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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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한민국 국군에서 1978년 도입이후로 지휘, 관용, 전투용으로 사용한 군용차. 1990년대 후반에 K-131이 도입되면서 대다수의 차량이 폐차, 혹은 민간으로 반출됐으나, 대한민국 국군 내에서는 아직도 무반동총이나 TOW 미사일 거치형 차량 일부를 운용 중에 있다.
2. 제원[편집]
3. 상세[편집]
6.25 전쟁 이후 주한미군에 들여온 M151A1을 기반으로 아시아자동차가 생산한 4륜 구동 차량이다. 전체적인 외부 형태는 차고가 높고 후드가 동그란 M38A1의 사륜구동 모델과 비슷하다. 차량의 모티브가 모티브라 '지프차'로 불린다. 엔진 자체는 평범한 직렬 4기통 OHV 엔진으로 K-131에 비해 출력이나 연비는 낮지만, 토크를 중시하는 화물차나 버스 용도로 설계된 엔진이고 OHC 엔진에 비해 저회전 토크가 좋은 OHV 엔진의 특성과 가벼운 중량이 맞물려 험지 돌파력은 K-131보다 더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시동에 열쇠가 필요한 K-131과는 달리 K-111은 시동 손잡이를 돌려서 거는 방식이므로 열쇠가 따로 필요하지 않다. 하지만 차량이 운행을 나가야 할 때 급작스러운 방전이 우려되어 열쇠를 사용하도록 시동 장치를 개조한 부대도 있다. 연식이 너무 오래된 차량이라 고장이 너무 잦아서 운전병들이 꺼리는 대상 1호. 오래된 차량이라 현재 운전병의 체격에 잘 맞지 않아 주로 키가 작거나 마른 운전병이 담당한다. 운행 중 문을 제거하기 때문에 코너길에서 잘못하면 차에서 떨어질 수 있다.[3] 비닐을 덮은 차라도 국도로 들어가서 70~80km/h로 주행하면 차량이 심하게 떨리고 바람이 들어온다.
ECU 같은 전자 부품이 전혀 없어 잔고장은 적지만 오래된 연식이 문제를 일으킨다. 모 부대는 잦은 고장을 호소하며 정비대를 졸라 정비창에서 폐차에 달린 엔진을 종합정비창에 보내 소모품을 교환하고 엔진블럭과 헤드를 새로 도색한 후 박스에 포장하여 보급된 엔진을 받았다.[4] 하지만 엔진을 교체한 K-111은 2주가 지나자 다시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화가 난 수송관이 차량을 완전히 분해하는 식으로 조사한 후 내린 결론은 연료탱크 내부에 녹이 슬어 연료필터와 연료라인을 막아서 발생한 시동 불량이다. 1개월을 기다려 신품 연료탱크와 연료라인을 새로 보급받아 교체하자 다음에는 디퍼런셜 기어가 문제를 일으키고 라디에이터가 터지는 문제가 일어났다고 한다.
이렇게라도 고칠 수 있는 것은 매우 드문 사례이고 장비도 못 구해서 방치되는 차량들이 더 많기 때문에 군수사 내 폐차장에 가서 동류전환을 할 수 있는 부품을 구해서 사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브레이크 부품은 재생이 불가능해서 브레이크 부품에 문제가 생기면 운행이 아예 불가능하다. 상급 부대에서 검열을 실시하는 날은 K-111의 존재를 들켜 질책을 받지 않기 위해 목적지 없는 운행을 내보내서 검열을 피하는 수송관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K-111을 운용하는 부대에게는 피하고 싶은 고물이나 106mm 무반동총이나 TOW의 운용에는 최적화된 차량이고 예산 문제도 있어서 별 수 없이 운용하는 중이다.
해마다 40조 이상의 국방 예산이 책정되는 한국에서 K-111같은 고물을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운용하는 상황이 다소 황당하지만 군대에는 고물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고 신차를 출고하기 위해서 기존 차량들을 운용하기 위해 만든 교육체계, 정비공장, 부품창고 등 지원체계를 변경하는 데 드는 예산이 많기 때문에 계속 운용한다. 군용차 사업은 조가 넘어가는 예산을 요구하는 사업이라 국방부는 물론 국회에 진입하기도 어렵다. 기아에서 후속 모델로 K-131을 출시하고, K-131의 후속으로 K-151을 출시한 후 제법 시간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K-111을 버리지 못하고 운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예산을 비롯한 여러 사정을 감안해도 작전에 투입된 K-111이 고장나면 운용하는 무기도 제대로 쓰지 못하게 되는 치명타를 입기 때문에 K-111에 대한 해결책이 필요하다.
1981년 이란-이라크 전쟁이 발발하자 이란에서 대규모로 수입해가기도 하였다. 전쟁 막바지인 1988년까지 아시아자동차(주)에서 이란에 수출한 물량이 무려 14,000여대 가량이다.
아시아 록스타는 K-111을 기초로 만들어진 모델이다. 내외부에 플라스틱 부품이 들어가고 앞으로 접을 수 있던 전면 유리창이 고정되었다.[5] 또한 휠과 타이어가 일반 SUV용 초광폭으로, 엔진이 봉고에 들어가는 마그마 디젤로 변경되어 기어비가 달라진 것 외에는 다른 부분이 없다. 원본인 K-111도 극소수에 불과하지만 민간에 팔려 번호판을 장착한 차량이 존재한다. 심지어는 이런 차량 중 일부가 일본으로 넘어가 거기서 중고차로 팔린 사례도 있다.# 이렇게 민간에 팔린 K-111은 군이 사용하던 차량이 아닌 전투경찰에 보급된 차량이 치장물자로 보관되어 있다가 민간에 팔린 차량이고,[6] 군에서 사용한 K-111의 경우 민간에 팔지 않고 곧바로 폐차한다. 거제도 포로수용소 시설이나 안보공원에는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전시되었다. 특히 거제 포로수용소에 전시된 K-111은 관람객들이 앉을 수 있도록 오픈탑으로 전시되었다.
1992년경 대한민국 최초의 자율주행자동차가 되기도 했던 모델이다. 당시 고려대학교 산업공학과 한민홍 교수가 제작하였으며. 카메라를 장착하여 도로상황을 실시간 감시하고 이를 통해 핸들과 쓰로틀을 조절하는 방식으로, 당시 벤츠에서까지 와서 견학하였지만 정부의 관심 부재로 프로젝트가 더 나아가지 못하고 중단되었다.
4. 형식[편집]
4.1. K-111[편집]
기존 표준차량으로, 지휘차량이나 장교 및 부사관 이동 차량으로 사용되었다.
5. 파생형[편집]
5.1. 대한민국[편집]
5.1.1. 비무장 파생형[편집]
5.1.1.1. K-112[편집]
TOW 대전차미사일의 탄약을 운반하는 사양으로, 하단의 K-113의 탄약을 보충해주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5.1.1.2. K-115[편집]
K-111을 베이스로 하여 개조한 구급차이다.
5.1.1.3. K-117[편집]
K-111을 베이스로 하여 서치라이트를 장착한 탐조등차이다.
5.1.2. 장비 추가 파생형[편집]
5.1.2.1. K-113[편집]
K-111의 소프트탑을 제거하고 상부에 TOW 대전차미사일을 장착한 차량으로, K-112 사양과 함께 운용하였다.
5.1.2.2. K-116[편집]
K-111에 M40 무반동포를 장착한 대전차차량으로써, 현재까지 소수의 개체가 대한민국 해병대에서 사용되고 있다.
5.1.3. 민수용[편집]
5.1.3.1. 록스타 R1[편집]
자세한 내용은 아시아 록스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2. 이란[편집]
5.2.1. 무장 교체 파생형[편집]
5.2.1.1. KM414 (DShK)[편집]
이란-이라크 전쟁 시기 이란에서 제작된 KM414의 파생형으로, 기존의 M40 무반동포를 제거하고 그 대신 DShK 중기관총으로 무장을 교체하였다.
5.2.1.2. KM414 (Type 63)[편집]
이란에서 KM414을 개조하여 63식 다연장로켓을 장착한 파생형이다.
6. 실전[편집]
6.1. 냉전기[편집]
6.1.1. 5.18 민주화운동[편집]
5.18 민주화운동 당시 다수의 차량이 계엄군 소속으로 투입되었으며, 시민군 측에서도 사용했다.
6.1.2. 이란-이라크 전쟁[편집]
K-111의 데뷔전은 이란-이라크 전쟁이었다.
이 당시 지휘차량 및 소형 전술차량이 부족한 이란군 측에서 다수의 K-111 및 K-116을 구매하여 사용했으며, 이 중 무반동포를 얹은 K-116의 경우 재빠르게 이동하여 이라크 군의 전차를 타격하거나, 이라크군의 진지를 포격하는 등의 활약을 보였다.
6.1.3. 걸프 전쟁[편집]
걸프 전쟁 당시 이란군 대전차소대 소속으로 다수가 투입되어 순찰, 포격 등의 임무를 맡았다.
7. 사용 국가[편집]
7.1. 아시아[편집]
7.1.1. 동아시아[편집]
7.1.1.1. 대한민국[편집]
원조 사용국으로, 1975년 취역 이후 사용되어 오고 있었으나 노후화 등의 사유로 K-131로 점차 교체되어 갔으며, 현재는 K-116이나 K-112와 같은 특수목적 차량을 제외하면 대다수의 개체가 퇴역해 민간으로 불하 및 폐차처분되었다.
7.1.1.1.1. 시민군[편집]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 소속의 K-111 및 아시아자동차 공장에서 생산된 차량을 노획하는 등으로 획득하여 사용하였던 기록이 남아있다.
7.1.2. 동남아시아[편집]
7.1.2.1. 말레이시아[편집]
다수의 차량을 구매하여 19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운용하였다.
7.1.3. 서아시아[편집]
7.1.3.1. 이란[편집]
14,000량의 KM410, KM414를 구매하여 이란-이라크 전쟁 시기 사용했으며, 추가로 자체적인 개량형을 제작하기도 하였다.
7.1.4. 남아시아[편집]
7.1.4.1. 방글라데시[편집]
다수의 차량을 구매하여 현재까지 사용 중에 있다.
8. 미디어[편집]
현역으로 활동한 시기가 민주화 운동이 벌어진 시기와 맞물리기 때문에 5공 무렵이나 민주화 운동을 주제로 한 드라마나 영화에서 필수적으로 등장한다. 또한 2010년대 초반까지 시대 배경의 대한민국 국군이 등장하는 영화들에서 다른 군용차량들과 함께 종종 등장한다.
8.1. 포스터[편집]
8.1.1. 이란[편집]
8.1.1.1. 2020 국제 쿠드스의 날[편집]
이란 정부가 제작한 2020년판 국제 쿠드스의 날 포스터의 하단에 KM414가 등장한다.
8.2. 영화[편집]
8.2.1. 화려한 휴가[편집]
전반적인 포커스가 시민군을 향하기 때문에 시민군이 K-111을 노획하여 운용하는 모습이 자주 등장하며, 당연히 계엄군이 운용하는 모습도 나온다. 영화 후반에 박신애(이요원 분)를 K-111에 태우고 계엄군에 맞서 싸우자고 방송하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이는 당시 고등학교 교사인 박영순의 경험을 바탕으로 구성된 장면이다.
8.2.2. 해안선[편집]
작중 헌병대 소속으로 1량이 등장한다.
8.2.3. 1987[편집]
동아일보가 보안사 군인들에게 급습을 당하자 사장이 고문치사를 보도한 기자에게 "군바리들한테 걸리면 너 맞아죽어!" 라며 전화로 빨리 잠적하라고 주의를 주는 장면에서 공중전화에 있는 기자의 눈앞에 K-111이 지나간다. 무관하게 지나가던 차량으로 보이지만, 직후 기자는 식겁하고 도망가는 장면이 나온다.
8.2.4. 공작[편집]
주인공 박석영(황정민 분)이 정보사 부대 내에서 공작금을 전달받는 장면 중에 등장한다.
8.2.5. 쉬리[편집]
CTX를 호송하는 수도방위사령부 호송대 선두 차량으로 등장한다.
8.2.6. 괴물[편집]
한강변에서 순찰중인 국군이 등장할때 같이 나온다.
8.2.7. 용의자[편집]
CCT 교관인 민세훈 대령(박희순 분)을 대북 정보국으로 데려가기 위한 군용 차량으로 등장한다.
8.2.8. 50 킬로그램 오브 사워 체리스[편집]
2015년 개봉한 이란의 코미디 영화인 "50 킬로그램 오브 사워 체리스"에서 KM410이 개조된 형태로 등장한다.
8.2.9. 키르쿠크의 꽃[편집]
2010년작 이탈리아, 스위스, 이라크 합작 영화 "키르쿠크의 꽃"에서 시리아 국경 기지에 국경 수비대와 함께 있는 것으로 등장한다.
8.3. 만화/애니메이션[편집]
8.3.1. 구 연예인 지옥[편집]
영창에서 막 나온 최현일 병장이 타고 복귀하는 중에 등장한다.
8.4. 드라마[편집]
8.4.1. 제5공화국[편집]
군 장성이나 장교들의 이동 장면에서, 그리고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이 계엄군으로부터 노획하거나 아시아자동차공장에서 생산된 K-111 신차를 탈취하여 운용하는 장면에서 각각 등장한다.
8.4.2. 후튼 & 레이디[편집]
영국 어드벤처 드라마 TV 시리즈인 후튼 & 레이디에서 KM410이 등장한다.
9.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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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쓰다 파크웨이의 가솔린 버전[2] T-2000에 장착되었고 타이탄에도 장착된 엔진이다. 일본에서는 AEVA[1] 라는 25인승 미니버스에도 사용된 적이 있었다. 세부사항은 마쓰다 VA 엔진 참조.[3] K-111의 조상인 윌리스 MB는 잇단 사고로 미군 장성들 상당수가 죽게 만들었다. 대표적인 인물이 차량 사고로 사망한 월튼 워커.[4] 군용차의 엔진을 교체하면 곧 폐차될 차량도 무조건 수명이 1년 가량 늘어난다. 그만큼 잘 보급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엔진 교환은 항상 신중하게 한다.[5] 경첩은 그대로 있어서 접을 수 있지만 그렇게 하면 하드탑과 도어 연결부 몰딩이 복구되지 않는다.[6] 앞뒷면 범퍼에 새긴 부대 번호는 다시 색칠해 지우고 판다.[7] 2009년 12월 9일 촬영된 사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