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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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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전차는 총탄은 물론이고 포탄에도 방호력을 가지는 장갑판, 험지 주파를 위한 주행 시스템[1] , 그리고 직사[2] 형식의 전차포를 가진, 강철 혹은 그에 준하는 금속으로 만든 전투용 차량으로, 현대전의 주력 지상 병기 중 하나이다.
2. 명칭[편집]
한국어로는 고대 전차(Chariot)와 이름이 같으나 사실 직접적인 관계는 없다. 그런데 다른 언어권에서도 'Tank'를 'Chariot'에 빗대어서 말하는 사례가 가끔 있다. 예를 들어 프랑스가 그러하며, 이스라엘의 주력 전차인 '메르카바 전차'는 성서에도 나오는 '병거(兵車) 메르카바'의 이름에서 따왔다. 현대 기병사단의 직계 조상이 기병, 더 나아가 채리엇이기도 하고.[22]
3. 역사[편집]
3.1. 고대 시대~1차 세계대전 이전: 개념의 성립[편집]
투사체를 이용한 공격력과 탑승자가 안전할 수 있는 방어력을 갖추고 땅에서 움직일 수 있는 탈것 형태의 무기에 관한 개념은 고대 시대부터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대표적으로 삼국지의 목우유마, 그리스의 헬레폴리스, 중세 유럽의 공성탑 등이 이런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전차와 유사한 형태를 지닌 병기를 구상한 적이 있다. 나무로 만든 장갑체 주위에 대포와 인력 바퀴를 이용하는 형태로 전차와 비슷하게 설계됐다.[23] 하지만 당시 기술로는 좁은 공간 안에 인력 이외의 동력으로 이러한 무거운 차량을 움직일 수 있는 수단이 없어서 500년 동안 묻혔다. 나중에 레오나르도가 고안한 전차를 설계도대로 복원품을 만들어 영국군 챌린저 2 승무원들이 재현을 해 봤더니, 진짜 쎄빠지게 돌려야 간신히 움직이는 걸 볼 수 있다.
물론 동양에서도 이런 공수주를 모두 갖춘 무기에 관한 개념이 아예 없지는 않아서, 몇 가지 실험적인 물건들이 나왔으나 기록으로만 확인할 수 있으며 당시 기술의 한계로 인력이나 말의 힘을 빌려 매우 느렸다.
1911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공학자 군터 부르스틴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육군을 위해 궤도식 트랙터에 선회식 포탑을 얹은 부르스틴 모토르게쉬츠Burstyn Motorgeschütz를 설계했으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육군이 채택을 거부해 설계도만 남게 되어 세계 최초의 전차 타이틀을 얻을 기회를 날리고 말았다. 만약 실제로 해당 차량이 제작되었다면 르노 FT 보다도 먼저 현대전차의 아버지로 불리웠을 것이다.
3.2. 제1차 세계 대전[편집]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독일군과 프랑스군, 영국군은 서부전선에서 치열하게 전투를 벌이지만, 그들의 싸움은 곧 진흙탕 속으로 빠져들며 장기전으로 가게된다. 전쟁의 양상이 보병 또는 기병이 돌격을 하는 기동전에서 양쪽이 참호를 구축하고 대치하는 참호전으로 변화되면서, 철조망, 참호, 기관총이라는 악마 3총사가 군인들 앞을 막아선 것이다. 사람을 갈아넣는 것으로는 절대로 뚫리지 않는 이 악마 3총사를 뚫어야하는 현실 속에서 양측은 어떻게든 진격하기 위해 곡사포를 이용해 무차별 포격한 뒤 돌격을 해봤지만 군인들은 속절없이 죽어갔다. 솜 전투가 시작된지 불과 하루만에 영국 육군은 사망자 2만명을 기록할 정도였다. 양측은 이대로가면 답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영국, 프랑스, 독일은 각자 해결책 마련에 골몰했다.
이때 영국군 공병 장교인 어니스트 던롭 스윈튼(Ernest Dunlop Swinton)[25] 이 무한궤도를 이용한 장갑차량을 새로 개발해서 참호를 돌파하자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육군성에서는 이 의견에 퇴짜를 놓았으므로 스윈튼의 야심찬 아이디어는 그대로 사장되는 듯했지만, 당시 해군장관이었던 윈스턴 처칠이 이 아이디어를 채용, 육상전함을 개발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링컨 머신과 리틀 윌리다. 링컨머신과 리틀 윌리는 무한궤도가 달려있는 철판으로 둘러싸인 모양을 한 일종의 장갑차 같이 생긴 놈들이다. 하지만 이 장갑차들이 참호를 넘지 못해 좀 더 실용적으로 바뀌면서 나온 물건이 바로 Water Carrier라는 이름의 장갑차량으로 (추후 Tank로 이름 변경), 이것이 현대 전차의 조상인 Mk 시리즈다.
Mk 시리즈의 암호명은 'Tank'인데, 이 단어는 나중에 확립되었고, 현대 '전차'의 대표적 특징인 '강한 직사포와 일반적인 장갑차에 비해 매우 튼튼한 장갑판을 가졌으며, 무한궤도를 장비해 험지 돌파력이 뛰어난 장갑차량'을 부르는 일반명사가 되었다.
사실 처음 생각한 암호명은 'Water Carrier'(물탱크) 였다. 하지만 누군가가 "약자로 줄이면 WC(Water Closet, 즉 화장실)가 되는데?"라고 반문해 부랴부랴 Tank로 바꿨다는 이야기도 전해져 온다. 또한 WC는 윈스턴 처칠의 약자이기 때문에 적에게 '뭔가 예사롭지 않은 병기'라는 의심을 살 여지가 있어 변경했다는 설도 존재한다. 다만 이 설은 설득력이 좀 낮은데, 제 1차 세계대전 당시 윈스턴 처칠은 육군이 아니라 해군 장성이었기 때문에 단번에 특수한 병기라는 걸 눈치채기는 힘들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초기 전차의 개발에 미국이 의외로 큰 기여를 했다. 제1차 세계 대전 발발 전 궤도차량에 익숙치 않던 유럽에 미제 트랙터(특히 홀트 트랙터)가 대량으로 보급되어 무한궤도의 우수성을 알렸고, 전쟁이 발발하자 이 트랙터를 바탕으로 프랑스의 슈나이더 CA1과 생샤몽, 그리고 독일의 A7V가 만들어졌다.
1916년에 출현한 영국의 Mk.I은 최초의 전차로 기록되었는데, 사실은 프랑스에서도 같은 시기에 슈나이더 CA1, 생샤몽이라는 전차를 만들기는 했다. 그러나 프랑스의 두 전차는 개발은 Mk.I보다 빠르나 실전투입이 늦은 데다 실패작이므로, 최초의 전차라는 영광은 Mk.I에게 빼앗겼다.
이후 프랑스에서는 와신상담하여 선회식 포탑을 처음으로 사용하여 현대 전차의 기계적 구성요소를 처음으로 완성한 르노 FT를 만들었다. 그 전까지의 전차는 움직이는 벙커에 가깝지만, 르노 FT는 선회식 포탑 사용, 하나의 주포, 후방 엔진 구조를 지님으로써, 이전의 전차와는 다르게 현대 전차의 정의(定義)의 하나인 '강한 직사포를 원활하게 쓸 수 있다'는 것을 충족시켰다. 그래서 전차의 시작은 Mk.I, 현용 전차의 아버지는 르노 FT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 FT-17은 의외로 오래 살아남아서 적백내전 당시 백군이 사용하다가 적군이 노획하기도 했고 2차대전 당시에도 폴란드 침공 때 폴란드군이 운용했으며 벨기에, 프랑스, 유고슬라비아에서도 현역으로 굴렸고 독일군이 벨기에, 프랑스, 유고슬라비아에서 노획해 1700여대분은 굴렸고 중국 국민당군과 일본군이 중국 전선에서 운용하기도 했고 연합군이 시칠리아에 상륙한 때, 이탈리아군이 르노 FT의 이탈리아판인 피아트 3000을 끌고 나와 맞서기도 했고 1944년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후 미군이 독일군이 운용하던 걸 노획하기도 했으며 베를린 공방전 때도 소련군이 노획해 모아 놓은 독일군 전차 사이에 독일 측에서 급한 대로 끌고 온 이녀석이 사진으로 남았다. 2003년 아프가니스탄 카불 근처에서도 기동 가능한 르노 FT 2대가 목격되었다. 2000년대 들어 발견된 르노 FT-17전차들을 아프간은 각국에 선물하였고, 아프간의 르노 FT들은 원래 폴란드군 소속이던 것을 소련군이 뺏어 아프가니스탄에 공여한 것이라 그 중 1대는 폴란드로, 2대는 미국으로 보내져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한다.
그러나 1차대전 전차들은 하나같이 문제점이 심했다. 구동계통의 신뢰성이 엉망이라 툭하면 퍼졌고, 기관총 이상의 방어를 생각하지 않았기에 장갑이 상당히 빈약한 편이라 일반 야포나 항공폭탄은 물론이고 대전차 소총이나 집속수류탄 등으로도 격파되거나 초근접거리라면 기관총에도 뚫려서 승무원이 사망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1차대전 당시 참전국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전차를 철의 관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또 이 철관이 1차대전 내내 아무 쓸모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인츠 구데리안의 저서인 《전차에 주목하라》Achtung, Panzer를 읽어 보면 책 내용의 반 이상이 협상국의 전차 때문에 독일 제국이 전쟁에서 진 것이라는 내용이 있다. 또한 1차대전 독일 제국군 참전용사에게 독일이 1차대전에서 패배한 이유를 물어보면 십중팔구 협상국의 전차 때문이라고 답을 했다는 말도 있다.[29] 그들도 굴러다니는 자동차야 본 적이 있었겠지만, 전면이 강철로 뒤덮여서 어지간한 구경의 총 따위는 씹어삼키는 강철기동요새는 역사의 첫번째가 되어 처음 봤을 테니 말이다. 게다가 전차가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그저 그런 병기' 였다면 부랴부랴 대전차 수단을 마련할 필요도, 각 참전국에서 앞다투어 실험적인 성격의 초기형 전차를 개발할 이유도 없었다.
또한 실제 사례를 들어보면, 1918년 춘계 공세 때에 후티어 전술을 앞세운 독일 제국군이 해안가의 영국군과 내륙의 프랑스군을 서로 갈라놓는 데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미앵에서 파리 근교를 코 앞에 둔 독일군에게 느닷없이 프랑스군이 슈나이더 CA1이나 생샤몽, FT-17 같은 전차들을 모아 한번에 반격을 행한 사례가 있었다. 그러자 바로 독일군의 공세여력이 사라지고 독일군은 퇴각하였으며 다시는 공세를 취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망가져 버렸다. 또 다른 사례로 백일 전투 당시에 프랑스군의 르노 FT-17 세 대가 침투해 들어오자 독일군 사단 하나가 기동을 멈추고 돌격대 4개 대대가 붙어서 수 백명의 병사들이 다치고 실종된 다음에야 겨우 다 잡았다. 르노 FT-17이 그리 크고 빠르지도, 무장이 강하지도 않은 경전차임에도 불구하고 고작 세 대만으로 알보병 사단 하나를 멘붕에 빠뜨려 버릴 수 있었던 것이다. 사람 숫자로 따지면 르노 FT-17에는 전차장과 조종수 2명만 타므로 세 대의 전차와 여섯 명의 승무원 때문에 1개 사단이 무너졌다는 뜻이다.
3.3. 전간기[편집]
1차 대전 이후 서방 국가들은 장갑화된 전력이 필요했다. 그 때문에 전쟁 직후 전차의 종주국이였던 프랑스와 영국은 전차 발전을 주도하게 되었는데 둘의 발전 방향은 상당히 달랐다. 프랑스는 1차 대전식 전차인 보병과 같이 돌진하는 개념의 초중다포탑전차인 2C 전차[30] 와 1인승 포탑을 가진 르노 FT의 발전형을 만들었지만, 영국은 독립적인 전차부대 창설[31] 을 위한 "실험 기계화부대(Experimental Mechanization Force (EMF))"를 창설하여 선진적인 전차 연구에 중점을 두면서 빅커스 미디엄 MK,I, 빅커스 미디엄 Mk.II 전차를 대공황기를 포함한 기간동안 130~300대나 만들어 낸다. 특히 빅커스 미디엄 Mk.I, 빅커스 미디엄 Mk.II 전차는 전차장과 포수, 탄약수를 분리한 3인용 포탑, 제대로된 서스팬션, 차체 기관총, 동축 기관총[32] , 무전기 등 사실상 혼자서 2차대전 전차의 구성을 정립하였고 해당 전차는 마틸다 전차의 차대로 활용되게 된다.
이후 이 3인포탑은 영국의 A1E1 인디펜던트의 주포탑에 계승되어 다포탑 전차 붐 당시에 생산된 다포탑 전차들에 3인용 포탑이 장착되게 하였다. 때문에 독일, 소련, 영국 등은 전간기동안 자국의 전차들에 3인용 포탑을 장착하게 된다. 반대로 인디펜던트를 참조한 다포탑 전차를 만든 적이 없는 국가들은 전간기 동안 2인용 포탑을 채용한 전차만을 생산했다.[33]
다포탑 전차 붐이 발생한 이유는 전간기에서 2차대전 중기 까지는 대전차포(Hard Target)[34] 와 대보병포(Soft Target)[35] 가 이원화 되어 있었기 때문인데, 인디펜던트 전차[36] 를 본 독일과 소련이 이를 해답으로 여기고 인디펜던트 전차를 본받은 다포탑 전차들을 만들어 대전차포와 대보병포를 같이 장착했다. 이후 2차대전 동안 전차들에 대구경 주포가 장착되면서 이원화는 끝나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러한 다포탑 중(中, 重)전차는 당시의 기술로 실현이 가능할지 불확실한데다 비싸기까지 했기 때문에 대공황의 여파로 경제가 어려웠던 국가들은, 영국의 카든-로이드 탱켓과 빅커스 6톤, 프랑스의 르노 FT을 수입해와 자국 전차 산업의 기반으로 삼으며[37] 비교적 경(輕)장갑인 경전차 위주로 개발했고, 강대국들 또한 경전차를 중(中, 重)전차완성의 공백을 매우는 방식으로 사용하게 되면서 경전차의 전성기가 시작된다.
3.4. 전간기 말기 ~ 제2차 세계 대전 초기[편집]
다포탑 전차 붐이 끝나면서(몇몇 국가는 동시에) 중(中, 重)전차의 주류는 보병전차(보병과 합동작전)와 순항전차(기병 기동교리) 체계로 이어졌는데, 영국과 프랑스는 같은 대전차주포를 장착한 대신에 장갑과 기동성을 기준으로 기동성을 중시한 순항전차와 방어력을 중시한 보병전차로 둘을 구현하려 했고, 독일은 가벼운 무게에 주포와 기동성을 기준으로 소구경포와 기동성을 중시한 주력전차(3호 전차)와 대구경포를 장착하고 신뢰성[38] 높은 보조전차(4호 전차)구현하려 했으며, 소련은 같은 대전차주포와 가벼운 무게에 생산성과 기동성을 기준으로 생산성이 좀 떨어져도 기동성이 좋은 쾌속전차와 생산성이 매우 좋은 경보병전차를 구현하려 했다.
결국 전간기 동안에도 무기개발에 손을 놓지 않았던 강대국들은 이런저런 전차들을 만들고 스페인 내전, 겨울전쟁, 폴란드 침공, 할힌골 전투 등에서 시험하면서 전차에 대한 경험을 축적하게 되고, 이를 바탕으로 교리를 만들면서 전간기 말기에서 전쟁 초기에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지게 되었다.
독일은 주포 이원화의 해답으로 생각했던 다포탑 전차인 노이바우파초이크를 포기하였으나, 소구경포 탑재 3호 전차, 대구경포 탑재 4호 전차, 보병근접 지원용 3호 돌격포의 비슷한 체급의 전차를 3대나 사용하는 모습이 되었다. 거기다 생산마저 원활하지 못해[39] 2차대전 개전 시점에서 2호 전차와 체코슬로바키아를 점령하면서 획득한 38(t)를 주력으로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으며, 전쟁이 장기화되면서도 노획한 전차들을 버리지 못하여[40] 보급과 유지보수에 지장이 가게된다. 게다가 주력으로 삼으려던 3호 전차는 작은 크기로 인해서 개량의 한계가 오게 되어 보조였던 4호 전차를 주력으로 사용하게 된다. 이후 독소전쟁에서 T-34와 KV-1을 마주치면서 순항전차, 보병전차 개념에서 나왔던 3호, 4호 전차 체계를 버리고 판터와 티거 전차로 대표되는 중형전차, 중전차 체계로 넘어가게 된다.
소련은 다포탑 전차인 T-28와 T-35를 양산하는 등 전쟁 초기까지 전차 컨셉에서 갈팡질팡하지만, 겨울전쟁에서의 경험으로 다포탑 전차를 포기하는 것으로 가닥이 잡히자 다포탑 중전차를 단포탑 중전차로 발전시켰으며, 할힌골 전투에서의 경험으로 쾌속전차 체계를 T-34 중형전차로 발전시켜 대보병과 대전차전이 모두 가능한 대구경 주포를 가장 이른 시기에 T-34-76와 KV-1에 도입하고, 소품종 대량생산 체계로 현대적인 전차 운용이 가능하게 된다. 그러나 대숙청으로 인한 부대 혼란 상황과 함께 신형전차에 대한 훈련도 부족과 독일보다 생산량이 많았어도 여전히 구식전차가 태반인 상황에서 바르바로사 작전으로 독일군이 침공하자 속절없이 밀리게 된다. 하지만 소련은 포기하지 않고 공장을 전선 뒤쪽으로 옮기기로 결정하며, 이 전차 공백기를 생산이 쉬운 경보병전차 대량생산으로 버텨내는 데 성공한다.[41]
영국은 다포탑 전차의 기관총 포탑들을 떼어내며 점점 현대적인 전차의 모습을 갖추어 갔으나,[42] 보병전차의 완성과는 반대로 순항전차의 완성이 늦어져 프랑스 전투에서 순항전차 대신 Mk.6 경전차를 사용하게 되었으며, 보병전차와 순항전차로 역할을 나눈 것이 유연한 활용을 방해하여 보병전차는 기동력이, 순항전차는 방어력과 신뢰도가 부족하게 되었다.[43] 또한 전차의 주포는 기본적으로 대전차포를 탑재하고, 동형 전차에 CS(Close Support)형으로 QF 3인치 곡사포와 QF 3.7인치 산악 곡사포를 장착하다, 후기에는 QF 95mm 곡사포를 장착해 혼합 배치함으로써 대보병전에 대비하기로 하였지만, 주포 이원화에 집착한 나머지 대전차포 탑재 전차에 고폭탄을 지급하지 않아, 대보병전에서 피해를 보게 된다. 이에 영국은 처칠 Mk.I 차체에 CS용 포를 달기도 하고, 6파운더에는 고폭탄을 지급하는 등 해결법을 모색했지만, 결국 미국의 75mm 전차포와 포탄이 호환되는 QF 75mm를 자체 생산하여 해결하게 되었고[44] , 순항전차의 장갑도 점점 두꺼워져 중형전차와 차이가 없어지며, 보병전차도 소련 렌드리스 용으로 생산한 발렌타인 전차를 제외하면 처칠만 생산하면서 사실상 중형전차, 중전차 체계가 된다.
프랑스는 전간기 동안 보병지원에 유탄발사기 수준의 주포를 사용하는 등 보수적인 개념을 고수하며 다포탑 전차에 딱히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때문에 개전 시점에 1인용 포탑을 유지하면서 그 여유 용적만큼을 방어력에 투자하여 훌륭한 방어력을 가진 전차들을 생산했지만, 기동 능력이 이를 뒷받침해주지 못하는 데다[45] , 1인용 포탑으로 대응 능력이 형편없었다. 그나마 대벙커포와 대전차포를 두꺼운 장갑과 함께 장착한 르노 B1 전차가 돌격포와 비슷한 지휘, 운용이 가능해 활약했으며, G1 전차와 AMX-40 기병전차를 개발하면서 2~3인용 포탑을 본격적으로 채용하려고 했으나 독일에 항복하면서 전차 발전이 멈추게 된다.
미국은 대서양 넘어의 전운을 감지하고 M3 스튜어트와 M6 전차를 개발하면서 전차 개발의 시동을 걸고 있는 와중, 전격전의 소식을 듣고 대전차 자주포를 준비하면서, 타 국가들이 전간기 동안 쌓아올린 기술력을 전쟁 기간 동안 엄청난 공업력으로 따라가고 있었으며, 오히려 전간기 전차 개발을 소홀히[46] 하였기 때문에 순항전차와 보병전차 체계에 영향을 받지 않고, 적절한 전차를 전 세계에 보급하기 위해 적절한 성능에 수송 능력을 중시한 M3 리와 M4 셔먼 중형전차를 생산하게 된다.
이 시기에는 전차의 주포보다 전차의 방호력의 증가가 두드러지는 시기였는데, 전간기 전차개발에 가장 영향력 있었던 영국의 순항전차가 전간기에 14mm에서 신형이 개발될 때마다 장갑이 두꺼워지다 중형전차와 차이없는 전면 최대 100mm, 측면 46mm가 되었고, 폴란드 침공 시기에 15mm의 장갑을 가지고 있던 3호, 4호 전차는 아프리카 전선에서 후퇴할 때 70~80mm의 전면장갑을 가지고 있게 되었으며, 소련은 BT 쾌속전차를 T-34 중형전차로 발전시켰으며, 영국과 프랑스의 두꺼운 장갑을 가진 보병전차들이 고평가를 받았다.
3.5. 제2차 세계 대전[편집]
전쟁 초반기에 전간기의 재고가 많아 널리 사용되던 경전차들은 말기에 이르러 중형전차와 중전차들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개조된 채 정찰, 수송, 자주포, 구난차량, 포 운반 트랙터, 포병 관측 정도의 임무만 맡게 됐다.
2차 대전의 아이콘으로 대표되는 중형전차, 중전차들은 아래와 같다.
전간기에 자동차 산업은 지속적으로 발전하게 되었고, 이에 힘입은 엔진과 서스펜션의 발전에 따라 전차의 중량제한이 완화됐다. 이 때문에 생긴 여유중량은 더 큰 전차포와 더 무거운 장갑을 가능하게 했으며, 전쟁과 함께 진행된 각국의 주포 vs 장갑의 경쟁은 전차성능의 급격한 개량을 가져오게 되었고, 구경이 커지면서 자연스럽게 대전차포(Hard Target)와 대보병포(Soft Target)를 나누어 사용할 필요가 없어지게 되었다.
다만 더 큰 전차포 탑재에는 약간의 애로사항이 있었는데, 1차 대전때 Mk 시리즈 전차들이 참호에 포신이 걸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포신을 줄인 이후 전세계의 전차 개발자들은 전차포가 전차의 궤도와 차체 밖으로 튀어나와서는 안 된다는 고정관념에 갇혀 있었다. 탱켓들 중에서 대전차포나 대전차 소총, 중기관총을 달면서 포신이 튀어나온 전차들은 있었지만, 전차가 너무 작아서 그런 것이였으며, 3호 전차도 히틀러의 명령을 어기면서까지 장포신 50mm 전차포를 달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소련은 1940~1년에 제대로된 전차인 T-50 경전차와 T-34 중형전차에 차체를 살짝 넘는 주포를 장착하면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기 시작하였고, T-34-57을 생산하면서 확실하게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후 독일 1941년 말기에 히틀러의 주장대로 3호 전차에 장포신 50mm 주포를 장착하기 시작하였으며, 영국은 처칠 수상의 40mm 2파운더 대전차포 우선 생산 방침에 의해 57mm 6파운더 대전차포 생산 자체가 늦춰져 독일보다 장포신 주포 장착이 늦어지게 된다.
미국의 경우는 복잡한데, 1941년 M3 리를 설계할 당시 차체를 넘어가는 대구경 장포신 75mm 주포를 장착하기로 되어있었지만, 장포신 주포(셔먼에 달린 그것)의 생산 부족으로 단포신을 생산하게되었고, 장포신에 맞춰진 수직안정기 덕분에 짧아진 주포의 끝에 무게추를 달면서 M3 리/그랜트는 차체를 넘기는 주포를 제대로 달지 못하게 된다.[49] 이후 M6 중전차에 차체를 넘기는 장포신 주포를 장착하였으나 한정적으로 양산되었고, 1942년 9월 M10 울버린 GMC를 생산하면서 또 장포신을 장착하게 되었지만 전차가 아니였다. 때문에 미국은 1944년 1월에 T23의 포탑을 장착한 M4A1(76)W 셔먼이 생산되면서야 76mm 장포신 주포 탑재 전차가 등장하게 된다.
결국 이 고정관념이 깨지면서 전차들의 대전차 능력이 상승하게되고, 본격적으로 전차 VS 전차의 구도가 성립하게 되었으며, 현대적 의미의 전차가 탄생했다. 이러한 대결의 정점이 아래의 쿠르스크 전투라고 볼 수 있는데, 1939년만 하더라도 차체를 넘어가는 장포신 주포를 가진 전차는 프로토타입과 페이퍼 플랜을 합쳐도 다섯 손가락으로 샐 수 있었지만, 쿠르스크 전투 당시에는 최신형 전차는 전부 차체를 넘어가는 장포신 주포를 가지고 있었다.
전쟁기간 중 경전차(輕전차, Light Tank), 중형전차(Medium Tank), 중전차(Heavy Tank), 보병전차(Infantry Tank), 기병전차(Cavarly Tank)/순항전차(Cruiser Tank), 돌격포(Assault Gun), 구축전차/대전차 자주포(Tank Destroyer), 다포탑 전차(Multi-Turreted Tank), 초중전차(Super Heavy Tank) 등 여러 분류의 전차 개념들이 고안되었다.
여기서 흔히 중(中)전차와 중(重)전차를 한글로 중전차로 표기해서 동음이의어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다. 원래 이런 표기는 일본에서 Medium Tank를 中戦車로, Heavy tank를 重戦車라고 번역해서 사용한 것이 한국에 도입되면서 만들어진 것인데, 동음이의어 문제가 나는 한국어와 달리, 일본어는 中(chū)과 重(jū)의 발음이 다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 현재 이에 따른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중(中)전차는 중형전차로 대체해서 구분하고 중전차는 Heavy Tank, 즉 重戦車에 대해서 설명하며 나무위키 역시 해당 표기법에 따른다.
3.6. 냉전 및 현대전[편집]
크게 보아서 경전차 및 기병 전차, 보병 전차의 기능은 일부 국가에서 사용하는 정찰 장갑차나 M3 브래들리의 기병전투차(CFV)[51] 또는 BMP-3 같은 보병전투차가 일부를 이어받았고, 대전차 미사일이 발전하면서 Tank destroyer의 역할도 일부 떠맡게 되었다.
그리고 중형전차는 MBT(주력 전차)로 진화하였고, 순항 전차 개념 역시 여기에 포괄되었다. 현대 전차들이 디젤 엔진을 사용하는 이유 하나가 긴 항속거리를 얻기 위함이다. 중(重)전차 개념은 핵 만능주의 시대에 멸종되었다가, 1970년대 말부터 엔진기술의 발전, 시가전의 본격화, 대전차무기의 발달과 함께 급격히 중장갑/증가장갑화되면서 주력 전차에서 살아났다.
이렇듯 2차 대전 이후 냉전시기가 되면 과거에 존재하던 수많은 전차들이 다양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주력 전차(Main Battle Tank)로 모두 통합됐다. 냉전 이후 전차라고 하면 곧 주력전차(MBT)를 가리키는 것이다.
현재 MBT는 1950년대에 등장한 1세대를 시작으로, 2세대를 거쳐서 3세대에 도달하였다. 특히 90년대 후반 이후로 새로운 개념과 기술 아래에 개발된 AMX-56 르클레르, K-2 흑표, 10식 전차 등은 3.5세대 전차로 따로 구분하기도 한다. 4세대에 해당하는 전차 개념이 아직 정립되지는 않았지만, 3.5세대 기능+전열 화학포+새로운 개념의 방어체계 정도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
냉전 이후 초강대국이 된 미국을 중심으로 전차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도 제기되어 한때 스트라이커 장갑차에 활강포를 달아 신속배치여단을 만들었고 캐나다도 전차도입을 하지않고 스트라이커가 전차역할을 대신하는 것으로 만드려고 했었다. 전쟁양상이 전면전에서 시가전, 저강도분쟁으로 바뀐 것도 전차에게는 달갑지 않은 환경. 미국의 경우에는 아예 무인공격기가 전차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을 정도이다. ##
그러나 전차는 무인 공격기와는 여러 가지 차별화가 가능한 장점들이 매우 많으며, 일단 적의 화력을 정면으로 어느 정도 버텨낼 수 있다는 몸빵 자체는 어디 가지 않는다. 영화나 게임, 만화와 달리 전차는 보병이 로켓포 한방 갈겼다고 무조건 터지는 깡통이 아니다. 군대란 집단은 다른 건 몰라도 전투에 있어서는 세상에서 가장 머리를 잘 굴린다. 전차가 정말 그런 쓸모없는 병기였다면 진작 도태되었을 것이다. 대전차병기와 전차 방어체계의 치열한 경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며, 주력 전차들은 자탄방어(자신의 주포를 방어)가 기본 설계이기 때문에 서로 주포를 주고 받아도 1~2방에 격파되지 않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대전차병기와 전차 간에 성능 차이가 난다면 이러한 점은 더욱 두드러지는데, 걸프 전쟁에서 활약했던 M1 에이브람스 전차의 경우 T-72가 가진 125mm 주포로는 좀처럼 파괴되지 않아 적에게 엄청난 압박을 주었다. 전쟁기간 동안 수없이 명중탄을 맞았지만 전차전에서는 단 1대도 파괴되지 않았다고 한다. 극단적인 사례이긴 하지만 챌린저 2 전차는 대전차로켓 14발에 미사일 1발까지 두드려 맞고도 살아남은 사례도 있다. 반면 장갑차나 자주포 등 전차가 아닌 병기에는 일부 중장갑차를 제외하면 아무리 장갑을 둘러봐야 지금은 쓰지도 않는 2차 세계대전 시절의 구형포 한 방에도 불덩이가 된다. 즉 이러한 화력을 견뎌낼 수 있는 지상병기는 전차뿐이기 때문에 그 효용성은 간단히 무시할 수 없다. 현실적으로 대전차병기에 피격될 경우 전차가 아니라면 누구든 죽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또한 전차는 장갑에 의한 중량과 내구력 자체가 고화력 주포를 올릴 수 있는 토대가 된다. 장갑차 정도의 체급으로는 전차에 쓰이는 120mm 활강포를 그대로 올릴 경우 반동을 못 받아내서 문제가 생긴다. 사격 자체는 가능해도 차체가 크게 흔들리거나 아예 전복되어 명중률 확보가 안 된다. 장갑이 얇기 때문에 반동을 계속 받으면 차체에 균열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대구경 주포를 가진 장갑차들이 위력을 낮춘 저압포를 쓰는 이유가 이것이다. 따라서 전차포를 원래 화력 그대로 장갑차나 경전차에 올리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
실제로 이라크 전쟁을 통해 전차의 장점이 상당수 재입증되었다. 미군도 경장갑화된 공수전차 같은 과거 사례는 물론이고 최근에도 M8 뷰포드나 M1128 MGS처럼 기동성이 매우 우수한 차체에 대형 저반동 주포를 단 차량들을 만들었으나, 다 취소하거나 퇴역시키고 기존의 전차에 주력하고 있다. 오직 전차만이 가질 수 있는, 고화력 주포와 중장갑의 방어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체감했기 때문이다. 이렇기 때문에 현대전에 전차가 없어도 된다는 것은 잘못된 시선이다.
3.6.1. 6.25 전쟁[편집]
2차대전 후 5년 만에 일어난 전쟁이기에, 아직 대전 당시의 장비들과 교리의 흔적이 남아있는 전쟁이다.
북한군이 사용한 T-34는 경사장갑 때문에 전쟁 초반에 대한민국 국군은 물론이고 미군 또한 버거워한 상대였지만, UN군의 증원이 이루어짐에 따라 초반에는 M4 셔먼, 중반 이후부터는 아래와 같은 최신예 전차들이 투입되며 상황이 역전됐다.
이 당시 대한민국 국군이 겪은 T-34 쇼크의 트라우마는 참으로 커서, 지금의 대한민국 국군에까지 그 영향이 이어졌고 최신형 고성능의 전차를 무려 2000대가 넘게 보유하고 있다. 1950년대 당시 6.25 전쟁의 개전 초기에 대한민국 국군은 장갑차만 극소수 보유하였을 뿐이었고, 전차는 단 1대도 없었다. 전차가 1대도 없다는 현실은 두고두고 천추의 한이 되었고 "우리 국군에 탱크만 있었다면, 인민군이 쳐들어왔어도 이렇게 3일이라는 빠른 시간에 서울까지 금방 밀리지 않았을텐데..." 같은 증언이 당시 참전용사들의 수기에서 많이 언급된다.
실제로 현대 대한민국 육군은 웬만한 국가의 따귀를 두세 번 후려칠 정도로 많고 엄청나게 강력한 전차 전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대전차 전력도 상당하다. 얼마나 많이 보유하고 있냐면 대한민국 국군은 미국과 러시아에 이어서 3세대 전차를 3번째로 많이 보유하고 있는 군대다. 육군력/전차 문서 참조. 반대로 미 공군의 폭격에 국토가 아주 절단나다시피 한 북한에서는 엄청난 방공망을 구축해 놓았다.
3.6.2. 베트남 전쟁[편집]
게릴라전 위주였고, 밀림에서 치고 받던데다 정작 가장 강력한 전차전력을 끌어 쓸 수 있는 미군이 소련의 견제로 인해 북진하지 못했던 베트남 전쟁 특성상 제2차 세계 대전이나 6.25 전쟁과 같은 대규모 전차전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이 당시 전차들은 보병을 엄호하는 용도로 주로 사용되었다.
또한 6.25 전쟁 당시의 대한민국보다 더욱 전차를 사용하기 힘든 지형이였기 때문에 경전차가 큰 활약을 한 전쟁이였다.
3.6.3. 제4차 중동전쟁[편집]
6.25 전쟁 이후에 대규모 전차전이 벌어진 전쟁이다. 비교적 대등한 전력에서 벌어진 사실상 마지막 제대로된 전차전이며 실제로 여기서 벌어지는 상황(산악지형이 많다던가 대전차 지대 봉착 등)이 한반도에서 벌어질 상황과 상당히 흡사한 면이 있기 때문에 대한민국 육군에서 이스라엘군 제77전차대대장 카할라니의 수기 《골란고원의 영웅들》을 대대적으로 인용하는 등 이 전쟁에서 얻을 수 있는 전훈들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고 있으며 이를 이용한 전술 및 교리 등을 채용하고 있다(보전합동 강조 및 전차부대에 박격포 배속 등).
3.6.4. 걸프 전쟁[편집]
3세대 전차+2세대 전차의 일부[53] 가 벌인 최초의 전차전. 그러나 다운그레이드 수출형인 깡통 소련 전차 + 미숙련 승무원 덕에 미국과 다국적군의 일방적인 학살극이 되어버린 아이러니한 전쟁이었다.
3.6.5.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편집]
걸프전 이후 일어난 첫 국가 정규군간 전쟁인데, 전차전 쪽을 보면 러시아군의 미흡하거나 무리한 전차 운용과 서방의 대전차 무기 지원이 합쳐지는 바람에 대전차무기 전력의 위력과 중요성을 제대로 목도할 수 있으며 일각에서는 전차 무용론도 다시 나오고 있다.[57] 덤으로 일각에서는 러시아 전차들의 성능이 미흡한 편이라 러시아군이 전차전에서 밀린다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장기전으로 넘어간 우크라이나 침공은 우크라-러 양측은 물론 전세계에게 전장에서의 전차의 중요성이자 공세용 병기로서의 주축이라는 큰 의미만 재확인한 결과를 가지게 되었다. 우크라이나가 영토를 성공적으로 방어했고 역공세로 이지움 탈환과 헤르손 주도 탈환에 성공했으나 바하무트 공방전때는 전차 부품의 부족으로 가동률이 떨어지면서 반격 작전을 펼칠 수가 없어 공격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우크라이나는 서방의 기갑전력 지원이 올때까지 중요한 지정학 위치로 격상한 바흐무트에서 묶는다는 것이 최선의 수단이 되어 진흙탕이 되었다. 그렇게 다시 모은 기갑전력으로 역공세를 진행했으나 단단한 방어선에 고전을 겪고 있다.
러시아군 주력 전차인 T-72B3가 동급 서방 전차에 비해 장갑과 화력, 사격 통제 장치 등의 소프트 스펙이 실제로 미흡하기 때문에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우크라이나 전차는 T-72B3와 성능이 열세인 T-64 같은 것들이 대부분인데 상대적으로 선전하고 있는 면에서 어폐가 있다.
4. 전차 승무원[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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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5. 역할[편집]
전차는 조롱의 대상에서 중요한 무기로 바뀌었다. 철판으로 몸을 두르고 기다란 열을 지어 굴러오는 이들의 모습은 다른 어느 것보다 전쟁의 모습을 구체화해준다.
우리에게 집중포화를 퍼붓는 대포의 모습이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는다. 공격하는 적의 제1선은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 전차들은 기계들이다. 전차의 쇠사슬을 두른 벨트들이 전쟁처럼 끝없이 굴러온다. 아무런 감정도 없이 포탄 구덩이 속으로 들어갔다가 멈추지 않고 다시 기어 올라오는 모습은 가차없는 파괴 그 자체이다. 이는 으르렁거리며 포연을 뿜어대는 장갑차들의 함대이며, 포격에도 끄떡없이 사상자들을 무자비하게 으깨 버리는 강철로 된 짐승들이다, 얇은 피부를 가진 우리들은 이들 앞에서 잔뜩 움츠러든다. 이들의 육중한 무게 앞에서 우리의 팔은 지푸라기가 되고, 우리의 수류탄은 성냥개비가 된다.
포탄, 독가스 연기, 전차의 소함대가 짓밟고 갉아먹으며 목숨을 앗아간다.
-《서부 전선 이상 없다》에서의 전차 묘사
5.1. 육군 화력의 주축[편집]
지상전의 왕자라는 별명처럼 전차는 현대 육군의 핵심 전력이다. 전차로 증강된 전투력을 보유한 부대의 충격력은 매우 위협적이며 특히 공격작전에서 위력적인 전술을 펼칠 수 있다.
공격 헬리콥터, 대전차화기, 포병, 공군은 순간적인 화력투사 면에서는 유리할지 몰라도, 전선 유지 능력은 크게 떨어진다. 전투기나 헬리콥터는 전장환경의 기상에 제한을 많이 받으며, 무장 탑재량과 연료량의 제한 등 항공기 자체의 한계와 비싼 가격과 유지비, 승무원 양성의 어려움 등으로 보유량을 빠르게 늘리기 어려워상시적인 전투력 제공이 어렵다. 미리 주변 상공에서 대기하고 있던 항공기가 아니라면 즉각적인 중심전투에 대응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단점을 상쇄하기 위해서는 전투기를 교대로 투입하는 등의 전략을 사용해야 하는데, 그 정도 제공권 장악 능력을 갖춘 국가는 미국밖에 없다.
반면에 전차 부대는 아군 보병과 함께 움직인다는 것 자체로 큰 전력이 되며,[58] 전차 부대가 충격력을 이용해 전선을 뚫고 들어올 때 방어군에게 전차를 저지할만한 수단이 없다면 전차 부대는 그 특유의 뛰어난 기동성과 방어력, 공격력을 이용해 방어군을 말 그대로 짓밟고 지나가며 전선에 커다란 구멍을 내버릴 수 있다. 1943년부터 1960년대 말까지 소련의 전투 교리에서 방어선 돌파를 위한 IS계열 중전차 사단이 존재했었고 지금도 비슷한 역할의 전술이 존재하는 이유다. 물론 이런 전차의 급속침투를 저지하기 위해서 방어측은 CAS를 포함해 다양한 대기갑 수단을 연구하고 배치하지만 공방 싸움에서 주도권은 항상 공격자에게 있다. 수시간 내에 결착을 내기위해 싸움을 걸어오는 첨입전술에 대응하기에는 반응성이 느릴 수 있고, 이런 전차의 충격전술을 저지하는 것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다. 때문에 적 전차의 충격력을 받아내려면 방어측도 단순 화력수단 뿐만 아니라 마찬가지로 방어전차를 활용하여 최대한 적의 공세를 늦출 필요가 있어지는 것.
현대 육군에게 전차가 없다면 제1차 세계 대전의 참호전처럼 참호를 파고 숨어있는 적 방어거점의 보병들을 돌파해내는 것이 훨씬 어려워진다. 정밀해진 아군 포병과 항공 전력의 화력지원은 매우 도움이 되겠지만 결국 거점에 진입해서 피할 수 없는 직접전투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전차 없이 보병만으로는 피해가 매우 커질 것[59] 이 자명하기 때문. 결국 결정적인 공격작전에 있어서 전차는 필수불가결한 존재로 자리잡는다.
보병이 휴대가 가능한 대전차 로켓은 그나마 대전차 수단들 중에서는 가장 저렴하기도 하고, 1~2인 정도의 소수의 보병이 운용할 수 있고, 전차의 약점을 노려서 기습적으로 공격할수 있다는 특성상 전차를 상당히 골치썩게 하는 무기지만, 발사하기 위해서 보병이 접근해야하는 짧은 사거리, 명중률이 전차포에 비하면 너무 열등하다. 물론 재블린처럼 사거리 2,500m가 넘게 나오는 유도식 대전차미사일이면 모르지만 저런 미사일은 비싸서 다수를 운용하기 어렵고, 로켓은 300m면 긴 편이고, 전술차량이나 장갑차에 얹히는 TOW 등의 유도 미사일은 사정거리는 꽤 길지만 그만큼 도달 시간이 길어 유도 도중에 미사일 팀이 처치되기 십상이다.
게다가 최근에 나온 전차는 반응장갑이 달려나오거나, 능동 방호 체계를 갖춰서 미사일을 요격해버릴 수도 있다. 이런 판이니, 쏘고 나서 전차를 하나 터트렸어도, 사격한 보병의 위치가 바로 드러나 적 후속 전차에게 전차의 동축기관총에 제압당하거나, 대공기관총에 찢기거나, 포탄을 얻어맞아 다져진 고기가 되거나 다른 전차와 함께 이동하는 보병에게 반격당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에 대응하는 대전차 미사일의 발전 방향이 발사 후 망각이 가능하게 해 발사 후 바로 이탈하게 하는 것이기는 하다. 문제는 그런 미사일은 매우 비싸며, 그런 미사일을 써도 그나마 맞은 전차가 터지지도 않고 반격한다면 곧바로 퇴각해야 한다. 보병 전투차도 대전차 미사일 정도는 가지고 있는 경우가 대다수지만, 몇 발 없는 데다 요즘 전차는 유도탄 요격 능력도 있고, 기습할때나 쓸모가 있지 설령 전차와 정면승부라도 하면 근본적인 화력과 방어력의 차이로 인해 오래 버티지 못한다. 어디까지나 자위 용도이다.
또한 전차의 강력한 기동성은 전열 후방에 위치한 화력지원 부대에게 엄청난 위협이 된다. 포병은 전통적으로 높은 기동력과 돌파력을 갖춘 부대에게 취약했는데, 과거의 포병이 기병대의 급습에 쉽사리 박살났듯이 현대의 포병은 짧은 시간에 전선을 비집고 들어오는 전차부대와 헬기부대에 무력하다.
5.2. 대전차전[편집]
전차를 제압하는 다양한 무기와 전술이 지금까지도 발전하고 있다는 점은 그만큼 전차가 상대하기 굉장히 까다로운 위협적인 존재라는 것을 방증하는 증거이기도 하다. 전차 또한 생존성을 보장받기 위해 다양한 전술을 활용해야 하며, 그렇지 않은 전차는 현대 전장에서 쉽게 무력화될 수도 있다. 아래와 같은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도록 전략을 짜는 것이 전차부대 사령관의 주 과제다.
보병은 전차의 시야를 제한하는 엄폐물들과 전차의 뚜껑을 날릴 수 있는 대전차미사일/대전차 로켓/무반동총이 갖추어질 경우 사신으로 돌변한다. 대전차 미사일이나 로켓포들은 엄폐물만 충분하다면 보병들에게 잔뜩 들려서 사방에 배치할 수 있다. 거기다 FGM-148 재블린같이, 취약한 상부를 골라서 때릴 수 있는 전차 운용병 입장에서는 빌어먹기 그지없는 무기도 나와서, 재수 없으면 강한 장갑판을 별로 활용하지도 못하고 불덩이 신세가 될 수도 있다. 요즘 전자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해서 보병용 대전차미사일도 간단하게라도 조준 혹은 유도장치를 갖추고 있어 명중율이 높고, 상당수 미사일이 전차가 취약한 상부를 때리는 기능을 갖추고 있다. 제일 비싼 축에 속하는 재블린미사일이 한발에 17만 달러로 약 2억원 정도 되는데 보통 전차는 이보다 2~3배 가격은 충분히 넘어간다. 전차 폭발하면 양성도 까다로운 승무원 3명이 한꺼번에 죽는건 덤.
공격 헬리콥터 역시 시야나 기상 환경, 연료 보급망만 갖추어진다면 헬기 한두 대로 전차부대를 고립시킬 수 있다. 공격 헬리콥터의 주 기동 방식은 언덕 등의 뒤에서 꼭대기의 레이더만 내밀고 있다가, 전차가 감지되면 갑자기 날아와서 허약한 상부 장갑에 기관포나 로켓 세례를 날리거나, 그냥 그 자리에서 유도탄 조준을 해버리는 식이다. 공격헬기를 견제하지 않으면 아파치급 중(重)공격헬기 1대에 전차 2개 소대나 지상군 1개 중대가 날아가는 건 이론 상에서만 가능한 게 아니다. 다만 지상군도 이런 위협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기에, 기갑TF에는 방공이 함께 움직인다. 그리고 전차도 포탑에 거치된 중기관총으로 대공 감시/사격을 실시하며, 주포로 HEAT-MP-T탄을 이용한 직접적인 대공 타격 등 대책을 강구하며 공격헬기가 올 만한 곳을 감시한다. 공격헬기는 여러가지 이유로 다닐 수 있는 항로가 제한되기 때문이다.
백날 만나서 서로 터트리고 터지는게 일인 적 기갑이나 항공 전력에 비하면 다소 보기 드문 일이긴 하지만, 군함을 위시한 해군 전력이 연안에서 육지의 전차 부대와 근거리 교전을 벌이는 경우엔 백이면 백 군함 쪽이 이겼다고 한다. 이 사례 중 나름 알려진 쪽으로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이탈리아 전선에서 M3 37mm 대전차포밖에 없었던 미군이, 반격해오는 독일 전차부대(헤르만 괴링 사단)를 막기 위해 해군에 함포 사격 지원을 요청해서 일방적으로 제압한 적이 있다. 연합군의 주력으로 쓰이던 전차들보다 더 강력한 방어력으로 유명했던 티거 같은 중전차들이 마치 성냥갑마냥 찢어지고 뒤집혀 버렸다.
지상전의 왕자란 수식어가 무색해지는 감이 있지만, 애초에 함선은 중력의 영향을 덜 받는 물 위에서 행동하기 때문에 전차보다 훨씬 크고[60] , 소형 군함인 고속정이나 초계함급 중에서도 전차포가 안 박히는 것도 있는 실정이라 놀라울 건 없다. 주포의 사거리도, 전차포의 유효사거리는 보통 약 2km 선이며 그 이상을 넘어가면 명중률이 떨어지거나 포탄의 위력이 격감해서 유효한 타격을 줄 수 없지만, 함선은 유효 사거리만 따져도 수십km 이상이다. 100여년 전의 1차대전 시기 전함마저도 현대 MBT 수십 대를 상대로 압도할 수 있는 수준.[61] 물론 현대 해군은 거함거포주의를 표방하지 않으므로 전차포 이상의 화력을 지닌 화포를 쓰는 일은 잘 없다.[62] 영화 패튼 대전차군단에서도 비슷한 구도의 장면이 나온다.
5.2.1. 상대 전차의 격파[편집]
아무리 전차를 잡을 방법이 많아졌다고는 하지만, 상대방 전차 부대가 아군을 향해서 우르르 몰려올 때 적의 전차 부대를 저지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효율적인 방법은 같은 전차다. 물론 공군이 전차의 천적인 것은 맞다. 실제로 A-10은 탱크 디스트로이어라고도 불리고, 전투기들의 바밍 런[63] 이나 폭격기들의 폭격도 전차 부대를 상대로 좋은 성과를 거둔다. 하지만 이렇게 공군만으로도 전차 부대를 완파할 수 있는 군대는 없다. 덧붙여 그 미군도 러시아군처럼 공군력이나 방공전력이 만만치않은 상대로는 냉전 이후 보여줬던 일방적인 유린은 불가능하다. 더군다나 공격을 개시하지 않고 은엄폐하여 전투력 보존에 집중하는 전차 부대를 항공 전력으로 격멸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리고 공군은 전차를 때려잡는것 말고도 더 중요한 일들이 많다.
골란고원의 영웅들에 수록된 생포된 이라크 공화국 수비대 전차대대장의 회고를 살펴보면, '39일간의 연합군의 공중/정밀 폭격에도 대대의 39대의 전차들 중 32대가 살아남을 수 있었으나, 전차전이 시작된 지 20분 만에 대대의 모든 전차가 연합군 전차에 의해 파괴되었고, 나에게는 단 한 대의 전차도 남아있지 않았다'라는 대목에서 보듯, 항공 전력만으로 숨어있는 전차를 격멸하거나 발을 묶는데는 한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통상 항공폭탄 대신 핵무기를 사용해도, 폭심지와 가까이 있지 않은 이상 전차에 유의한 타격을 주기는 힘들다. 열은 전자기파 형태라 아예 화구의 범위 내에 있지 않은 이상 표면만 좀 그슬리는 정도고, 충격파도 조금 가까운 거리여도 버틴다. 방사능 낙진은 배기가 잘 되고 안의 인원들이 밖에 나오지만 않는다면 피해를 주지 않는다. 그리고 신형 전차들은 웬만한 방사선과 EMP로는 큰 피해를 입지 않는다. 구형 전차인 T-55를 필두로 한 동구권 전차들도 본격적인 NBC 방호 장비를 갖춰서 무리 없이 방사능 오염 지대 돌파가 가능했으며, 소련에서는 설계안이긴 했지만 본격적인 핵전쟁 전용 전차도 등장했다. 서구권에선 만약 미국-소련 핵전쟁이 벌어진다면 먼저 얻어맞을 독일과 프랑스에서 레오파르트 1과 AMX-30을 개발했는데, 이들은 방사능 대비 장치는 열악했지만 대신 엄청난 기동성으로 방사능 오염지역을 돌파하여 승무원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이렇듯 과거에도 대비책이 있었고, 현용 전차들의 방사능 대비책은 더 잘되어 있다.
5.3. 보병 지원[편집]
기갑부대는 기계화보병과 같이 편성되는 것이 원칙이며, 장갑차가 부족하더라도 최소한 차량을 타고 운송되는 차량화보병와 함께한다. 순수하게 전차만으로 편성된 여단급 이상의 대규모 부대는, 러시아의 종심 전투 교리에서 방어선 돌파를 위한 전차사단밖에 없다. 그 외에는 비율의 차이는 있어도, 전차의 기동에 따라갈 수 있는 기계화보병과 혼성 편제가 보통이다.
T-34가 우리 참호 앞으로 다가왔다. 참호에는 수십 명의 전우가 있었으나 저 괴물들을 쫓아 버릴 방법이 없었다. 모두들 이제 죽었다는 절망감에 빠졌다. 혹시라도 전차의 좁은 총안구 속으로 총알이 들어가기를 바라는 헛된 기대 속에 총을 쏘기도 했다...(후략)
- 레옹 드그렐
기갑부대는 이들 보병들이 전선을 형성하도록 지원해주는 엄폐물, 게임으로 치면 탱커의 역할을 담당한다. 조금만 생각해봐도 전차는 수십 톤짜리 움직이는 쇳덩이이다. 위의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영화 퓨리에서 꽤나 2차대전 당시를 잘 살려서 이런 모습이 등장하며, 퓨리에서는 뻥 뚫린 개활지 너머 적군이 있고 이 개활지를 전진하기 위해 퓨리를 비롯한 M4 셔먼 소대가 꽁무니에 보병부대를 데리고 날아오는 총탄과 포탄을 막으며 전진한다.[64] 영화에서 묘사하듯이 이렇게 기갑부대가 어그로를 끄는 사이에 기계화보병들이 산개해서 전선을 형성하는 식의 싸움이 기본이다. 설령 파괴되더라도 보병의 엄폐물 역할을 해줄 수도 있으며, 육군의 다른 병기들보다 내구성이 당연히 더 좋고, 전차에게 필요한 연료와 적절한 지원을 해줄 공병의 지원과 장비만 있다면 계속 보병과 함께 머무를 수 있다. 모가디슈 전투에서도 고립된 미군 병력을 구출하는 데 가장 큰 활약을 한 것 중 하나가 파키스탄군의 전차였다.
전투 상황이 아닐 때에는 행군하는 보병 부대 옆에서 같이 따라다니면서 중화기처럼 무거운 물건을 나르거나, 아예 보병들을 얹고 다니기도 했다. 이러면 전차 입장에서는 보병들이 수색이나 자잘한 공격을 맡아주고, 전차가 퍼졌을 땐 수리를 도와 줄 일손이 느는 셈이며, 보병 입장에선 행군할 체력을 아낄 수 있어 이렇게 해주는 것이 큰 이득이었다. 물론 안전벨트는커녕 제대로 된 좌석도 없는 전차에 대충 올라타는 건 자칫 굴러떨어져 낙사하거나 후속 전차에 깔려 죽을 위험이 몹시 크고, 주력 전차의 시대가 열리면서 전차의 속도 자체도 빨라져 전차의 외장에 걸터앉아 안전하게 탑승하는 것은 불가능해졌으며, 그렇다고 보병 몇 명 편하게 태워 가자고 저속 주행하는 것은 현대 기동전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기에 이런 풍경은 냉전기 이후로 거의 사라졌다. 이제는 기계화보병 개념의 확립으로 인해 보병들이 전차 상부가 아니라 제대로 된 병력수송장갑차나 보병전투차에 타고 다니게 되어서,[65] 굳이 전차에 위험하게 보병들을 얹고 다닐 이유가 없어진 이유도 있다.
5.4. 육군력의 상징[편집]
전차는 단순히 하나의 무기를 넘어 해당 국가의 육군력을 상징하기도 한다. 현대 육상 병기 중 가장 대표적인 무기이기도 하고 중공업, 국방과학기술의 집약체라 해당 국가의 육군력, 중공업 능력을 판단하는데 좋은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아준 전차나 선군호 및 폭풍호는 밀리터리 매니아들 사이에서 인도 육군력[66] 이나 북한 육군력을 비하할 때 흔히 거론된다. 반대로 M1 에이브람스나 K-2 흑표 전차는 미 육군과 대한민국 육군의 강력함을 말할 때 흔히 제시된다.
또한 전차를 공격하는 것은 소속 국가의 군대와 군인에 대한 공격이 되어 선전포고 및 정부 입장에서의 내란 행위의 의미를 가진다. 따라서 일어나고 있는 갈등 상황에 특정 국가가 수틀리면 무력으로 개입하겠다는 강력한 의사 표명을 흔히 전차 몇 대로 하기도 한다.
2006년에는 헤즈볼라의 공격으로 무기고가 파괴된 이스라엘군이 보복작전으로 레바논 국경마을을 공격하려 했으나 프랑스가 UNIFIL 소속 르클레르 전차를 배치해 메르카바 전차까지 끌고온 이스라엘군을 돌려보내기도 하였다. 참고로 르클레르 너머로 보이는 차량은 센추리온 전차를 개수한 중장갑차인 나그마혼.
1961년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의 경계였던 체크포인트 찰리에서 더 이상의 움직임이 있으면 무력 개입을 하겠다는 의사로 소련의 전차 T-54A와 미국의 전차 M48 패튼이 서로 마주보며 대치하기도 했다.
6. 전차의 수송[편집]
전차 운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전차를 전선까지 수송하는 것이다. 만약 전차가 전선에 도착하기도 전에 퍼진다면 전투에 참여조차 할 수 없으며, 수송과정에서 전차에 무리가 가서 전투 도중 전차가 퍼질 수 있다. 때문에 1차 세계대전에서 전차가 등장 하자마자 전차의 수송은 최고의 중요 과제였다.
- 지상수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