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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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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1. 개요[편집]
대구광역시장은 대구광역시를 대표하고, 그 사무를 총괄하는 광역자치단체장이다. 1995년 1월 1일 이전까지는 직할시장이라 불렸고, 1981년 7월 1일 이전까지는 경상북도 대구시장이라 불렸으며, 1949년 8월 15일 이전까지는 경상북도 대구부윤이라 불렸다. 지역 특성상 대부분의 민선 대구광역시장이 보수 정당 소속이며, 대구광역시장은 대구 FC 구단주를 당연직으로 겸직한다.
이전까지는 경상북도지사와 비슷하게 중앙 정계의 거물이나 대권 주자급 인물은 없고 주로 관료 출신들이 대구광역시장을 맡았지만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홍준표가 당선되면서 이 경향이 깨졌다.
경상북도지사가 3연임하는 기조가 강하다면 대구광역시장은 재선이 사실상 한계인 기조가 강하다. 대구광역시 지하철 참사로 인해 초선 임기만에 불출마를 택한 조해녕 전 시장과 차기 정치적 행보를 위해 재선에 도전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홍준표 시장 외에는 모두 재선에서 대구광역시장 커리어가 마무리 되었다.
경상북도지사가 TK 원로에 가까운 공무원 출신 정치인들이 도전한다면 대구광역시장은 경상북도지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짬이 낮고 지역 맹주라고 불리기는 부족한 공무원 및 정치인 출신들이 도전[1] 하는 경우가 많아 3연임에 강한 견제를 받기 때문에 재선으로 마무리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할 수 있다.[2]
1.1. 대구광역시장 선거 100% 적중 지역[편집]
- 남구를 제외한 전 지역
2. 목록[편집]
2.1. 대구현령[편집]
고려 인종 21년인 1143년 현령이 파견된 이래 조선 세종 1년인 1419년까지 현령들이 거쳐갔다.
2.2. 지대구군사(23부제 시행 이전)[편집]
조선 세종 1년인 1419년 군으로 승격된 이래 세조 12년인 1466년까지 지군사#들이 거쳐갔다.
2.3. 대구도호부사[편집]
세조 12년인 1466년 대구군이 대구도호부로 승격된 이래 조선 고종 32년인 1895년까지 도호부사들이 거쳐갔다. 1601년 경상감영이 대구로 이전한 이후로 대구도호부사는 경상감사가 겸직하는 직위가 되어 1895년까지 이어졌다.[5]
2.4. 대구부윤[편집]
조선 고종 32년인 1895년 지방행정이 23부제로 개편된 이래 그 다음해인 1896년 다시 13도제로 개편될 때까지 부윤들이 거쳐갔다.
2.5. 대구군수(23부제 시행 이후)[편집]
1896년 23부제가 폐지되고 13도제로 환원됨에 따라 부에서 군으로 격하되고 경술국치때까지 군수들이 거쳐갔다.
2.6. 역대 경상북도 대구부윤[편집]
2.7. 역대 경상북도 대구시장[편집]
2.8. 역대 대구직할시장[편집]
2.9. 역대 대구광역시장[편집]
3. 역대 선거 결과[편집]
3.1. 1995년[편집]
당시 집권 여당인 보수 정당이 4위로, 그것도 보수의 심장이라 불리는 대구광역시에서 낙선한 유일한 사례이다. 문희갑도 물론 보수 성향 쪽 인물이긴 하지만 대구 지하철 공사장 가스 폭발 사고에 따른 김영삼의 대구광역시 홀대론으로 인해 반 민주자유당 구도가 형성되며 무소속 문희갑 후보에게 몰표가 나온 것.
3.2. 1998년[편집]
3년 전 무소속으로 당선된 문희갑 후보는 이후 한나라당에 입당해 재선에 도전했고, 직전 대통령 선거에서 이회창 후보가 전국 최고 득표율을 기록한 지역인 만큼 무난하게 재선에 성공했다. 반면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구광역시 13석 중 8석을 쓸어담았던 자유민주연합은 이번에는 대구광역시에서 별 힘을 쓰지 못했다.
3.3. 2002년[편집]
범여권 무소속 이재용 후보는 비록 낙선했지만 보수의 심장 대구광역시에서 민주당계 후보로 40%에 육박하는 득표율을 얻으며 대단히 선전했다. 게다가 자신이 재선 남구청장을 지냈던 남구에서는 51.26%의 득표율로 조해녕 후보를 꺾었는데, 이는 현재까지 대구광역시장 선거에서 비보수 정당 후보가 기초자치단체 단위로나마 승리한 유일한 기록이다.
3.4. 2006년[편집]
3.5. 2010년[편집]
김범일 전 시장이 얻은 득표율은 역대 대구광역시장 중 가장 높은 득표율이었고, 한동안 깨지지 않다가 2022년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홍준표 후보가 78.75%를 받으면서 12년 만에 깨지게 된다.
3.6. 2014년[편집]
예상대로 새누리당 권영진 후보가 55.95%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새정치민주연합 김부겸 후보는 비록 패배하였지만, 40.33%의 득표율을 얻으면서 비새누리당 후보 중에서 가장 높은 득표율을 기록하며 선전했다. 수성구 중 수성구 갑 대부분 지역, 달서구 월성1동에선 권영진 후보를 이겼다.
3.7. 2018년[편집]
권영진이 53.73%의 득표율을 얻으며 당선됐지만, 임대윤 후보도 39.75%로 꽤 선전했다.
사실 지난 선거에서 김부겸이 40.33%를 얻으며 선전했던 건 당시 박근혜와 찍은 사진으로 어필을 했기 때문도 있었다. 동시에, 당시 김부겸 후보는 비노, 비문 계열이라 대구광역시·경상북도에 크게 비토 정서도 없었다는 점도 있었다. 반면 임대윤은 아랫동네와 달리 거부감이 좀 컸고, 게다가 상대는 인지도가 시정 평가에서 40% 후반을 기록하는 권영진이였다. 그런데 이런 예상 밖의 결과가 나온 것이다.
특히 2010년대 들어 신도시가 만들어지고 있는 달성군에서는 42%의 득표율을 받아 권영진 후보와 불과 9% 차이의 접전을 벌였다. 이를 제외하고도 달서구의 41%, 수성구의 40%도 주목을 받았으며, 읍면동 단위에서는 달성군 유가읍, 동구 안심3·4동 등 일부 지역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3.8. 2022년[편집]
홍준표 후보가 당내 경선 과정에서부터 현역의원 출마 페널티 및 경선 직전까지 국민의힘 최고위원이었던 김재원, 박근혜 전 대통령을 후원회장으로 앞세웠던 유영하 등 구 친박계의 견제에도 과반 이상의 득표율[21] 로 경선을 통과하더니 본선에서도 역대 대구광역시장 최다 득표율(78.75%)을 기록하며 당선된 동시에[22] 총 12곳 당선된 국민의힘 광역자치단체장 중 1위로 제일 높은 득표율이었다. 홍준표 후보는 과거 경상남도지사에 이어서 대구광역시장에도 당선되며 민선 이래 두 곳의 광역자치단체장을 역임하 기록을 최초로 갖게 되었다.[23]
한편 더불어민주당에선 서재헌을 출마시켰지만, 문제는 서재헌 후보는 이전에 내보낸 김부겸, 임대윤에 비해 중량감이 떨어졌기에[24] TK의 반민주당 정서 + 윤석열 정부 허니문 효과 + 홍준표 후보의 인지도와 중량감 격차로 인해 승패는 이미 결정이 났었다. 결국 서재헌 후보는 역대 민주당계 후보 중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이승천(16.86%) 후보 다음으로 낮은 득표율인 17.97%에 그쳤는데, 이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광역자치단체장에 출마한 낙선자 후보 중 유일하게 10%대 득표율을 기록하며 선거비 전액 보전(15%)을 겨우 넘기는 것에 만족해야했다.
지역별로 보면 모든 지역에서 홍준표 후보가 기본적으로 70%를 가뿐히 넘었으며, 특히 노년층 인구가 많은 서구와 남구에선 무려 80%를 넘는 기염을 토했다.
같은 TK 광역자치단체장으로 출마한 임미애 경북지사 후보는 20%대를 받는데 그쳐서 낙선했지만 경상북도 읍면동 중 그나마도 유일하게 예천군 호명면에서라도 62표 차로 신승해서 유종의 미라도 거뒀지 서재헌은 아예 대구광역시 8개구군 전 행정동에서 패배함로써 송영길, 변성완과 함께 더불어민주당 후보 중 모든 행정동에서 전패한 후보가 되었다.
더군다나 홍준표 후보 자체가 워낙 넘사벽급의 득표율을 보이고 있던 터라 17개 시도 광역자치단체장 선거에서 첫 번째로 가장 주목도가 떨어진 건 사실이다.
4. 역대 정당별 전적[편집]
5. 역대 후보별 순위[편집]
- 사퇴, 사망, 등록 무효 후보 제외.
6. 시정 구호[편집]
7. 여담[편집]
- 1995년 지방자치제 출범 이후부터 현재까지 임기 중 사퇴하거나 궐위된 시장이 단 한 명도 없었던 광역자치단체장[33] 중 하나이다.
- 권영진 전 시장을 포함한[34] 역대 민선 대구광역시장들은 퇴임 후에도 모두 대구에서 살고 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라고 들릴 지 모르겠지만, 다른 광역자치단체의 경우 광역자치단체장을 지낸 뒤 수도권으로 올라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선 대구광역시장을 지냈던 문희갑, 조해녕, 김범일 모두 은퇴 후에도 대구광역시에서 살고 있다. 관선 대구광역시장을 지낸 이상희, 이의익, 이종주 전 시장 역시도 대구광역시에서 살고 있다.[35]
- 김범일 전 시장까지 민선 대구광역시장은 모두 경북고등학교, 행정고시 합격 관료 출신이었는데, 권영진 전 시장은 비 경북고등학교, 비 관료 출신이다. 향후에는 고교 평준화의 영향으로 비 경북고등학교 출신 시장들이 더 나올 가능성이 높다. 현 홍준표 시장도 비 경북고등학교 출신이다.
- 역대 민선 대구광역시장은 전원이 인서울 대학교 출신으로, 문희갑 전 시장은 국민대학교, 조해녕, 김범일 전 시장은 서울대학교, 권영진, 홍준표 시장은 고려대학교를 졸업했다. 반면 역대 민선 경상북도지사의 경우 이의근, 김관용 전 지사가 영남대학교, 이철우 지사가 경북대학교 출신으로서 전원이 대구시 지역대학을 졸업했다.
8. 관련 문서[편집]
[1] 이러한 경향은 대권 주자급 거물 정치인 홍준표가 대구광역시장에 당선되면서 처음으로 깨졌다. 그러나 지속 여부는 차기 지방선거를 지켜봐야할 듯하다.[2] 대구광역시장과 유사한 광주광역시장도 같은 이유로 3선 시장이 없다. 게다가 광주광역시장의 경우 당내 경쟁이 더 심한 탓에 재선 시장도 박광태 한 명밖에 없다. 나머지 광주광역시장들은 보통 초선으로 커리어가 끝나는 편이며 광주광역시장직을 마치면 사실상 정계 은퇴 수순을 밟게 된다.[3] 다만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수성구 전체는 새누리당 권영진 후보가 이겼지만, 수성구 갑 지역으로 한정하면 새정치민주연합 김부겸 후보가 신승하였다.[4] 여기도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달서구 전체는 새누리당 권영진이 압승하였으나, 월성 1동은 새정치민주연합 김부겸이 승리하였다.[5] 도호부사는 원래 종3품 관직이지만 대구도호부사는 경상감사가 겸직했으므로 종2품이었다.[6] 선거 당시 당적.[7] 마지막 일제치하 경상북도 대구부윤 이었던 우에노 히코하치 부윤이 광복 하루 뒤인 8월 16일 근무 이탈함으로 인해 취임. 여담으로, 히코하치 부윤은 해방 직후 기자회견에서 종전 후에도 사랑하는 대구부민으로 남겠다는 말을 했는데, <대구시사>에서는 이 발언을 아부성 헛소리라고 평가했다.[8] 미 육군 대위. 10월 13일자로 일인 관료를 모두 해임했다.[9] 미 육군 소령.[10] 친일반민족행위자.[11] 선거 당시 당적.[12] 지방자치법 부칙 개정으로 인한 민선을 당선되었으나, 당선 후 여당우위의 의회 때문에 시정은 마비가 되었고, 이를 포함한 여러 사유로 시 의회는 시장을 공격하였다. 그 사이 또 개정된 지방자치법(시, 읍, 면장은 관선이나, 각 의회에서 불신임 안 제출 가능)으로 인해 불신임 안이 제출 및 통과되어 가결되어 자리에서 내려오게 된다.[13] 선거 당시 당적.[14] 선거 당시 당적.[15] 1997.12.3.
복당.[16] 2012.2.13.
[[새누리당|
]]
으로 당명 변경.[17] 2017.2.13.
[[자유한국당|
]]
으로 당명 변경.[18] 2020.2.17.
[[미래통합당|
]]
으로 신설 합당.
2020.9.2.
으로 당명 변경.[19] 최초의 비TK 출신 민선 대구광역시장. 다만 창녕군을 비롯한 경상남도 서북부 지역은 대구광역시의 영향을 많이 받는 지역이기도 하며 본인 역시 초중고 학창 시절을 대구광역시에서 보냈기 때문에 대구광역시를 제2의 고향으로 삼고 있다.[20] 헌정사상 최초의 복수(경상남도지사, 대구광역시장) 광역자치단체장.[21] 실제 경선 득표율 기준. 페널티 10% 적용시 49.45%.[22] 종전 최다 득표율은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김범일 후보가 받은 72.92%이다.[23] 광역자치단체장 이력 기준으로 봐도 사실상 3선이라 봐도 무방하다.[24] 김부겸은 적어도 군포시에서 3선 의원을 지냈을 뿐더러, 한나라당 출신이라 더불어민주당 인사 중에선 상대적으로 보수적인데다 수성구 갑에서 40%를 득표하는 등 화제가 되었다. 그리고 임대윤 후보도 한나라당 출신에 대구광역시 동구청장 재선에 성공한 이력이 있고, 민주당 소속으로도 4번 출마했던 사람이다. 반면 서재헌 후보는 국회의원 선거와 지방선거(동구청장 출마)에서 2차례 출마하여 2연속 낙선한데다가 정치 외 커리어도 상대적으로 빈약한 편이라 사실상 대구광역시의원 내지 구청장 후보 수준의 이력에 가깝다.[25] 3% 이상 득표자만 기재.[26] 보수 성향 후보.[27] 보수 정당 후보, 새정치국민회의와 단일화.[28] 보수 정당·민주당계 정당 후보.[29] 민주당계 성향 후보.[30] 진보 정당 후보.[31] 진보 정당 후보.[32] 제3지대 정당 후보.[33] 광주광역시, 인천광역시, 충청북도, 경상북도, 전라북도 등. 원래 대전광역시도 이랬으나 권선택 전 시장이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2017년 11월 14일 징역 10년, 벌금 5억원 선고로 시장직을 상실해 탈락했다. 충청남도는 도지사 재보궐선거가 없었으나 이쪽은 민선 도지사들이 대부분 1년 미만의 잔여 임기를 놔두고 모조리 사퇴했다. 경기도 역시 재보궐선거가 없었으나 여기도 잔여 임기 1년 미만을 놔두고 대통령 선거 출마로 사퇴한 적이 2번 있었다. 울산광역시는 1997년(여기도 재보궐선거가 없었으나, 임기 종료 전 사퇴한 사례가 1번 있었다.), 세종특별자치시장은 2012년 출범했으므로 제외.[34] 권영진 전 시장의 집은 서울특별시 노원구이고, 대구광역시에서는 관사(그것도 김범일 전 시장 시절 폐지했던 관사를 부활시켰다.) 생활을 해서 말이 나왔다. 게다가 중학교까지 고향인 경상북도 안동시에서 졸업했으며, 대구광역시에서는 고등학교만 졸업했다. 다만 권영진 전 시장은 대구광역시장 이전에 서울특별시 정무부시장과 서울특별시 노원구 을에서 국회의원을 지내는 등 모든 정치적 직위를 서울특별시에서 역임하였다. 대구광역시장 퇴임 후에도 가족과 함께 대구광역시에서 계속 살겠다는 인터뷰를 했다. 이후 잠시 서울 노원구 자택서 거주하다 계명대학교 특임교수로 임명되면서 대구에서 거주 중이다.[35] 경상북도지사와 대구광역시장을 모두 지낸 김무연 전 경북지사 역시도 대구광역시·경상북도에서 평생 공직 생활을 했고 대구광역시에서 여생을 보냈다.
복당.[16] 2012.2.13.
[[새누리당|
으로 당명 변경.[17] 2017.2.13.
[[자유한국당|
으로 당명 변경.[18] 2020.2.17.
[[미래통합당|
으로 신설 합당.
2020.9.2.
으로 당명 변경.[19] 최초의 비TK 출신 민선 대구광역시장. 다만 창녕군을 비롯한 경상남도 서북부 지역은 대구광역시의 영향을 많이 받는 지역이기도 하며 본인 역시 초중고 학창 시절을 대구광역시에서 보냈기 때문에 대구광역시를 제2의 고향으로 삼고 있다.[20] 헌정사상 최초의 복수(경상남도지사, 대구광역시장) 광역자치단체장.[21] 실제 경선 득표율 기준. 페널티 10% 적용시 49.45%.[22] 종전 최다 득표율은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김범일 후보가 받은 72.92%이다.[23] 광역자치단체장 이력 기준으로 봐도 사실상 3선이라 봐도 무방하다.[24] 김부겸은 적어도 군포시에서 3선 의원을 지냈을 뿐더러, 한나라당 출신이라 더불어민주당 인사 중에선 상대적으로 보수적인데다 수성구 갑에서 40%를 득표하는 등 화제가 되었다. 그리고 임대윤 후보도 한나라당 출신에 대구광역시 동구청장 재선에 성공한 이력이 있고, 민주당 소속으로도 4번 출마했던 사람이다. 반면 서재헌 후보는 국회의원 선거와 지방선거(동구청장 출마)에서 2차례 출마하여 2연속 낙선한데다가 정치 외 커리어도 상대적으로 빈약한 편이라 사실상 대구광역시의원 내지 구청장 후보 수준의 이력에 가깝다.[25] 3% 이상 득표자만 기재.[26] 보수 성향 후보.[27] 보수 정당 후보, 새정치국민회의와 단일화.[28] 보수 정당·민주당계 정당 후보.[29] 민주당계 성향 후보.[30] 진보 정당 후보.[31] 진보 정당 후보.[32] 제3지대 정당 후보.[33] 광주광역시, 인천광역시, 충청북도, 경상북도, 전라북도 등. 원래 대전광역시도 이랬으나 권선택 전 시장이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2017년 11월 14일 징역 10년, 벌금 5억원 선고로 시장직을 상실해 탈락했다. 충청남도는 도지사 재보궐선거가 없었으나 이쪽은 민선 도지사들이 대부분 1년 미만의 잔여 임기를 놔두고 모조리 사퇴했다. 경기도 역시 재보궐선거가 없었으나 여기도 잔여 임기 1년 미만을 놔두고 대통령 선거 출마로 사퇴한 적이 2번 있었다. 울산광역시는 1997년(여기도 재보궐선거가 없었으나, 임기 종료 전 사퇴한 사례가 1번 있었다.), 세종특별자치시장은 2012년 출범했으므로 제외.[34] 권영진 전 시장의 집은 서울특별시 노원구이고, 대구광역시에서는 관사(그것도 김범일 전 시장 시절 폐지했던 관사를 부활시켰다.) 생활을 해서 말이 나왔다. 게다가 중학교까지 고향인 경상북도 안동시에서 졸업했으며, 대구광역시에서는 고등학교만 졸업했다. 다만 권영진 전 시장은 대구광역시장 이전에 서울특별시 정무부시장과 서울특별시 노원구 을에서 국회의원을 지내는 등 모든 정치적 직위를 서울특별시에서 역임하였다. 대구광역시장 퇴임 후에도 가족과 함께 대구광역시에서 계속 살겠다는 인터뷰를 했다. 이후 잠시 서울 노원구 자택서 거주하다 계명대학교 특임교수로 임명되면서 대구에서 거주 중이다.[35] 경상북도지사와 대구광역시장을 모두 지낸 김무연 전 경북지사 역시도 대구광역시·경상북도에서 평생 공직 생활을 했고 대구광역시에서 여생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