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이후 8년 만에 KIA가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하여 한국시리즈에 직행했다. 다만 두산을 상대로 7승1무8패를 기록하며 유일하게 상대전적에서 우위를 점하지 못했다. 두산은 전반기만 해도 5할을 간신히 넘기며 선두를 독주하던 KIA에 12게임차나 뒤쳐진 5위였으나 후반기가 되자마자 엄청난 상승세를 기록하면서 빠르게 승차를 좁혔고 시즌 막판에는 잠시나마 승차 동률을 만들기도 했다. 최종전까지 정규시즌 우승경쟁이 이어졌으나 KIA가 마지막 수원 kt 원정에서 승리하면서 자력으로 한국시리즈 직행을 확정지었고 같은시각 두산은 SK와의 홈경기를 패배하며 2게임차로 2위가 되었다.
2015,2016 2년 연속 KS우승을 차지했던 두산과 KS 10전 전승의 KIA가 한국시리즈에서 맞붙게되었다. 두산은 첫 경기에서 승리를 거뒀으나 이후 KIA가 내리 4연승을 거두면서 KIA는 8년 만에 KS를 우승하고 KS 전승 기록을 이어갔다.
2023년 두산은 돌아온 프랜차이즈 스타 양의지를 앞세워 시즌초반부터 3등으로 치고나가고 구단 최초로 11연승을 하는등 좋은 경기력을 보여준것에 반하여 기아는 박동원에게 뒷돈을 요구한 사실이 드러났고, 박동원이 2022년 후반기 좋은 모습을 보여줘 결국 5등으로 시즌을 마무리한 것처럼 박동원의 빈자리가 컸다. 결국 삼성에서 류지혁과 김태군을 트레이드하며 포수의 공백을 매꾸며 강한 타선과 함께 순위는 점점 오르기 시작하였고 두산은 오히려 연승이후 연패에 늪에 빠지며 5,6위 사이에서 두 팀이 엎치락 뒤치락 하였으나, 기아 핵심타선의 부상으로 경기력이 떨어졌고 두산이 부상때문에 경기력이 저하된 기아에 비교적 쉽게 5강싸움에서 승리하여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였다. 기아 입장에선 엘지로 간 박동원이 시즌초반부터 홈런을 많이 때려내며 선두에 있었고 시즌이 끝날 때 까지 포수중에선 가장 많은 홈런을 때려낸 박동원을 뒷돈요구 때문에 놓친것이 아쉬운 시즌, 김종국 감독도 민심이 나락을 찍었다. 두산 또한 이승엽 감독의 부임 첫 해였으나 실패하였다는 여론이 지배적이고, 시즌 홈 마지막경기에서 전광판에 이승엽 감독이 나오자 많은 두산팬들이 야유를 보냈다. 2023년 두산은 돌아온 프랜차이즈 스타 양의지를 앞세워 시즌초반부터 3등으로 치고나가고 구단 최초로 11연승을 하는등 좋은 경기력을 보여준것에 반하여 기아는 박동원에게 뒷돈을 요구한 사실이 드러났고, 박동원이 2022년 후반기 좋은 모습을 보여줘 결국 5등으로 시즌을 마무리한 것처럼 박동원의 빈자리가 컸다. 결국 삼성에서 류지혁과 김태군을 트레이드하며 포수의 공백을 매꾸며 강한 타선과 함께 순위는 점점 오르기 시작하였고 두산은 오히려 연승이후 연패에 늪에 빠지며 5,6위 사이에서 두 팀이 엎치락 뒤치락 하였으나, 기아 핵심타선의 부상으로 경기력이 떨어졌고 두산이 부상때문에 경기력이 저하된 기아에 비교적 쉽게 5강싸움에서 승리하여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였다. 기아 입장에선 엘지로 간 박동원이 시즌초반부터 홈런을 많이 때려내며 선두에 있었고 시즌이 끝날 때 까지 포수중에선 가장 많은 홈런을 때려낸 박동원을 뒷돈요구 때문에 놓친것이 아쉬운 시즌, 김종국 감독도 민심이 나락을 찍었다. 두산 또한 이승엽 감독의 부임 첫 해였으나 실패하였다는 여론이 지배적이고, 시즌 홈 마지막경기에서 전광판에 이승엽 감독이 나오자 많은 두산팬들이 야유를 보냈다.
이광우는 OB 이적 후 1993~1994시즌동안 불펜의 핵심투수가 되었으며 1995~1996시즌 부상 및 재활이후에도 은퇴할 때 까지 쏠쏠한 활약을 보여준 반면 박노준은 해태 이적후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 채 1993년 쌍방울로 트레이드 되면서 OB가 완승한 트레이드.
해태로서는 양준혁이 트레이드를 끝까지 거부할 가능성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1997 한국시리즈 우승의 주역이던 좌타 외야수 최훈재와 좌완 불펜투수 이재만을 내주는 출혈을 감수하면서 선발진을 보강할 목적으로 권명철을 데려왔다. 권명철로서는 1995년 우승 이후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다 보니 해태에서 새로운 기회를 잡아[6]
해태는 1999 시즌 시작 직전 하와이 스프링캠프에서 이강철과 이대진이 부상을 당한데다 1997 한국시리즈 헹가래 투수이던 김상진의 위암투병으로 인해 투수진에 구멍이 뚫렸고, 이에 권명철이 선발 한 축을 맡아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재기할 수 있는 기회기도 했다.
그러나 해태로 옮겨간 권명철은 1999년 초 한화와의 시범경기 도중 이영우의 살인태클에 넘어져[7]
그리고 한화는 이듬해인 2000 시범경기에서도 댄 로마이어가 2루수 홍현우에게 똑같은 수법으로 살인태클을 시전했다.
발목 골절로 그대로 시즌아웃됐고, 결국 해태에서는 한 경기도 뛰어보지 못하고 이듬해인 2000 시즌 개막 직전 신생팀 SK 와이번스의 창단지원선수로 이적하면서 1년만에 해태를 떠났다. 그리고 반대급부로 두산에 넘어온 최훈재는 두산에서 몇 년간 대타로 쏠쏠히 나와준 데다 2001년 한국시리즈에서 두산의 우승 주역으로 활약하고 은퇴하면서 두산의 압승으로 끝났다.
트레이드 발표 직후 최용호가 KIA로의 트레이드를 거부하고 돌연 잠적해버리는 등 소란이 있었고, 결국 최용호는 KIA에서도 시원찮은 성적만 남기고 2년만에 삼성으로 다시 트레이드된다. 반대로 두산으로 간 마크 키퍼는 트레이드 후 다시 살아나며 재계약에도 성공했으나 다음 해 다시 부진하며 퇴출되었다. 결론적으로 보면 그나마 키퍼를 반 시즌정도 잘 써먹은 두산이 소소하게 이득을 본 트레이드.
여담으로 키퍼가 떠나며 생긴 KIA의 외국인 슬롯에 영입된 투수 마이클 키트 존슨은 괜찮은 활약을 보여줬으나 재계약에는 실패했다. 이후 2005년에는 다시 KIA에서, 2009년에는 SK에서 뛰었다.
두산이 당시 부진하고 있던 심재학을 내보내서 구단 연봉을 줄이려 한 트레이드. 그렇다 보니 반대급부로 온 선수들도 타격 안되는 1루수 황윤성과 2003년 아예 뛰지도 못한 투수 박진철이었다. 당연하게도 이 두 선수는 조용히 은퇴했고 심재학은 1년이나마 KIA에서 연봉에 걸맞는 활약을 하며 해당 트레이드는 두산의 패배로 끝났다.
당시 KIA는 창단 첫 꼴찌를 찍고 있던 상황이라 유망주를 필요로 했고 두산은 2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이 유력해지자 강력한 외국인 선발이 필요했기 때문에 단행한 트레이드. 리오스는 이 트레이드 전까지만 해도 부진했으나 트레이드 후 3년간 명실상부한 두산의 1선발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전병두는 KIA에서 성장하여 2006 WBC 엔트리에도 오르는 등 활약하다가 부상으로 인해 부진했고, 이내 SK로 트레이드되어 SK에서도 뛰어난 활약상을 남겼다. 김주호는 두산에서 1군 경기에 거의 출전하지 못하고 방출되었다.
그런데 정재공 당시 KIA 단장의 말로는 사실 1:2가 아닌 2:2 트레이드라고 한다. 당시 두산이 보유한 외국인 선수 슬롯이 같이 트레이드 된 것으로, KIA와 두산 모두 영입의사가 있었지만 두산이 먼저 영입하려고 했던 세스 그레이싱어까지 KIA가 영입한 것이다. 취소선을 친 이유는 그레이싱어가 당시 KBO에 정식으로 등록된 선수가 아니었기 때문이라 공식적으로 발표된 내용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고, 따라서 1:2 트레이드로 기사가 나왔기 때문이다.
이 트레이드를 마지막으로 2023년 현재까지 외국인이 트레이드 되는 경우는 나오지 않고 있다.
특히 1998년 개천절 단군 매치는 그야말로 양팀의 운명을 갈랐다. 당시 선동열에 이어 이종범마저 빠진 해태는 시즌 후반들어 저력을 발휘하여 4강권에서 경쟁했고, OB는 마지막 8경기 모두 승리해야만 포스트시즌 막차를 탈 수 있었다. OB가 6연승을 거둔 가운데[10]
6연승째 경기에서 타이론 우즈가 정민태를 상대로 시즌 42호 홈런을 쳐냈다.
해태가 OB에 1.5게임 차 앞선 4위에 올라 OB와 운명의 마지막 2연전을 치르게 되었다. 이 2연전에서 해태는 최소 1무만 거두어도 포스트시즌 막차를 탈 수 있었는데, 그 해 27승을 합작한 이대진과 이강철을 쏟아붓고도 거짓말같은 2패를 당해 0.5게임 차로 OB에게 포스트시즌 티켓을 내주고 말았다. 또한 두산 베어스는 2006년 이후로 기아에게 열세를 당한 시즌에는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지 못하고(2006년,2011년,2014년,2022년) 동률이나 우세인 시즌에는 항상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고 있다.
[1] 시범경기, 포스트시즌 별도 표기[2] 시범경기, 포스트시즌 별도 표기[3] 해태 타이거즈 3승 2패 한국시리즈 진출[4] 두산 베어스 2승 플레이오프 진출[5] KIA 타이거즈 4승 1패 우승[6] 해태는 1999 시즌 시작 직전 하와이 스프링캠프에서 이강철과 이대진이 부상을 당한데다 1997 한국시리즈 헹가래 투수이던 김상진의 위암투병으로 인해 투수진에 구멍이 뚫렸고, 이에 권명철이 선발 한 축을 맡아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7] 그리고 한화는 이듬해인 2000 시범경기에서도 댄 로마이어가 2루수 홍현우에게 똑같은 수법으로 살인태클을 시전했다.[8] 현재는 삼성 라이온즈 소속[9] 2005 시즌 중 신동주와의 트레이드로 KIA 타이거즈에서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했으나, 삼성 이적 이후에는 1군 마운드를 단 한번도 밟지 못하고, 2006 시즌 후 현역을 떠났다.[10] 6연승째 경기에서 타이론 우즈가 정민태를 상대로 시즌 42호 홈런을 쳐냈다.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31 11:20:57에 나무위키 단군 매치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