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정규
덤프버전 : (♥ 0)
분류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정치인.
현오봉과 함께 제주 최다선 국회의원이다.[2]
2. 생애[편집]
1933년, 전라남도 제주도 신좌면 함덕리(현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함덕리)에서 태어났다.
1967년 7대 총선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제주도 제주시·북제주군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1971년 8대 총선에서는 공화당 공천에서 탈락하였다.
1973년 9대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제주도 선거구에서 출마하여 민주공화당 홍병철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77년 한국권투위원회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1978년 10대 총선에서도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서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현오봉 후보와 무소속 변정일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80년 전두환 정부가 출범하자 정치규제를 당하였고, 1984년 해금되었다.
1985년 12대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제주도 선거구에서 출마하여 민정당 현경대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당선 직후 한국국민당에 입당하였다. 1987년 한국국민당을 탈당하여 민정당에 입당하였다.
1988년 13대 총선에서 민정당 후보로 제주도 북제주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이후 이기빈 당선자가 입당하면서 지구당 위원장직을 내놓아야 했다.
1992년 14대 총선에서 무소속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 민주자유당에 복당하였으며 제14대 국회 전반기 교통체신위원장에 선출되었다. 1996년 15대 총선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이회창의 오른팔이라고 불릴 정도로 이회창과 가까워졌고, 하순봉, 신경식과 더불어 이회창계에 속했다. 이후 한나라당 부총재를 지냈다.
2000년 16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낙선하였다. 그러나 새천년민주당 장정언 후보의 당선 무효로 치러진 2002년 재보궐선거에서는 당선이 되어 6선 고지에 올랐다.[3]
이후 한나라당 상임고문과 국회 헌정회 회장을 맡았고, 헌정회 회장 재직 중인 2011년 10월 12일 오전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여담으로 6선에다가 당시 헌정회 회장 임에도 불구하고 어째서인지 대한민국헌정회 누리집에 있는 회원광장 회원경조사에 그의 부고가 없다.
3. 선거 이력[편집]
4. 소속 정당[편집]
5. 둘러보기[편집]
[1] 도(道)가 아닌 도(島)로써 일제강점기 당시 제주도와 울릉도에만 적용했던 행정구역 단위의 명칭. 부, 군과 동급의 행정구역.[2] 현오봉은 유정회 입성이 한 번 있는 반면, 양정규는 지역구로만 6선 의원을 지냈다.[3] 보수정당은 2002년 재보궐 선거를 마지막으로 2023년 현재까지도 제주도에서 단 한 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하지 못하고 있다.[4] 제주시, 북제주군[5] 제주시, 북제주군, 남제주군[6] 민주공화당 홍병철 후보와 동반 당선[7] 제주시, 서귀포시, 북제주군, 남제주군[8] 민주정의당 현경대 후보와 동반 당선[9] 전임자 장정언 당선 무효[10]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과 신설 합당, 이른바 3당 합당[11] 통합민주당과 신설 합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