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공고 졸업 후 1995 드래프트에서 어느 팀의 지명도 받지 못하며 선수생활 은퇴의 기로에 놓였다. 그러던 중 대우 로얄즈가 류병훈에게 연습생 제의를 했고, 류병훈은 연습생 신분으로 부산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입단할 당시 계약금 조차 받지 못한 연습생 신분이었지만, 류병훈은 쟁쟁한 선수들 틈바구니 속에서 살아남으려고 노력한 끝에 입단 첫해인 95년 2경기에 출전하며 어느 정도 인정받았다.
1996년을 앞두고 김희태 감독에서 드라고슬라브 셰쿨라라츠 감독으로 바뀌며 더 입지가 좋아졌고 프로 데뷔 첫 두 자릿수 출전을 기록했고 이후 이차만 감독 체제에서 로테이션 수비수로 활약했다.
특히 류병훈이 본격적으로 메스컴에 알려진 시기는 1997년이었다. 당시 전남 드래곤즈에 간신히 승점 1점차로 앞서있던 부산은 리그 최종전에서 천안 일화 천마를 만났다. 경기 초반부터 부산의 맹공이 시작되었지만, 천안의 수비진은 호락호락하게 골을 내주지 않았다. 그와중에 포항 vs 전남이 전반을 1-1로 마쳤다는 소식이 들려오면서, 0-0으로 전반을 끝낸 부산 벤치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후반 7분. 부산의 이름없던 선수가 영웅으로 떠올랐다. 바로 류병훈이었다. 류병훈은 김상문이 길게 올려준 볼을 정재권이 헤딩으로 떨궈주자, 전광석화 같은 오른발 슈팅으로 천안의 골 그물을 흔들었다. 이는 류병훈의 프로 데뷔골이자, 프로 유일한 득점이 됐다. 이 골을 잘 지켜낸 부산은 포항에 2:1로 승리를 거둔 전남을 승점 1점차로 따돌려 1997시즌 전관왕의 위업을 달성하였고, 결승골의 주인공 류병훈은 10월의 MVP로 뽑히며 1997년 연말을 따뜻하게 보냈다.
이후 부산에서 신윤기-장외룡-김태수-김호곤-박경훈-이안 포터필드 등 여러 감독을 경험했고 구단이 대우그룹에서 현대산업개발로 넘어가는 과정 속에서도 10년동안 팀을 지키며 프로 통산 86경기 1득점을 기록했다.
본래 류씨로 류병훈으로 검색하면 더욱 그에 대한 관련 글이 많이 나온다. 또한 풋볼 매니저 등에서도 Ryu Byung-hun으로 검색해야 그를 찾을 수 있다.
'안정환 신드롬'을 기반으로 부산 대우 로얄즈가 폭발적인 관중 동원력을 보이던 90년대 후반, 류병훈은 K리그 팬들 사이에서는 안정환보다 더 잘생긴 축구 선수로 알려질 정도로 꽃미남으로 인정 받았다. 공격에 안정환, 수비에 류병훈이 동시에 출전하는 날은 경기장이 빛난다고 농담을 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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