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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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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전 공무원, 정치인. 제31·32대 대구광역시장.
2. 생애[편집]
1950년 경상북도 예천군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신 안동 김씨. 대구초등학교, 경북중학교, 경북고등학교, 서울대학교 경영학 학사 학위를 졸업하였다. 이후 서던캘리포니아 대학교 대학원 행정학 석사 과정을 취득하였다.
이후 행정고시에 합격하여 공무원으로 근무하였다. 김대중 정부 때 행정자치부 기획관리실장, 산림청장을 역임하였다. 노무현 정부 초기에 조해녕 전 대구시장 휘하에서 정무부시장[3] 을 역임하였다.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대구광역시장 선거에 출마하여 각각 70.15%, 72.92%의 득표율로 당선되었다.[4]
시장 재임 당시 대구 도시철도 3호선 착공 및 대구국가산업단지 유치에 성공했으며 2011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하고[5] , 지지부진하던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 신축을 진행시켜서 좋은 평가를 받는 등 업적을 남겼다. 또한 취임 직후 곧바로 대구광역시장 관사를 폐지시킨 뒤 자택에서 출퇴근하기도 했다. 당시 지자체장들이 관사에서 거주하는 게 당연시됐던 시기라는 걸 생각하면 상당히 진일보한 정책이었다.[6] 한편 김범일 시장 재임 당시인 254만을 정점으로 계속 감소하여 250만대가 무너졌던 대구의 인구가 반등하여 다시 251만까지 증가하기도 했다.
대구 지하철 참사와 관련된 유가족 단체에게 고소를 당할 정도로 갈등을 겪었다. 경찰 병력 3,000여 명 투입으로 시위대가 해산하는 등 사건의 논란이 사라졌다.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불출마를 선언하여 정계를 은퇴하였다.[7]
3. 수상 내역[편집]
4. 여담[편집]
-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당시 “안산시 단원고 학생을 비롯한 희생자분들께 진심어린 애도의 뜻을 표하고, 지난 대구 지하철 참사 시 전 국민의 아낌없는 성원으로 희망의 도시 대구로 발전하였다”, “지하철 화재 사고 시 전 국민이 보여준 성원에 보은하는 마음으로 고통 받는 희생자 가족과 구조 활동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애도했다. 또한 자비로 1억 원을 기부했고, 도시에서 모금을 하여 피해자와 국민들을 위로했다. # 당시 지하철 참사로 부모가 사망해서 고아가 된 17살 소년에게도 1억 원을 준 미담이 뒤늦게 밝혀졌다.
5. 소속 정당[편집]
6. 선거 이력[편집]
7. 둘러보기[편집]
[1] 음력 10월 21일.[2] 증참의공파 31세손 O鎰 항렬.[3] 현 경제부시장.[4] 5회 지선에서 얻은 득표율은 역대 대구시장 중 가장 높은 득표율이었고, 한동안 깨지지 않다가 2022년 8회 지선에서 국민의힘 홍준표 후보가 78.75%를 받으면서 12년 만에 깨지게 된다.[5] 푸틴을 물먹이고 유치에 성공할 때도 시장으로 있었다. 반면 비슷한 시기 평창은 2014년 동계올림픽 유치를 준비하다가 남북평화 타령 때문에 영어실력이 끝내주게 좋던 푸틴의 연설로 소치한테 시원하게 물먹었다. 결국 이명박 대통령이 현대 경영인 시절 어필 능력을 유치전 때도 보여주면서 3수 끝에 동계올림픽 유치를 기어이 성공시켰다. 이때는 남북평화 타령을 하지 않았는데 대구시장으로 육상선수권대회 개최 준비로 정신없던 김범일의 충고가 컸다.[6]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대구광역시장 관사는 김범일 시장의 후임인 권영진 시장 취임 직후 다시 부활한다.[7] 후임 시장은 본인과 같은 친이계 출신 권영진. 권영진은 오세훈 시정 1기에서 서울특별시 정무부시장을 지낸 오세훈계이기도 하다. 권영진의 후임 홍준표도 과거 친이계 출신이었으나 지금은 2번의 당대표와 5선 국회의원, 재선 경상남도지사, 대선 후보를 지내면서 친이라기보다는 친홍이라는 별도 계파의 수장으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