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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
2.1. 10세기
2.3. 11세기
2.4. 12세기, 13세기
3.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고려-거란 관계란 고려와 거란의 관계를 말하며 요나라가 사실상 멸망한 12세기까지 관계가 있었다.


2. 역사[편집]



2.1. 10세기[편집]


고려는 915년과 918년 거란과 접촉하였고, 922년 봄, 거란에서 고려로 낙타, 말, 모직물 등 선물을 보냈다. 발해 붕괴 1년 뒤에도 고려가 거란에 사신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발해의 붕괴로 패권지향국가인 거란과 접변하게 되고, 중원으로부터 후백제에게 외교적 우위를 점하지 못한 고려는 후당으로부터 책봉을 받고, 빈번한 사행을 통해 중원 왕조들과 접촉한다.[1]

발해 멸망 이후 거란의 요동에 대한 패권 장악이 심화되자, 왕건은 937년부터 후진과의 친선을 도모하고, 후진의 연호와 책봉을 받았다. 또한 서역승 말라를 통해 발해와의 우호관계를 강조하면서 석경당에게 거란 협공을 제의했다. 942년만부교 사건은 양국의 관계가 돌아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음을 나타낸다. 왕건이 943년에 남겼다는 훈요 10조에서도 후대 왕들에게 거란을 따르지 말 것을 경고하는 뜻이 드러난다.

○ 其四曰,惟我東方,舊慕唐風,文物禮樂,悉遵其制,殊方異土,人性各異,不必苟同,契丹,是禽獸之國,風俗不同,言語亦異,衣冠制度,愼勿效焉,

▷ 4조는, 우리 동방은 옛날부터 당(唐) 나라의 풍속을 본받아 문물과 예악이 모두 그 제도를 준수하여 왔으나, 나라가 다르면 사람의 성품도 다르니 반드시 구차히 같게 하려 하지 말라. 거란(契丹)은 짐승이나 다름없는 나라이므로 풍속이 같지 않고 언어 역시 다르니 부디 의관(衣冠) 제도를 본받지 말라.

훈요10조 4번째.


정종이 광군사(光軍司)를 설치하고 30만 광군을 육성한 것도 거란의 침입을 대비한 것이다. 이후 거란이 여진을 공격하러 갈 때 빈번히 고려 국경을 넘었다. 연운 16주를 위해 북송이 거란을 공격하려 하니 985년 북송에서 고려에 참전을 제안했다. 고려는 출병을 거절했고 오히려 986년 거란과 화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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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여요전쟁[편집]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display: none; display: 문단=inline"를
의 [[여요전쟁#s-"display: inline; display: 앵커=none@"
@앵커@@앵커_1@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거란은 약 50년 전에 있었던 만부교 사건과 고려와 송나라의 관계를 빌미로 993년 고려를 치게 된다. 하지만 서희의 외교 담판으로 강동6주를 얻는다. 고려는 이후 거란의 연호를 도입해 사용했으며 원군을 보내 돕지 않은 북송과는 관계를 멀리 했다. 고려와 거란은 조공·책봉 관계를 맺었으며 거란 유학, 국가간 통혼 등으로 관계를 개선해나간다. 한편 고려에서는 여진족에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하공진을 압강도구당사로 삼아 압록강 국경의 방비 태세를 살피는 등 양국의 군사적 충돌에 대비하기도 했다.

1009년 고려에서 강조의 정변이 터져 국왕 목종이 시해되면서 고려는 거란에게 침입의 명분을 제공했다. 거란은 북송과는 전연의 맹을 맺어 평화를 유지하고 있었고 별 걱정 없이 병력을 고려에 집중했다. 거란의 2차 침입 시기에는 수도인 개경이 함락되고 왕은 나주로 피난하는 등 위태로운 상황에 처하나, 양규 등의 활약으로 거란을 격퇴한다. 고려에서는 이후 수년 거란에 사신을 보내 관계 개선에 힘썼는데, 거란에서는 강동6주의 반환 문제를 걸고 넘어진다. 거란은 고려에 사신을 보내 6주 반환을 요구하면서 국경에서 무력 충돌을 일으키고, 1015년에는 압록강을 넘어가 성을 쌓기도 했다.

거란의 3차 침입 때는 강감찬 등의 활약으로 거란을 몰아낸다. 결과적으로, 거란은 고려와의 전쟁에 있어서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인력만 손실하게 된다.


2.3. 11세기[편집]


고려는 1020년 거란에 사신을 보내 거란인 포로를 해방하면서 전처럼 번국이라 칭하며 공물을 바치겠다며 화의를 청한다. 양국은 관계를 개선했으며, 여요전쟁 전후로 북송의 연호를 쓰던 고려는 1022년 거란의 현종 책봉으로 다시 거란의 연호를 사용한다. 이 시기 고려에서 거란에 가는 사절은 '안부를 묻는 사신이 봄과 여름에 한 차례씩 천령절(千齡節)과 신년을 하례하는 사신과 동행하며, 가을과 겨울에 안부를 묻는 사신은 모두 한 차례씩, 태후의 생일을 하례하는 사신과 동행'하니 대략 1년에만 4번에 이른다.

한편 이 시기에는 발해부흥운동의 일환으로 흥료국이 활동하기도 했다. 고려는 흥료국의 지원 요청을 거절함으로 거란과 외교적 마찰을 일으키지 않으려고 했다. 거란에서는 1030년 요동을 막은 흥료국을 진압해 다시 양국간 사신과 물자가 원활하게 오고갈 수 있도록 한다. 고려에서는 요 성종의 장례에 참석할 겸 새로 즉위한 황제 흥종을 축하할 겸 해서 1032년 사신을 보낸다. 그런데 이후 더는 사신을 보내지 않았으며, 거란에서 오는 사신도 그냥 돌려보낸다. 1035년 내원성(來遠城) 사신이 서신을 보내 입조를 독촉하니 고려는 다시 첩문을 보내 거란측의 잘못을 밝힌다.

거란에서는 일찍이 고려의 사신을 억류해 돌려보내지 않았으며, 또 거란은 압록강 너머에 다리를 짓고 성을 쌓았다. 고려는 1032년 사신을 보내면서 흥종에게 이를 알렸지만 시간이 지나도 달라지는게 없었다. 따라서 고려는 요나라의 연호는 그대로 쓰면서도 사신 파견을 중단한 것이다. 고려 덕종 이후 정종 초반까지만 해도 여요전쟁에서 공을 세운 강승영을 추봉하는 등 강경 대응을 이어간다. 이는 왕가도를 중심으로 한 대(對) 거란 강경파의 입장이었고 한편으로는 불화로 인한 전쟁을 걱정하느니 화친을 유지해야 한다는 황보유의 등 유화파도 있었다.

내원성에서 고려국왕이 조공하라는 황제의 선지를 직접 받아 서신을 보내니 고려에서는 결국 최연하 등 유화파의 의견에 따라 다시 우호관계를 맺고 사신을 보내기로 결정한다. 고려에서는 그래도 거란이 국경 문제를 해결하라는 입장이었으며, 1039년 사신을 보내 이를 물었으나 흥종은 압록강 보루 철거를 거부했다. 거란에서는 1049년에 이르러 포로가 된 고려 사신들을 돌려보낸다. 한편 흥종의 아내 인의황후가 조서를 내려 압록강 동쪽을 하사하는 식으로 양국의 국경이 확정된다. 그럼에도 국경의 침입은 계속돼 1055년 궁구와 정자의 설치, 1062년 매매원(買賣院)의 설치 등을 계속했고 고려에서는 사신을 보내 이를 철거할 것을 꾸준히 요청한다. 1075년 거란에서 사람을 보내 압록강 동쪽 경계를 조사하고 정하려 했는데 실패하고 돌아간 일도 있었다.

2.4. 12세기, 13세기[편집]


이후에도 무역이 여전히 존재했다. 그러나 여진족과의 전투에서 패배하여 점점 쇠퇴해졌고 요나라는 고려에도 사신을 보내지만 고려 역시 동북 9성 개척 및 반환 등 여진과의 분쟁을 겨우 끝낸 시점이었다보니 고려 역시 돕지 못했다. 결국 1125년 중국 북부, 내몽골 및 요동과 요서에 있었던 요나라가 망하고, 이 지역들에 있었던 요나라가 무너지기 직전에 거란족 유민의 일파가 서역, 중가리아, 몽골 서부로 가서 서요를 세우면서 여요관계는 끝이 났다. 여진에게 요나라가 망한 소식은 당시 고려 입장에서도 경악적이었으며, 긴급히 요를 멸망시킨 금나라에 대한 경계도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금나라도 1200년대 몽골에게 밀리면서 일부 거란 유민들이 요동과 요서에서 반란을 일으켜 동요를 세워서 고려와 접했다. 그러나 얼마안가 동요는 몽골에 복속하여 대신 자치권을 인정받는 걸로 만족했고, 이에 불만을 가진 일부 거란 유민들은 동요에서 독립해 후요로 분리되었으며, 몽골과 동요에게 진압되자 고려로 침략했으나 후요의 잔당들은 동진국(동하)과 여진족 호족들, 동요의 거란족들, 몽골군의 동맹으로 군사들을 모아서 잔당들을 모두 토벌하는데 성공하게 된다.


3. 관련 문서[편집]





[1] 이승한(2017), "10세기 국제정세와 고려의 외교 자세", 《한국중세사연구》 51, p.110~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