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륜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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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신라의 왕족. 신라 24대 왕 진흥왕과 사도태후의 장남이자 25대 진지왕의 형, 26대 진평왕의 아버지.
이름은 4명의 전륜성왕 중 하나인 동륜왕을 염두에 두고 지은 이름이다. 마찬가지로 동생 김사륜(진지왕)의 사는 순우리말 쇠를 음차한 것, 즉 동륜왕 다음인 철륜왕을 의미한다. 이 시기 신라는 불교에서 왕족 이름을 따서 짓는 경우가 흔했다.
2. 생애[편집]
진흥왕이 신라의 영토를 확장해 포석을 닦아두고 장남으로서 태자에 책봉되어 탄탄대로를 걷는가 싶었지만 572년, 아버지보다 먼저 요절해버렸다. 사망 당시 많아봐야 20대 초반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때 진흥왕은 아직 겨우 38세였는데, 말년에 불교에 심취해 머리를 깎고 승복을 입은 것이나 진흥왕 본인도 몇년 못 가 요절[2] 한 것도 태자를 너무 빨리 보낸 충격 탓일지도 모른다.
고모 만호부인과의 사이에서 이미 김백정, 김백반, 김국반 세 아들이 있었지만 너무 어려서인지 결국 진흥왕의 차남 사륜이 왕위에 올랐는데 그가 바로 진지왕이다. 하지만 색만 밝히고 방탕하게 횡음했기에 5년만에 폐위당하고, 결국 동륜태자의 아들 김백정이 진평왕으로 즉위하게 된다. 왕위가 동륜태자의 동생에게 잠시 갔다가 다시 동륜태자 계열로 돌아온 셈.
위서일 확률이 높은 《필사본 화랑세기》에는 위 사망 과정에 대한 좀 더 자세한 내용이 적혀있는데, 아버지 진흥왕의 후궁 보명궁주와 눈이 맞아 몰래 보명궁을 들락거렸는데 담을 넘는 중 그만 개에게 물려서(...) 크게 다쳐 얼마 뒤 죽었다고 한다.
골품제에서 성골의 기준이 동륜태자의 후손이라는 설이 있다. 실제로 골품제에 대해서는 6세기 이후에 대한 기록부터 적혀있고 동륜태자의 자손인 진평왕, 선덕여왕, 진덕여왕까지가 성골, 동생인 사륜의 후손인 태종 무열왕을 비롯한 다른 왕족들은 진골이니만큼 유력한 가설로 지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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