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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 더글러스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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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영국의 제66대 총리. 더글러스흄이 통째로 하나의 성씨이며, 성씨의 Home은 홈이 아니라 흄이라고 읽는다.
2. 생애[편집]
소싯적에는 크리켓 선수로 맹활약했었다. 아직 백작 후계자(Lord Dunglass) 신분이던 1931년 서민원(하원) 의원으로 정계에 입문, 재선까지 했으나 1945년 노동당 후보에게 패해 낙선한다. 1950년 총선에서 당선되어 다시 서민원에 복귀했지만, 이듬해 아버지가 사망해 14대 흄 백작이 되는 바람에 귀족원(상원)으로 납치(?)된다. 이든 내각과 맥밀런 내각에서 영연방부 대신[1] , 1957년에는 귀족원 원내대표가 되었다.
1963년 해럴드 맥밀런이 지병과 내각 스캔들을 이유로 사임한 후 그의 지명을 받아 총리 및 보수당 당수가 되었다. 여기서부터 논란이 시작되는데, 전통적으로 총리는 하원인 서민원 출신이어야 하는데 흄은 당시 백작으로 귀족원 의원[2] 이었기 때문에 야당은 물론 여당인 보수당 내에서도 비판이 쏟아졌다. 결국 흄은 총리 취임 나흘 뒤에 자기 당대에 한해 흄 백작위를 포기하였다.[3] 이후에도 논란이 계속되자[4] 결국 1963년 11월 7일 열린 보궐선거에서 57.4% 득표율로 승리하여 서민원 의원에 당선, 총리직을 지킬 수 있게 되었다.
보수당 정치인이지만 전임 총리인 해럴드 맥밀런과 마찬가지로 소련에 대해 적대적인 입장을 취하진 않았다. 기본적으로 맥밀런 내각의 국제 긴장 완화 기조를 유지해나갔지만 중동과 남아공 문제에 있어서는 맥밀런에 비해 훨씬 더 보수적이고 강경한 입장을 취했다.
임기중 국제적으로 큰 사건이 터지는데, 존 F. 케네디 암살 사건이 그의 임기 중 발생했다. 흄은 사건 발생 직후 방송을 통해 케네디에 대해 조의를 표했다. 이후 린든 B. 존슨이 미국 대통령직을 승계하자 영국-쿠바 간 무역 문제로 양국간의 갈등이 본격적으로 커졌다.
하지만 흄은 오랫동안 귀족원 의원이었고 서민원 의원으로서의 경험은 적어[5] 당 내 유력 정치인들을 어떻게 통솔해야 할지 몰랐다. 게다가 세습귀족 출신이 총리가 됐다는 이유로 반감을 보인 일부 보수당 의원들은 그에 대한 협력을 거부하는 등 당내에서 내분의 조짐이 보였고, 좋지 않던 경제상황까지 겹쳐 1964년 10월 총선거에서 노동당에게 패함에 따라 총리직을 내려놔야 했다.
이듬해에는 보수당 당수 선출 방식이 당원들의 선거로 바뀌어, 이를 통해 선출된 에드워드 히스에게 보수당 당수 자리를 넘겨주었다. 이후 하원의원으로 있다가 히스 내각에서 외무영연방부대신(외교부장관)이 되어 영국의 EC 가입을 성사시켰다.
1974년에 하원의원직을 사임했고, 정계 은퇴 이후 남작(일대귀족)위를 받아들였고 다시 귀족원 의원으로 있다가 사망했다. 흄의 유해는 콜드스트림의 레널 교회에 안장되었다.
여담이지만 그의 조카가 조지 6세의 차녀 마거릿 공주와 연애를 하다가 헤어졌는데 그 충격으로 자살했다.
시슬 훈장(Order of Thistle, The Most Ancient and Most Noble Order of the Thistle) 수훈자다. 시슬 훈장은 스코틀랜드 최고 훈장으로, 흄 백작위가 스코틀랜드 귀족 작위이기 때문이다.[6]
3. 선거이력[편집]
[1] Secretary of State for Commonwealth Relations. 1966년 외무영연방부로 통합[2] 로버트 게스코인세실(3대 솔즈베리 후작)이 퇴임한 1902년 이후 60여년만이며, 현재까지 현직 귀족원 의원 신분으로 취임한 마지막 총리이다.[3] 몇 달 전 통과된 Peerage Act 1963에 의해 자기 당대에 한해 귀족 작위를 동결하는 게 가능해졌다. 사후 아들 데이비드 더글러스흄이 15대 흄 백작이 됐다.[4] 작위를 포기했으니 평민이라고 쳐도 현직 서민원 의원이 아니기 때문에 총리 자격이 없는 거 아니냐는 논리. 이 때문에 흄은 다시 총선에 나가야 했다.[5] 사실 흄은 서민원 경력이 더 길었다. 14년간 서민원 의원이었고 귀족원 의원으로서 12년을 보냈기 때문. 다만 10년 넘게 서민원을 떠나 있던 특성상 내각에서 활동한다고 해도 다른 의원들과 코드가 맞기는 상당히 어려웠다.[6] 당시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시슬 훈장의 주군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