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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단(하스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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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제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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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드엘 5세 벤 아셀 벤 마츨리악





하스몬 왕조 3대 군주
יוֹנָתָן אַפְּפוּס | 요나단 압푸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00px-Jonathan-Maccabaeus.jpg

제호
한국어
요나단 압푸스
히브리어
יוֹנָתָן אַפְּפוּס
그리스어
Ἰωνάθαν Ἀπφοῦς
라틴어
Jonathan Apphus
존호
코헨(כֹּהֵן , 제사장)
종교
유대교
생몰 년도
미상 ~ 기원전 143년
재위 기간
기원전 160년 ~ 기원전 143년

1. 개요
2. 행적



1. 개요[편집]


하스몬 왕조 3대 군주.

2. 행적[편집]


안티오코스 4세제우스 신앙 강요에 분노하여 반란을 일으킨 마타디아의 아들이자 셀레우코스군을 상대로 숱한 승리를 거두었던 유다 마카베오의 동생으로, 형제로 엘레아자르 아바란, 시몬 타시, 요한 가디가 있었다. 형 마카베오의 여러 전투에서 상당한 공적을 세웠지만, 형이 기원전 160년 엘라사 전투에서 바키데스가 이끄는 적군에 패배하고 목숨을 잃는 걸 막지 못했다. 이후 잔여 병력을 수습하여 산악 지대로 피신한 그는 새 지도자로 세워진 뒤 형제 요한 가디를 나바테아인에게 보내 동맹을 청했지만, 나바테아 지도자 필라크는 요한을 죽였다.

얼마 후, 반란군이 요르단 강 인근 습지에 숨어있다는 걸 알게 된 바키데스의 군대가 그쪽으로 진군했다. 이때 그는 유대인들이 토요일을 안식일로 삼아 그날 종일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는 걸 이용하여 일부러 토요일에 급습했다. 유대인들은 필사적으로 싸워 1,000명의 적병을 살해했지만, 중과 부족으로 패배한 뒤 요단 강 건너편으로 헤엄쳐 탈출했다. 이후 요한을 죽인 나바테아인들을 매복 공격으로 살해하여 복수한 뒤, 다시 요르단 강 은신처로 이동했다. 한편 바키데스는 유대 전역에 요새를 건설하고 예루살렘 인근 아크라 요새를 강화했다. 이후 친 헬레니즘 성향의 알키모스를 기원전 159년에 대제사장으로 선임하고 안티오키아로 귀환했다.

기원전 157년, 요나단은 지지자들을 끌어모아 반란을 재개했다. 바키데스는 재차 원정군을 이끌고 쳐들어갔고, 요나단은 형제 시몬과 함께 바트바시(Vaithvasi)로 피신했다. 바키데스의 셀레우코스군은 도시를 포위하고 맹공을 퍼부었지만 쉽사리 함락시키지 못했다. 그러던 기원전 153년, 알렉산드로스 1세 발라스프톨레마이오스 왕조프톨레마이오스 6세, 페르가몬 왕국아탈로스 2세, 카파도키아 왕국아리아라테스 5세, 그리고 로마 공화국의 지원에 힘입어 페니키아 해안의 프톨레마이스-아케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셀레우코스 제국의 군주 데메트리오스 1세는 유대 반란보다는 알렉산드로스 1세 발라스를 토벌하는 게 우선이라고 여기고, 바키데스에게 유대 반란군과 휴전 협약을 맺고 군대를 빼라고 지시했다.

바키데스는 명령을 받들어 요나단과 휴전 협약을 맺고, 알키모스 사망 후 공석이던 대제사장에 새 인물을 앉힌 뒤 안티오키아로의 귀환길에 올랐다. 그러나 알렉산드로스 1세 발라스가 더 좋은 조언을 제시하자, 요나단은 마음을 바꿔 철수 중이던 바키데스의 군대를 유격전으로 괴롭혔다. 이리하여 바키데스가 제때에 군을 빼지 못하고 주춤하던 사이, 전세는 점점 데메트리오스 1세에게 불리하게 돌아갔다. 급기야 기원전 150년 6월, 데메트리오스 1세는 알렉산드로스 1세 발라스의 군대에 사로잡힌 뒤 처형되었다. 요나단은 알렉산드로스 1세 발라스와 프톨레마이오스 6세의 딸 클레오파트라 테아의 결혼식에 참석했고, 알렉산드로스 1세로부터 메리다크(지방 사령관) 칭호를 받았다. 그 후 셀레우코스 제국은 동방에서 치고 들어오는 미트리다테스 1세파르티아의 침략에 시달리며 유대에 별다른 관심을 가지지 못했고, 그는 이 틈을 타 입지를 굳건히 다졌다.

기원전 147년, 데메트리오스 1세의 아들 데메트리오스 2세가 알렉산드로스 1세 발라스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켰다. 그는 이때를 틈타 봉기를 재차 일으켜 아조토스 전투에서 아폴로니오스를 격파하고 아조토스, 요파 및 아스칼론 등 여러 도시를 공략했다. 기원전 145년, 데메트리오스 2세가 알렉산드로스 1세 발라스를 처단하고 세렐우코스 제국의 새 군주로 등극했다. 당시 아크레를 포위 공격하고 있던 그는 이 소식을 듣고 공격을 중단한 뒤, 데메트리오스 2세가 있는 프톨레마이스로 향했다. 데메트리오스 2세는 그에게 사마리아에 있는 세 개의 토파키아를 더 관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그 대신, 아크레의 수비대를 묵인하고 연간 300달란트를 지불하게 했다. 얼마 후 안티오키아에서 데메트리오스 2세를 적대한 시민들이 봉기를 일으켰다. 데메트리오스 2세의 구원 요청을 받은 그는 3,000명의 유대인 용병을 보내 봉기 진압에 한 몫 했다.

기원전 144년, 지난날 알렉산드로스 1세 발라스를 섬기다가 정권이 바뀐 뒤 아라비아로 도주했던 디오도토스 트리폰이 알렉산드로스 1세의 어린 아들 안티오코스 6세를 옹립하고 안티오키아로 쳐들어갔다. 메트리오스 2세는 이를 막으려 했지만, 병사들이 임금 삭감에 불만을 품고 디오도토스에 귀순하는 바람에 패배했고, 아파메아와 안티오키아의 지배권을 빼앗긴 채 셀레우키아 피에리아에 자리를 잡았다. 디오도토스는 그에게 유대인들에게 데메트리오스 2세를 물리치는데 힘을 보태준다면, 유대 왕국이 완전히 독립하도록 해주겠다고 제안했다. 요나단은 이를 받아들이고 형제 시몬 타시를 지원군으로 보냈다. 그러는 한편, 데메트리오스 2세에 대항한다는 명목으로 아스칼론, 가자 등 유대의 인근 지역들을 잇따라 공략했다. 데메트리오스 2세는 갈릴리에 군대를 파견해 응징하려 했지만, 요나단은 갈릴리의 나소르에서 이들을 격파했다.

하지만 디오도토스는 그의 세력이 갈수록 커지는 걸 경계하여 너무 커지기 전에 처단하기로 마음먹었다. 기원전 143년, 아크레를 포위 공격하고 있던 요나단은 40,000명의 병력을 이끌고 스키토폴리스로 이동한 디오도토스로부터 "프톨레마이스를 함께 공격하자. 그러면 그 도시와 주변 마을을 내주겠다."라는 전갈을 받았다. 그는 이를 받아들이고 시몬에게 유대 방위를 맡긴 뒤 1,000명의 병사를 이끌고 그에게 향했다. 그러나 도시에 입성하자마자 디오도트스의 군대에 포위되어 병사들이 몰살당했고, 그는 포로 신세로 전락했다.

디오도토스는 형을 석방해달라고 요구한 시몬에게 "100달란트와 요나단의 두 아들을 보내라"라고 요구했다. 시몬은 이를 받아들였지만, 디오도토스는 돈과 두 아이를 고스란히 받은 후 약속을 어기고 유대로 쳐들어갔다. 그러나 시몬이 이끄는 유대군의 저항이 거센 데다 폭설 때문에 더 이상 진군할 수 없게 되자, 디오도토스는 바스카마로 물러선 뒤 요나단을 처형하고 안티오키아로 돌아갔다. 그의 유해는 나중에 수습되어 모딘의 가족 묘지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