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정구/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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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내에서 가장 보수적인 동네 중 하나이자, 한국을 대표하는 세습 지역구였다. 1988년 1월 1일 금정구가 처음 설치된 이래, 김진재 - 김세연 부자가 1988년 13대 총선 ~ 2016년 20대 총선까지 17대 총선을 제외하고 7번을 당선된 기록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구청장마저도 김세연의 측근인 원정희가 2010년 제5회 지방선거, 2014년 제6회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해 연임한 적이 있다. 원정희, 고봉복 전 구청장은 김진재 전 의원의 측근으로서 두 사람 모두 한나라당 금정지구당 사무국장을 지냈다. 또한 원정희 전 구청장은 김세연과 함께 자유한국당에 소속된 적이 있었다.
김세연 전 의원의 경우 2016년 4월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56.58%의 득표율을 기록하고 3선에 성공했다. 그는 금정구 지역 내의 토착중견기업인 동일고무벨트(DRB)의 창립주 김도근의 손자이자 김진재 전 한나라당 부총재의 아들이다. 아버지인 김진재 전 의원은 제11대 국회의원을 역임한 후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출마하여 2.28 학생민주의거의 주역인 이대우 통일민주당 후보와 단 1.22%(1,766표)의 표차로 당선되었다. 당시 금정구를 제외한 다른 부산 지역구들은 김영삼 총재가 이끌었던 통일민주당이 싹쓸이했던 것을 감안하면 놀라운 성과이다.[1] 김진재는 1988년 금정구가 분리된 이후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 불출마할 때까지 금정구에서만 13~16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더욱 놀라운 점은 총선이 거듭될수록 지지율은 더욱 상승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위에서 설명한 부친인 김진재가 금정구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기에, 그의 아들인 김세연도 자연스레 금정구에 뿌리를 내릴 수가 있었다. 적어도 김진재 전 의원이 정치활동을 할 때에는 본인은 어떤 뇌물 사건이나 금품수수, 비리가 드러나지 않았었다. [2] 또한 그가 의원으로 활동할 때 했던 업적들을 대충 아래의 칸들에 나열해본다면:
이러한 것들이 있다. 추가로 80년대 중반 지하철이 들어오면서 금정산 자락을 중심으로 고급주택들이 생기면서 교육환경도 상당히 개선된다.[7] 상당 부분은 이전 지역구 의원이었던 이기택 전 의원의 업적이었으나 본격적으로 개선된 건 김진재 전 의원 재임 시기였기에, 수많은 금정구민들은 김진재 전 의원 덕분에 금정구가 부산의 변방으로 전락하지 않고 발전했다고 느낀다. 아버지의 후광 덕분에 김세연 의원이 덕을 많이 봤다고 할 수 있다.
2004년에 김진재가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불출마를 선언하였고 당시 한나라당은 서울시장 이명박의 측근으로 분류되던 친이계 박승환[8] 을 금정구에 전략공천해 2020년 전까지 유일하게 김 부자가 아닌 사람이 금정구 의원을 지냈다. 그 다음 총선인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때에도 박승환이 한나라당 공천을 받아 재출마했으나, 김진재 전 의원의 아들, 김세연이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선거유세 과정에서 자신이 김진재의 아들임을 내세워 64.76%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그는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17대 국회 때 당시 대한민국 사상 최초의 여성 장애인 국회의원(당시 열린우리당 비례대표 1번)으로 활동했던 장향숙 전 의원을 더블스코어로 꺾고 건재함을 확인했다. 2016년 4월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내 공천파동으로 잡음이 끊이지 않는 상황 속에서도 김세연은 더불어민주당의 박종훈 후보와 정의당의 노창동 후보를 꺾고 56.58%의 득표율로 3선에 성공한다.
2016년 12월 새누리당 분당 사태에 발맞춰 당내에서 일관되게 개혁과 쇄신을 주장해왔던 김세연은 새누리당을 탈당하고 개혁보수신당에 합류하였다. 이에 금정구청장과 금정구를 지역구로 두고 있는 부산시의회 새누리당 박성명 시의원[9] 과 금정구의회 새누리당 소속 구의원 7명 중 5명이 모두 김세연과 동반 탈당했다.[10] 이는 김세연의 지역구에 대한 장악력이 압도적임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2017년 5월 9일 19대 대선에서 금정구는 원도심[11] 을 제외한 다른 부산 지역들과 마찬가지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를 꺾는 이변을 연출했다.[12] 문 후보가 36.82%, 홍 후보가 33.30%의 득표율을 기록하여 약 3.5% 차이로 문 후보가 앞서게 된 것. 금정구가 설치된 1988년 이후 민주당 계열의 후보가 보수 정당 계열의 후보에게 선거에서 이긴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한편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는 부산 전체 선거구 중에서 금정구에서만 유일하게 8%대를 넘겨 8.04%의 득표율을 기록했는데, 김세연 국회의원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유승민 후보가 유의미하게 선전하면서 후보 개인별이 아닌 진보 vs 보수 득표율로 보면 불과 0.49% 차이로 팽팽한 접전을 이루었다.
이는 동별 결과에서도 잘 드러나는데, 후보 개인별로 봐도 문재인이 7개동, 홍준표가 10개동에서 이기면서 부산 시내권[13] 에서 구도심 3구를 제외하고 유일하게 홍준표가 이긴 동이 더 많은 구였다. 농어촌지역인 선·두구동과 금성동, 남동부(동래구 동부와 같은 생활권)의 서1~3동, 금사동, 부곡1,4동, 시내 북부 끄트머리인 남산동과 청룡·노포동에서 홍준표 후보가 승리했다. 그중 선·두구동에선 49%를 넘었고, 동남부 지역의 서1~3동, 금사동 및 청룡·노포동에서 40%를 넘겼다. 문재인 후보가 이긴 지역은 부산 1호선 두실역-부산대역 구간의 지역이었다. 이 구간의 모든 동에서 평균 5% 내외의 격차를 보이며 승리했고, 특히 부산대학교 학생들이 다수 거주하는 장전1동, 장전2동에서는 40%를 넘기면서 금정구 승리를 견인했다. 특이사항으로는 이곳에서 문재인 뿐만 아니라 유승민, 심상정의 득표율 역시 금정구 전체 1,2위 득표율을 각각 기록했다.
그리고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때는 시의원을 더불어민주당이 2석을 다 가져가고 구청장이 사상 처음으로 더불어민주당에 넘어가버리면서 김세연의 수족인 원정희(금정구청장 후보)가 낙선하는 이변을 일으키며 지역 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줬다. 이는 7회 지방선거가 야당 심판론 성향이 강한 성격이었고 자유한국당이 부산시장 선거에서 비토 정서가 매우 강한 서병수 시장을 재공천하는 악수를 두면서 이에 대한 반발심이 퍼지면서 악영향을 굉장히 끼쳤고 또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방선거의 관심도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금정구의회가 업무추진비로 한우에 1600만원이나 썼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되면서 지역 사회에 '아무리 그래도 저건 아닌거 같다.'란 분위기가 심화된게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볼 수 있겠다.
그 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현역 김세연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했다.하지만 그는 공천관리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본인과 경쟁했던 백종헌을 컷오프 시키며 끝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다. 하지만 미래통합당 지도부에 의해 해당 결정은 번복되어 결국 김세연의 바람과 다르게 백종헌이 공천되었다.[14] 그렇게 미래통합당의 백종헌 후보가 54%를 득표하여 당선 되었고, 비례대표에서도 미래한국당이 45%를 얻으며 보수 강세지역으로 회귀했다. 다만 상대 박무성 후보도 40%를 득표하며 선전했다.
2021년 재보궐선거에서의 국민의힘 박형준 후보 득표율(65.35%)이 부산의 16개 기초자치단체 중에서 가장 높게 나왔다. 금정구의 강한 보수지지 성향을 확인할 수 있었던 부분이다. 이듬해인 2022년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의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 득표율(60.70%)은 해운대구(60.87%), 수영구(60.82%)에 이어 3위를 기록했다. 이 둘은 집값 급상승으로 종부세 이슈가 들이닥치면서 급격히 보수화된 지역임을 고려하면 3위를 기록했다고 해도 보수성향을 제대로 보여준 셈이었다. 상대 후보인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 득표율은 35.64%로, 부산 16개 자치단체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1. 선거구 정보[편집]
2. 개요[편집]
부산광역시 내에서 가장 보수적인 동네 중 하나이자, 한국을 대표하는 세습 지역구였다. 1988년 1월 1일 금정구가 처음 설치된 이래, 김진재 - 김세연 부자가 1988년 13대 총선 ~ 2016년 20대 총선까지 17대 총선을 제외하고 7번을 당선된 기록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구청장마저도 김세연의 측근인 원정희가 2010년 제5회 지방선거, 2014년 제6회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해 연임한 적이 있다. 원정희, 고봉복 전 구청장은 김진재 전 의원의 측근으로서 두 사람 모두 한나라당 금정지구당 사무국장을 지냈다. 또한 원정희 전 구청장은 김세연과 함께 자유한국당에 소속된 적이 있었다.
김세연 전 의원의 경우 2016년 4월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56.58%의 득표율을 기록하고 3선에 성공했다. 그는 금정구 지역 내의 토착중견기업인 동일고무벨트(DRB)의 창립주 김도근의 손자이자 김진재 전 한나라당 부총재의 아들이다. 아버지인 김진재 전 의원은 제11대 국회의원을 역임한 후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출마하여 2.28 학생민주의거의 주역인 이대우 통일민주당 후보와 단 1.22%(1,766표)의 표차로 당선되었다. 당시 금정구를 제외한 다른 부산 지역구들은 김영삼 총재가 이끌었던 통일민주당이 싹쓸이했던 것을 감안하면 놀라운 성과이다.[1] 김진재는 1988년 금정구가 분리된 이후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 불출마할 때까지 금정구에서만 13~16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더욱 놀라운 점은 총선이 거듭될수록 지지율은 더욱 상승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위에서 설명한 부친인 김진재가 금정구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기에, 그의 아들인 김세연도 자연스레 금정구에 뿌리를 내릴 수가 있었다. 적어도 김진재 전 의원이 정치활동을 할 때에는 본인은 어떤 뇌물 사건이나 금품수수, 비리가 드러나지 않았었다. [2] 또한 그가 의원으로 활동할 때 했던 업적들을 대충 아래의 칸들에 나열해본다면:
- 금정구청 설립시 재정 지원.
- 부산대학교 부지 확보 당시 부지 기증 및 장학금 지원.
- 고촌장학재단[3] 설립 후 매년 총 2억 원 정도씩 구내 고등학생에게 장학금 지원 및 저소득층 학생들 200여명 정도에게 학비 연간 180만 원 지원.
- 금정문화회관 건립.[4]
- 구서주공아파트 재건축.[5]
- 금정세무서 유치.
- 산업도로 증설.
- 철마-금정 간 도로개통 시 부지 기증.
- 스포원(금정체육공원) 설립.[6]
- 동일고무벨트 직원 채용시 부산시민 우선 채용.
이러한 것들이 있다. 추가로 80년대 중반 지하철이 들어오면서 금정산 자락을 중심으로 고급주택들이 생기면서 교육환경도 상당히 개선된다.[7] 상당 부분은 이전 지역구 의원이었던 이기택 전 의원의 업적이었으나 본격적으로 개선된 건 김진재 전 의원 재임 시기였기에, 수많은 금정구민들은 김진재 전 의원 덕분에 금정구가 부산의 변방으로 전락하지 않고 발전했다고 느낀다. 아버지의 후광 덕분에 김세연 의원이 덕을 많이 봤다고 할 수 있다.
2004년에 김진재가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불출마를 선언하였고 당시 한나라당은 서울시장 이명박의 측근으로 분류되던 친이계 박승환[8] 을 금정구에 전략공천해 2020년 전까지 유일하게 김 부자가 아닌 사람이 금정구 의원을 지냈다. 그 다음 총선인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때에도 박승환이 한나라당 공천을 받아 재출마했으나, 김진재 전 의원의 아들, 김세연이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선거유세 과정에서 자신이 김진재의 아들임을 내세워 64.76%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그는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17대 국회 때 당시 대한민국 사상 최초의 여성 장애인 국회의원(당시 열린우리당 비례대표 1번)으로 활동했던 장향숙 전 의원을 더블스코어로 꺾고 건재함을 확인했다. 2016년 4월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내 공천파동으로 잡음이 끊이지 않는 상황 속에서도 김세연은 더불어민주당의 박종훈 후보와 정의당의 노창동 후보를 꺾고 56.58%의 득표율로 3선에 성공한다.
2016년 12월 새누리당 분당 사태에 발맞춰 당내에서 일관되게 개혁과 쇄신을 주장해왔던 김세연은 새누리당을 탈당하고 개혁보수신당에 합류하였다. 이에 금정구청장과 금정구를 지역구로 두고 있는 부산시의회 새누리당 박성명 시의원[9] 과 금정구의회 새누리당 소속 구의원 7명 중 5명이 모두 김세연과 동반 탈당했다.[10] 이는 김세연의 지역구에 대한 장악력이 압도적임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2017년 5월 9일 19대 대선에서 금정구는 원도심[11] 을 제외한 다른 부산 지역들과 마찬가지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를 꺾는 이변을 연출했다.[12] 문 후보가 36.82%, 홍 후보가 33.30%의 득표율을 기록하여 약 3.5% 차이로 문 후보가 앞서게 된 것. 금정구가 설치된 1988년 이후 민주당 계열의 후보가 보수 정당 계열의 후보에게 선거에서 이긴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한편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는 부산 전체 선거구 중에서 금정구에서만 유일하게 8%대를 넘겨 8.04%의 득표율을 기록했는데, 김세연 국회의원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유승민 후보가 유의미하게 선전하면서 후보 개인별이 아닌 진보 vs 보수 득표율로 보면 불과 0.49% 차이로 팽팽한 접전을 이루었다.
이는 동별 결과에서도 잘 드러나는데, 후보 개인별로 봐도 문재인이 7개동, 홍준표가 10개동에서 이기면서 부산 시내권[13] 에서 구도심 3구를 제외하고 유일하게 홍준표가 이긴 동이 더 많은 구였다. 농어촌지역인 선·두구동과 금성동, 남동부(동래구 동부와 같은 생활권)의 서1~3동, 금사동, 부곡1,4동, 시내 북부 끄트머리인 남산동과 청룡·노포동에서 홍준표 후보가 승리했다. 그중 선·두구동에선 49%를 넘었고, 동남부 지역의 서1~3동, 금사동 및 청룡·노포동에서 40%를 넘겼다. 문재인 후보가 이긴 지역은 부산 1호선 두실역-부산대역 구간의 지역이었다. 이 구간의 모든 동에서 평균 5% 내외의 격차를 보이며 승리했고, 특히 부산대학교 학생들이 다수 거주하는 장전1동, 장전2동에서는 40%를 넘기면서 금정구 승리를 견인했다. 특이사항으로는 이곳에서 문재인 뿐만 아니라 유승민, 심상정의 득표율 역시 금정구 전체 1,2위 득표율을 각각 기록했다.
그리고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때는 시의원을 더불어민주당이 2석을 다 가져가고 구청장이 사상 처음으로 더불어민주당에 넘어가버리면서 김세연의 수족인 원정희(금정구청장 후보)가 낙선하는 이변을 일으키며 지역 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줬다. 이는 7회 지방선거가 야당 심판론 성향이 강한 성격이었고 자유한국당이 부산시장 선거에서 비토 정서가 매우 강한 서병수 시장을 재공천하는 악수를 두면서 이에 대한 반발심이 퍼지면서 악영향을 굉장히 끼쳤고 또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방선거의 관심도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금정구의회가 업무추진비로 한우에 1600만원이나 썼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되면서 지역 사회에 '아무리 그래도 저건 아닌거 같다.'란 분위기가 심화된게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볼 수 있겠다.
그 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현역 김세연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했다.하지만 그는 공천관리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본인과 경쟁했던 백종헌을 컷오프 시키며 끝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다. 하지만 미래통합당 지도부에 의해 해당 결정은 번복되어 결국 김세연의 바람과 다르게 백종헌이 공천되었다.[14] 그렇게 미래통합당의 백종헌 후보가 54%를 득표하여 당선 되었고, 비례대표에서도 미래한국당이 45%를 얻으며 보수 강세지역으로 회귀했다. 다만 상대 박무성 후보도 40%를 득표하며 선전했다.
2021년 재보궐선거에서의 국민의힘 박형준 후보 득표율(65.35%)이 부산의 16개 기초자치단체 중에서 가장 높게 나왔다. 금정구의 강한 보수지지 성향을 확인할 수 있었던 부분이다. 이듬해인 2022년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의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 득표율(60.70%)은 해운대구(60.87%), 수영구(60.82%)에 이어 3위를 기록했다. 이 둘은 집값 급상승으로 종부세 이슈가 들이닥치면서 급격히 보수화된 지역임을 고려하면 3위를 기록했다고 해도 보수성향을 제대로 보여준 셈이었다. 상대 후보인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 득표율은 35.64%로, 부산 16개 자치단체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