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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메탈케스 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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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드뤼사이-사파이 왕국 7-1대 군주
Ῥοιμητάλκης | 로메탈케스 3세
파일:로메탈케스 3세.jpg
제호한국어로메탈케스 3세
그리스어Ῥοιμητάλκης
라틴어Rhoemetalces III
생몰 년도미상 ~ 46년
재위 기간38년 ~ 46년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오드뤼사이-사파이 왕국 7-1대 군주. 아내 피토도리스 2세와 함께 공동 왕으로 군림했으나 아내의 사주를 받은 반란군에게 살해당했다.

2. 생애[편집]


오드뤼사이 왕국 5-1대 군주 레스쿠포리스 2세의 아들이다. 12년 로메탈케스 1세가 사망한 뒤, 아버지는 로메탈케스 1세의 아들 코티스 3세와 함께 공동 왕이 되어 왕국을 분할했다. 18년, 레스쿠포리스 2세는 코티스 3세를 연회에 초대했다가 긴급 체포했다. 그는 코티스 3세가 로마에 대항하여 반란을 꾀했다고 고발하면서, 자신에게 트라키아 전역을 다스릴 권한을 달라고 요구했다. 티베리우스가 자세한 경위를 알고 싶으니 로마로 와달라고 했지만, 레스쿠포리스 2세는 거절하고 감옥에 수감된 코티스 3세를 살해했다.

19년 티베리우스가 코티스 3세가 사망한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고자 재판을 열고 레스쿠포리스 2세를 로마로 소환했다. 코티스 3세의 아내 안토니아 트뤼파이나는 증인으로 출석해 레스쿠포리스 2세의 악행을 고발했고, 티베리우스는 레스쿠포리스 2세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고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로 유배보냈다. 레스쿠포리스 2세는 도중에 탈출을 시도했다가 경비병들에게 살해당했다. 그 후 그는 로마에 머물면서 칼리굴라와 친분을 쌓았으며, 가이우스 율리우스 로메탈케스라는 로마식 이름을 사용했다.

38년 로메탈케스 2세가 사망한 뒤, 칼리굴라 황제는 안토니아 트뤼파이나에게 왕위를 그에게 넘기라고 권고했다. 안토니아 트뤼파이나는 이를 받아들이면서, 자신의 딸 피토도리스 2세를 그와 결혼시키고 공동 왕으로 세움으로써 양자의 앙금을 해소하고자 노력했다. 그는 오드뤼사이 왕으로 군림하면서 로마에 충성을 바치며 트라키아인들의 반란을 막아냈고, 트라키아 병사들을 로마군의 보조병으로서 여러 전선에 보냈다.

그러나 46년 조카딸을 각별히 사랑했다가 아내 피토도리스 2세의 질투를 유발하는 바람에, 아내의 사주를 받은 반란군에게 피살되었다. 클라우디우스 1세는 트라키아인들의 연이은 반란에 시달리고 왕족들끼리 왕위다툼을 일삼는 사파이 왕국에 염증을 느끼고 트라키아 전역을 로마의 속주로 삼기로 했다. 이리하여 오드뤼사이-사파이 왕국은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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