램지 맥도널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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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1세
초대
로버트 월폴
조지 2세
초대제2대제3대제4대
로버트 월폴스펜서 컴프턴헨리 펠럼토머스 펠럼홀리스
제5대제6대
윌리엄 캐번디시토머스 펠럼홀리스
조지 3세
제6대제7대제8대제9대
토머스 펠럼홀리스존 스튜어트조지 그렌빌찰스 왓슨 웬트워스
제10대제11대제12대제13대
대 윌리엄 피트오거스트 피츠로이프레더릭 노스찰스 왓슨 웬트워스
제14대제15대제16대제17대
윌리엄 페티윌리엄 캐번디시벤딩크윌리엄 피트헨리 에딩턴
제18대제19대제20대제21대
윌리엄 피트윌리엄 윈덤 그렌빌윌리엄 캐번디시벤팅크스펜서 퍼시벌
제22대
로버트 뱅크스 젱킨슨
조지 4세
제22대제23대제24대제25대
로버트 뱅크스 젱킨슨조지 캐닝프레더릭 존 로빈슨아서 웰즐리
윌리엄 4세
제25대제26대제27대제28대
아서 웰즐리찰스 그레이윌리엄 램아서 웰즐리
제29대제30대
로버트 필윌리엄 램
빅토리아
제30대제31대제32대제33대
윌리엄 램로버트 필존 러셀에드워드 스미스스탠리
제34대제35대제36대제37대
조지 해밀턴고든헨리 존 템플에드워드 스미스스탠리헨리 존 템플
제38대제39대제40대제41대
존 러셀에드워드 스미스스탠리벤저민 디즈레일리윌리엄 이워트 글래드스턴
제42대제43대제44대제45대
벤저민 디즈레일리윌리엄 이워트 글래드스턴로버트 게스코인세실윌리엄 이워트 글래드스턴
제46대제47대제48대제49대
로버트 게스코인세실윌리엄 이워트 글래드스턴아치볼드 프림로즈로버트 게스코인세실
에드워드 7세
제49대제50대제51대제52대
로버트 게스코인세실아서 밸푸어헨리 캠벨배너먼허버트 헨리 애스퀴스
조지 5세
제52대제53대제54대제55대
허버트 헨리 애스퀴스데이비드 로이드 조지앤드루 보너 로스탠리 볼드윈
제56대제57대제58대제59대
램지 맥도널드스탠리 볼드윈램지 맥도널드스탠리 볼드윈
에드워드 8세
59대
스탠리 볼드윈
조지 6세
제59대제60대제61대제62대
스탠리 볼드윈네빌 체임벌린윈스턴 처칠클레멘트 애틀리
제63대
윈스턴 처칠
엘리자베스 2세
제63대제64대제65대제66대
윈스턴 처칠앤서니 이든해럴드 맥밀런알렉 더글러스 흄
제67대제68대제69대제70대
해럴드 윌슨에드워드 히스해럴드 윌슨제임스 캘러헌
제71대제72대제73대제74대
마거릿 대처존 메이저토니 블레어고든 브라운
제75대제76대제77대
데이비드 캐머런테레사 메이보리스 존슨




램지 맥도널드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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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제2대제3대제4대
찰스 브랜던윌리엄 폴레트존 더들리헨리 몬태규
제5대제6대제7대제8대
제임스 레이에드워드 컨웨이앤서니 애슐리쿠퍼존 로배테스
제9대제10대제11대제12대
로런스 하이드조지 새빌로버트 스펜서리처드 그레이엄
제13대제14대제15대제16대
토머스 오스번토머스 허버트찰스 시모어토머스 허버트
제17대제18대제19대제20대
존 소머즈로런스 하이드존 셰필드대니얼 핀치
제21대제22대제23대제24대
윌리엄 캐번디시찰스 스펜서에블린 피어폰트찰스 타운젠드
제25대제26대제27대제28대
헨리 보일윌리엄 캐번디시토머스 트레버스펜서 컴프턴
제29대제30대제31대제32대
윌리엄 스탠호프리오넬 새크빌존 카터레트존 러셀
제33대제34대제35대제36대
대니얼 핀치로버트 헨리그렌빌 레베슨고어헨리 배스러스트
제37대제38대제39대제40대
찰스 프래트데이비드 머리그렌빌 레베슨고어찰스 프래트
제41대제42대제43대제44대
윌리엄 웬트워스피츠윌리엄데이비드 머리존 피트윌리엄 캐번디시벤팅크
제45대제46대제47대제48대
헨리 애딩턴존 프래트윌리엄 웬트워스피츠윌리엄헨리 애딩턴
제49대제50대제51대제52대
존 프래트헨리 애딩턴더들리 라이더윌리엄 캐번디시스콧벤팅크
제53대제54대제55대제56대
헨리 배스러스트헨리 페티피츠모리스제임스 세인트클레어어스킨헨리 페티피츠모리스
제57대제58대제59대제60대
제임스 스튜어트워틀리월터 몬태규헨리 페티피츠모리스윌리엄 로우더
제61대제62대제63대제64대
그렌빌 레베슨고어존 러셀그렌빌 레베슨고어제임스 개스코인세실
제65대제66대제67대제68대
그렌빌 레베슨고어리처드 템플뉴전트브리지스챈더스그렌빌존 스펜서처칠조지 로빈슨
제69대제70대제71대제72대
헨리 브루스찰스 고든레녹스존 스펜서치체스터 파킨슨포테스큐
제73대제74대제75대제76대
개손 개손하디존 스펜서개손 개손하디존 우드하우스
제77대제78대제79대제80대
아치볼드 프림로즈스펜서 캐번디시찰스 밴템페스트스튜어트로버트 크레어밀른스
제81대제82대제83대제84대
에드워드 머저리뱅크스헨리 파울러윌리엄 라이건존 멀리
제85대제86대제87대제88대
윌리엄 라이건로버트 크레어밀른스조지 커즌아서 밸푸어
제89대제90대제91대제92대
제임스 개스코인세실찰스 크립스조지 커즌아서 밸푸어
제93대제94대제95대제96대
찰스 크립스스탠리 볼드윈램지 맥도널드에드워드 우드
제97대제98대제99대제100대
더글러스 호그월터 런시먼제임스 스탠호프네빌 체임벌린
제101대제102대제103대제104대
존 앤더슨클레멘트 애틀리프레더릭 머퀴스허버트 모리슨
제105대제106대제107대제108대
크리스토퍼 애디슨프레더릭 머퀴스로버트 개스코인세실알렉 더글러스흄
제109대제110대제111대제112대
퀸틴 호그알렉 더글러스흄퀸틴 호그허버트 보우덴
제113대제114대제115대제116대
리처드 크로스먼프레드 퍼트윌리엄 화이트로로버트 카
제117대제118대제119대제120대
짐 프리어에드워드 쇼트마이클 푸트크리스토퍼 솜스
제121대제122대제123대제124대
프랜시스 핌존 비펜윌리엄 화이트로존 웨이크엄
제125대제126대제127대제128대
제프리 하우존 맥그레거토니 뉴턴앤 테일러
제129대제130대제131대제132대
마거릿 베케트로빈 쿡존 레이드가레스 윌리엄스
제133대제134대제135대제136대
발레리 애머스캐서린 애쉬턴자네트 로얠피터 맨델슨
제137대제138대제139대제140대
닉 클레그크리스 그레일링데이비드 리딩턴안드레아 리드섬
제141대제142대제143대제144대
멜 스트라이드제이콥 리스모그마크 스펜서페니 모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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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외무부장관 (1782~1968)
초대제2대제3대제4대
찰스 제임스 폭스토머스 로빈슨찰스 제임스 폭스조지 뉴전트템플그렌빌
제5대제6대제7대제8대
프랜시스 오스번윌리엄 그렌빌로버트 젠킨슨더들리 라이더
제9대제10대제11대제12대
헨리 핍스찰스 제임스 폭스찰스 그레이조지 캐닝
제13대제14대제15대제16대
헨리 배스러스트리처드 웰즐리로버트 스튜어트조지 캐닝
제17대제18대제19대제20대
존 워드조지 해밀턴고든헨리 존 템플아서 웰즐리
제21대제22대제23대제24대
헨리 존 템플조지 해밀턴고든헨리 존 템플그렌빌 레베슨고어
제25대제26대제27대제28대
제임스 해리스존 러셀조지 빌리어스제임스 해리스
제29대제30대제31대제32대
존 러셀조지 빌리어스에드워드 스탠리조지 빌리어스
제33대제34대제35대제36대
그렌빌 레베슨고어에드워드 스탠리로버트 개스코인세실그렌빌 레베슨고어
제37대제38대제39대제40대
로버트 개스코인세실아치볼드 프림로드스태퍼드 노스코트로버트 개스코인세실
제41대제42대제43대제44대
아치볼드 프림로즈존 우드하우스로버트 개스코인세실헨리 페티피츠모리스
제45대제46대제47대제48대
에드워드 그레이아서 밸푸어조지 커즌램지 맥도널드
제49대제50대제51대제52대
오스틴 체임벌린아서 헨더슨루처스 아이작스존 시먼
제53대제54대제55대제56대
새뮤얼 호어앤서니 이든에드워드 우드앤서니 이든
제57대제58대제59대제60대
어니스트 베빈허버트 모리슨앤서니 이든해럴드 맥밀런
제61대제62대제63대제64대
셀윈 로이드알렉 더글러스흄랩 벌터패트릭 고든 워커
제65대제66대제67대
마이클 스튜어트조지 브라운마이클 스튜어트
영국 외무·영연방부 장관 (1968~2020)
제67대제68대제69대제70대
마이클 스튜어트알렉 더글러스흄제임스 캘러헌앤서니 크로스랜드
제71대제72대제73대제74대
데이비드 오언피터 캐링턴프랜시스 핌제프리 하우
제75대제76대제77대제78대
존 메이저더글러스 허드맬컴 리프킨드로빈 쿡
제79대제80대제81대제82대
잭 스트로마거릿 베케트데이비드 밀리밴드윌리엄 헤이그
제83대제84대제85대제86대
필립 해먼드보리스 존슨제러미 헌트도미닉 랍
영국 외무·영연방 및 개발부 장관 (2020~현재)
제86대제87대제88대제89대
도미닉 랍리즈 트러스제임스 클레벌리데이비드 캐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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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대제2대제3대제4대제2대*
키어 하디아서 핸더슨조지 반스램지 맥도널드아서 핸더슨
제5대제6대제4대*제2대**제7대
윌리엄 애덤슨존 클라인즈램지 맥도널드아서 핸더슨조지 랜스베리
제8대임시제9대임시제10대
클레멘트 애틀리허버트 모리슨휴 게이츠컬조지 브라운해럴드 윌슨
제11대제12대제13대제14대대행
제임스 캘러헌마이클 풋닐 키녹존 스미스마거릿 베킷
제15대제16대대행제17대대행
토니 블레어고든 브라운해리엇 하먼에드 밀리밴드해리엇 하먼
제18대제19대
제러미 코빈키어 스타머
*표시는 대수를 건너뛰어 중임한 횟수를 의미한다.

보수당 대표 · 노동당 대표 · 자유민주당 대표 · 스코틀랜드 국민당 대표




FRS
파일:Ramsay_MacDonald_ggbain.37952.jpg
본명제임스 램지 맥도널드
James Ramsay MacDonald
출생1866년 10월 12일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
스코틀랜드 머리셔 로시머스
사망1937년 11월 9일 (향년 71세)
대서양 여객선
재임기간제56대 총리
1924년 1월 22일 ~ 1924년 11월 4일
제58대 총리
1929년 6월 5일 ~ 1935년 6월 7일
서명파일:램지 맥도널드_서명.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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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마거릿 글래드스턴
자녀맬컴, 이시벨 등 6명
학력버크벡 런던 대학교
종교개신교 (유니테리언)
정당

의원 선수10
의원 대수28, 29, 30, 32, 33, 34, 35, 36, 37, 38

1. 개요
2. 생애
3. 정치 생활
3.1. 총리 취임 이후
3.1.1. 1기: 1924년 1월 ~ 1924년 11월
3.1.2. 2기
3.1.2.1. 노동당 총리: 1929년 6월 5일 ~ 1931년 8월 24일
3.1.2.2. 거국내각 총리: 1931년 8월 24일 ~ 1935년 6월 7일
3.2. 총리직 사임 이후
4. 선거 이력
5. 여담



1. 개요[편집]


영국의 정치가이자 영국 제 56대, 58대 총리로 1900년에 창당한 노동당이 배출한 첫번째 총리이자 사회주의자로서는 영국 최초로 총리가 된 인물이다.


2. 생애[편집]


1866년, 스코틀랜드 빈농의 혼외자로 태어나 15살의 나이로 농업에 종사하다가 독학으로 공부를 한뒤 런던으로 거주지를 옮겼다.


3. 정치 생활[편집]



3.1. 총리 취임 이후[편집]



3.1.1. 1기: 1924년 1월 ~ 1924년 11월[편집]


당수로서 처음 맞이한 1923년 조기 총선에서 노동당은 의석수를 49석 늘리며 191석을 차지, 다시 한번 자유당을 누르고 보수당의 뒤를 이은 원내 2당 지위를 유지했다. 스탠리 볼드윈 총리가 이끈 보수당은 86석을 잃으면서 원내 다수당 지위를 상실, 헝 의회(Hung parliament)이 되었다. 당초에는 볼드윈이 총리 자리를 지키기 위해 소수당 정부 출범을 각오하고 다음 국회가 열리는 1924년 1월까지 사임을 거부했지만, 조지 5세의 개회 칙유 발표 이후 있었던 정부 계획안에 대한 승인 투표를 노동당과 자유당이 손잡고 부결시키면서 버틸 수 없게되자 사임을 선택한 것.

조지 5세가 사임한 볼드윈을 대신해 맥도널드에게 소수 정부 수립을 명했는데, 자유당 허버트 헨리 애스퀴스 전 총리의 전략적인 지지를 받는 상황이 되자 이를 수락하면서 영국 역사상 최초의 노동당 내각이 출범하게 되었다.1 또한 최초의 노동자 출신 총리, 종합대학 교육을 받지 않은 몇 안되는 총리라는 기록을 세우게 된다.2

총리에 취임하자마자 정부 구성에 협조한 자유당의 리처드 홀데인 경에게 대법관 겸 상원의장을 맡기고, 자유당 출신인 필립 스노든을 재무장관에 임명하면서 야심차게 움직였다. 취임 이후 첫 과제는 바이마르 공화국에 지워진 과도한 전쟁 보상금과 이로 인해 촉발된 프랑스의 루르 점령을 해결하는 것이었다.

1924년, 맥도널드 총리는 런던에서 전시 연합국 회의를 소집해 프랑스가 도스 안을 수용하도록 압박하고 영독 상업조약을 체결해 바이마르 공화국의 숨통을 터줬는데 이 과정에서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견해를 많이 받아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프랑스가 루르 점령을 포기하고 배상금 조정을 받아들이면서 취임 후 여럿 외교 성과를 내었다.

또한 1924년 2월, 소비에트 연방을 승인하고 수교 협의를 시작했는데 이 과정에서 자유당의 반발을 사게 된다. 특히 신생 국가인 소비에트에 차관을 제공하는 문제에 대해서 강력하게 반대했고 보수당이 기회를 노려 자유당에 호응하면서 노동당과 자유당 간의 느슨한 연대가 깨지게 된다. 특히 이 사이에 벌어진 캠벨 사건(Campbell Case)가 맥도널드 내각의 운명을 끝장내고 만다.

공산주의자이자 신문 편집자이었던 존 로스 캠벨(J.R. Campbell)이 공개적으로 군인을 모욕하는 서한을 기고한 것에 대하여 영국 검찰에서 폭동을 선동한 죄로 기소하자 맥도널드와 노동당 내각이 기소를 중지하도록 압박했다는 폭로가 터져나오면서 그야말로 난리가 나고 말았다. 보수당과 자유당은 즉시 맥도널드 내각에 대한 불신임결의를 하원에 제출해 찬성 364표, 반대 198표라는 어마어마한 차이로 통과시킨다. 이는 역대 영국 내각불신임결의 중 가장 큰 격차로 가결된 결의안이다.

결국 램지 맥도널드는 이에 대응해 의회를 해산하고 조기 총선을 선언했다. 1924년, 1년만에 열린 조기 총선에서 노동당이 40석을 잃고 151석에 그친 상황에서 보수당이 의석을 무려 154석을 늘려 401석을 확보해 단독 과반을 달성. 1월에 굴욕을 당했던 스탠리 볼드윈이 화려하게 총리로 복귀하게 된다.[1]

특히 선거를 4일 앞두고 지노비예프 서간 사건이 터진 것이 치명타였다. 보수 계통 일간지인 데일리 메일에서 지노비예프가 서명한 ‘코민테른 서간’의 비밀문서를 공개했는데 거기에 영국 노조와 군대에게 공산주의 쿠데타를 호소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던 것. 이로 인해 노동당은 색깔론에 대책없이 당할 수 밖에 없었다.

심지어 더 억울한 것은 이 편지가 알고보니 위조된 가짜였다는것과 앞서 맥도널드 내각에 대한 내각불신임 근거였던 캠밸 사건은 노동당 맥도널드 내각과 전혀 관련이 없었다는 것이다. 어떻게보면 매카시즘의 선배격 전략에 그대로 당하고 만것.

결국 야심차게 출범한 영국 역사상 첫 노동당 내각은 보수당자유당마타도어식 날조에 불과 10개월 만에 무너지고 말았다.

3.1.2. 2기[편집]



3.1.2.1. 노동당 총리: 1929년 6월 5일 ~ 1931년 8월 24일[편집]

그렇게 자유당의 배신과 색깔론 공격 속에 치를 떨며 총리직을 내려놓은 맥도널드지만 기회는 5년만에 찾아왔다. 볼드윈이 이끄는 보수당 정권이 1926년 총파업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데다가, 높은 실업률이 임기 내내 그 발목을 잡고 있었다. 거기다 오랜만에 나타난 장기 집권 내각의 부작용으로 국민들이 피로감을 호소하기도 했다.

이 반작용으로 1929년 열린 총선에서 노동당이 136석을 추가로 확보하여 역사상 처음으로 원내 1당이 되었다. 물론 여전히 단독 과반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이번에도 자유당의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 전 총리의 지원 속에 2차 내각을 출범시킬 수 있게 되었다.

맥도널드는 첫 집권때 외교 문제에 집중하다가 국내 문제에 대처하지 못했다는 반성을 가지고 실업 수당을 인상하고 노동당의 핵심 지지층인 석탄 산업의 임금과 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법안을 차례로 통과시켰다. 또한 빈민층이 거주하는 슬럼의 위생상태 개선에 초점을 맞춘 주택법을 입안하는 등 비로소 노동당 정권다운 행보를 적극적으로 보여준다.

물론 외교 문제 역시 포기한 것은 아니라, 1930년 런던 해군 군축조약을 주도하여 전 세계의 해군 군비를 제한하기도 했다.

그러나 또 한번 맥도널드의 앞길을 막는 대형사고가 터졌으니 바로 대공황이다. 미국발 대공황의 여파가 영국 경제도 덮치면서 1930년 말즈음에 이르러서는 실업률은 두 배가 되었고, 실업자 수도 250만 명이 넘었다. 문제는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 전 총리와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맥도널드 총리에게 적극적인 확장 재정 정책을 펼 것을 요구했음에도 재정보수주의 성향에 가까운 필립 스노든 재무장관이 재정 압박을 이유로 적자 지출을 한사코 거부한 것. 보수당 역시 대규모 공공부문 임금 삭감과 실업수당 등 공공 지출 규모 축소를 요구하는 등 맥도널드 내각을 계속해 압박했다.

한편 아서 핸더슨 외무장관 등 노동당 내 일각에서는 이런 압박에 굴해선 안된다며 즉각적으로 확장 재정 정책을 실시해야 한다고 반대로 맥도널드를 압박했고, 결국 진퇴양난에 빠진 맥도널드는 총리직 사임을 선택했다.

이렇게 다시 한번 노동당 내각이 붕괴하는 듯 했지만, 일은 의외의 방향으로 진행됐다.

3.1.2.2. 거국내각 총리: 1931년 8월 24일 ~ 1935년 6월 7일[편집]

대공황의 한가운데에서 갑작스럽게 정권이 바뀌는 것을 원하지 않은 조지 5세는 맥도널드 총리에게 위기 극복을 위한 거국내각 수립을 제안했고, 맥도널드는 이를 받아 보수당, 자유당과 국민정부(National Government)라는 이름의 거국연립정부를 수립하기로 한다.

이로 인해 노동당은 그야말로 두 개로 쪼개졌는데, 맥도널드의 노선을 따르는 사람은 국민노동당(National Labour)으로 분리되어 나갔으며 노동당에는 아서 핸더슨 등 보수당과의 연립정부 수립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남았다. 졸지에 정권을 잃은 노동당은 분노에 차 맥도널드 총리, 스노든 재무장관 등을 당에서 제명했지만 이미 버스는 떠나버린 상황이 됐다.

노동당의 강력한 지지층이었던 노조의 분노가 맥도널드와 국가노동당을 덮쳤고, 런던과 맨체스터에서는 연이어 폭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노동당에 남은 수많은 사람들 역시 맥도날드가 자기만 살려고 당을 버린 배신자라고 비판했으며 맥도널드는 그 희생이 공익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자신을 변호했다.

취임 직후 있었던 총선에서 국민 정부 내 다수당을 차지한 보수당이 국민정부가 선거 연합을 해 선거를 치르도록 맥도널드 총리를 압박했고, 노동당은 사실상 유일한 야당으로서 선거에 임하게 됐다. 결국 선거에서 국민정부 연합이 615석 중 554석(90.1%)을 확보하는 압승을 거두며 정권을 연장하는 데 성공한다. 근데 이중 470석을 보수당이 차지하면서 거국내각은 사실상 보수당 정부가 된다.(...)

덕분에 명목상 맥도널드는 영국 역사상 가장 많은 의석 수를 보유한 총리가 됐지만, 실제 권력은 추밀원의장에 오른 스탠리 볼드윈 전 총리와 새롭게 재무장관에 오른 네빌 체임벌린이 주도하게 되면서 일종의 바지사장이 되고 말았다. 거기에 오타와 협정 체결 이후 관세가 도입되자 맥도널드의 동료로 함께 해왔던 필립 스노든 역시 이에 반대해 내각을 떠나고 만다.

1934년에는 당시 연립정부의 재무장관이었던 네빌 체임벌린이 일본 외무대신으로 재임하고 있던 히로타 고키와 접촉해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으로 인해 종료된 영일동맹을 대체하는 영일불가침조약을 새로 체결하려 했지만, 램지 맥도널드는 이 조약이 미국에게 영일동맹의 재림으로 보일까 우려했고, 일본 역시 동아시아에서 영국의 이권을 보장해줄 의지가 없었고 결정적으로 런던 해군 군축조약 탈퇴 통보를 하면서 무산되었다.

이후 주로 외교 문제에 집중하는데 여러 군축 활동, 세계 경제회의 주재 등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인 실책을 저지르니, 바로 아돌프 히틀러가 정권을 잡은 독일을 상대로 유화책을 실시하면서 나치 독일이 성장할 시간을 주고 만다.

1935년까지 자리를 유지했으나 건강이 계속 악화되어 총리직을 계속 수행할 수 없게 되자 스탠리 볼드윈에게 다시 총리 자리를 양보하고 사임하게 된다.

3.2. 총리직 사임 이후[편집]


1935년 총선에 다시 출마했으나, 노동당의 매니 신웰 후보에게 36.4%p 차 충격적인 패배를 당하고 만다. 전직 총리라고는 생각하기 힘들만큼 큰 격차로 분당 이후 한동안 고통받았던 노동당으로서는 의석수를 대폭 불리는 동시에 '배신자 맥도널드'에게 그야말로 한방을 먹인 셈.

그래도 스코틀랜드 대학교 혼합 선거구에서 열린 1936년 1월 재보궐선거에서 56.5%를 득표해 다시 서민원 의원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보궐선거 직전 조지 5세가 서거하면서 실의에 빠졌다고 전해지며 이후 요양을 위해 딸과 여행을 하던 도중인 1937년, 대서양을 가로지르던 여객선 안에서 71세의 나이로 숨을 거둔다. 맥도널드의 유해는 화장한 뒤 고향인 모레이 카운티의 가족묘에 안장 되었다.

4. 선거 이력[편집]


연도선거 종류선거구소속 정당득표수 (득표율)당선 여부비고
18951895년 영국 총선사우샘프턴867 (4.0%)낙선(5위)
19001900년 영국 총선레스터[2]4,164 (13.0%)낙선(4위)
1901런던 카운티 자치의회 선거핀스버리 센트럴? (?%)당선(1위)초선[3]
19061906년 영국 총선레스터14,685 (39.8%)당선(2위)초선
1910.11910년 1월 영국 총선

14,337 (31.4%)재선
1910.121910년 12월 영국 총선12,998 (38.5%)3선
19181918년 영국 총선레스터 웨스트6,347 (23.6%)낙선(2위)
19221922년 영국 총선애버라본14,318 (46.6%)당선(1위)4선
19231923년 영국 총선17,439 (55.6%)5선
19241924년 영국 총선17,724 (53.1%)6선
19291929년 영국 총선시햄35,615 (72.5%)7선
19311931년 영국 총선28,978 (55.0%)8선
19351935년 영국 총선17,882 (31.8%)낙선(2위)

5. 여담[편집]


  • 윈스턴 처칠은 자신의 저서 <제2차 세계대전>에서 그와 스탠리 볼드윈을 강도 높게 비판한 바 있다. 대독 유화책을 내세워 아돌프 히틀러가 성장하도록 방기했다는 이유. 물론 최종 오판은 네빌 체임벌린이 한거긴 하다만, 사실 이런 류의 비난은 결과론적이긴 하다. 노동당의 맥도널드나 보수당의 볼드윈, 체임벌린이나 히틀러를 경계하지 않은건 아니기 때문. 다만 전쟁이 터지고 제대로 막지 못했다는 점에선 결국 할 말 없긴 하다. 독일이 팽창하고 영국이 밀리면서 일관되게 히틀러를 깠다는 이유만으로 처칠이 당시 뒷방 늙은이 신세에서 결국 총리가 될 수 있었던 것이기 때문. 히틀러가 키워준 처칠? 다만 맥도널드는 이 라인에선 가장 앞쪽에 있던 총리인데다 2차 세계대전이 터지기도 전에 사망해서 더 억울할 법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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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웃긴 점은 자유당은 노동당보다 더 큰 피해를 입었다. 무려 118석을 잃으면서 의석이 겨우 40석으로 줄고 당수였던 허버트 헨리 애스퀴스도 낙선하고 말았다. 자유당 입장에서는 가미카제 총선이 된 셈.[2] 독립노동당 당원 자격도 유지[3] 1904년 국외 부재로 자격 박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