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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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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북한의 제2대 최고지도자이자 독재자.
김일성의 장남이자 김정은의 아버지. 1972년 김일성에 의해 후계자로 낙점되어지며 정치 일선에 등장하였고, 1994년 김일성 사망 이후 제 2대 최고지도자 자리에 올라 북한을 통치하였다. 생전 조선로동당 총비서, 북한 국방위원회 위원장,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등의 직책을 겸임했고, 2011년에 사망하며 셋째 아들 김정은이 권력을 이어받았다.
2. 생애[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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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사망[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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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평가[편집]
집권 기간 굉장히 억압적이고 전체주의적인 통치를 한데다가 자행한 일들의 잔혹성과 악랄함도 매우 높기에 세계사에 있어서도 최악의 독재자 중 하나로 손꼽히는 인물이다.[7] 북한 내에서는 별 의미 없는 과장된 칭송들이 무수히 붙어있기는 하나 어디까지나 우상화의 일환에 불과하며, 당연히 외부 입장에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할 건덕지도 없는 인류 역사상 최악의 독재자 중 한 명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8]
김정일이 집권한 1990년대는 소련 붕괴의 영향으로 북한이 고난의 행군이라는 최악의 경제 위기에 처해있던 상황이었는데, 김정일은 선군정치를 통한 내부 단속에만 공들여 최소 100만 명 이상의[9] 북한 주민들을 아사하게 만든 장본인이며 심지어 '인민이 배가 부르면 다른 마음을 먹는다.'며 기아 상황을 유도했다는 의혹도 있다. 그러는 와중에 자신은 온갖 산해진미와 취미 생활을 즐기며 대단히 사치스러운 생활을 했고, 기쁨조라는 전용 성노예 집단까지 만들 정도로 여색을 탐닉하던 그야말로 폭군의 전형이었다.
개인적인 성격은 매우 심약하고 의심이 많은 편이라 정치범수용소를 운용하며 잦은 숙청을 벌였고, 암살에 대한 공포와 고소공포증 때문에 항공기 탑승을 극히 꺼려 전용 열차 태양호에만 의지해 외교 활동을 수행했다. 김정일이 북한 정상으로서 직접 방문한 나라는 중국과 러시아밖에 없으며, 남북정상회담도 평양에서 단 2회만 가졌을 뿐이라 은둔의 독재자라는 별명이 붙기도 핬다. 대외적으로 수많은 대남 도발과 특히 핵무기 개발로 전 세계에 악명을 떨쳤다.
4. 여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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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성격[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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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대중매체에서의 모습[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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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호칭 및 별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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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어록[편집]
"왜 우리 영환 맨날 나오는 것이 반복하는게 많고 도식적으로 영화 이야깃거리가 새것으로 나가자고 하는, 지향하는 것이 전혀 없단 말입니다. 도대체 왜 장면 장면마다 자꾸 초상난 집처럼 우는 것만 찍게 만드나! 우리 영화 안 우는 영화 안되겠나! 상가집도 아닌데 왜 이렇게 만드나? 그쪽은 대학생 수준인데 우린 이제 유치원인데 그러면서도 사람들이 새로운 걸 바라지도 않아. 완고하다고."
"내부에 있는 동무들이 특히 이번에 작전을 한 동무들이 특히 조직을 지휘하는데 총력을 다했습니다. 내 스스로 후회가 되는 건 내가 하려는 일을 구체적으로 애들한테 말을 안 해가지고 당신들이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저와 협력하려는지를 말입니다. '두 분이 꼭 필요하니까 데려와라.' 죄수처럼 맞죠? 죄수처럼 취급해가지고 그래서 서로 오해도 생기고..."
"내가 그런 걸 바탕으로 해가지고 우리 거하고 합쳐가지고 영화로 서양을 진출해야겠다. 우리는 그러니까 돈을 여기다 하겠다! 그래서 내가 신 감독에 대한 기대가 그래서 크다는 겁니다."
"그놈들이 부러워 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오지리나 스웨리예 그 다음에는 제네바...말하자면 중립국가를 표방한 나라를 댕기면서, 그렇게 구라파 댕기면서 이름을 알려야지..."
최은희가 몰래 녹취한 김정일의 발언. 신상옥에게 한 말이다. 김정일은 신상옥에게는 예의바른 태도를 지녔으며 항상 존댓말을 사용했다. #
"날 좋아하나?"
“(기쁨조와) 춤을 추는 것은 돼. 만지지는 말아. 만지면 도둑이야.”
"병들고 노동력이 없는 인민들은 빨리 없어지는 게 내게는 편하다. 철통같이 뭉친 군대와 당원 3백만 명만 있으면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리 공화국은 건재하다."
후지모토 겐지의 증언.
"내가 죽으면 너희들은 교수대에 매달려야 한다."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의 처형장면을 본 뒤 한 발언.#
“영웅적 조선인민군 장병들에게 영광 있으라!”
1992년 열병식 당시 연설.
“영감!”
오진우같은 늙은 측근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었다고 한다.
"제가 무슨 큰 존재라고, 아마 적들은 외신들, 그 다음에 저 구라파 사람들이 자꾸 뭐라고 말하냐면, "왜 은둔 생활을 하나? 은둔 생활하는 사람이 처음 나타났다." 난, 세상에 뭐 과거에 중국도 갔댔고 인도네시아도 갔댔고 외국에도 비공개로 갔댔고 헌데 나보고 은둔 생활을 한데? 그래서 김대통령이 오셔서 내가 이제 은둔에서 해방됐다. 하도 모르게 했으니까요."
2000 남북정상회담 도중 발언. #
"인민은 줄면 줄었지 마르지 않는다. 땅이 있고 물이 있고 내가 있는 한 인민은 얼마든지 다시 불어난다." #
"이라크 반미 세력들이 자폭공격으로 미제 침략자들을 소멸시키고 있다. 우리의 경보병 부대와 저격부대도 이라크처럼 자폭공격으로 적들에게 큰 피해를 줄 수 있다."
2004년에 특수부대를 시찰하면서 한 교시
"조선이 없는 지구는 깨버려야 한다는 우리의 배짱맛이 진짜 어떤 것인가를 그렇게도 맛보고 싶으면 지금보다 더한 별의별 미친 짓을 다해도 좋다"
"인민들이 강냉이밥을 먹고 있는 것이 제일 가슴 아프다. 내가 할 일은 세상에서 제일 훌륭한 우리 인민들에게 흰 쌀밥을 먹이고 밀가루로 만든 빵이랑 칼제비국(칼국수)을 마음껏 먹게 하는 것"
"나는 고난의 행군시기에 인민군군인들속에서 높이 발양되고있는 수령결사옹위정신과 육탄정신, 자폭정신을 혁명적군인정신이라고 하였으며 전당과 온 사회가 혁명적군인정신을 따라배우도록 하였습니다. 전당과 온 사회에 혁명적군인정신을 따라배우는 기풍이 높이 발양되고 인민군대의 위력이 더욱 강화되였을 때 우리의 령도는 선군령도이고 우리의 정치는 선군정치라고 하였습니다."
"옥에는 티가 있을 수 있어도 공산주의자에게는 티가 있을 수 없다."
김정일 노작 <<영화예술론>>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