강자가 되고, 멤버들 역시 예능이 점점 올라와 거물이 되어가는데 초창기 했던 것처럼 헝그리 정신이나, '평균 이하' 컨셉을 내세우면 공감을 사기 힘들다. 이를 증명하듯 무한도전 영상 댓글에서 종종 보이는 댓글 중 하나가 평균 이하를 내세웠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평균은 명함조차 내밀지 못할 정도의 도전들을 성공시켰다. 무한도전의 초창기를 보면 무한도전의 목표 중 하나가 일류 연예인 만들기 프로젝트였는데 무려 13년의 장기 프로젝트를 성공으로 만든 셈이 되었다.

5. 종영[편집]


2017년에는 10번 넘게 시청률이 10% 아래로 내려가 한 자릿수를 찍으면서 하락세를 보였다. 경쟁 프로인 불후의 명곡에게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빼앗기는 일도 잦아졌다. 무한도전 레전드는 7주 간의 휴식 기간 중 4주를 채우기 위해 마련된 특집이었음을 감안해도, 나머진 회차에 대해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이젠 시청률 한 자릿수까지 추락하고 있는 실정이다. # 화제성도 예외가 아니라 여러 순위에서 다른 예능 프로그램에게 다소 밀리는 모습이 보이고 있다. 2018년 1월 1주차 CPI 지수 4위.

사실 무한도전 종영설 자체는 계속해서 나오는 주제였다. 실제로 김태호 PD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무한도전을 종영할 거라는 이야기를 가끔 하고 다니는 편이었다. 2017년에도 고려대학교[50] 강연에서 내년쯤 종영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다는 발언을 한 적이 있었다. 2014년 김태호 PD무한도전의 10주년인 2015년에 콘서트를 하며 퇴장하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며 무한도전 종영설이 처음 나오기 시작했다. 이에 김태호 PD가 2015년 4월 10주년 특집까지는 큰 계획을 이미 만들어 놨으며, 새로운 도전에 대한 개인적 바람을 얘기한 것일 뿐 무한도전의 종영을 직접 언급한 것이 아니다고 말하면서 무마되었다.

그 뒤 2018년 조세호를 정식 영입하면서 좋은 반응을 얻어내서 1월 27일 방송분에서는 14.3%를 기록하며 어느 정도 회복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연초에 MBC에서 예능 시즌제 도입[51]을 발표하면서 최종적으로 3월 31일자로 종영했다.

그러다가 무한도전이 종영된 2018년 3월 31일, 김태호 PD의 하차가 확정된 가운데 MBC에서는 최행호 PD를 새로운 선장으로 삼아 후속 시즌을 제작한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하지만 기존 멤버들의 거취 문제로 난항을 빚었고, 결국 3월 13일 자로 MBC는 최행호 PD가 런칭할 프로그램은 무한도전의 후속작이 아닌 완전 별개의 프로그램이 될 것이며 이로써 무한도전이 종영되는 것은 아니라는 공식 입장을 내놓았다. 또한 김태호 PD 역시 인터뷰에서 "무한도전은 계속됩니다." 라는 언급으로 무한도전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내놓았다. 마지막에 유재석이 '방송 종료'라고 말하기도 했다. # 그리고 무한도전 13년의 토요일(2018년 4월 7일 ~ 2018년 4월 21일)에서 유재석이 마지막 대사로 다시 돌아오겠다고 한 적이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김태호 PD의 프로그램 하차와 이적이 무한도전의 최종 종영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음을 확인할 수 있다.

사실 김태호 PD의 무한도전 마지막 회 특집은 전 멤버들을 모두 불러 축제 형식으로 마무리를 하고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조세호의 템플스테이를 경험하고 자연스러운 것도 시간의 일부라고 생각해 어느 때와 똑같이 평범하게 마지막 녹화를 진행했다고 한다.

다만 김태호 PD 본인이 새로운 프로그램에 대한 목마름이 크다는 마음을 공공연히 드러내왔던 바 있으며 휴식기가 끝난 후의 계획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따라서 그의 복귀작이 무한도전의 후속작일지는 단언할 수는 없다. 결국 무한도전이 END인지 AND인지는 2018년 가을 이후 복귀할 김태호 PD의 선택에 따라 갈리게 될 것이라는 전망. 이후 김태호 PD는 프로그램 종영 후 해외 연수를 가고 이후 다시 귀국을 했지만 시즌 2(사실상 시즌 4) 또는 무한도전이 재개할 지에 대해서는 당시 MBC 예능국과 김태호 PD 모두 미정이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돌아보지 말고 떠나가라, 또 나를 찾지 말고 살아가라

MBC의 2019년도 기본 운영 계획에 따르면 김태호가 새 예능을 준비 중이라고 하며 무한도전이 아닌 다른 신규 프로그램을 기획 중이라고 밝혔다. # 또한, 시즌 2는 추후 제작을 고려하고 있으며 시즌1 종영일에 맞춰서 무한도전 팬들을 위해 작은 선물을 준비한다고 한다. #

2019년 3월 31일, 종영 1주년 기념으로 출연진들 대부분 인스타그램을 통해 김태호 PD, 유재석, 박명수, 정준하, 하하, 조세호, 양세형, 황광희 등이 모여 무한도전 공식 계정을 통해 만남을 생방송했으며 원년 멤버 노홍철, 정형돈은 부득이하게 참여를 못하여 영상으로 대신했다.[52] 전진은 유재석이 대신 근황을 전했다. 장소는 정준하가 운영하는 꼬치 전문점으로 멤버들이 다 같이 모여 훈훈하게 마무리했다.


김태호는 2019년 6월 20일에 유재석과 같이 새 예능을 녹화했으며 제목은 '놀면 뭐하니?'로 7월 27일부터 무한도전 시간대에 편성되었다. # 초기 놀면 뭐하니?는 김태호와 유재석의 조합으로 무한도전의 스핀오프 개념으로 시청자들에 인식되었고 화제성과 기대감으로 시청률 역시 높았다. 워낙 문화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만큼 무한도전의 마지막에 대한 시청자들의 아쉬움이 컸는데 위와 같이 시즌2 관심과 놀면 뭐하니?의 연관성 등에서 혼선이 있었던 것 역시 김태호의 결심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2021년 9월 7일, 김태호 PD도 MBC를 떠났다. 유재석과 함께 무한도전의 일등공신인 김태호의 퇴사와 이적은 1박2일, 런닝맨 등 여타 인기 예능 프로그램이 PD는 교체되더라도 명맥을 유지했던 사례와 달리 무한도전의 부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결국 공중파인 MBC의 오랜 간판 프로그램인 무한도전에서 PD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커지면서 타이틀의 종지부를 찍게된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다. 사실 종영 과정 중 MBC에서 무한도전 시즌2에 신임 PD까지 임명했고, 시청자들의 요구가 적지 않았음에도 비슷한 포맷의 같은 시간대, 놀면 뭐하니?가 런칭된 사실은 김태호 PD의 행보가 무한도전 부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는 정황이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오히려 유재석, 박명수, 하하, 정준하, 정형돈 등의 오랜 멤버들은 현재까지도 무한도전에 대한 언급을 하면서 현실적인 불가론을 펼치지 무한도전 복귀 자체에 대해서는 부정적 입장을 피력하지 않는다.


5.1. 시즌 2 (무산)[편집]


무한도전 종영 이후부터 꾸준히 언급됐던 이야기였으며 유튜브 클립에 댓글란과 커뮤니티 등에 항상 시즌 2를 어서 해주라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김태호 PD는 "시즌 2가 숙제가 될 수 있다. 돌아오려면 총알이 많이 준비돼야 한다. 가을 개편에 돌아오겠다고 약속했는데, 정작 우리가 준비가 안 돼 실망감을 드릴 수 있어 자신있게 말씀을 못 드리겠다"면서도 "약속드릴 수 있는 건, 대중적일지는 모르겠지만 색깔이 분명한 것들로 다시 인사드리고 싶다"고 말했었다.

종영 1주년을 맞아 라이브 방송에서 시즌 2의 가능성에 대해 언급했다.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다며 종영 인사를 드리면서도 빠르면 6 ~ 7개월 안에는 인사를 드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벌써 1년 하고도 하루가 되는 날이라고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뜻하지 않은 긴 공백기에 대해 "시간이 너무 길어져 죄송하다. 저도 그렇지만 다른 분들도 그럴 것"이라며 "오늘도 '무한도전' 언제 하냐는 이야기를 들었다. 물론 모든 분이 '무한도전'을 기다리는 건 아니겠지만, 기다려주는 분이 있다는 게 감사하다. 그래서 저희도 빨리 많은 분들을 만나고 싶다"고 바람을 내비쳤다 "시청자분들이 저희를 기다려주신다면 꼭 돌아가도록 하겠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라디오에서의 전화 통화에서 시즌 2에 대해 잠시 언급을 했는데 "다 같이 모여서 라이브로 잠깐 했지 않나. 멤버들도 그렇고 다들 너무 하고 싶어 한다. 감사하게도 응원해주고 기다려주시기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돌아가고 싶다"그러면서도 "제작진의 입장도 있고, 방송이라는 게 방송국에서 만들어지고 제작되는 것이기 때문에. 시스템이라는 게 마음대로 안 된다"는 조심스러운 입장을 덧붙였다. "빨리 돌아와서 '무한도전' 외치고 싶은데"라는 말로 '무한도전'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김태호 PD의 인터뷰에서 무한도전 시즌 2를 언급했는데 "저희가 다시 스타트하려는 계획으로 준비를 했었다. 이번 3월 31일 기념으로 라이브도 해보고 빅데이터도 준비하고 했었는데 그 때 처음에 가지고 있는 기대감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 보이면서 힘들겠다는 판단을 했다. 3월 31일 1주년 라이브를 하고 나서 저희가 얻은 결과는 반가움이 가장 컸고 2012년 전후로 있었던 원년멤버에 대한 복귀 의사가 많았다. 이는 제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원년 멤버들의 의사가 중요하기 때문에 안타까운 부분이었다. 유재석 씨하고도 이야기를 하다가 기다리느니 새로운 것을 해보자고 해서 '놀면 뭐하니?'를 시작했던 것 같다. 저도 다시 하고 싶은 프로그램이기도 하고 멤버들하고도 열어놓고 고민하는 상황이다"라며 아직까지는 계획이 없다라는 의사를 내비쳤다.

김태호 PD의 언급을 따르면 회사와 팬들의 기대감 때문에 다시 시작할 계획을 갖고 종영 1주년 라이브를 기점으로 무한도전 시즌 2의 준비를 하려 했지만 팬들이 기대하는 원년 멤버등과 일정과 합류 조율 등이 어려워지거나 이뤄지지 않아 무산되었다는 점이다.

또한 일회성으로 토요일 토요일은 무한도전[53]을 준비했지만 이것 또한 무산되었다고 한다.

유재석 역시 "시간이 지나면 문득 갑자기 인사를 드릴 날이 올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저는 그렇게 믿고 있다. 언제일지 모르는데 희망 고문처럼 하는 것 같아서 죄송한데 저희들이 함께 모여서 인사를 드리고 싶지만 각자의 생각이 있기 때문에 각자 개인의 의견을 존중하는 입장에서 여기까지 이야기를 드리겠다"라며 말을 아꼈다.

박명수는 '놀면 뭐하니?'에 출연해 놀면 뭐하니를 무한도전의 음율의 맞춰 부르거나 무한도전을 다시 해야 한다고 라디오 등에서 말하며 지금도 목요일을 비워놓고 있다고 하는 등 무한도전 시즌 2를 바라는 마음을 내비치기도 했다.

2020년 4월 4일에 놀면 뭐하니? 유튜브 채널에서 진행된 '부캐의 세계' 라이브 방송에서 한 시청자의 무한도전 방영 재개 요청에 대해 유재석은 "다시 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된다는 점 이해해달라. 멤버들 모으기가 힘들다"라고 답했다. 시즌 2와 관련되어 애로사항이 상당함을 느낄 수 있는 부분으로 사실상 시즌 2 방영이 어렵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이 이후 놀면 뭐하니? 닭터유 편에서, 유재석, 박명수, 정준하, 하하가 모두 모이며 최정예 멤버 7명 중 4명이 한 프레임에 다시 잡히는 상황이 연출되었고, 이들이 투닥거리는 장면에서 무한도전의 BGM과 효과음, 자막 등을 넣고 엔딩도 그래 우리 함께가 어레인지된 노래를 틀며 향수를 불렀다. 아마 김태호 PD도 무한도전 시즌 2에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나 현실적으로 상황이 여의치 않은 듯. 김태호와 더불어 무한도전의 전성기를 이끈 제작진들 상당수가 MBC에서 퇴사해서 종편 채널로 넘어간 상태라 이들을 다시 불러오는 것도 어려운데다가, 전술했듯이 유재석 또한 놀면 뭐하니? 유튜브 채널에서 진행된 라이브 방송에서 시즌2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무한도전 종영 3년째인 2021년 1월 6일, 감스트박명수, 하하와의 합방에서 무한도전이 언급되었으나 박명수는 시즌 2가 제작될 일은 현재로썬 어려울 것이라 직접적으로 밝혔다.

그리고 2021년 1월 14일에 진행된 놀면 뭐하니? 라이브 방송에서도 유재석이 무한도전 시즌 2는 쉬운 일은 아니라고 밝혔다. 유재석 특유의 부드러운 어투로 말했지만 사실상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입장을 밝힌 것에 가깝다. 리즈시절 원년 멤버를 그리워하는 분들이 많은데, 하고 싶어 하는 멤버들도 있지만 여타 사정으로 부담스러워하는, 하고싶지 않다는 멤버들도 있다고 했다. 관련기사 관련기사 기사

박명수, 정준하, 하하는 지속적으로 무한도전 시즌 2를 희망해왔다 보니 부담스러워하는 멤버는 정황상 노홍철, 정형돈 등 하차한 원년 멤버들로 보인다. 그런데 박명수의 라디오쇼 2021년 6월 14일 방송에서 정형돈이 데프콘과 함께 게스트로 나와서, 무한도전 멤버들이 다 모이면 할 생각이 있다는 의견을 냈다. 사실 정형돈은 슬럼프 기간동안 계속된 팬들의 악플과 지나친 기대 때문에 부담감을 느껴 불안증세를 보이며 하차한 것이고 복귀 역시 이 부담감이 해소되지 않아서 못 했지만 무한도전이 종영된 후 시간이 흐르면서 그 기대감이 사라진다면 언제든지 참여가 가능할 수도 있다.[54]

이를 보아 무한도전 출연을 고사하고 있는 멤버는 오히려 노홍철이라는 게 중론이다. 본인의 실수로 인한 사회적 물의로 인해 하차했고 하차로 인한 인기 하락-종영으로 폐를 끼친 것의 미안함이 컸기 때문일 것이다.

종영과 별개로 박명수와 하하, 하하와 유재석, 박명수와 노홍철 등은 지속적으로 개개인의 멤버끼리 만남을 가지고 있다고 전해져 오고 있으나 박명수, 정준하 등에 말에 의하면 의외로 하차 이후엔 멤버들끼리 모인 적이 없었다고 한다. 여러 정황상 많은 사람들이 그리워하는 원년 6인 멤버나 [55]이나 전진[56]이 있었던 7인 체제 멤버는 보기 힘들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현실적으로 합류가 되는 멤버만 찾아 원년 멤버 4명에 양세형, 황광희[57], 조세호 등과 함께 하거나 멤버들을 바꾸어서 시즌 2를 시도할 수도 있지만 그런 것은 대부분의 시청자도 김태호 PD도 원하지 않을 듯 보여 시즌 2는 냉정하게 유재석의 말처럼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다.

놀면 뭐하니? 2021년 8월 21일 방영분에서 유재석에 따르면 다시 한번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것을 밝혔으며, 동시에 놀면 뭐하니를 멤버화하는 것 또한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대신 패밀리쉽처럼 각종 기획에 따라 전 무도 멤버들 가운데 출연 가능한 멤버들만 따로 섭외해 프로그램을 기획할 예정임을 밝혔다. 하지만 과연 이러한 프로젝트를 통해 과거 무도 멤버들을 다시 방송에서 볼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아직 아무 것도 밝혀지지 않았다.

해당 방영분에서는 정준하, 하하, 황광희, 조세호가 게스트로 출연했는데, 추후 새로운 프로그램 플롯이나 프로젝트의 런칭에 따라 이들 4명은 게스트로 출연하거나 도우미 등의 포지션으로 합류할 가능성이 매우 높을 것으로 전망된다. 일정 문제로 출연하지 못한 박명수와 양세형 역시 합류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된다.[58] 또한 해당 방영분에서도 노홍철과 정형돈의 재합류는 힘들다는 의견을 밝혔는데, 과거 방송 복귀 초반 무한도전 재합류는 하지 않겠다고 밝혔고 재합류에 대하여 부담감과 미안함 등의 감정으로 어려울 것 같다는 입장을 밝힌 노홍철과 달리 정형돈은 재합류에 대해서 끝까지 고민 끝에 결국 부담감이 또 다시 찾아온 정형돈의 의사를 제작진 측에서 배려 및 수렴해준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많은 이들의 궁금증과 관심을 모은 전진이나 길의 경우 이미 예상한 이들이 많았지만 결국 어떠한 언급도 되지 않았다.

토토가에 출연한 젝스키스와 H.O.T.의 경우 공통적으로 팀이 해산한 이후 멤버들 본인들끼리 재결합하려는 의지도 있었으나 무산되었고 이를 무한도전에서 토토가 2, 3을 통해 재결합을 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번엔 무한도전이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2021년 9월 7일, 김태호 PD가 2021년을 끝으로 MBC를 퇴사하게되면서 시즌 2가 이루어질 가능성은 더욱 요원해졌다. 사실 "무한도전"이라는 IP는 MBC의 자산이기에 아무리 김태호가 시즌2를 하고 싶다고 해도 MBC에서는 거절할 확률이 높다. 종영 당시 멤버들의 아쉬워하던 입장이나 애정은 사실 외적 요인, 특히 김태호 PD의 퇴사 등으로 종영된 것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이후 무한도전의 맏형이었던 박명수라디오쇼 #에 김태호 PD가 출연하여 박명수와 무한도전에 대한 얘기를 나누던 중 "'시즌제로 10회라도 한번 해보자'고 했는데, 그 때 뜻이 안 맞아서 못했다"면서 무한도전의 시즌2에 대해 논의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여러 의견들이 충돌해서 무산되었다고 밝힘에 따라 무한도전은 박명수의 말처럼 "어설프게 해서 욕먹느니 박수 칠 때 떠나는 게 낫지 않나 싶다. 또 나중에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너무 뒷날 말고, 가까운 시일 내에 만나서 예전 얘기도 하고, 새로운 예능을 하던지 했으면"이라고 말해 '무한도전' 멤버들이 다시 만날 날을 기대케 했다.

이토뭐 인스타그램에서는 놀면 뭐하니? 멤버쉽이 구축되던 2021년 가을 시즌으로 추정되며, 유재석 또한 다시 한 번 모아보지 않겠냐고 말한 것이 실제로 이 시즌이다. 노홍철과 정형돈은 고사했으며 여기서 긍정적 반응을 보인 정준하와 하하, 광희 그리고 조세호는 모이기도 했고, 정준하와 하하는 이를 계기로 놀면 뭐하니?에 합류했고, 박명수와 양세형 방송상으론 스케줄 문제로 합류하지 못한 것으로 언급되었지만, 이후 발언들을 보면 역시 고사했던 것으로 보인다. 놀면 뭐하니? 실제로 박명수는 자신의 유튜브에 정형돈과 정준하가 출연했을 때 질문으로 '김태호pd가 무도 멤버들이 다시 모이면 참여할 것이냐?'의 질문에 박명수가 한다고 하자 정준하가 '이번에 모든 멤버가 다하자고 했는데 안 한거 아니야?'라고 반문하자 박명수가 노홍철과 정형돈이 고사했기에 자신도 안 한다고 했다고 밝혔다.[59] 정형돈에게 너만 했다면 나도 했어라는 발언를 했었다. 박명수는 초창기 6명의 모든 멤버가 모이지 않았기에 고사한 것으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시즌 2는 사실상 힘들다고 볼 수가 있으며, 놀면 뭐하니가 무한도전의 정신적 후속작이자 실질적인 시즌 2라고 볼 수 있다.[60]

6. 시대적 변화를 볼 수 있는 프로그램[편집]


무한도전은 무려 13년이란 세월동안 장기적으로 방송된 프로그램인지라 시대적 변화를 탐색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방영 종료와 초기가 13년이나 차이가 나니 극초반과 말기의 모습이 천지차이이며, 특히나 방영이 이뤄진 13년의 시간동안 스마트폰의 등장, 대대적인 거리 미관 조성 체계[61] 확립 및 시민 의식의 변화[62]등 유독 다양한 변화들이 크게 일어났던 시기인지라 그 시절 거리 풍경, 대중들의 패션, 문화, 인식의 변화, 당시 유행한 가요계, 디지털 방송의 변화 등 무한도전으로 대한민국의 시대 변화를 탐색할 수 있다.

특히 4:3 비율 SD로 제작되던 시절 방영분을 보면 알 수 있는데 먼저 2007년에 방송된 서울 구경 선착순 한 명 특집을 보면 아직 스마트폰이 보급되기 전[63]이라 주변 지인에게 물어 길을 찾거나 버스 정류장 노선도를 보면서 길을 찾는 모습도 있고, 2008년에 방송된 100회 특집에서는 무도 멤버들과 동명이인을 스튜디오에 초대했는데 이때 참여한 시민들 중에 당시 남성과 여성의 스타일을 볼 수 있다. 일단 전반적으로 남성들은 샤기컷과 장발 헤어스타일을 고수했으며 여성들은 전반적으로 단정한 차림과 수수한 화장법을 고수한 지금과 비교해 촌스러운 당시의 스타일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시민논객들 인터뷰를 들어보면 당시까지만 해도 서울 사투리를 약간 구사하는 시민들을 볼 수 있고, 초등학생인 유재석 어린이와 정준하 어린이도 서울 사투리를 약간 구사하는 것을 알 수 있어 지금의 초등학생과는 말투가 많이 다르다. 해당 영상[64]

그리고 2008년 방영된 멤버들이 분장하여 거리를 누볐던 이야기를 담은 지못미 편을 보면 2000년대의 대한민국 사람들의 바쁜 출근길 풍경과 사람들의 패션[65]과 휴대폰[66], 길거리 콘서트를 진행하기 앞서 CD/카세트 플레이어로 지하철에서 음악을 틀어 공연을 시작하려는 전진[67], 옛날 서울 거리 풍경[68], 옛날 버스의 모습을 볼 수 있으며[69] 지하철의 옛 환승음인 새소리(1~4호선)/조화의 영감(5~8호선) 환승음을 들을 수 있고[70], 또한 당시에는 우측통행이 아닌 좌측통행 시절이였기에 좌우 반대로 설치되어 있는 옛 에스컬레이터의 모습을 볼 수 있다.[71] 그리고 개찰구 구멍과[72] 스크린도어가 없는 뻥 뚫린 위험한 옛 지하철 풍경 또한 볼 수 있으며[73] 막판에 노홍철이 남산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갈 때 2000년대의 옛 서울 야경을 제대로 볼 수 있다.[74]

추격전의 시초인 돈가방을 갖고 튀어라 편 또한 서울 역사에 옛날 국민들의 모습, 옛날 한강 주변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75] 그밖에 무한도전 피디 특공대 특집에서 박명수의 아름다운 눈을 보면 그 당시만 해도 개선되지 않은 사회적인 문제점[76]을 비판하는 당시의 시대상을 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모 초등학교 앞에 성행한 유흥거리를 비판하는 장면이 있다. 어린이보호구역인 학교 앞에 모텔이나 각종 술집으로 가득한 어른들의 유흥 세상을 당시 초등학생들이 지나치게 궁금해할 것을 걱정하는 장면이나 공중전화 부스에서 유리 파편이 아예 없는 뻥 뚫린 부스의 모습을 세금 낭비와 비유해 비판하는 장면이 있고[77], 부스에 함부로 버린 각종 쓰레기 모습[78], 전화기 옆에 달린 전화번호부를 찢어버린 사람들에게 암기할 수 있게 도와줘서 고맙다는 반어법 식으로 비판하는 장면이 있다.[79][80][81] 그 밖에 백열등의 구형 신호등을 거리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82]

2009년에 방영한 인생극장 Yes or No 편을 보면, 요즘 시대라면 카드를 주로 사용하겠지만 당시만 해도 현금을 주로 사용하던 시절이라 정형돈과 노홍철이 내기를 진행하기 위해 카드가 아닌 현금을 주로 인출하려는 노홍철의 행동을 볼 수 있고, 하루만에 세계일주 편 또한 스마트폰이 보급되기 직전이라 차 안에서 빨콩이 달린 노트북으로 일일이 검색한 후에 위치와 정보를 찾아 목적지로 이동하는 장면은 지금과 달리 힘들게 진행되는 그 시절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찍은 사진을 개인 미니홈피에 올릴 생각에 들뜬 노홍철의 태도를 보면 당시에 싸이월드가 한창 유행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고, 필름 형식으로 이루어진 알록달록한 무늬로 포장된 미라클 일회용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박명수[83], 아날로그 감성 속 따뜻한 봄의 풍경과 더불어 점점 변화되는 서울의 공사 현장 풍경을 볼 수 있다. 추격전인 여드름 브레이크 또한 2010년 이후의 대대적인 리모델링 이전의 남산 공원과 남산시민아파트 인근 풍경, 명동의 회현고가도로[84] 등 90년대 말 ~ 2000년대의 대한민국의 모습과 그 당시 대한민국의 성수기 풍경을 볼 수 있으며, 스마트폰이 보급되기 전이라 멤버들이 종이 지도를 통해 일일이 경로를 찾거나 각종 도구들을 통해 위치를 찾고[85], 병원에 있는 컴퓨터와 편의점에 있는 컴퓨터를 이용해 힘들게 미션을 수행하는 당시의 시대상을 볼 수 있다.[86][87]

그러다 2010년 가을에 방송된 텔레파시 특집을 보면 서울을 제대로 누비며 촬영했는데 화질도 기존과 약간 다르고, 서울 거리와 건물 간판, 지하철 모습, 돈가방을 갖고 튀어라 촬영 때와 비교해 새롭게 달라진 한강 주변 모습[88] 등등 대한민국 도시 모습이 점점 현재와 비슷하게 변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상술했듯 텔레파시 특집 기준으로 불과 1~2년 전까지의 방영분을 보면 대한민국 도심 풍경이 굉장히 촌스럽고, 옛날 같지만 텔레파시 특집이 촬영되던 시절은 전반적으로 현재와 차이가 덜한 혹은 촌스러운 느낌은 사라지고 세련된 서울 도시 모습으로 변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느린 삶을 살아갔던 아날로그 감성이 남아있는 2000년대의 풍경을 볼 수 있다가 2011년 이후 방영분을 보면 화질도 16:9 비율의 선명한 화질을 자랑하는 디지털 HD 방송이 시작되어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뒤바뀌었고, 스마트폰으로 손쉽게 미션을 수행한다던지 거리 풍경의 변화 등 현재와 별 다를 게 없는 모습으로 종영했다. 13년 동안 방영한 프로그램답게 방영 도중 시대가 바뀐 것을 볼 수 있고, 무한도전 1회와 마지막회를 비교해보면 전반적으로 차이가 크게 나는 것을 알 수 있다.

2006년 8월 중순, 뉴질랜드 특집 당시 박명수유재석의 가방에 '성인용 비디오테이프'를 몰래 넣고 소지품 검사를 할 때 유재석의 반응을 보는 등, 비디오테이프를 이용한 몰래카메라도 등장했었다. 해당 영상 14분 42초와 16분 16초 참고 비디오테이프의 경우 지금은 추억의 저장매체로 전락해버렸지만, 2000년대 중후반까지만 해도 비디오테이프가 실생활에서 흔히 사용되던 저장 매체였기 때문. 당시 멤버들은 유재석에게 "집에서 나오다가 비디오 가게 반납하려다 깜빡 잊었냐", "반 바퀴 돌아간 거 보니까 뉴질랜드에서 반 보려고"[89]라며 감쪽같이 속였고 이내 몰래카메라에 성공한다.

2007년 7월 초, 가요제 편에서 박명수가 자신의 노래 반주를 카세트 녹음기로 녹음하여 멤버들에게 들려주는 모습과 2배속으로 늘어놔서 정체불명의 소리가 나는데 이 때 유재석이 가글 소리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다.[90] 2009년 2월 말, 정신감정 특집 때 지나친 결벽증을 앓고 있는 노홍철을 치료해주기 위해 그와 정반대 유형인 정형돈이 노홍철 집에 방문하는데 노홍철이 샤워를 하기 위해 화장실에 들어가는 틈을 이용해 정형돈은 집을 모조리 어지른다. 이 때 카세트테이프 녹음기로 치료 진행 상황을 녹음하는 장면이 있다.[91] 2000년대 후반까지는 카세트테이프 방식의 녹음기가 녹음, 어학 영도로 많이 쓰였다.

대중들은 일단 스마트폰이 보급되기 전과 4:3 비율의 구린 아날로그 감성으로 나오는 2000년대(~2010년) 편이 가장 재미있었다고 하며 희망이 가득했던 그 시절이 매우 그립다는 반응을 많이 보인다. 2000년대를 상징했던 예능으로서 그 시절의 문화를 잘 보여줬으며 현재 많은 이들에게 그리움을 안겨주기도 한다. 이유는 4:3 화면비율과 특유의 구린 색감/화질로 인해 현재와 차이가 나는 옛날 레트로 느낌이 나기 때문에 방송에 몰입할 수 있는 시각적 효과가 있어 추억 소재로 삼기에 적합한 복고적인 특징이 있다. 하지만 HD 방송이 시작된 이후부터는 재미도 재미지만 레트로 느낌이 완전히 소멸되어 현재와 별 차이가 없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추억 소재로 삼기에는 매력이 떨어진다. 우연의 일치로 HD 방송 시작과 맞물려 무한도전 자체가 대형화되어 특유의 B급 감성이 완전히 사라졌기에 대형 프로젝트보다 멤버들끼리 소소하게 드립을 치는 이전의 레트로풍이 나는 무한도전을 시청한 현 20~30대는 이 시절 방송분들이 추억거리로 여겨진다. 반면 HD 방송 이전의 무한도전을 보지 못한 청소년 세대들은 HD 방송 이후의 무한도전이 추억 소재로 삼기도 하는 정반대 현상이 발생한다.

한국에서 유행하는 헤어스타일의 변천사도 쉽게 확인할 수 있는데 2006~2007년 시절 SS501 특집을 보면 지금 기준으론 정말 촌스럽지만 당시에 유행이던 샤기컷과 울프컷을 한 SS501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썩소 앤 더 시티 특집에서도 멤버들이 헤어를 꾸미고 나오는데 역시 지금 기준으로는 꾸민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촌스러운 편. 멤버들의 헤어스타일 변쳔사 역시 시대가 바뀌면서 바뀌는데 유독 유재석만이 초창기 스타일을 거의 그대로 고수하고 다니는 편이다.[92]

무도 멤버들의 패션 스타일을 보면 2008년까지는 전원 통이 넓은 통바지를 입었으며 메인 MC 유재석이나 무도에서 젊은 축에 속하는 노홍철이나 하하, 전진 모두 촌스러운 스타일인 통바지를 착용한 것을 볼 수 있다. 2009년부터는 소녀시대의 GEE 열풍으로 스키니진이 유행하기 시작하자 정준하를 제외하고는 멤버 전원 스키니진 바지를 착용하기 시작해 멤버들도 한층 세련되어졌다. 유재석을 비롯해 멤버 모두 변화하는 시대와 함께 스타일도 꾸준히 바꾸었다.

무한도전 방영당시 유행어의 변천사도 확인할 수 있는데 2014년 한글날을 맞이해 올바른 언어 사용 취지로 기획한 한글 특집에서 당시 청소년이 어떤 언어를 사용하는지 알아보기도 했다. 이당시 낫닝겐[93], ㄱㄷㅇ[94], 문상[95], ㅎㄹ[96] 같은 급식체가 없던 마지막 해 당시의[97] 청소년들의 유행어를 살펴볼 수 있다.[98] 또한 무한도전 멤버들이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 당시 중학생을 초대한 뒤 같은 중학생 신분으로 위장해 소통하기도 했는데 정사각형으로 이루어진 카카오톡 초창기 시절 프로필을 확인할 수 있다.[99] 정사각형 프로필은 2015년에 동그란 원형으로 교체된다.

무한도전이 방영한 기간동안 대한민국 대통령은 노무현(2005~2008년) - 이명박(2008~2013년) - 박근혜(2013~2017년) - 문재인(2017~2018년)까지 총 4명의 대통령이 차례로 집권했으며 이 사이에 여야 정권교체가 두번(2008년, 2017년)이나 있었다. 그리고 미국 대통령은 조지 W. 부시(2005~2009년) - 버락 오바마(2009~2017년) - 도널드 트럼프(2017~2018년)까지 총 3명의 대통령이 차례로 집권했으며 이 사이에 사상 첫 유색인종 대통령이 집권하기도 했다. 무한도전이 방영하는 기간동안 세계 주요 지도자가 많이 바뀐 것을 보면 무한도전이 얼마나 오래 방영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여담으로 2007년 10월에 방영한 무한도전 신입사원 면접 특집 당시에는 정준하에게 현직 대통령 영부인은 누구인지 물어보는 장면이 있어 당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이었던 시절이자 권양숙 여사가 영부인이었던 시절인 것을 알 수 있고, 정준하는 영부인이 누군지 몰라 대답을 못하자 자막으로 권양숙 여사님 죄송합니다. 라는 자막이 달렸다(...) 또한 2008년 3월 15일, 조인성 특집 당시에는 노홍철이 마지막을 장식하기 위해 당시 노무현에서 이명박으로 정권이 교체된지 얼마 안된 시기에 이명박에게 전화 통화를 하는 노홍철의 행동을 볼 수 있고, 2008년 여름에 방영한 베이징 올림픽 특집 당시에는 베이징으로 직접 가서 세계인들과 영어로 회화하는 편을 보면 박명수가 당시 임기 말의 미국 대통령인 부시 대통령도 만나겠는데! 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100] 2009년에 방영한 식객 특집 당시에는 뉴욕에서 직접 한식을 현지인에게 대접하는 에피소드에서는 조지 부시를 닮은 이미테이션 배우가 직접 등장하기도 해 실제 미국 대통령인 줄 알았던 멤버들은 잔뜩 긴장하기도 했다. 이때 길은 멤버들에게 대통령이라고 연속 강조하면서 신기한 표정을 드러냈고, 유재석은 불신했으며 노홍철은 당당하게 음식을 가져다가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해당 영상 다만 식객 특집이 방영된 2009년은 조지 부시가 아닌 버락 오바마가 현직 미국 대통령이었던 시절이며 조지 W. 부시는 이미 퇴임한 이후의 전직 대통령 신분이었다.

여담이지만 HD방송으로 전환하기 전인 2005년 ~ 2010년까지 방영분을 보면 화질이 약간 변색되고, 열화/손상된 것을 볼 수 있다. 화질이 안좋은데다가 현재 MBC 본사 영상자료실에서 보존하고 있는 비디오테이프 자료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7. 출연진스태프[편집]




종영 당시 고정 멤버는 나이순으로 박명수, 정준하, 유재석, 하하, 조세호, 양세형이며 멤버 및 스태프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하단 참조. 정규 편성 이후 하차를 한적 있는 멤버는(군입대 포함) 하하, 전진, , 노홍철, 정형돈, 황광희이다

방송이 오래된 데다 장기 특집처럼 촬영 외의 사생활을 투자하는 경우도 많다 보니, 여타 예능보다 멤버 간 사적교류가 활발하고 이를 방송에서 거리낌 없이 드러내는 소위 '가족 같은 분위기'가 특징이다.[101] 멤버들 대부분이 기혼자가 되면서 가족 단위의 교류도 활발해졌으며, 멤버들의 아내들 사이의 모임도 따로 있다고 한다.



7.1. 오프닝 자리 배치[편집]


무모한 도전 땐 게스트가 많이 오갔기에 일정한 자리 배치라곤 MC 유재석이 중앙에 위치하고 그 옆에 그 날 출연한 게스트가 서 있는 정도였으나, 독립 편성된 이후 멤버들의 관계나 진행 능력 등의 이유로 어느 정도 위치가 고정됐으며, 이는 무한도전에 있어서 또 다른 재미거리가 됐다. 6인 체제로 시작한 뒤 멤버의 변동에 따라 자리 배치에 여러 변화가 있었다. 이를 소재로 2010년 '자리재배치 특집'을 하기도 했다. 박명수-하하-정준하가 센터였던 자리재배치 특집을 제외하고는 유재석-박명수 센터는 한번도 바뀌지 않았다. 하하 소집해제 이전은 정준하-유재석-박명수 센터가 흔했으며 이후부터는 하하-유재석-박명수 센터가 종영 때까지 약 8년간 유지되었다. 도중 광희가 박명수 자리에 들어가고 싶어하긴 했다.
(좌측부터 순서대로)

  • 최초(무한도전 독립편성 직후) 자리 배치
파일:무한도전 최초 자리 배치.png
유재석-박명수를 중심으로 덩치가 비슷한 정형돈과 정준하가 좌측에, 죽마고우 플래그의 노홍철, 하하가 우측에 섰다. 나이가 비슷한 정준하-유재석-박명수가 나란히 있어 하와 수에서 중간에 유재석이 중재하기도 하고 박명수와 하하는 단신 및 쪼쪼댄스 콤비로 엮이기도 했다. 다만 정형돈은 구석에서 덩치가 큰 정준하에 가려져 성장이 되지 않았다고 했다. 실제 정준하가 말을 하면 항상 앞으로 조금 나와서 형돈을 등지다 보니 노상 가려졌다. 무모한 도전 시절에는 유재석 옆에 설 때도 많았던 정형돈이 이 시기에 손해를 많이 봤다.

파일:1623442592456.png
박명수 반장 체제의 자리배치. (구)1인자 였던 유재석은 변방으로 쫓겨나고 박명수 중심으로 서게되었다. 또한 무한도전 시그니처 동작을 변경한 유일한 자리배치. 이후 하하 공익 소집 후 유재석이 다시 반장에 당선되며 밑의 자리 배치로 변경되었다.

  • 하하 공익 소집 후 자리 배치
파일:무한도전 하하 공익 수집 후 자리 배치.png
하하가 공익근무요원으로 소집되어 하차하면서 박명수와 노홍철이 나란히 서게 됐다. 박명수 옆에 서면서 노홍철의 멤버들(특히 박명수)을 향한 비난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

  • 전진 영입 후 자리 배치
파일:무한도전 전진 합류 후 자리 배치.png
새 멤버로 전진이 합류하면서 시작된 자리 배치이다. 전진이 무한도전에 적응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유재석의 옆 자리로 배치되었다. 다만 우리 미팅했어요, 에어로빅 일부, 올림픽대로 듀엣가요제 등 일부 회차에선 과거 초창기 하하의 자리였던 박명수와 노홍철 사이에 전진이 서기도 했다.

  • 전진 영입 이후 및 영입 직전 자리 배치
파일:무한도전 박장군의 기습공격 자리배치.jpg
이 축제의 무도 김연아 특집을 통해 무한도전에 처음 등장한 이후부터 바뀌기 시작한 자리 배치이다.[102] 정형돈이 노홍철을 통하여 예능감을 배우겠다는 포부를 밝히면서 처음으로 노홍철의 옆자리로 이동한 것이 위의 자리배치와의 차이점. 이 당시까지만 해도 길은 공식 영입이 아닌 게스트 신분이었기 때문에 자리배치에는 등장하지 않았으나, 길이 게스트로 출연하기 시작하는 시기부턴 위의 자리 배치가 해당 자리 배치로 변형되어 오프닝을 하는 경우가 잦았다. 이후 이 자리배치는 길이 공식적으로 무한도전에 영입됨에 따라 아래의 자리 배치로 바뀐다. 그리고 2014년 길의 하차 이전까지 유일하게 정준하가 오프닝에서 구석에 있었던 자리 배치이기도 하며, 동시에 2014년 길 하차 이후와 비슷한 자리배치이다.

  • 정식 합류 후 자리 배치
파일:무한도전 길 정식 합류 후 자리 배치.png
최초의 7인 체제. 길이 합류한 뒤로 정준하와 함께 덩치를 담당했던 정형돈이 자리를 바꿔 노홍철의 옆으로 이동했고, 정형돈의 자리에 길이 들어오게 됐다. 정형돈이 자리 재배치 특집에서 언급했듯 정준하의 그늘에서 벗어나 노홍철의 옆에 있게 된 이후부터 점차 무한도전 내에서 예능력이 상승하기 시작했고, 정형돈 역시 노홍철 옆이 편하다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2007년 1월에 방영된 사주 특집에서 엮인 정형돈 → 노홍철 → 박명수 라인이 구성되면서 시너지가 만들어졌다. 이는 아래 2010년 하하 공익근무요원 소집 해제 이후부터 2014년 상반기까지 이어진 무한도전 전성기 오프닝 라인업의 시초격이라고도 볼 수 있는 자리 배치이다.[103]

  • 전진 공익 소집 후 자리 배치
파일:무한도전 전진 공익 소집 후 자리 배치.png
전진 공익 소집 후 하하가 재합류할 때까지의 자리 배치. 다시 정준하-유재석-박명수가 나란히 서게 됐다.

  • 하하 소집 해제 후 자리 배치
파일:무한도전 하하 소집 해제 후 자리 배치.png
하하 복귀 특집 예능의 신 특집으로, 하하가 복귀한 뒤 방송 공백이 있었던 하하를 유재석 옆에 세우는 배려를 해줬다. 잠시 자리 재배치 특집에서 변경된 경우를 제외하면 무한도전에서 가장 오래 유지된 자리 배치이다.

파일:무한도전 자리 재배치 특집에서의 자리 배.png
무한도전 자리분양 특집 이후 시크릿 바캉스, 일곱 개의 시선 특집까지 유지된 자리 배치. 박반장 시절을 제외하면 유일하게 유재석이 중앙이 아닌 구석에 위치, 다른 인물이 중앙을 차지했다. 또 정형돈 역시 박반장 시절을 제외하면 유일하게 끝 자리가 아니었다. 이는 이 당시 릴레이 게임을 통해 우승한 멤버가 먼저 원하는 자리를 선택, 이후 다음 게임에서 우승한 멤버가 또 원하는 자리를 선택하는 과정을 거쳐 자리를 골랐기 때문이다. 자세한 과정은 무한도전 자리분양 특집 문서 참조.

처음 시도된 시크릿 바캉스 특집에서 바로 문제가 터졌는데, 유재석이 정중앙이 아니다 보니 유재석의 목소리가 반대편에 있는 멤버들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결국 유재석은 진행을 위해 마이크를 가져왔고, 다른 멤버들도 유재석에게 집중하려다 보니 자연스레 'ㄱ' 자로 배치됐다. 자리 재배치 게임 전 각각 멤버들에게 자리 재배치에 관해 인터뷰를 했는데, 유재석은 자기가 맨 끝으로 가도 좋겠다고 했다. 하지만 유재석 본인도 진행을 맨 끝에 해야 돼서 '토크 쏠림현상'이 일어날까 고민했고, 실제로도 그렇게 됐다. 결국 얼마 가지 않아 다시 위의 자리 배치로 돌아갔다.

  • 하차 후 자리 배치
파일:무한도전 길 하차 후 자리 배치.png
2014년 4월 23일 길이 음주운전으로 물의를 빚고 자진 하차한 뒤의 자리 배치. 초창기 6인 구도가 됐음에도 그 때와 같은 자리 배치로 돌아가진 않았다. 또한 무한도전 자리분양 특집에서 무려 3명의 멤버가 원했던 정준하의 구석행이 현실이 됐다.

파일:무한도전 노홍철 하차 후 자리 배치.png
2014년 11월 8일 노홍철까지 음주운전으로 물의를 빚고 자진 하차한 뒤의 자리 배치. 공교롭게도 유부남들만 남았다.

파일:무한도전 황광희 영입 후 자리 배치.png
황광희가 합류해 다시 6인 체제가 됐다. 황광희는 첫 녹화 오프닝 때 자리 선택 우선권을 얻어 원래 유재석 옆자리를 탐냈으나, 멤버들의 추천으로 노홍철의 자리였던 박명수와 정형돈 사이에 배치됐고 본인도 만족했다. 특히 이 때쯤부터는 이전에 서서 오프닝을 시작한 것과는 다르게 앉아서 오프닝을 시작하는 경우가 조금씩 많아졌다.

파일:무한도전 정형돈 하차 후 자리 배치.png
2015년 11월 12일 정형돈이 건강상의 이유로 활동을 중지했고, 2016년 7월 29일 최종적으로 하차를 결정해 다시 5인 구도가 됐다. 정형돈의 공백이 상상 이상으로 컸음을 제작진, 멤버들, 시청자들 모두 느끼는 중. 거기에 멤버들이 예전만큼 활약하지 못한 데다, 한창 적응 기간을 거치던 황광희가 제 몫을 못하여 멤버들만으론 화면의 여백을 채우기 어려워졌다.

  • 양세형 영입 후 자리 배치[104]
파일:무한도전 양세형 영입 후 자리 배치.png
과거 정형돈→길 순으로 배치되었던 맨 왼쪽 정준하 옆 자리에 양세형이 들어오게 됐으며, 이로 인해 하하가 양세형과 같이 가운데에 낀 정준하를 놀리는 일이 잦아졌다.[105] 포커스가 왼쪽 3명에게 몰리면서, 명수와 광희가 분량 난에 시달리자 밑도 끝도 없는 막장 콩트를 하기도 했다.

파일:무한도전 황광희 군 입대 후 자리 배치.png
황광희가 군 입대로 하차하면서 7주 휴식 후 다시 5인 구도가 됐다. 진행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맨 왼쪽이었던 양세형이 박명수 옆 맨 오른쪽으로 이동했다.

파일:무한도전 조세호 영입 후 자리 배치.png
무한도전의 마지막 자리 배치. 조세호가 2017년 공영방송 총파업 이후 도우미로 합류 후 2018년 1월 6일 방송일자로 멤버 합류가 확정되어 6인체제가 완성되었다. 조세호가 고정 멤버가 되기 전에는 맨 왼쪽에, 고정 확정 직후 특집인 면접의 신 특집 때는 박명수와 양세형 사이에 자리했으나 그 이후부터는 정준하와 하하 사이로 이동했다.


7.2. 역대 무한도전 고정멤버표[편집]


비고멤버[106]
2005년정규 편성 이전
무모한 도전(1기)
유재석정형돈노홍철표영호
이병진 합류이병진
박명수 합류[107]
이병진 하차
박명수
김성수 합류
표영호 하차
김성수
이켠 합류
박명수 하차[108]
이켠
1기 종료
이켠 하차
무리한 도전(2기)
박명수 복귀
조혜련, 이윤석, 윤정수 합류
박명수조혜련이윤석윤정수
조혜련, 윤정수 하차
무한도전/퀴즈의 달인(2.5기)
김성수 하차
하하 합류하하
2006년이윤석 하차
정준하 합류[109]정준하
무한도전 정규 편성
2007년변동없음
2008년변동없음
하하 일시하차[110]
전진 합류전진
2009년변동없음
길 합류
전진 하차[111]
2010년변동없음
하하 복귀[112]하하
2011년7인체제
2012년
2013년
2014년변동없음
길 하차[113]
노홍철 하차[114][115]
2015년5인체제
황광희 합류[116]황광희
정형돈 하차[117][118]
2016년5인체제
양세형 합류[119]양세형
2017년변동없음
황광희 하차[120]
2018년조세호 합류[121]조세호
종영


8. 캐릭터/소그룹[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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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타이틀 및 그래픽[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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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역대 변천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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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35회, 138회~222회, 224~228회, 230~236회는 SD로 제작하여 방영했으며, 136~137회, 223회, 229회, 그리고 237회 이후부터의 방송분은 HD로 제작하여 방영했다.


11. 프로그램 구성[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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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방영 목록[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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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에서 관리하는 유튜브 채널에 방송분을 몇 분 단위 영상으로 나누어 업로드하여 무료로 공개했고 덕분에 팬들은 유튜브로 지나간 영상들을 다시 보면서 옛 추억에 잠길 수 있었다. 하지만 2014년 12월 1일자로 해당 채널은 무한도전을 비롯해 MBC에서 방송하던 모든 예능 프로그램의 무료 공개 서비스를 전면 중지했다. MBC・SBS와 유튜브 간의 협상이 지상파 측의 무리한 요구로 결렬되면서 지상파 측에서 여론 형성을 위해 유튜브 영상분의 국내 IP 차단을 걸면서 생긴 일이다. # 실제로 이후 영상을 실행하면 '동영상을 올린 사용자가 동영상을 해당 국가에서 볼 수 있도록 설정하지 않았습니다'라는 문구가 뜨며 한국 프로그램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만 차단되었음을 알 수 있다. 팬들은 그 놈의 광고 수입은 한 푼이라도 챙기려고 한국만 다 차단시켜 놨다며 반발했다.

그나마 이후 2017년 8월 12일부터는 독립 이전 무모한 도전 때의 영상을 비롯한 2000년대 중반까지의 방송 영상들만 한정적으로 무료보기 서비스를 재개했다. 유튜브 뿐만이 아니라 네이버다음에도 핫클립이 업로드되어 있다. 이 때 알아둬야 할 것은 독립 이전 무모한 도전 때의 영상은 방송 내용 전체가 올라와 있지는 않으며 2006년 2월 11일 방송분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풀리지 않은 상태다.

한편 이와는 별개로 현재 유튜브에서 2011년 방영분인 251회와 252회의 서비스가 안 되고 있다. 이유는 저작인접권 문제로 추정된다.

2019년 7월부터 MBC의 구작 프로그램들을 모아놓은 MBC classic 채널에서 무한도전 1, 2기에 해당하는 2005년 무모한 도전, 무리한 도전을 시작으로 매일 2회차 분량의 클립들이 업로드되었고, 2019년 8월 15일 기준으로 '강력추천 토요일'로부터 독립 프로그램 무한도전으로 분리된 이후의 분량인 20회까지 업로드하였다.

2020년 이후부터는 독립 이후의 무한도전 때의 영상들을 비롯한 2000년대 후반 ~ 2010년대 초중반 방송 영상들이 다시 유튜브에서 부분적으로 무료 공개되었다. 그러다가 7월 14일을 기점으로 일부 영상들을 제외하고 전체적으로 공개되어 시청이 가능해졌다.[122]

wavve네이버 시리즈온 등의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제공되는 무한도전의 VOD가 고화질로 업데이트된 것이 확인됐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영상 상단에 MBC VOD 워터마크가 없어진 것.[123] 이전까지 제공되던 공식 VOD는 최초 제공 후 최대 10여년간 화질 업데이트를 하지 않았던 탓에 심한 깍두기 현상, SD 방영분의 오버스캔 문제[124], HD 초기 방영분의 화질 문제[125] 등 여러 불편사항들이 많았는데, 방송사 아카이브의 고화질 원본을 VOD로 제공하게 되면서 이러한 점들이 전부 개선됐다. 쉽게 얘기해서 옛능오분순삭 등의 MBC 공식 유튜브에서 제공하는 영상과 화질 차이가 없다. wavve에서는 한동안 일부 회차[126]가 화질 업데이트에서 누락되어 예전 품질로 제공되고 있었지만 최근에 다시 VOD 업데이트를 하면서[127][128] 시즌1부터 시즌3까지의 615회 전편[129]을 모두 고화질로 볼 수 있게 됐다.

위에 얘기가 나온 저작인접권 문제와는 별개로, 보통 출연자의 사건사고로 정서상 해당 인물이 출연한 회차의 VOD 서비스가 중단되는 타 프로그램과 달리 무한도전은 출연자 이슈 때문에 VOD 서비스가 중단된 경우는 현재까지 없다. 대표적으로 갱스 오브 서울(248, 249회)과 빅뱅 특집(511회)에 출연한 승리, 하나마나 행사 시즌3(268,269,270회)에 출연한 고영욱, 무도의 밤 2부(545회)에 출연한 정준영[130] 등이 있으나 해당 인물들이 나온 회차들 전부 누락없이 VOD 서비스가 되고 있다.[131] 아무래도 종영한지도 꽤 지났고[132], 종영 이후인 현재까지도 다시보기 순위권에 들 정도로 두터운 인기를 자랑하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에[133] 딱히 제재를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재방송의 경우는 얄짤없이 미방되거나 편집돼서 내보내진다.


13. 수상 내역[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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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논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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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여담[편집]






상황에 따라 진행을 전담하는 출연진이 하나 있긴 있다. 물론 그 순간을 제외하면 MC 역시 한 명의 일반 출연진 대우를 받는다. 또 예를 들자면 과거 주류 예능이었던 X맨을 찾아라, 스타 서바이벌 동거동락 등을 보면 여기서도 다수의 고정 출연진이 등장하긴 하나, 유재석이 방송에 직접 참여하기보다는 진행만 맡는 것을 볼 수 있다. 가끔 의외성을 이용한 웃음을 유발하기 위해 유재석을 끌고 들어가 일반 출연진들과 동일한 게임을 진행시키는 구도도 등장하긴 했으나 일회성에 불과했다.
기존 예능 프로그램들은 어디까지나 출연진에게만 (컨셉에 따라선 섭외된 일반 시민들에게도) 모든 포커스를 몰아줬지, 촬영팀은 절대 방송에 나오지 않았다. 촬영팀이 어쩔 수 없이 개입해야 할 때도(대본 전달, 녹화 세트 구성 등) 그 장면만 녹화하지 않거나 편집해서 절대 출연진 외엔 촬영팀이 등장하지 않게 했다. 그러나 사실 이전에도 쌀집아저씨 김영희 PD, 코미디하우스김유곤 PD[135], 공포의 쿵쿵따김석윤 PD 등 정식 출연진이 아닌 제작진이 직접 방송에 출연하는 장면이나, 출연진이 세트 뒤의 제작진에게 난입하는 장면을 방송에 담는 것은 낯선 일이 아니었다. 심지어 김영희 PD는 마이크를 달고 원샷까지 받으면서 화면에 등장했다.# 나영석 PD도 처음 방송에 나온 것은 1박 2일이 아닌 조연출이던 때의 여걸파이브에서였다.
무한도전이 나오기 전까지 기존 예능 프로그램들도 당연히 카메라를 썼다. 그렇지만 중요한 MC, 출연자들만을 보여주거나 전체적인 모습만 보여줬을 뿐이다. 하지만 무한도전을 기점으로 모든 출연자에게 카메라가 기본 한 대씩 따라붙게 됐다. 이러면서 출연자들의 캐릭터가 다양해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몇 가지 기초 컨셉/제도들이 겹친다. 그런데 이런 컨셉/제도들을 한국 방송계에 가장 먼저 들고 나와 정착시킨 게 무한도전이므로 결국 의도했든 아니든 무한도전과 비슷한 컨셉이 보이는데 훨씬 더 후발주자란 점에서 이런 비교 대상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리고 이게 가장 극단적으로 드러난 게 2007년 9월 21일 놀러와에 원래 놀러와 MC인 유재석을 제외한 무한도전 멤버 전원이 게스트로 나왔는데 도대체 이게 놀러와인지 김원희가 게스트인 무한도전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2월 27일, MBC 측의 공식 발표를 통해 김태호 PD의 무한도전 연출 하차가 사실로 확인되었다. # 후임자로 낙점된 것은 <나 혼자 산다>, <우리 결혼했어요> 등의 연출을 맡았던 최행호 PD. 다만 김태호 PD는 크리에이터 신분으로 무한도전 제작에 참여하게 될 것이라는 내용으로 보아 무한도전을 떠난다라기보다는 2선으로 물러나는 것이라 보는 게 맞는 듯. 이와 더불어 현 멤버들이 각자의 거취를 결정하는 대로 새 시즌으로 넘어갈 것이라는 이야기가 한때 돌기도 했다.
결국 현 무한도전은 멤버들이 전원 하차하며 2018년 3월 31일 부로 종영하기로 결정했다. '무한도전' 5人+조세호, 전원 하차 확정 "잔류 없다"는 소식이 전해졌으나, MBC 측은 시즌 종영은 맞지만 멤버 전원 하차는 아직 결정되지 못하였으며, 멤버들을 설득 중이라고 밝혔다. 권석 본부장 "'무한도전' 3월 31일 종영, 시즌2 위해 멤버 설득 중" 다만 MBC 측의 입장과는 달리 멤버들은 이미 김태호 PD의 하차에 맞춰 전원 하차하는 것으로 마음을 굳혔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
최종적으로 최행호 PD가 맡을 후속 프로그램은 무한도전을 계승하는 것이 아닌 별개의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확정되었으며 현재의 멤버들은 후속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고 전원 하차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하지만 MBC 측과 김태호 PD 모두 "무한도전이 폐지되는 것은 아니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는지라 이번의 종영은 휴식기의 의미라고 보는 것이 맞을 듯 하다.[150] 김태호 PD는 가을까지 휴식을 취한 뒤 새로운 기획을 들고 복귀할 예정으로 알려졌으며 그 기획이 무한도전의 후속작이 될지 혹은 새 프로그램이 될지의 여부는 밝혀지지 않았다.









15.1. 재방영[편집]






16. 중국판 무한도전[편집]


파일:중국판무한도전.jpg
2015년 3월 18일 MBC는 중국 상하이에서 중국판 '무한도전' 1기 협력 의향서를 체결했다. 중국판 '무한도전'을 제작할 방송사는 CCTV다. 중국판 '무한도전'은 10월 말 CCTV-1에서 방영됐다. 일요일 오후 8시로 편성되며, 총 12회 분량으로 제작될 전망이다. MBC 제작진이 중국에서 '무한도전' 제작에 참여했다.

멤버로는 해당 방송사인 CCTV 소속의 인기 앵커이자 방송인인 사베이닝, 중국 베스트셀러 작가 겸 방송인 러지아, 홍콩 출신 배우 원경천, 중국의 국민배우 샤이, 대세 스타 방송인 MC 화샤오, 유명 개그맨 악운봉이 참여했다.

정식 계약을 맺은 해당 중국판 '무한도전'과는 별개로 상하이 미디어 그룹에 의해 짝퉁 무한도전인 극한도전[160]이 제작됐는데, 이에 현지 중국매체에서 비판 여론이 들끓었다. 무한도전 에피소드를 그대로 베낀 중국화 버전. 카메라 앵글이며 기획 의도 자막, 구성까지 판박이다. 기사1 기사2 사실 짝퉁이 워낙 많은 중국임을 감안하더라도 현지매체들이 이렇게 맹협공한 것은 특이한 일인데, 무엇보다도 정식 계약 상대가 다른 곳도 아닌 CCTV니까 가능한 일. 중국의 미디어는 홍콩 계열을 제외하면 사실상 국영도 아닌 관영(공산당 계열)이고, CCTV는 그 정점이기 때문이다.

12월 6일에 첫 전파를 탔다. 중국판 제목은 '위대한 도전(了不起的挑战)'. 상술한 대로 일요일 오후 8시대에 편성됐으며, 전국 시청률 5%대를 기록. 중국 인구 중 5% 추산이다.[161] 봉황계열 TV 같은 위성파가 아닌 전국공통 지상파이기에 영향력은 상당한 듯. 두 번째 방영분에서 시민들이 몰려와 핸드폰을 마구 들이댄 걸 볼 수 있다.

제작 스케일부터 대륙의 기상을 느낄 수 있다. 베이징, 상하이, 충칭, 항저우 등 중국 전역의 대도시와 오지에서 제작했다. 1화는 Yes or No 특집, 2화는 극한알바 특집의 콘셉트인 것으로 보인다. 메인MC부터 유재석의 기믹을 상당히 벤치마킹한 것을 알 수 있는데, 2화 중간에 보면 장가계[162]에서 연기자를 따라 레펠 타고 촬영하러 내려가야 하는 제작 스태프가 MBC 제작진이다. 플라잉 PD[163]가 제작기획 회의에 참여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현지 촬영 때도 스태프로 따라다닌 듯.


17. 관련 문서[편집]




18. 둘러보기[편집]


김태호 사단 · 파일:TEO 로고.svg[[파일:TEO 로고 화이트.svg 연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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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23년 6월 18일부로 SBS 런닝맨이 4,726일을 달성함으로써 그 기록을 넘어서게 되었다.[2] 3기를 기준으로 한 방송 횟수는 563부작이며, 1기~2기까지 합산한 방송 횟수는 총 615부작이다.[3] 이후 1박 2일 시즌 4에서 방송된 수려한 휴가 2부(2020년 8월 16일 방송)에서 615화를 달성하게 되며 최다 회차 2위로 밀렸으며, 2년 뒤 런닝맨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런닝맨 2부(2022년 8월 7일 방송)에서 615화를 달성하게 되며 버라이어티 예능 최다 회차 역대 3위로 밀리게 됐다.[4] 단, 413회 에피소드인 나는 액션배우다의 경우 약간의 폭력성 때문에 15세 이상 시청가로 분류돼 방송되었다.[5] 종영 당시 출연진, 포털 사이트 등재순 기재[6] 정규 편성 이후의 멤버만 하차순으로 기재하였다.[7] 정확히는, 2010년 12월 4일 방영분부터 김태호가 프로듀서가 되었다. 2016년 3월 26일 방영분부터 CP(총괄 프로듀서)로 승진하였다. 한편, 김태호가 총괄 프로듀서가 된 2016년부터 제영재가 메인 PD를 맡다가, 2017년에 YG 엔터테인먼트로 이적하면서 임찬이 메인 PD, 종영할 무렵에는 김선영이 메인 PD를 맡았다.[8] 김태호가 CP로 승진하기 전까지는 여운혁, 김엽, 김정욱, 이민호, 송승종, 사화경, 김구산, 전진수가 CP를 맡았다. 이중 김태호 직전 CP는 바로 전진수이다.[9] 2019년 12월까지 나 혼자 산다 총괄 PD였다가 새 프로그램 연출으로 위해 하차하였다.[10] 2006년부터 2008년까지는 일부 카메라에 한해 아날로그 ATV로 병행 제작했다.[11] 1회~135회, 138회~222회, 224회~228회, 230회~236회(2006년 5월 6일~2008년 12월 20일, 2009년 1월 24일~2010년 10월 30일, 2010년 11월 20일~2010년 12월 18일, 2011년 1월 1일~2011년 2월 12일)[12] 136회, 137회, 223회, 229회, 237회~최종회(2008년 12월 27일, 2009년 1월 17일, 2010년 11월 6일, 2010년 12월 25일, 2011년 2월 19일~2018년 3월 31일)[13]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의 SNS 채널 중 트위터는 2018년 3월 31일 마지막 인사를 남기는 게시물 이후로 업로드가 끊겼고, 인스타그램은 더 이후인 종영 1주년 기념 회동 게시글을 이후로 업로드가 끊겼다. 다만, 페이스북은 종영 이후에 유튜브에 올라오는 무한도전 영상을 업로드 및 홍보하는 용도로 사용중이다.[14] 팬들이 만든 채널이 아닌 MBC에서 공식적으로 운영하는 채널이다. MBC의 옛날 프로그램들을 풀버전으로 업로드하던 MBC Classic 채널에서 독립된 것으로 보인다. 그 뒤 2019년 10월 1일부로 옛TV 브랜드의 론칭으로 MBC Classic 채널이 '옛드'로 바뀌었고, '옛능' 채널이 신설되면서 독립 채널이 아닌 이전과 동일하게 무한도전은 물론 라디오 스타, 무릎팍도사 등 예전에 방영한 프로그램을 올리는 채널로 바뀌었다.[15] 위 6명의 멤버들은 무한도전의 전성기뿐만 아니라 가장 오랜 기간 함께 했던 무한도전을 상징하는 원년 멤버들이다.[16] 무한도전의 B급 정서를 잘 살리며 전진이라는 새멤버가 안정적으로 활약했고 새로운 특집인 스포츠 장기 프로젝트 및 추격전 등을 시도하는 등 무한도전의 제2의 전성기라 칭해지는 시기.[17] 무한상사 야유회 특집때 찍은 사진이다.[18] 무려 4년 동안 이어진 무도 내에서 가장 오래간 체제. 무한도전의 제3의 전성기이자 마지막 전성기 시절로 평가 받는다.[19] 길과 노홍철이 차례로 물의로 인해 하차했으며 5인 체제로 진행하다 식스맨 프로젝트로 광희를 뽑아 새로운 모습을 준비했다. 호불호는 갈리지만 전성기의 끝자락이라고도 평하며 정형돈 하차 이후는 하락과 부진의 시작이라고도 말하는 체제.[20] 차례로 정형돈 건강상의 이유로 하차, 광희 군입대로 하차로 인해 양세형, 조세호 등을 영입하여 다시 도약 준비했으나, 새멤버들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지 못하고 헤매던 중 김태호 PD의 하차로 인해 도미노 현상으로 자연스럽게 종영되었다.[21] 또는 다른 버전으로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무한~ 도전!"이라고도 한다. 전자는 유재석만 인사를 하지만('도전!' 부분만 함께 한다) 후자는 출연자 모두가 하는 것에 차이를 둔다. 더욱 발랄한 것도 특징이다.[22] 무모한 도전에서 무한도전/퀴즈의 달인까진 프로그램 정규 편성 이전이다. 2006년 5월 6일 재탄생한 무한도전부터 정규 편성 이후가 된다.[23] 563회는 독립 편성이 시작된 2006년 5월 6일 방영부터 계산한 것이고 독립 편성 이전 방영까지 합하면 615회이며 이는 곧 600회를 넘는 횟수다.[24] 최초라는 말이 있지만 그건 아닌 게 위에 나온 것처럼 국내 기준으로도 KBS의 한국이 보인다의 코너 중 하나인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일요일은 즐거워천하제일외인구단, SBS의 일요일이 좋다의 유재석과 감개무량, MBC의 일요일 일요일 밤에배워봅시다, 대단한 도전 등이 훨씬 조상뻘이며, 같은 형식을 이전부터 선보인 바 있다. 다만 확실히 리얼 버라이어티를 정의내리고 예능계 주류로 끌어올려 큰 영향을 끼친 프로그램은 무한도전이 맞다.[25] 다만 관찰 예능의 좁은 포맷이라는 한계점을 둔 채 비슷한 포맷의 관찰 예능이 범람해 TV예능이 쇠퇴하는 결과를 맞았다.[26] 이명한 PD가 무한도전 무인도 특집에 영감을 얻어 1박 2일을 기획했다고 한다.[27] 출연진들이 직접 몸을 던져가며 웃음을 주는 방식보다는 나 혼자 산다, 슈퍼맨이 돌아왔다, 미운 우리 새끼 등을 필두로 그저 유명인들의 일상을 지켜보며 친목을 하거나 툭하면 노래 경연을 해대는 등 전반적으로 관찰 예능경연식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포맷이 고정되어 신선함을 잃기 시작했다.[28] 출연자들을 혹사시키고 민망한 모습을 보여주기보다는, 출연자와 스태프 모두 편하게 방송을 만드는 식의 포맷이 완전히 예능의 판도로 정착해버렸고, 2020년 이후 코로나 사태를 거치며 대면활동에 지장이 생기면서 그러한 경향이 더욱 고착화되었다.[29] 2011년 신정 때 연말정산 특집에서.[30] 2006, 2009~2010, 2014, 2016년 유재석. 2012년 박명수. 2007년 당시 고정 멤버 6인. (2007년엔 거침없이 하이킥이순재와 공동 수상)[31] 2006, 2010, 2017년 박명수, 2014, 2016년 정준하, 2011년 유재석, 2013년 정형돈, 2015년 하하[32] 2006년 하하, 2008년 정형돈, 2009년 노홍철, 2017년 양세형[33] 2007년 김태호, 2015년 전원 수상[34] 2006~2009년엔 4년간 연달아 수상했으며, 10년에는 세바퀴, 11년에는 나는 가수다, 12년에는 라디오 스타가 수상한 다음 다시금 2013~2016년까지 연달아 수상했다. 다만 여기서 11년의 나가수, 12년의 라디오스타는 MBC 예능의 역사에 빠질 수 없는 인기 예능이었던만큼 수상을 이해할 수 있지만 10년에는 뜬금없이 투표에서 압도적으로 독주하던 무한도전을 제치고 하위권이던 세바퀴가 수상해서 조작 논란이 일었다. 2010 MBC 방송연예대상 조작 논란 항목 참조.[35] 그로부터 1년 후인 2012년 12월 아날로그 방송 종료를 대비해 거의 모든 프로그램들이 HD로 전환되기 시작했다.[36] 무한도전 you & me 콘서트도 HD로 시험 방송되었으나 방송 자료 테이프가 유실되었는지 MBC에서 직접 올려주는 유튜브나 MBC 방송 자료가 담겨있는 MBC Archive 홈페이지에서는 4:3 비율 SD 자료영상만 나온다.[37] 엄밀히 말하면 평창 동계올림픽 때문이긴 하다.[38] 2017년부터는 썰전과 예능 프로그램 1위 경쟁을 벌였다.[39] 이전의 MBC 예능본부는 예능 1, 2국으로 나뉘어 각 국 아래에 또 여러 부서들이 있는 복잡한 구조였지만 개편된 현재 예능본부는 본부 아래에 '국'이 없어지고 바로 '부'가 위치하는 구조로 간소화됐다. 현재 MBC 예능본부는 예능 운영부, 예능 마케팅부, 예능 1~5부, 예능 파일럿부 총 8개의 부서로 구성되어있다.[40] 무한도전 Yes or No 편에서 유재석이 마라도에 가기 위해 신입 PD에게 삥을 뜯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신입 PD가 바로 박진경이다.[41] 훗날 이로 인해 낙하산 사장은 징역형을 선고받는다. 후일 2015년이 되어서야 조금씩 당시 스태프들이 모습을 비추기 시작했다.[42] 여담으로 2015년 중국판 짝퉁 무한도전(정식으로 계약을 맺은 중국판 무한도전은 CCTV의 위대한 도전이다.)인 극한도전 1화에서 이 에피소드를 카피해 방영했다.[43] 역대 한국 예능 시청률이 최고 기록 기준으로 2위가 (1박2일을 포함한) 해피선데이, 3위가 무한도전이다. 1위는 내일은 미스터트롯인데, 최고회차 시청률이 40%가 안 되었고 1박2일은 단독이 아니라 해피선데이에 합쳐서 기록에 들어갔기 때문에 2위로 내려앉은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1박2일이 1위인 것이다. 또한 해피선데이와 합쳐졌어도 내일은 미스터트롯 2부의 방영기간이었던 2020년 이전 기준으로는 역대 1위이자 유일하게 30%대 시청률을 찍은 예능이였다.[44] 대략 2007~2014년[45] 중장년층은 멤버들 개개인의 이름조차 잘 모르고 보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강호동, 유재석 정도는 돼야 잘 알아본다.[46] 즉, 길게 잡으면 2006년도 하반기부터 2015년도까지 9년 동안 짧게 잡아도 2007년부터 2014년 노홍철 하차하기 전까지 8년이라는 긴 시간을 전성기를 보낸 셈이다. 예능 프로그램이 이 정도의 긴 시간을 전성기로 보낸 프로그램은 무한도전이 유일하다. 게다가 길 역시도 슈퍼7 이후 2012 말 ~ 하차하는 2014 초까지는 핵심 멤버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멤버들과의 케미나 본인의 드립이 잘 터져나왔고, 유튜브로 무한도전 영상들이 풀리자 점차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다.[47] 이 시기 포털사이트에 김재철을 치면 김재철 암살이라는 단어가 연관검색어로 뜰 정도로 격앙되었다.[48] 이명한 PD도 비슷한 이유로 KBS를 떠났다. KBS는 이명한 PD에게 유학을 보냈는데, 1년 단기 유학이라는 점, 1년도 채우지 못하고 귀국한 점 때문에 KBS 경영진이 자신들과 다른 성향인 이명한을 마음에 안 들어한 정황이 짙다는 점에서 사실상 원해서 유학을 간 것이 아닌 경영진이 이명한을 퇴출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유학을 보낸 것이다.[49] 특히 유재석, 정형돈, 노홍철로 구성된 '유돈노' 라인은 1회부터 같이 시작한 원년 멤버이자 무한도전의 핵심 축이었기 때문에 돈노의 하차는 더욱 치명적일 수밖에 없었다.[50] 김태호 PD의 모교[51] 이는 사실 김태호 PD 및 제작진이 필요로 하던 부분과도 일맥상통하지만. 사실 이 '시즌제'는 김태호 뿐만이 아니라 경쟁 프로그램 1박 2일을 연출하던 나영석 PD조차도 호소하던 것이었다. 무한도전 10주년 기념 타 PD들의 축하발언[52] 노홍철은 형(노성철)과 함께 일본에 머무르고 있었으며, 정형돈은 옥탑방의 문제아들의 촬영으로 인해 참여를 못했다.[53] 2015년 초에 방영한 동명의 다큐멘터리와는 다른 프로젝트다.[54] 다만 매주 촬영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여겨진다. 정형돈의 하차 이유는 건강 문제도 크기 때문.[55] 음주운전 3연타, 각종 사건 사고로 인해 사실상 전 방송국에서 출연정지 징계처리가 됨에 따라 복귀는 불가능해졌고, 본인 역시 연예계 활동에 회의적인 반응과 행보를 보이고 있다.[56] 소집 해제 이후에 자주 무한도전 출연 시절을 언급하고 '다시 보여주고 싶다' 등의 발언을 한 바 있으며, 김태호에게도 미안한 감정을 보이고 무한도전 복귀가 가능하다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다는 발언을 하는 등 길에 비하면 복귀 여부는 열려있지만, 김태호가 사실상 주홍글씨로 낙인찍고선 언급조차 하지 않으며 외면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실현 가능성은 낮다.[57] 황광희에 경우엔 유일한 공채 멤버이며 예능감과 인기가 올라간 데다 놀면 뭐하니?에서 지속적으로 나오는 것을 감안할 때 시즌 2가 돌아온다면 원년멤버 6명 + 1 로 자주 언급되기도 했다. 하지만 시즌 2 자체가 사실상 무산되면서 가능성은 없어졌다.[58] 박명수는 이후 모든 멤버가 모이지 않았기에 합류를 거절했다고 밝혔다.[59] 박명수: 홍철이까지는 이해를 하더라도 형돈이만 했으면 난 했어![60] 타 방송사지만 런닝맨을 무도 시즌 2 격으로 보는 네티즌도 있다.[61] 디자인 서울의 등장으로 현재는 거의 전국에서 통일되어 안착된 간판 디자인이나 표지판 디자인, 보도블럭 디자인 등이 이 시기에 변화 했다.[62] 흡연 질서, 공공장소 에티켓, 대중교통 이용 문화등 현재는 모두들 지켜야 할 사항으로 인지하고 있는 부분들이 이 시기에는 아직 제대로 안착하지 못하고 실천 운동을 통해 대중화를 진행하던 시기였다.[63] 이당시에는 SCH-M620(SKT)/SPH-M6200(KT)이 갓 출시되었지만 지금과 다르게 음성 요금제에 데이터 요금제를 함께 가입해야 했다. 거기다가 아직 마켓플레이스가 서비스되기 전이였다.[64] 2008년 당시 유재석 어린이는 상명초등학교 1학년에 재학중이었고, 정준하 어린이는 상동초등학교 3학년에 재학중이었다.[65] 당시 고등학생들의 모습과 시민들의 모습[66] 슬라이드폰과 폴더폰을 포함한 피처폰을 사용하는 2000년대의 풍경이 있으며 그 와중에도 cdma2000방식인 외장형 안테나 폰을 사용하는 사람도 일부 있었다.[67] 파일:DBF35320-74AB-46BE-9B76-8F76407F064B.png[68] 옛 건물 간판 및 주변의 올드카와 초록색 번호판 등이며 지금은 흰색 번호판이 거리를 완전히 메우지만 당시까지는 반대로 초록색 번호판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했었다. 흰색번호판은 2007년 차량부터 시행했으나 2010년대 초반까지는 많이 볼 수 있었고 2020년대가 되어서야 거의 사라졌다.[69] 파일:6A4F5CBE-DB0F-4A03-AB8E-6CC996BC8ABA.png[70] 지금은 서울교통공사가 담당하는 1~8호선의 경우 얼씨구야/풍년 환승음을 사용하고 있다. 얼씨구야 환승음은 서울교통공사 열차(2, 5~8호선 모든 열차 및 1, 3, 4호선 일부 열차)에 한해 2023년 1~2월에 순차적으로 풍년으로 교체되었다. 한국철도공사 열차가 운행하는 1, 3, 4호선 일부 열차와 경의중앙선이나 수인분당선 열차 등의 경우 얼씨구야 환승음이 유지된다.[71] 파일:00EEEB0F-14CB-47EC-A2F0-F203062E6248.png현재 기준으로는 박명수 방향이 내려가는 방향이고, 그 반대가 올라오는 방향이지만 좌측통행 시절이라 반대로 설치된 진풍경을 볼 수 있다. 방영 기준, 2년 후에 현재처럼 우측통행으로 완전히 바뀌게 된다.[72] 파일:19603E71-F14F-4B82-B1CB-1F87707F9749.png개찰구 구멍은 2009년 7월, 일회용 교통카드의 도입으로 사라졌다. 2009년 7월 이전에는 종이 표로 이루어진 승차권인 MS 승차권으로 개찰구를 통과해 열차를 이용했다.[73] 파일:A9C45DA4-9B7F-482F-8C38-CA504628E871.png 위험했던 시절이라 사람들이 모두 벽에 붙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요즘은 스크린 도어에 가까이 있는걸 생각하면 천지차이. 게다가 2011년 이후로는 스크린도어가 없어도 펜스가 존재한다.[74] 파일:D4BA33A6-1DB7-4D38-B3AA-40ADCDE55F9C.png[75] 파일:Screenshot_20230826_223748_YouTube.jpg박명수와 노홍철이 돈가방 때문에 실랑이를 벌이는 장소는 2010년 이후에 철거되었다.[76] 버스 정류장 앞의 무단주차 차량들, 한강 공원에서의 낚시꾼들 및 쓰레기 무단 투기 등등.[77] 파일:53A12AB5-4EAE-43F7-AB06-620B7988CC28.png[78] 파일:8A90BDE2-26BE-434C-B07B-DB2B4F615AB8.png 바닥에 쓰레기를 많이 버린 것을 알 수 있다.[79] 파일:E986F6C7-5593-4BED-A6EF-E5FB2117EDE4.png 아마 술에 잔뜩 취한 취객들이 술주정으로 찢었거나 아니면 동네 아이들이 놀다가 장난으로 찢은 것으로 보인다.[80] 공중전화는 휴대전화의 보급이후로 사용 횟수가 줄어들었지만 스마트폰이 보급되어 인류에게 필수품이 된 현재와 달리 방영시기인 2008년까지는 스마트폰이 보급되기 전이었고, 휴대폰을 두고 다니는 경우가 흔해서 급한 사람들은 아직 공중전화를 적지 않게 이용했다.[81] 특히 스마트폰이 보급된 현 초등학생과 달리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에 초등학생이었던 세대들은 시대 특성상 휴대폰이 없는 아이들이 대부분인지라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공중전화를 통해 1541 콜렉트콜로 부모님께 연락을 했었다. 또한 KT 콜렉트콜의 경우 2008년은 KTF가 KT에 인수합병 되기 전 마지막 시절이며 KT 로고도 현재의 신형 로고로 교체되기 전과 올레 KT가 등장하기 전이었다. KTF는 2009년 6월 1일에 KT에 인수합병되어 역사속으로 사라졌고, KT는 동년 7월 1일에 로고 교체 및 올레 KT로 브랜드를 새롭게 변경했다.[82] 파일:932E170E-8408-4314-9B98-E6C398681DBF.png[83] 파일:3BE466D4-FF2E-4887-9425-FA796F5584D2.png 당시까지만 해도 대중들은 만일을 대비하여 하나씩은 들고 다녔다.[84] 파일:AD7FB0CC-0F12-42A4-BECE-F5B6A2BD236B.jpg
파일:7C3272FD-EEA1-46AB-A64E-78CA16C007B2.jpg
특히 여드름 브레이크는 2009년 6월에 촬영되었는데, 이 회현 고가차도는 노후화와 교통 혼잡 등의 문제로 2009년 3월에 철거가 확정되어 여드름 브레이크 녹화 이후 두달 뒤인 8월부터 통행금지가 내려지고 9월까지 철거가 진행되어 사라졌기 때문에 여드름 브레이크에 나오는 차량 통행이 가능한 회현 고가차도의 모습은 대중매체에 기록된 마지막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85] 파일:Screenshot_20230826_221317_YouTube.jpg[86] 파일:Screenshot_20230826_222210_YouTube.jpg[87] 파일:Screenshot_20230826_221057_YouTube.jpg병원에 인터넷 존이라는 컴퓨터 사용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88] 파일:Screenshot_20230826_225011_YouTube.jpg[89] 근데 뉴질랜드는 PAL방식이라서 NTSC방식으로 녹화된 비디오테이프를 보려면 현지 호텔이 멀티시스템 VCR을 보유해야했다. 물론 여행객들을 위해 당시 호텔들은 멀티시스템 VCR을 보유하긴 했다.[90] 파일:Screenshot_20230826_223139_YouTube.jpg[91] 파일:3166B04A-F177-4A26-92E2-2E6F53C08291.png[92] 유재석의 경우 무모한도전 시절부터 2008년까지는 무테안경을 착용한 상태에서 덥수룩한 헤어스타일을 유지해 단정한 모습의 스타일이지만 2009년부터는 안경과 헤어스타일을 새롭게 바꾸어 현재와 거의 비슷해졌다.[93] 인간이 아니다의 줄임말[94] 기달요의 줄임말[95] 문화상품권의 줄임말[96] 헐의 작어를 뜻하는 말[97] 급식체는 2015년에 등장했다.[98] 2014년 당시 고등학생은 1996년생부터 1998년생이고, 중학생은 1999년생부터 2001년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급식체가 나오기전에 중,고등학교에 재학한 마지막 세대이며 현재 전원 20대이다.[99] 파일:Screenshot_20230826_120134_YouTube.jpg[100] 파일:Screenshot_20230826_121219_YouTube.jpg당시 부시 대통령은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 당일에 각국 정상들과 함께 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하기도 했으며 이날 당일에 남오세티야 전쟁 침공 소식을 푸틴에게 보고받기도 했다(...)[101] 특히 초창기에 전혀 친하지 않거나 어색했던 박명수/정준하, 하하/정형돈이 해를 거듭해가면서 친해지는 모습을 보였다. 하하와 정형돈은 초창기에 애매한 경력/나이 차이(확 선배나 형님 대접할 정도는 아닌데, 그냥 친하게 형이라고 부르기엔 안 친한) 때문에 어색해했고 그 컨셉으로 특집까지 했지만, 300회 특집 당시 하하가 평상시 친한 노홍철/유재석과 같이 노가리를 까다가 "여기에 형돈이 형까지 있으면 제일 편한데"라고 언급할 정도로 친해졌다. 또한 박명수는 정준하와 비슷한 나이, 스타일 차이(박명수는 공격적인 개그를 치는데 별 친분도 없고, 당시 호통 개그를 받기엔 정준하의 버라이어티 경력이 적어 오해도 쌓였다.) 때문에 초반에 마찰이 많았으나 2021년에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유재석보다도 정준하가 더 친하고 자주 만난다고 밝혔다.[102] 길이 출연하지 않은 하루만의 세계일주 특집에서는 위의 자리배치에서 전진이 초기 하하의 자리인 박명수와 노홍철 사이에 서서 오프닝을 진행했다.[103] 전진이 빠지고 기존 박명수와 노홍철 사이에 있던 하하가 복귀하면서 유재석과 정준하 사이의 전진의 자리로 들어간 것이 바뀐 점.[104] 정식 영입이 아닌 게스트로 영입된 2016년 포함.[105] 양세형이 게스트로 영입된 시절에는 정준하와 하하 사이로 가는 등 여러차례 자리배치가 바뀌었는데, 정준하 왼쪽 길의 자리에서도 양세형이 정준하에게 가려지지 않고 괜찮은 활약을 펼치자 추가적인 자리배치 변경 없이 이쪽으로 결정한 것으로 추정된다.[106] 합류순서[107] 2005년 5월 14일 방영된 무모한 도전 4회부터 게스트로 출연[108] 당시 담당 PD였던 권석이 "우리가 쌀이라면 박명수는 보리다"라는 평가를 내리며 하차시켰다.[109] 2005년 9월 10일 방영된 무모한 도전 21회 게스트로 출연 이후. 무한도전/퀴즈의 달인 21회(2006년 3월 25일 방송분)부터 합류[110] 공익근무요원 군 입대로 일시 하차.[111] 공익근무요원 복무로 인해 하차.[112] 공익근무요원 소집 해제로 복귀.[113] 음주운전으로 인한 불명예 하차.[114] 음주운전으로 인한 불명예 하차.[115] 2005년 4월 23일 정규편성 이전부터 원년멤버로 9년만에 하차.[116] 419~424회까지 무한도전 식스맨 : 시크릿 멤버 편을 통해 새 멤버 선발로 합류.[117] 그 해 11월 12일, 불안장애 등 건강상의 이유로 인해 일시 하차 했지만. 2016년 7월 29일에 자진하차 결정.[118] 2005년 4월 23일 정규 편성 이전부터 원년멤버로 10년만에 하차.[119] 472회, 473회 ~ 475회, 479회, 483회 ~ 484회, 487회 ~ 512회까지 게스트로 출연하다가 513회부터 합류.[120] 군 입대로 인해 하차.[121] 2009년, 2013년, 2014년, 2015년, 2016년, 2017년 게스트로 출연 후, 2018년 1월 6일에 합류.[122] 정확하게는 2014년 10월 25일 방송분까지 전체적으로 공개되었다.[123] 이는 현재 방영·제공되는 MBC 프로그램의 VOD도 마찬가지다.[124] 91회 ~ 236회 한정으로 영상을 확대한 탓인지 원본과 비교했을 때 가장자리 부분이 살짝 잘려나가있었다. iMBC와 wavve의 정주행 채널에서는 아직까지도 이 VOD 영상으로 송출하고 있다.[125] iMBC VOD 기준으로 2014년 중반까지 960x540를 최대 해상도로 제공했는데, wavve 등에서는 이를 1280x720(HD)로 강제 업스케일링 해버려서 오히려 녹화본보다도 떨어지는 화질이 돼버렸었다.[126] 무모한 도전(시즌1) 전편 + 무리한 도전(시즌2) 전편 + 무한도전 10회, 12회, 30회, 78회, 88회, 90회, 166회, 208회, 311회, 503회.[127] 그리고 기존의 화질 업데이트를 했던 다수의 회차들 역시 프로그램 마지막의 협찬사 안내 부분을 편집해서 다시 올린 것으로 확인됐다.[128] 저작인접권 문제로 목록 자체에서 빠져있었던 일부 회차들도 빠짐없이 다시 올라왔다.[129] 무모한 도전(시즌1) 26편 + 무리한 도전(시즌2) 26편 + 무한도전(시즌3) 563편.[130] 같은 방송사의 마이 리틀 텔레비전은 정준영이 출연했던 5~6회, 98~99회의 VOD를 내렸으며, 정준영이 고정출연했던 1박 2일 시즌3는 아예 프로그램의 방영 자체가 부정당해버렸다.[131] 사실 게스트가 아닌 고정멤버로만 따져도 음주운전 물의를 일으켰던 노홍철의 출연분도 원칙적으론 당시에 VOD 서비스를 중단했어야 맞겠지만 그렇기엔 이들이 출연한 기간이 프로그램이 방영한 기간과 맞먹어서 자칫하면 1박 2일 시즌3처럼 프로그램 방영 자체가 부정당하는 사태가 발생하기 때문에 그러지는 않았다. 비슷한 케이스로 1박 2일 시즌1MC몽엄태웅의 출연분을 그대로 놔두고 있다.[132] 만약 방영중인 상태였다면 아무리 과거 방영분이라고 한들 출연자 이슈로 인한 VOD 중단은 불가피했을 것이다.[133] 특히나 에피소드 하나하나를 소중하게 여기는 무한도전 팬들에게는 물의를 일으킨 연예인이 나오는게 약간은 불편할 지언정 그 연예인 때문에 아예 해당 에피소드를 다시보지 못하게 된다면 그 자체가 엄청난 불만사항이 될 지도 모른다.[134] 알래스카 특집 당시 현지의 한 어르신이 "저희가 (무한도전) 많이 보죠!"라고 하셔서, 유돈노 팀이 "무한~"을 띄웠는데 이 분이 자신있게 "무야~호~!"란 정체불명의 구호를 외쳐서 큰 웃음을 주시고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유튜브에 일반인 관련 무한도전 영상이 올라오면 댓글로 무야호 할아버지 어딨냐는 말이 심심찮게 나올 정도로 임팩트가 있던 장면.[135] 김유곤 PD의 경우 아예 출연자로 방송에 나왔다.[136] 지금의 무한도전 로고와 인트로는 2006년 1월 14일 방송에 처음으로 등장했다.[137] 해피투게더는 유재석과 박명수, 런닝맨은 유재석과 하하.[138] 대표적으로 라디오 스타 2011년 방영분 중 무한도전 멤버 박명수, 정형돈, 하하가 게스트로 출연했는데, 유재석이 없었는데도 무한도전 분위기가 났다는 댓글들이 있다.[139] 정확히는 미방영분도 아니고 현장 스태프가 보관한 자투리 촬영분을 가리킨다.[140] 박명수가 상황극 내에서 발표를 하다가 정준하의 정곡을 찌르는 질문에 "증말 씨X 못해먹겠네 아이디어를 내면 씨X 받아줘야지 이 씨X!"라고 욕을 했는데, 정작 욕을 먹은 당사자를 포함해 스탭들까지 전부 빵 터졌다. 위계질서가 엄격하기로 유명한 코미디계에서 대선배가 쌍욕을 하는데 정면에다 대고 웃을 뿐 아니라(박명수 자체도 반장난으로 욕한 것이긴 했다) 제작진까지 전부 웃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무한도전 내의 분위기가 편한지 보여주었기 때문에, 오히려 무한도전의 "가족적" 이미지에 도움이 됐다.[141] 채널 특성상 스포츠와 관련된 내용만 방송했다.[142] https://www.youtube.com/watch?v=K074rEKXhuk 본인도 의식하고 있는지 이 기믹은 자주 써먹었다. 저는요 MBC에 시험 봐서 들어왔어요라는 말 또한 무한도전에서 자주 하는 등 자부심도 대단하다.[143] 정준하/출연 작품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뮤지컬, 영화, 드라마 등에서 활약하다가 무한도전으로 데뷔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연기가 필요했던 8주년 특집 무한상사무한도전 라라랜드, 2016 무한상사-위기의 회사원 등에서 크게 활약했다. 무한도전 신들의 전쟁에서 배우들이 한목소리로 준하형은 연기 잘하세요라고 평가할 정도.[144] 다만 애초에 예능 담당 멤버였다. 오죽하면 꽃다발에서 김용만너 개그맨 몇 기니?라고 물어봤을 정도.[145] 사실 김태호 PD는 2007년에도 고려대학교 4.18 기념관 강연에서 '무한도전은 내년 정도까지만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146] 원래 7인 체제일 때 얘기가 나왔으나, 실제 광고엔 길과 정준하를 뺀 5명만 나왔다. 정준하는 나중에 나왔으나 그땐 박명수, 정형돈, 하하 없이 찍은 광고였고 길은 끝까지 못 나왔다.[147] 오호츠크해 특집 편부터 HD 전환이 되면서 선명해진 화질로 인해 피부가 더 안 좋아져보인 멤버들의 소개로 시작.[148]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HD 방영 프로그램은 공감토크쇼 놀러와나 텔레비전 드라마, 연예가 중계 등의 스튜디오에서 촬영하는 프로그램 위주였다. HD 카메라가 고가의 장비인지라 당시 야외 촬영 예능 프로그램은 제작비 문제나 장비 파손 우려 등의 이유로 HD 제작을 하지 않다가, 2012년 12월 31일에 예정됐던 아날로그 방송 종료에 대비하게 되면서 2010년대 초반, 과도기 시기부터 모든 야외 프로그램들의 HD 전환이 서서히 이뤄졌다.[149] 1박 2일은 2010년 5월 23일, 런닝맨은 2010년 7월 첫방송부터 HD 방송을 시작했다.[150] 마지막회 방송에서도 '시즌 종료'라는 표현을 썼다.[151] 두 예능 모두 당시 정점에 있던 프로그램이며 매주 레전드 특집들을 쏟아낸 당시 시기이기도 하였다.[152] 김태호 PD의 촬영 강요로 인해 멤버들이 멱살잡힐 뻔 했다고 하는데, 실제 방영분 중에서 이보다 더 심각한 상황을 연출한 경우에도 멤버들과 스태프 간의 몸싸움이 벌어진 적은 없었다. 게다가 글에서처럼 촬영 중 골절상을 당한 멤버가 있었다면 방영 여부와 상관 없이 기사화되고 프로그램 자체가 종영 위기에 몰렸을 것이다. 일요일은 101% 장정진 사망 사건이 이 글에 제시된 시점보다 3년 전의 일이었다. 결정적으로 촬영분도 전량 폐기했다면서 어떻게 구해온건지 모를 스크린샷은 사실 무한도전이 아닌 SBS 반전드라마의 스크린샷이라고 한다.[153] 확실히 MBC 공식 유튜브(MBCentertainmnet, 옛능 등)에 올라와있는 영상보다 화질이 좋다. 다만 FPS는 60프레임이 아닌 30(29.97)프레임이고, 화면비는 당시 HDTV 편성때 처럼 4:3을 16:9로 늘린 스트레치 방식이다. 또한 이런 업스케일링 방식 특유의 뭉개짐 현상 또한 존재한다.[154] 2021년 5월 12일에는 22회(추석 특집)가 2시간 분량이었던 관계로 3회 분량만 방송했다.[155] 원래대로라면 2021년 8월 12일에 246~248회, 13일에는 249~251회를 방송해야 했으나 순서가 조정되어 8월 12일에는 246, 250, 251회를, 13일에는 252, 257, 258회를 방송했다.[156] 2021년 8월 19일 재방송 첫 부분에서는 268회 전반부(스피드 특집 3부)와 270회 후반부(무한상사)를 붙여서 내보냈다.[157] 9월 15일 편성표에는 330회는 전반부인 TV특강 2부가 빠지고 후반부인 간다 간다 뿅 간다 1부만 나왔고 16일에 나갔어야 할 331회(간다 간다 뿅 간다 2부)를 앞당겨 배치했다.[158] 10월 12일 편성표에는 379회와 380회를 붙여서 한 회차로 편성했다.[159] 12월 10일 편성표에는 510회부터 512회까지 문제의 방영 분량을 빼고 하나로 붙여서 한 회차로 편성했다.[160] EXO레이는 무한도전과 극한도전에 다 나오는 진기록을 썼다.[161] 중국 예능은 그 어마어마한 시청자 규모 때문에 1%만 나와도 대단히 성공한 것으로 본다. '나는 가수다' 중국판이 이 정도 수치이며, 초대박이라고 일컫는 중국판 런닝맨인 '달려라 형제'가 4~5%대. 그래서 중국 예능판은 전국구가 아닌 1개 성(省)에서만 이름이 알려져도 인지도로 먹고사는데 지장이 없을 정도.[162] 하하와 정형돈이 갔다가 포기한 그 곳. 해외극한알바에서 본 절벽 위 잔도에다가 아래가 훤하게 뚫려보이는 강화유리 발판과 난간을 달아 완성시켜놨다. 거기에 로프를 걸쳐놓고 600미터 아래로 레펠해 내려가는 미션.[163] 해외포맷 수출 시 현지로 날아가서 제작 노하우를 전수하는 역할의 제작진.[164] 무한도전을 통해 전국구 방송을 타면서 유명세가 더 해진 계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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