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조(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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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에서 특정 구단이 오랜 기간 동안 디펜딩 챔피언의 성적을 유지하면 왕조로 불리게 된다. 영어권에서도 동일한 의미의 'Dynasty'라는 표현을 쓴다.
'전통의 강호'가 상위권에 꾸준히 드는 강팀을 지칭한다면 '왕조'는 그 강팀 사이에서 독보적인 성적을 거두며 우승을 독점한 구단을 지칭한다.
다만 시대나 국가, 종목의 현실에 따라 그 기준이나 위상이 바뀔 수 있는 용어이며 '독보적인 강팀' 역시 주관적인 판단이 끼어들 여지가 있기에 각자의 잣대에 따라 또 성적이 애매한 구단의 경우 이에 따른 논쟁이 촉발될 수 있다.
일부 스포츠에서는 3회 이상의 연속 우승(3-peat[1] )을 이뤄내는 것을 기준으로 삼기도 한다.
축구나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는 "그 따위 리그 뭐가 중요하냐? 우린 대륙/세계 챔피언~"이라는 말이 정설일 정도로 로컬 리그 연속 우승은 평가가 박한 편이다. 축구는 한 팀이 오래 해먹을 수 있는 개방형 리그 구조가 대세이기 때문에, 리그 오브 레전드에선 국제대회 1회 우승의 위상이 로컬 리그 다수 우승의 위상을 훨씬 상회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제 왕중왕전, 즉 축구에서는 챔피언스 리그, 리그 오브 레전드는 월즈를 타 종목 왕조와 비견되는 지위를 갖는 것으로 본다.
13년 동안 한 번의 8-peat을 포함해 총 11회 우승. 전설적인 센터 빌 러셀(11회 우승), 샘 존스(10회 우승), 밥 쿠지(6회 우승), 존 하블리첵(6회 우승)[3] 등이 군림했다. 이 당시 감독으로는 8-peat을 차지할 당시에는 레드 아워백이였으며, 빌 러셀이 선수 겸 감독으로 1966-67 시즌부터 부임하여 1968년, 1969년에 리핏을 차지하게 된다.
샐러리 캡 도입 이후의 최초의 왕조라고 볼 수 있으며, 8년 동안 두 번의 3-peat으로 총 6회 우승. 이 당시 감독으로는 필 잭슨이였으며, 마이클 조던, 스카티 피펜 등이 군림했던 NBA의 세계화를 연 왕조이다. 특히 1995-96 시즌은 정규 시즌 역대 최다승(72승)[4] 에 파이널 우승까지 차지하면서 농구 역사상 최강의 팀[5] 이라는 소리를 듣게 된다. NBA 역사상 최고의 선수인 조던의 자발적인 퇴장으로 우승이 끊어져 불패라는 상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는 팀이기도 하다.
다음의 구단은 특정 기간 동안[7] 압도적인 성적으로 우승을 많이 차지해서 다수의 농구 팬들, 미국 언론으로부터 왕조로 인정받고 있지만, 통상적인 왕조의 기준인 3-peat을 달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논란이 있다. 다만 근래에 들어서 샐러리 캡 제도로 인해 슈퍼팀을 만들어도 3-peat이 어렵다는 의견이 자주 나오고 있다. 따라서 현지 팬들은 일반적으로 단기간 동안 우승을 많이 차지한 팀, 또는 이례적으로 긴 기간 동안 별도의 침체기 없이 꾸준한 성적과 우승을 동반한 팀의 경우도 왕조로 간주한다.[8]
그렉 포포비치의 지휘 아래에 해당 기간 동안 5회 우승(1999년, 2003년, 2005년, 2007년, 2014년)을 차지하였는데, 주축 선수라고 한다면 팀 던컨, 데이비드 로빈슨, 토니 파커, 마누 지노빌리, 카와이 레너드[10] 가 있다. 왕조로 보는 주된 의견은 같은 감독의 지휘 아래에 5회 우승 이외에도 20시즌 연속 정규 시즌 6할 이상의 승률[11] 과 18시즌 연속 정규 시즌 50승 이상[12][13] 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이게 대단한 이유는 샐러리캡 체제의 특성상 슈퍼팀 혹은 왕조도 오랜 기간 동안 전력을 유지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논란거리라고 한다면 3-peat은 물론 리핏조차 없다는 점과 동시대 밀레니엄 레이커스 왕조가 있다는 점 때문에 논란이 되는데, 해당 시기의 서부 플레이오프에 레이커스와의 맞대결에서 약한 모습을 보인게 스퍼스이기 때문이다.
1920~1965 시즌은 통칭 올드 그레이트 양키스로 불린다. 야구의 신 베이브 루스 영입을 시작으로 루 게릭, 조 디마지오, 요기 베라, 미키 맨틀 등의 올타임 레전드들이 팀을 이끌며, 메이저리그 역사상 유일무이한 초거대 야구단으로 거듭난다. 이 기간 동안 월드 시리즈 우승 20회[20] , 아메리칸리그 우승 29회를 차지하는 기록을 남겼다. 그 중에서도 1927년의 양키스는 야구 역사상 최강의 팀으로 평가되며, 베이브 루스, 루 게릭, 밥 뮤젤로 구성된 클린업 트리오 역시 역대 최강으로 꼽힌다. 야구에서 흔히 쓰이는 살인 타선(Murderers row)이라는 말이 이 시기 양키스의 타선 때문에 만들어졌다. 세대 교체를 서너 번씩 하면서도 성적이 떨어지질 않는 양키스 때문에 뉴욕을 박차고 나간 팀이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로스앤젤레스 다저스니 말 다 한 셈이다. 범위를 좁히면 1927년부터 1962년까지 35시즌 동안 월드 시리즈 우승을 19회 달성했다. 35번 중 19번을 승리하면 승률이 5할이 넘는 셈인데 이 기간 동안 월드 시리즈에서 이긴 것이 19번이니...[21]
1995~2001 시즌은 뉴 그레이트 양키스로 불렸는데, 조 토레 감독의 지휘로 데릭 지터, 마리아노 리베라, 호르헤 포사다, 앤디 페티트, 버니 윌리엄스 등 팜 출신 선수들이 주축이 되어 팀을 이끌며 월드시리즈 우승 4회, 아메리칸리그 우승 5회, 동부 지구 우승 5회를 차지했으며, 플레이오프를 개근했다. 특히 1998년에는 올드 그레이트 양키스도 기록한 적 없는 정규 시즌 114승을 찍었고, 포스트시즌 11승(DS 3승, CS 4승, WS 4승)을 더해 역대 한 시즌 최다 승(125승) 기록을 세웠다. 이후로도 양키스는 악의 제국으로 불리는 등 세계구급 강팀으로 군림하나, 플레이오프 불운이 이어지며 1990년대 말만큼의 우승을 하진 못하게 된다.[22]
1938추계~1943 시즌은 현행 양대 리그 체제가 확립되기 이전이었다. 단일 리그 시기 6연패를 했다. 그러나 일본야구연맹이 터져버린 이후에는 이 커리어가 계승되지 않으므로 일본직업야구 시절의 유일한 왕조라고 볼 수 있다.
1951~1953 시즌에는 자이언츠-난카이의 3연전이 치러졌었다. 난카이와의 승부를 모두 승리하면서 3연패 달성. 1호 야구단의 저력을 보여주며 1차 왕조를 세웠다.
1965~1973 시즌은 1951~1953 시즌을 왕조 따위로 만들어버린 무시무시한 시기. 과장이 아니고 해마다 10월만 되면 자이언츠 야구단 일본 제패라는 소식이 들려왔던 시절이다. 당시 퍼시픽 리그 강호 니시테츠 라이온즈가 약해지며 자이언츠의 라이벌은 퍼시픽 리그에선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시절이다. 도에이 플라이어스나 한큐 브레이브스가 신흥 강호로 올라갔지만 자이언츠를 막긴 힘들었다. 가히 일본의 베이브 루스, 루 게릭 콤비라 할 만한 홈런왕 오 사다하루, 미스터 베이스볼 나가시마 시게오 콤비가 타선을 책임졌던 팀. 9연패를 하는 동안, 단 한 번도 7차전까지 승부를 가져간 적이 없다. 많아야 2패만 내주는 압도적 성적. 일본시리즈 9연패를 달성했기 때문에 흔히 V9 시기라고 부른다. 이 정도면 왕조 선언을 넘어 칭제건원이라 해도 할 말이 없다. 이때부터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일본의 국민 구단으로 자리잡았고, 일본 야구 팬들은 친요미우리 vs 반요미우리로 거의 완벽하게 쪼개졌다. 하지만 1974년 1리 차이로 주니치에게 센트럴 리그 우승을 빼앗기며 일본시리즈 진출 좌절로 9-peat 왕조는 종결된다.
1986~1992 시즌은 사이타마로 옮기고 세웠으며, 리그 우승 9회에 일본 제일 클럽 자리를 8번이나 차지한 상승(매번 이긴다는 뜻) 군단의 돌풍이었다. 세이부는 강해야 관중이 많이 온다 하며[26] 어떻게든 팀 전력을 강화시켰다. 타선은 막강한 AKD[27] 클린업 트리오가 타점을 팍팍 내주었고, 중심 타선 이외에도 이시게 히로미치, 츠지 하츠히코, 히라노 켄, 타나베 노리오, 이토 츠토무 등의 선수들이 알토란 같은 활약을 보여줬다. 투수진에선 히가시오 오사무, 쿠도 키미야스, 마츠누마 형제가 왕조 초반의 투수진을 주도했고, 중후반으로 가면서 와타나베 히사노부, 시오자키 테츠야, 궈타이위엔 등 신진 선수들이 중심에 떠오르며 리그를 썰어먹었다. 전력만 따지면 V9로 대표되는 요미우리의 최전성기보다도 강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한국이나 미국과 달리 왕조라는 표현을 애초에 사용하지 않고 정해진 표현 없이 황금기나 황금시대 등으로 표현하는 일본 기준으로는 일반적으로 2014-2020(7년간 6회 우승), 넓게 잡는 경우는 2011-2020(10년간 7회 우승)[28] 까지를 황금기로 인정하는 편이다.
세이부 왕조 감독들이 요미우리 왕조 출신이라면, 이 시기 소뱅 감독들인 아키야마 코지와 쿠도 키미야스는 세이부 왕조 멤버이자 일본시리즈 MVP 출신이며, 1999년 일본 시리즈에서 호크스의 35년만의 우승에 공헌을 했다. 또 감독으로서 호크스를 강팀 반열에 올려놓은 오 사다하루는 구단 회장으로서 왕조의 기틀을 마련했다.
KBO 리그는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프로 스포츠 리그로 팬층 역시 두꺼워 논쟁도 자주 발생한다. 왕조는 그중에서도 관심도가 높은 대표적인 쟁점 중 하나인데 해당 구단간의 성적을 비교하는 민감한 주제다 보니 논란이 끊이질 않았다. 응원 팀에겐 관대한 기준을 다른 팀에겐 엄격한 기준을 대는 등 팬들부터 일관성을 지키지 않는 경우가 많았고 여기에 단발성 우승만 해도 과거의 성적과 연결시키며 왕조를 언급하는 등 용어를 남발하는 언론 역시 논란이 커지는 데에 일조했다. 논란은 후술.
하지만 해태와 삼성만큼은 야구팬들 모두가 이견 없이 왕조를 겪었다고 인정하며 각 팀이 한국시리즈 4연패[29] 를 달성한 시기를 지칭한다.
김응용 감독이 이끌며 한국시리즈 4연패를 달성한 팀이다. 1983년 첫 우승 이후 김성한을 주축으로 선동열, 이순철, 한대화가 가세하고, 기존의 김종모, 김봉연, 이상윤, 문희수 등이 힘을 더하며 1986년, 1987년, 1988년, 1989년에 우승을 차지해 한국시리즈 4연패를 달성한다. 당시 해태는 정규 시즌 성적만 놓고 보면 1위는 한 번뿐이고 2위를 세 번 기록하며 정규 시즌에선 압도적인 강팀이 아니었으나 포스트시즌에선 뛰어난 응집력을 발휘하며 4연패를 달성한다. 하지만 1990년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하여 5연패 달성은 실패로 끝나버린다.
연패가 끊어졌지만 해태는 이듬해부터 다시 우승을 하기 시작했고, 1997년까지 평균 2년마다 한 번 꼴로 우승을 거두며 여전히 당대 최강팀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삼성은 원년부터 상위권의 성적을 거두며 전통의 강호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한국시리즈 우승은 좀처럼 달성하지 못했다. 하지만 김응용, 선동열 감독을 거치며 준우승 징크스를 어느정도 해소했으며 2011년 류중일 감독 시대부터 본격적으로 도약하게 된다. 류중일 감독은 선발 야구, 믿음의 야구, 형님 리더십 야구를 표방했고, JOKKA 라인에 신인왕 배영섭, 타격 3관왕 최형우, 김상수의 각성, 윤성환의 부활 등으로 감독 부임 첫 해인 2011년 통합 우승을 달성한다. 거기에 아시아 시리즈에서 한국 구단 최초로 우승을 차지,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며 삼성 왕조의 서막을 알렸다. 이후 2012년에는 이승엽의 복귀와 이지영, 심창민, 정형식 등 유망주들의 맹활약으로 통합 2연패를 차지했고 2013년에는 조동찬, 권오준의 부상과 이승엽의 부진 등 여러 악재가 겹쳤음에도 리그 최초로 통합 3연패를 차지하며 언론과 팬들에게 왕조로 인정받았다. 2014년에도 삼성의 질주는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기자들의 업셋 예상을 보란듯이 뒤집으며 리그 최초로 통합 4연패까지 달성하기에 이른다.
여기까지가 삼성의 최전성기로 4년 동안 정규 시즌과 한국시리즈를 모두 제패하는 전무후무한 통합 4연패를 달성한다. 이 시기 투수진은 먹튀였던 에스마일린 카리대가 있긴 하지만 외인투수들도 평타에서 릭 밴덴헐크라는 대박까지 준수한 편이었고 윤성환, 장원삼, 배영수, 차우찬 등의 최상위권 선발진들과 안지만, 정현욱, 권혁, 권오준, 오승환, 임창용으로 이루어진 역대 최강의 불펜진이 철벽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타선에서는 대도 유망주인 김상수, 박해민을 앞세웠고 채태인, 최형우, 박석민의 3-4-5번 라인은 이승엽조차 6번 타자로 뛰게 만들 정도인 당시 최정상급 클린업중 하나였다. 여기에 2014년 영입한 야마이코 나바로는 공수주에서 흠잡을 데 없는 먼치킨급 능력을 보여주었다. 이처럼 당시 삼성은 그야말로 리그를 압도한 역대 최강팀이었다.
하지만 2015년 정규 시즌 5연패 후 2015년 한국시리즈 시작 전에 2015년 삼성 라이온즈 원정 도박 사건이 터지고 만다. 여기에 연루된 주축 투수들인 윤성환, 안지만, 임창용이 엔트리에서 제외되었고[30] 이 충격을 극복하지 못한 삼성은 준우승에 그쳤다. 사실 그 동안 확실한 주전들로 왕조를 유지해 왔지만, 팀 뎁스가 얇아져 가고 있는 시점[31] 이었으므로 리빌딩하기 적절한 시점에 내려왔다는 평도 많다. 여기에 모기업이 스포츠단의 자립을 요구하며 갑작스럽게 자금 지원을 크게 줄였고 그 여파로 중심 타선인 야마이코 나바로와 박석민이 타팀으로 이적한다. 마지막으로 프런트 측은 외국인 선수 영입 실패 등 자신들의 삽질을 오로지 류중일 감독의 탓으로 돌리는 언플을 하였고 2016 시즌을 9위로 마무리한 류중일 감독은 감독직에서 물러나고 만다. 7년 만에 포스트시즌 진출도 실패했으며 영원할 것 같았던 삼성의 시대는 저물게 된다.
3연패는 쉽게 달성할 수 있는 기록이 아니다. 야구는 특급 선발이 전경기의 1/5 안팎만 출전하고 홈런왕 타자가 다른 8명의 타자와 같은 기회를 받는 등 에이스 위주의 경기가 불가능한 스포츠다. 그래서 우승팀의 승률이 6할보다 낮을수도 있고 하위팀의 승률이 4할을 넘을 수도 있으며 약팀이 강팀에게 우세를 보이기도 한다. 즉 팀간의 격차가 크지 않아[32] 연속 우승이 쉽지가 않다. 실제로 2연패를 달성한 7팀 중 3연패를 이룬 팀은 1980년대 해태, 2010년대 삼성 단 2팀뿐이다.
다른 의견으로 현대, SK의 성적을 근거로 5년간 3우승을 왕조의 조건으로 하자는 팬들도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다음과 같은 문제점들이 생기게 된다.
하지만 1997 시즌 종료 후 1997년 외환 위기가 닥쳐오면서 한국시리즈 우승 일주일 만에 해태그룹이 부도를 선언할 정도로 경영난이 심각해지자, 현금 트레이드를 통해 이종범을 일본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곤즈로 진출시키고, 임창용, 이순철, 조계현을 삼성에 팔아넘기며, FA였던 이강철, 홍현우를 놓쳐 버린다. 결국 1998년 포스트시즌에 오르지 못한 것을 시작으로 기아자동차가 구단을 인수하기 전까지 하위권을 전전하기 시작한다.
현대는 1998년, 2000년, 2003년, 2004년까지 3회의 통합 우승과 양대 리그 당시 1회 우승[36] 으로 통산 네 번 우승했다. 하지만 2001년 정주영 회장의 사망과 하이닉스의 자금난 등이 겹치면서 주축 선수들이 모두 다른 팀으로 팔려나갔고 2007 시즌 이후 팀이 해체되어 최종 4회 우승으로 팀 역사를 마감한다. 그 뒤 신생 구단인 서울 히어로즈가 현대 선수단을 인수했다.
이 시기 삼성은 현대, SK와 비교해도 전혀 밀리지 않는 성적을 기록했지만 언론과 팬들로부터 왕조로 인정받지 못했는데, 그 원인으로는 FA를 싹쓸이하면서 돈성이라는 안 좋은 이미지를 구축한 점,[38] 2000년대 초중반은 한국 야구의 암흑기여서 인기가 저조했기 때문에 그 시절의 삼성 라이온즈에 대한 관심도가 낮았던 점, 선동열의 지키는 야구가 삼성 팬들에게 지지를 받지 못했던 점[39] 등이 있다.
하지만 2011년 시즌 중 프런트는 지나치게 전권을 요구하는 김성근을 중도 경질시키고[41] 이만수에게 감독 대행을 맡긴다. 사실 성적 때문에 부각이 덜 되었지 당시 SK는 내부적으로 잡음이 많았었다. 김성근과 이만수의 갈등, 프런트와 현장의 갈등 등 코칭스태프들이 따로 움직였고 팀 분위기는 무너질 수 밖에 없었다. 결국 2011년, 2012년 연속 준우승 이후 2013년에는 6위로 추락하며 전성기를 마감하게 된다.
2020년에는 3위로 정규 시즌을 마치고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하였으나 준우승에 그친다. 이후 두산의 행보는 부정적으로 흐르고 있는데 모기업의 상황이 좋지가 않고 그 여파로 라울 알칸타라, 오재일, 최주환, 크리스 플렉센이 타팀으로 이적을 해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1년, 정규 시즌 4위로 와일드카드 결정전부터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해 준우승을 거두며 KBO 리그 최초로 7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2022년에는 계속되는 선수 유출로 인해 결국 9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한국시리즈 연속 진출도 종지부를 찍었으며 김태형 감독은 계약만료로 물러났다.
2010년대 후반 압도적인 전력으로 왕조를 탄생시켰다. 2017년 전기리그부터 2019년 전기리그까지 정규리그 5연속 우승을 비롯하여 2017년과 2018년에는 통합 우승을 차지한다. 시기를 넓힐경우 2012년부터 2019년까지 8시즌 가운데 6번 타이완 시리즈의 정상에 올라 2010년대 NPB의 소프트뱅크에 비견될 만큼 압도적인 전력을 뽐냈다.
아래 수많은 유럽 리그의 왕조들이 서술되어 있지만 대부분 자국 리그 한정이고, 유러피언컵과 그 후신인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기준으로 한 축구 왕조[44] 는 시대 순서대로 레알 마드리드 (1955~1960), 아약스 (1970~1973), 바이에른 뮌헨 (1973~1976), 리버풀 (1976~1984), AC 밀란 (1987~1994), 바르셀로나 (2008~2015), 레알 마드리드 (2015~2018)까지 6팀이 주로 언급된다.[45]
1960년대 저승사자 군단의 시대가 막을 내리자 이번에는 스페인 국내 선수들을 위주로 팀을 구성했다. 이 정책은 1980년대까지 이어져 이른바 '독수리 5형제'가 결성되었고 울리 슈틸리케, 첸도, 우고 산체스, 호세 안토니오 카마초, 호르헤 발다노 등 뛰어난 실력의 선수들을 필두로 라리가 5연패, UEFA컵 2연패를 달성해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했다.
2010년대에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중심으로 세르히오 라모스, 루카 모드리치, 마르셀루, 토니 크로스 등과 함께 또 한번의 왕조를 구축하였다. 2013-14 시즌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의 지휘 하에 구단 역사상 10번째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차지한 것을 시작으로, 지네딘 지단이 지휘하기 시작한 2016년 1월부터 레알 마드리드는 UEFA 챔피언스 리그 3회 우승, 라리가 1회 우승, UEFA 슈퍼컵 2회 우승, FIFA 클럽 월드컵 2회 우승,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1회 우승을 달성하였다. 특히 2015-16 시즌부터 2017-18 시즌까지의 3연패를 포함해 2013년부터 2018년까지 챔피언스 리그에서 5년간 4차례 우승하는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챔피언스 리그가 현행 체제로 개편된 이후 그동안 2연패를 달성한 팀이 전무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레알 마드리드의 이러한 업적이 얼마나 위대한지 알 수 있다. 팀의 주축 멤버인 루카 모드리치는 레알 마드리드의 챔피언스 리그 3연패를 NBA 시카고 불스와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의 쓰리핏과 비교하며 레알 마드리드가 축구의 왕조라고 생각한다고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그러나 지단이 자진 사임하고 호날두가 이탈리아의 유벤투스로 떠나며 레알 마드리드의 두 번째 왕조는 막을 내린다.
바르셀로나의 두 번째 왕조는 축구사 역대 최강의 팀 중 하나로 평가받는 팀이다. 이 기간 동안 사상 최초의 시즌 6관왕을 포함해 2번의 트레블과 1번의 더블을 해냈다. 2008년 펩 과르디올라가 부임한 후 라 마시아의 선수들을 적극 활용하기 시작하며 리오넬 메시를 중심으로 사비 에르난데스,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카를레스 푸욜, 세르히오 부스케츠, 제라르 피케, 다니 알베스, 빅토르 발데스, 하비에르 마스체라노가 팀을 구성하며 축구계의 헤게모니를 바꾼 전술인 티키타카를 사용하며 역사상 가장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축구계를 휩쓸었다. 2012년 펩이 떠난 이후 약간의 부침을 겪었지만 2014년 루이스 엔리케가 부임하고 네이마르, 루이스 수아레스가 영입되며 세기의 공격진 MSN을 구축하였고 2014-15 시즌 역사상 최초로 두 번의 트레블에 성공했다. 이 기간 동안 바르셀로나는 무려 23개의 우승컵을 가져갔다.
밀란 제네레이션 이후 한동안 부침을 겪다가 안드레아 피를로, 카카, 파올로 말디니, 알레산드로 네스타 등으로 대표되는 뉴 밀란 제네레이션으로 또 한번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5년간 챔피언스리그 우승 2회, 준우승 1회, 4강 1회, 8강 1회를 기록하여 현재까지 밀란의 마지막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룬 시기가 바로 이 시기.
그러나, 마르세유의 영광은 승부조작과 약물의혹 등의 스캔들로 심각하게 얼룩지게 된다.
1992-93 시즌 마지막 경기 상대인 발랑시엔 FC와의 경기에서 발랑시엔 선수들이 자수하는 바람에 마르세유의 승부조작 사실이 밝혀졌다. 당시 발랑시엔 선수인 자크 글리스만이 감독인 보로 프리모락에게 마르세유 선수인 장자크 에들리에게 자신이 매수당했다고 고백한 게 계기가 되어 드러났다. 이후 호르헤 부루차가, 크리스토프 로베르도 마르세유에 매수당했다고 고백하면서 일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이들은 에들리가 발랑시엔 선수들에게 경기에서 져줄 것과 부상 위험을 줄여달라고 부탁했다. 당시 마르세유는 5월 20일에 발랑시엔과 경기를 치르고 엿새 뒤에 챔스 결승전을 치르고자 했다. 이로써 이들은 손쉽게 리그 우승을 차지하고, 최상의 컨디션으로 유럽 정상을 노리겠다며 검은 돈을 사용한 것이다. 이에 대한 처벌로서 마르세유는 1994년 2부 리그로 강등되고 1992-93 리그 우승 타이틀을 박탈당했으며, UEFA 챔피언스리그, UEFA 슈퍼컵, 인터컨티넨탈컵 등의 각종 국제대회 참가 자격을 박탈당했다.
또한 2006년 당시 마르세유의 선수인 장자크 에들리가 자서전에서 당시 루디 푈러를 제외한 선수 전원이 금지 약물을 도핑 후 경기에 임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UEFA는 공소시효인 10년이 지났다는 것을 근거로 무혐의 처분하였다. 또한 당시 도핑 테스트에서는 음성 반응이 나왔고 해당 자서전 발간 이후 마르셀 드사이를 비롯하여 동료 선수들 또한 논란을 정면으로 반박하기도 했다. 약물의혹은 확실한 증거를 찾지 못했기 때문에 1993년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은 공식적으로 인정되고 있고, 리그 우승은 승부조작으로 1992-93 시즌만 박탈된 것이다. 승부조작과 약물의혹 스캔들이 없었더라면 왕조라는 이름에 걸맞는 팀이라 할 수 있다.
LoL e스포츠에서의 왕조는 이전까지는 기성 스포츠와 같이 국제 대회나 리그 대회를 각각 나눠 3연패를 거둔 '클럽 대항전' 팀을 왕조로 통칭하고 있었으나, 2023년 월즈 이후부터 국내 커뮤니티를 필두로 이전과는 별개의 기준으로 왕조를 구분해야 한다라는 목소리가 시작되었다.[67]
그 중 라이엇 게임즈 주관 메이저 최고 대회인 월드 챔피언십이 지역 리그들에 비해 비교가 불가할 정도로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고, MSI 역시 일반적인 리그와는 위상이 다르다는 점에서 LoL e스포츠의 특성상 지역 리그 3연패를 한다고 해도 국제대회에서 그에 맞는 호성적을 거두지 못한다면 왕조로써 인정해주지 않겠다라는 분위기가 급속도로 퍼지기 시작했다.
2013-14 윈터와 2014년 올스타 인비테이셔널 전승 우승을 제외한 이후부터의 부진으로 반짝 활약이냐는 부정적인 시선들이 있던 상황에서. 단일팀으로의 통합과 LCK가 풀리그제로 전환된 2015 스프링부터 페이커를 필두로 벵기, 뱅, 울프가 맹활약, 탑에서도 절정의 기량에 달한 마린이 라인을 초토화시키고, 식스맨으로는 이지훈의 활약까지 더해져 많은 부분에서 활약이 두드러졌고 우승을 차지했다. 2015 MSI 결승에서 삐끗해 준우승 이후 2015 서머에서 다른 팀들을 모두 찍어누르고 우승을 차지했다. 이어진 월즈에서도 단 1패만 허용하고 우승하며 역대 단일시즌 최강팀 중 하나로 손꼽히는 기록을 남겼다. 이후 마린과 이지훈이 팀을 떠나고 벵기의 폼이 떨어지며 이전만큼의 포스를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새롭게 영입한 탑 라이너 듀크, 정글러로 블랭크가 팀에 적응하면서 점점 경기력이 좋아졌다. 그리고 포스트시즌 도장깨기에 성공하며 2016 스프링에서도 우승컵을 거머쥐고 LCK 최초의 3연속 우승을 달성함으로써 이후부터 롤판을 휘어잡는 LCK의 첫 왕조를 열었다. 이어진 MSI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2016 서머에서는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했지만, 월즈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최초의 월즈 연속 우승팀이 되었다. 2017년에는 피넛과 후니를 영입하고 2017 스프링-2017 MSI를 우승하며 기세를 올려 왕조의 건재함을 알렸다. 고로 이 시기의 SKT는 단순히 자국리그 쓰리핏 뿐만 아니라 후술할 2017년까지 국제대회 4연속 우승[69] 이라는 전무후무한 업적을 세움으로써 LCK를 넘어 세계적인 왕조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러다가 2017 리프트 라이벌즈 준우승과 서머 준우승을 기록했고, 월즈에서는 페이커의 원맨캐리로 결승에는 진출했지만 전년도 준우승팀인 삼성에게 패배하게 되고 글로벌 인준 코멘터리를 통해 SKT 왕조가 끝났음이 공식적으로 언급되었다.
그리고 2020년에 들어 고스트를 영입하고, 베릴이 각성하며 하체의 약점을 지우고, 2020 MSC에서 얻은 교훈으로 팀 전체가 2020 서머에 각성했다. 이 당시 담원은 거의 대부분의 경기를 20분대에서 마무리하는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정규시즌을 지배했고, 이후 결승에서도 DRX를 압도하며 서머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월즈에서도 세계 최강팀의 무력을 선보이며 우승해 3년 만에 LCK의 1부 리그 지위를 되찾아왔다. 이후 너구리가 FPX로 이적하고 FPX에서 매우 좋지 않은 폼을 보이며 은퇴하려던 칸과 김정균 감독을 영입했다. 이는 확실한 전력 악화로 여겨졌으나 그러한 여론을 불식시킬 정도로 여전히 압도적인 무력을 자랑하며 2021 스프링에서 재차 통합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MSI에서 준우승하고 서머 1라운드에서 주춤하긴 했으나 다시 폼을 되찾고 3시즌 연속 통합 우승이라는 최초의 기록과 함께 새로운 LCK 왕조를 세웠다. 이어진 2021 월즈에서도 역대 3번째 그룹 스테이지 전승을 기록하고 RNG, SKT, 삼성에 이어 역대 4번째로 2년 연속 월즈 결승 진출이라는 대기록을 세웠으나 준우승을 기록했다. 이전의 15~17 SKT에 비해 국제전 성과가 빈약하고 글로벌 해설 코멘터리를 통해 왕조로 인증되지 않았지만,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LCK-월즈에서 최정상에 올랐다는 점, 6번 연속으로 메이저 대회 결승에 진출했다는 점, 그리고 최초의 LCK 3연속 통합 우승을 기록했다는 점에서 국내 리그 쓰리핏에 어울리는 기록을 세운 팀으로 남게 되었다.
전적이 있던 만큼 큰 기대를 받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룹 스테이지에서 LCK의 2번 시드인 아프리카 프릭스를 잡아내며 기대감을 높이더니 결국 순위 결정전에서 플래시 울브즈를 꺾고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8강에 진출하는데 성공했다. 8강 상대는 그랜드슬램을 노리던 RNG로 많은 전문가들은 당연히 RNG의 낙승을 예상했지만 원더와 퍽즈의 신들린 캐리쇼에 힘입어 RNG를 꺾고 4강에 진출, LOL판 역사상 최고의 업셋을 일으키며 암흑 군주라는 오명을 씻어냈다.
이후 2019년에는 라이벌 팀인 프나틱의 캡스를 데려오고 퍽즈를 바텀 라이너로 내리는 등 유럽 최강 라인업으로 똘똘뭉친 2기 라인업이 완성되었다. 변칙적인 전략과 매우 넓은 챔프폭을 바탕으로 스프링과 MSI까지 우승을 차지하면서 팀 역사상 메이저 국제 대회 첫 우승을 기록했고, 안방 호랑이에 불과하다는 저평가를 받던 1기 시절때와는 달리 프나틱의 시즌 1 챔피언십 우승 이후로 8년만에 메이저 대회 우승을 기록한 유럽팀이 되었다. 이어서 서머에서도 우승을 달성하고, FPX에게 패배하기 이전까지는 월드 챔피언십에서도 결승까지 진출하는 등 역대 최초의 캘린더 그랜드 슬램[71] 이라는 대기록에 근접했었다. 그리고 2020 스프링 때는 퍽즈와 캡스를 미드-바텀 라인으로 서로 스왑하는 강수를 보이면서도 다시 우승을 차지하고, 서머에서는 원래 라인으로 돌아가 불안함을 노출하는 상황에서도 두 번째 4시즌 연속 우승을 달성하며 LEC 역사에 길이 남을 팀으로 남게 되었다.
본인들 지역 리그 내에서 3연속 우승을 차지할 경우, 이전까지는 왕조 건설에 성공했다라고 평할 수 있었으나, 앞선 팀들과 비교해봤을때 같은 선상에 놓기 어렵거나 여러 단점들이 튀어나오는 팀들 위주로 작성되어 있다.
LEC 역대 최다 결승 진출팀이자 롤드컵 역대 최다 진출팀으로 유럽 최고의 근본팀으로 불린다. LCS EU가 창설되자마자 3회 연속 우승을 이뤄내며 리그 오브 레전드 e스포츠판 최초의 왕조를 이룩했지만, 2013 월즈 4강과 2014 월즈에서 그룹 스테이지로 탈락하게 되고, 로스터 전면 변경으로 팀에 대격변이 일어나게 된다.
2016 서머 정규시즌에서 1옵션 비역슨의 캐리와 특급신인 바이오프로스트의 활약에 힘입어 팀원 전체적으로 좋은 폼을 보여주며 우승을 차지했다.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이며 17승 1패를 기록했고, 포스트시즌에서도 경쟁팀을 체급 차이로 찍어눌렀다. 아직까지도 LCS 역대 최강의 단일시즌을 보낸 팀으로 손꼽힐 정도.[72] 북미 역대 최강팀이라는 평가를 받고도 월즈에서 조별리그 3승3패로 탈락해버렸지만 그래도 유럽팀은 이겼다. 17 스프링에서는 전시즌만큼 압도적인 포스를 보이지는 못했으나 여전히 북미팀 중 가장 뛰어난 개인기량을 가졌다는것을 증명하며 경쟁자 C9을 제치고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17 서머에는 초반에 휘청했음에도 팀원들이 폼을 되찾으며 아슬아슬하게 정규시즌을 우승했고, 포스트시즌에서 여유롭게 쓰리핏을 달성하면서 LCS NA 첫 왕조를 구축했다. 다만 이렇게 북미 최초의 왕조를 구축해놓고 MSI, 월즈 모두 타이 브레이커에서 패배하여 그룹 광탈을 기록하며 자존심을 구겼다.
하지만 2018 스토브리그에서 임팩트, 더블리프트 등 세계적인 레벨의 선수들을 영입하고 순식간에 팀의 체급과 벨류를 급격하게 끌어올렸다. 그간 소수의 몇팀이 군림하던 우승 경쟁 체제를 끊을 북미 팀으로 평가받았다. 18 스프링 정규시즌에는 기대만큼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으나 포스트시즌에서 4강 징크스를 뚫고 타팀을 압도하며 팀 첫 우승을 차지했다. 18 서머에서 메타 대격변과 북미팀들의 메타 적응실패로 대혼돈이 일어나는 가운데 더블리프트의 캐리를 앞세워 연속 우승을 거머쥐었다. 이렇듯 2018년 새로운 북미의 지배자가 되었으나 MSI와 월즈에서 크게 실패하였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2019 스토브리그에서 코어장전과 젠슨을 영입하였다. 18년보다 안정적인 경기력으로 정규시즌 1위를 차지했으며, 결승에서는 패패승승승으로 기사회생하며 3연속 우승을 차지하고 LCS의 왕조를 새로 세웠다. 이렇게 진출한 MSI에서 그룹 스테이지 내내 헤매다가 4위 막차를 타며 기대가 없었으나, 4강에서 당시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이던 IG를 3:1로 때려잡으며 결승에 진출했다. 결승에서 셧아웃 패배하고 준우승하긴 했으나 4강에서의 업셋은 18년 롤드컵 RNG와 G2의 8강과 함께 역대 롤판 최고 업셋으로 회자되고 있다. 이어진 19 서머에서 계속되는 포스트시즌 접전을 뚫고 4연속 LCS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했지만 해당 기간 내의 월즈에서의 성적이 매우 좋지 않다.
논란을 일으킨 MSI에서는 담원 기아를 상대로 우승을 차지했으나, 서머 우승 실패 및 월즈 3시드로 진출해 녹아웃 8강전에서 EDG와의 졸전 끝에 탈락, 2022 스프링에서는 TES를 또 한번 논란이 많던 MSI에서 T1을 상대로 우승을 차지했으나 서머 우승 실패 및 월즈 4시드로 진출해 녹아웃 8강전에서 T1에게 완패당했다.
이 팀은 여타 3회 리그 우승 팀과는 다르게 16~17 SKT와 마찬가지로 MSI 연속 우승을 기록했다는 점에서 해당 목록에 등재되었다. 특히나 2022 MSI 우승 직후 공식 글로벌 채널 마지막 장면에 나온 삽화 사진에서 "The Dream Chaser, The Dynasty Builder 번역해서 왕조 건설이라는 꿈을 쫒는 팀"으로 표기될 정도로[73] , 향후 행보를 어떻게 보내냐에 근거해 왕조 건설 여부를 주목받던 팀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이 팀이 봄이 지나고 나면 성적이 떨어지고 힘을 못쓰는 팀이라는 오명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는 것이다. 또한 2021~22년까지 MSI와 월즈에서 각종 논란과 사건사고를 일으킴으로써 전세계적인 악당팀이 되었고, 월즈 이후에는 중국 내부 여론에도 온갖 비하가 넘쳐날정도로 각종 오명을 포함해 비판과 비난들을 한꺼번에 받다가, 결국 2023년에는 몇몇 선수를 뺴고 팀 로스터가 와해되었다.
이후 2023 스토브 리그에서 룰러와 리헨즈가 나가고, 그 빈자리를 페이즈와 딜라이트로 채우면서 시즌을 시작하게 된 젠지는 스프링 시즌 다시 한 번 T1을 꺾으며 우승을 차지했다. 이어 MSI에서 T1에게 2:3, BLG에게 0:3으로 패배해 국제전 잔혹사를 끊지 못했지만, 서머 시즌에서 다시 한번 T1을 상대로 결승전에서 승리해 T1, 디플러스 기아에 이어 LCK 3연속 우승을 차지하고 작년에 이어 LCK 1시드 자격으로 자국에서 열리는 월즈를 맞이하게 된다.
그렇게 시작된 월즈에서 스위스 스테이지 3R만에 단 한세트도 내주지 않고 녹아웃 스테이지로 진출했다. 정말 이 과정에서 보여준 경기력도 매우 좋았기에 이번에야말로 국제전 잔혹사를 끊을 수 있을거라고 많은 이들이 기대할 정도였고, 특히 상대가 스위스 스테이지를 간신히 뚫어낸 BLG로 결정되고 같은 브라켓에 NRG와 WBG가 포함되자 최소 결승까지는 쉽게 갈 수 있을거라고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예상했다.
그러나 국내 전문가들이 탕후루라는 별칭으로 부르던 조에 배정되었던 젠지가 조기에 탈락하게 되자 온갖 비판, 비난, 조롱을 들으면서[74][75] 시즌을 마무리하게 되는 그림으로 이어졌다. 8강 1세트부터 시작되었던 불길한 조짐에 화룡점정을 찍은 2세트 럼자오자레, 2021년 4강 EDG전이 떠오르는 '5연 자르반', 패배한 세트마다 럼블, 자르반, 오리아나 상체 조합을 연속으로 내주는 희대의 막장 밴픽, 전반적인 젠지 선수들의 경기력 저하와 이해할 수 없는 우틀않과 졸전을 보인 끝에 BLG에게 2:3으로 패배, 더 나아가 나진 화이트 실드 이후로 3315일만에 한국팀이 5중국인 팀에게 패배하는 일까지 벌어지게 되었다.
고로 2022-23 젠지는 22 서머 우승과 그 해 스토브 리그에서 상체를 그대로 은존시키면서 하체를 신예들로 구성해 그 해의 리그를 전부 제패한 쓰리핏 팀으로 남게 되었지만, 국내를 호령한 것과는 달리 국제전에서 기대치에 상응하는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사실이 곧장 드러났다. 또한 그동안의 역사를 통틀어 LCK 1시드 자격으로 월즈에 진출했던 팀들 중 가장 최악의 팀이라는 오명까지 뒤집어쓰게 되었고, 이후 스토브리그에서 쵸비와 페이즈를 제외한 기존 선수들이 팀을 떠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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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스포츠에서 특정 구단이 오랜 기간 동안 디펜딩 챔피언의 성적을 유지하면 왕조로 불리게 된다. 영어권에서도 동일한 의미의 'Dynasty'라는 표현을 쓴다.
'전통의 강호'가 상위권에 꾸준히 드는 강팀을 지칭한다면 '왕조'는 그 강팀 사이에서 독보적인 성적을 거두며 우승을 독점한 구단을 지칭한다.
다만 시대나 국가, 종목의 현실에 따라 그 기준이나 위상이 바뀔 수 있는 용어이며 '독보적인 강팀' 역시 주관적인 판단이 끼어들 여지가 있기에 각자의 잣대에 따라 또 성적이 애매한 구단의 경우 이에 따른 논쟁이 촉발될 수 있다.
일부 스포츠에서는 3회 이상의 연속 우승(3-peat[1] )을 이뤄내는 것을 기준으로 삼기도 한다.
축구나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는 "그 따위 리그 뭐가 중요하냐? 우린 대륙/세계 챔피언~"이라는 말이 정설일 정도로 로컬 리그 연속 우승은 평가가 박한 편이다. 축구는 한 팀이 오래 해먹을 수 있는 개방형 리그 구조가 대세이기 때문에, 리그 오브 레전드에선 국제대회 1회 우승의 위상이 로컬 리그 다수 우승의 위상을 훨씬 상회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제 왕중왕전, 즉 축구에서는 챔피언스 리그, 리그 오브 레전드는 월즈를 타 종목 왕조와 비견되는 지위를 갖는 것으로 본다.
2. 농구[편집]
2.1. 미국[편집]
- 미니애폴리스 레이커스(NBA): 1949~1950, 1952~1954
13년 동안 한 번의 8-peat을 포함해 총 11회 우승. 전설적인 센터 빌 러셀(11회 우승), 샘 존스(10회 우승), 밥 쿠지(6회 우승), 존 하블리첵(6회 우승)[3] 등이 군림했다. 이 당시 감독으로는 8-peat을 차지할 당시에는 레드 아워백이였으며, 빌 러셀이 선수 겸 감독으로 1966-67 시즌부터 부임하여 1968년, 1969년에 리핏을 차지하게 된다.
샐러리 캡 도입 이후의 최초의 왕조라고 볼 수 있으며, 8년 동안 두 번의 3-peat으로 총 6회 우승. 이 당시 감독으로는 필 잭슨이였으며, 마이클 조던, 스카티 피펜 등이 군림했던 NBA의 세계화를 연 왕조이다. 특히 1995-96 시즌은 정규 시즌 역대 최다승(72승)[4] 에 파이널 우승까지 차지하면서 농구 역사상 최강의 팀[5] 이라는 소리를 듣게 된다. NBA 역사상 최고의 선수인 조던의 자발적인 퇴장으로 우승이 끊어져 불패라는 상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는 팀이기도 하다.
-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NBA): 2000~2002
- 휴스턴 코메츠(WNBA): 1997~2000
2.1.1. 3연속 우승에 실패한 구단[편집]
다음의 구단은 특정 기간 동안[7] 압도적인 성적으로 우승을 많이 차지해서 다수의 농구 팬들, 미국 언론으로부터 왕조로 인정받고 있지만, 통상적인 왕조의 기준인 3-peat을 달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논란이 있다. 다만 근래에 들어서 샐러리 캡 제도로 인해 슈퍼팀을 만들어도 3-peat이 어렵다는 의견이 자주 나오고 있다. 따라서 현지 팬들은 일반적으로 단기간 동안 우승을 많이 차지한 팀, 또는 이례적으로 긴 기간 동안 별도의 침체기 없이 꾸준한 성적과 우승을 동반한 팀의 경우도 왕조로 간주한다.[8]
-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NBA): 1980~1988
그렉 포포비치의 지휘 아래에 해당 기간 동안 5회 우승(1999년, 2003년, 2005년, 2007년, 2014년)을 차지하였는데, 주축 선수라고 한다면 팀 던컨, 데이비드 로빈슨, 토니 파커, 마누 지노빌리, 카와이 레너드[10] 가 있다. 왕조로 보는 주된 의견은 같은 감독의 지휘 아래에 5회 우승 이외에도 20시즌 연속 정규 시즌 6할 이상의 승률[11] 과 18시즌 연속 정규 시즌 50승 이상[12][13] 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이게 대단한 이유는 샐러리캡 체제의 특성상 슈퍼팀 혹은 왕조도 오랜 기간 동안 전력을 유지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논란거리라고 한다면 3-peat은 물론 리핏조차 없다는 점과 동시대 밀레니엄 레이커스 왕조가 있다는 점 때문에 논란이 되는데, 해당 시기의 서부 플레이오프에 레이커스와의 맞대결에서 약한 모습을 보인게 스퍼스이기 때문이다.
-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NBA): 2015~2022
2.2. 대한민국[편집]
-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KBL): 2013~2015
- 안산 신한은행 에스버드(WKBL): 2007~2012
- 아산 우리은행 위비(WKBL): 2013~2018
3. 배구[편집]
3.1. 대한민국[편집]
- 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 2008~2014
- 인천 대한항공 점보스: 2021~
4. 야구[편집]
4.1. 미국[편집]
1920~1965 시즌은 통칭 올드 그레이트 양키스로 불린다. 야구의 신 베이브 루스 영입을 시작으로 루 게릭, 조 디마지오, 요기 베라, 미키 맨틀 등의 올타임 레전드들이 팀을 이끌며, 메이저리그 역사상 유일무이한 초거대 야구단으로 거듭난다. 이 기간 동안 월드 시리즈 우승 20회[20] , 아메리칸리그 우승 29회를 차지하는 기록을 남겼다. 그 중에서도 1927년의 양키스는 야구 역사상 최강의 팀으로 평가되며, 베이브 루스, 루 게릭, 밥 뮤젤로 구성된 클린업 트리오 역시 역대 최강으로 꼽힌다. 야구에서 흔히 쓰이는 살인 타선(Murderers row)이라는 말이 이 시기 양키스의 타선 때문에 만들어졌다. 세대 교체를 서너 번씩 하면서도 성적이 떨어지질 않는 양키스 때문에 뉴욕을 박차고 나간 팀이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로스앤젤레스 다저스니 말 다 한 셈이다. 범위를 좁히면 1927년부터 1962년까지 35시즌 동안 월드 시리즈 우승을 19회 달성했다. 35번 중 19번을 승리하면 승률이 5할이 넘는 셈인데 이 기간 동안 월드 시리즈에서 이긴 것이 19번이니...[21]
1995~2001 시즌은 뉴 그레이트 양키스로 불렸는데, 조 토레 감독의 지휘로 데릭 지터, 마리아노 리베라, 호르헤 포사다, 앤디 페티트, 버니 윌리엄스 등 팜 출신 선수들이 주축이 되어 팀을 이끌며 월드시리즈 우승 4회, 아메리칸리그 우승 5회, 동부 지구 우승 5회를 차지했으며, 플레이오프를 개근했다. 특히 1998년에는 올드 그레이트 양키스도 기록한 적 없는 정규 시즌 114승을 찍었고, 포스트시즌 11승(DS 3승, CS 4승, WS 4승)을 더해 역대 한 시즌 최다 승(125승) 기록을 세웠다. 이후로도 양키스는 악의 제국으로 불리는 등 세계구급 강팀으로 군림하나, 플레이오프 불운이 이어지며 1990년대 말만큼의 우승을 하진 못하게 된다.[22]
-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1972~1976[23]
4.2. 일본[편집]
1938추계~1943 시즌은 현행 양대 리그 체제가 확립되기 이전이었다. 단일 리그 시기 6연패를 했다. 그러나 일본야구연맹이 터져버린 이후에는 이 커리어가 계승되지 않으므로 일본직업야구 시절의 유일한 왕조라고 볼 수 있다.
1951~1953 시즌에는 자이언츠-난카이의 3연전이 치러졌었다. 난카이와의 승부를 모두 승리하면서 3연패 달성. 1호 야구단의 저력을 보여주며 1차 왕조를 세웠다.
1965~1973 시즌은 1951~1953 시즌을 왕조 따위로 만들어버린 무시무시한 시기. 과장이 아니고 해마다 10월만 되면 자이언츠 야구단 일본 제패라는 소식이 들려왔던 시절이다. 당시 퍼시픽 리그 강호 니시테츠 라이온즈가 약해지며 자이언츠의 라이벌은 퍼시픽 리그에선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시절이다. 도에이 플라이어스나 한큐 브레이브스가 신흥 강호로 올라갔지만 자이언츠를 막긴 힘들었다. 가히 일본의 베이브 루스, 루 게릭 콤비라 할 만한 홈런왕 오 사다하루, 미스터 베이스볼 나가시마 시게오 콤비가 타선을 책임졌던 팀. 9연패를 하는 동안, 단 한 번도 7차전까지 승부를 가져간 적이 없다. 많아야 2패만 내주는 압도적 성적. 일본시리즈 9연패를 달성했기 때문에 흔히 V9 시기라고 부른다. 이 정도면 왕조 선언을 넘어 칭제건원이라 해도 할 말이 없다. 이때부터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일본의 국민 구단으로 자리잡았고, 일본 야구 팬들은 친요미우리 vs 반요미우리로 거의 완벽하게 쪼개졌다. 하지만 1974년 1리 차이로 주니치에게 센트럴 리그 우승을 빼앗기며 일본시리즈 진출 좌절로 9-peat 왕조는 종결된다.
- 니시테츠/세이부 라이온즈: 1956~1958, 1986~1992[25]
1986~1992 시즌은 사이타마로 옮기고 세웠으며, 리그 우승 9회에 일본 제일 클럽 자리를 8번이나 차지한 상승(매번 이긴다는 뜻) 군단의 돌풍이었다. 세이부는 강해야 관중이 많이 온다 하며[26] 어떻게든 팀 전력을 강화시켰다. 타선은 막강한 AKD[27] 클린업 트리오가 타점을 팍팍 내주었고, 중심 타선 이외에도 이시게 히로미치, 츠지 하츠히코, 히라노 켄, 타나베 노리오, 이토 츠토무 등의 선수들이 알토란 같은 활약을 보여줬다. 투수진에선 히가시오 오사무, 쿠도 키미야스, 마츠누마 형제가 왕조 초반의 투수진을 주도했고, 중후반으로 가면서 와타나베 히사노부, 시오자키 테츠야, 궈타이위엔 등 신진 선수들이 중심에 떠오르며 리그를 썰어먹었다. 전력만 따지면 V9로 대표되는 요미우리의 최전성기보다도 강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 한큐 브레이브스: 1975~1977
-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2017~2020
한국이나 미국과 달리 왕조라는 표현을 애초에 사용하지 않고 정해진 표현 없이 황금기나 황금시대 등으로 표현하는 일본 기준으로는 일반적으로 2014-2020(7년간 6회 우승), 넓게 잡는 경우는 2011-2020(10년간 7회 우승)[28] 까지를 황금기로 인정하는 편이다.
세이부 왕조 감독들이 요미우리 왕조 출신이라면, 이 시기 소뱅 감독들인 아키야마 코지와 쿠도 키미야스는 세이부 왕조 멤버이자 일본시리즈 MVP 출신이며, 1999년 일본 시리즈에서 호크스의 35년만의 우승에 공헌을 했다. 또 감독으로서 호크스를 강팀 반열에 올려놓은 오 사다하루는 구단 회장으로서 왕조의 기틀을 마련했다.
4.3. 대한민국[편집]
42번의 시즌 동안 KIA 11회, 삼성 8회, 두산 6회, SSG 5회, 현대 4회, LG 3회, 롯데 2회, 한화 · NC · KT 1회순으로 우승하였다. KIA, SSG는 각각 전임 구단인 해태, SK를 인수했기 때문에 우승기록을 승계한다. OB 베어스는 1999년 두산 베어스로 팀명이 바뀌어서 OB의 우승이 두산의 우승에 해당된다. 현대는 2007년 이후 해체 되어 우승 기록이 4회에서 멈추게 되었다.
KBO 리그는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프로 스포츠 리그로 팬층 역시 두꺼워 논쟁도 자주 발생한다. 왕조는 그중에서도 관심도가 높은 대표적인 쟁점 중 하나인데 해당 구단간의 성적을 비교하는 민감한 주제다 보니 논란이 끊이질 않았다. 응원 팀에겐 관대한 기준을 다른 팀에겐 엄격한 기준을 대는 등 팬들부터 일관성을 지키지 않는 경우가 많았고 여기에 단발성 우승만 해도 과거의 성적과 연결시키며 왕조를 언급하는 등 용어를 남발하는 언론 역시 논란이 커지는 데에 일조했다. 논란은 후술.
하지만 해태와 삼성만큼은 야구팬들 모두가 이견 없이 왕조를 겪었다고 인정하며 각 팀이 한국시리즈 4연패[29] 를 달성한 시기를 지칭한다.
김응용 감독이 이끌며 한국시리즈 4연패를 달성한 팀이다. 1983년 첫 우승 이후 김성한을 주축으로 선동열, 이순철, 한대화가 가세하고, 기존의 김종모, 김봉연, 이상윤, 문희수 등이 힘을 더하며 1986년, 1987년, 1988년, 1989년에 우승을 차지해 한국시리즈 4연패를 달성한다. 당시 해태는 정규 시즌 성적만 놓고 보면 1위는 한 번뿐이고 2위를 세 번 기록하며 정규 시즌에선 압도적인 강팀이 아니었으나 포스트시즌에선 뛰어난 응집력을 발휘하며 4연패를 달성한다. 하지만 1990년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하여 5연패 달성은 실패로 끝나버린다.
연패가 끊어졌지만 해태는 이듬해부터 다시 우승을 하기 시작했고, 1997년까지 평균 2년마다 한 번 꼴로 우승을 거두며 여전히 당대 최강팀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삼성은 원년부터 상위권의 성적을 거두며 전통의 강호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한국시리즈 우승은 좀처럼 달성하지 못했다. 하지만 김응용, 선동열 감독을 거치며 준우승 징크스를 어느정도 해소했으며 2011년 류중일 감독 시대부터 본격적으로 도약하게 된다. 류중일 감독은 선발 야구, 믿음의 야구, 형님 리더십 야구를 표방했고, JOKKA 라인에 신인왕 배영섭, 타격 3관왕 최형우, 김상수의 각성, 윤성환의 부활 등으로 감독 부임 첫 해인 2011년 통합 우승을 달성한다. 거기에 아시아 시리즈에서 한국 구단 최초로 우승을 차지,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며 삼성 왕조의 서막을 알렸다. 이후 2012년에는 이승엽의 복귀와 이지영, 심창민, 정형식 등 유망주들의 맹활약으로 통합 2연패를 차지했고 2013년에는 조동찬, 권오준의 부상과 이승엽의 부진 등 여러 악재가 겹쳤음에도 리그 최초로 통합 3연패를 차지하며 언론과 팬들에게 왕조로 인정받았다. 2014년에도 삼성의 질주는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기자들의 업셋 예상을 보란듯이 뒤집으며 리그 최초로 통합 4연패까지 달성하기에 이른다.
여기까지가 삼성의 최전성기로 4년 동안 정규 시즌과 한국시리즈를 모두 제패하는 전무후무한 통합 4연패를 달성한다. 이 시기 투수진은 먹튀였던 에스마일린 카리대가 있긴 하지만 외인투수들도 평타에서 릭 밴덴헐크라는 대박까지 준수한 편이었고 윤성환, 장원삼, 배영수, 차우찬 등의 최상위권 선발진들과 안지만, 정현욱, 권혁, 권오준, 오승환, 임창용으로 이루어진 역대 최강의 불펜진이 철벽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타선에서는 대도 유망주인 김상수, 박해민을 앞세웠고 채태인, 최형우, 박석민의 3-4-5번 라인은 이승엽조차 6번 타자로 뛰게 만들 정도인 당시 최정상급 클린업중 하나였다. 여기에 2014년 영입한 야마이코 나바로는 공수주에서 흠잡을 데 없는 먼치킨급 능력을 보여주었다. 이처럼 당시 삼성은 그야말로 리그를 압도한 역대 최강팀이었다.
하지만 2015년 정규 시즌 5연패 후 2015년 한국시리즈 시작 전에 2015년 삼성 라이온즈 원정 도박 사건이 터지고 만다. 여기에 연루된 주축 투수들인 윤성환, 안지만, 임창용이 엔트리에서 제외되었고[30] 이 충격을 극복하지 못한 삼성은 준우승에 그쳤다. 사실 그 동안 확실한 주전들로 왕조를 유지해 왔지만, 팀 뎁스가 얇아져 가고 있는 시점[31] 이었으므로 리빌딩하기 적절한 시점에 내려왔다는 평도 많다. 여기에 모기업이 스포츠단의 자립을 요구하며 갑작스럽게 자금 지원을 크게 줄였고 그 여파로 중심 타선인 야마이코 나바로와 박석민이 타팀으로 이적한다. 마지막으로 프런트 측은 외국인 선수 영입 실패 등 자신들의 삽질을 오로지 류중일 감독의 탓으로 돌리는 언플을 하였고 2016 시즌을 9위로 마무리한 류중일 감독은 감독직에서 물러나고 만다. 7년 만에 포스트시즌 진출도 실패했으며 영원할 것 같았던 삼성의 시대는 저물게 된다.
4.3.1. 3연속 우승에 실패한 구단[편집]
과거에는 KBO의 왕조 계보가 해태-현대-SK-삼성이 주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2010년대 들어 현대, SK와 비슷한 성적을 올린 두산이 왕조인가에 대한 논쟁이 불거지면서 다음과 같은 요소들이 지적받았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정리하기 위해서는 왕조의 기준을 새롭게 정해야 할 필요가 있었고 그 결과 3연패라는 기준이 세워지게 되었다.4연패에 성공한 해태, 삼성을 3연패도 성공하지 못한 현대, SK와 같은 부류로 놓는 것이 적절한가?
현대, SK를 왕조로 인정한다면 유사한 성적을 올린 2002~2006년의 삼성은 왜 왕조로 인정받지 못하는가?
3연패는 쉽게 달성할 수 있는 기록이 아니다. 야구는 특급 선발이 전경기의 1/5 안팎만 출전하고 홈런왕 타자가 다른 8명의 타자와 같은 기회를 받는 등 에이스 위주의 경기가 불가능한 스포츠다. 그래서 우승팀의 승률이 6할보다 낮을수도 있고 하위팀의 승률이 4할을 넘을 수도 있으며 약팀이 강팀에게 우세를 보이기도 한다. 즉 팀간의 격차가 크지 않아[32] 연속 우승이 쉽지가 않다. 실제로 2연패를 달성한 7팀 중 3연패를 이룬 팀은 1980년대 해태, 2010년대 삼성 단 2팀뿐이다.
다른 의견으로 현대, SK의 성적을 근거로 5년간 3우승을 왕조의 조건으로 하자는 팬들도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다음과 같은 문제점들이 생기게 된다.
5년간 3우승은 성적 변동이 크지 않은 야구라는 종목의 특성과 계단식 포스트시즌을 사용하는 KBO 리그 환경 때문에 심심치않게 나올 수 밖에 없다. 과거에는 리그 역사가 짧아 이러한 사실이 주목받지 못했으나 더 많은 시즌이 진행되고 순위 데이터가 쌓인 결과 이러한 기준에 합리성이 떨어진다는 의견이 생기게 된 것이다.왕조 기간 동안 연속 우승이 단 한 번도 없을 수 있음. (우승/우승 실패/우승/우승 실패/우승)
두 팀의 왕조 시기가 겹칠 수 있음. (예: 2000~2004 현대 / 2002~2006 삼성)
34년 동안 일곱 번이나 나온 기록을 높게 평가 할 수는 없음.[33]
해태는 1990년 플레이오프에서 패하며 5연패에는 실패하였지만 기존의 선동열, 김성한, 이순철, 한대화 등의 핵심 전력이 여전했고 80년대 왕조의 막바지에 데뷔했던 이강철, 조계현이 주축으로 성장하고, 1990년대 야수 sWAR 1위를 기록한 홍현우와 1993년에는 투타의 핵심을 이룬 이종범과 이대진이, 1990년대 중후반에 임창용이 가세하며 또 다시 전성기를 만들어 가며 왕조의 명맥을 이어나갔다. 4년 연속 우승하던 1980년대 중후반만큼은 아니어도 스타선수들을 중심으로 선수진을 이끌며 1991년부터 1993년, 1996년, 1997년까지 1990년대에 우승을 네 번 했다. 무엇보다 4연패 시절에는 통합 우승이 한 번뿐이고, 나머지는 정규 시즌 2위의 성적으로 우승한거라 단기전에만 강했다는 인상을 주었지만, 1990년대의 우승은 모두 통합 우승이었다.
하지만 1997 시즌 종료 후 1997년 외환 위기가 닥쳐오면서 한국시리즈 우승 일주일 만에 해태그룹이 부도를 선언할 정도로 경영난이 심각해지자, 현금 트레이드를 통해 이종범을 일본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곤즈로 진출시키고, 임창용, 이순철, 조계현을 삼성에 팔아넘기며, FA였던 이강철, 홍현우를 놓쳐 버린다. 결국 1998년 포스트시즌에 오르지 못한 것을 시작으로 기아자동차가 구단을 인수하기 전까지 하위권을 전전하기 시작한다.
김재박 감독이 이끌었던 팀. 정주영 회장은 대통령 선거에서 낙선하자 분위기 쇄신을 위해 스포츠에 눈을 돌렸는데 이때 탄생한 팀이 현대였다.[34] 분위기 쇄신이 목적이었으므로 현대는 가능한 한 짧은 시간 안에 강팀이 되어야 했다. 프런트 측은 삼성과 머니 게임을 벌여가며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심각한 재정난을 겪었던 해태, 쌍방울의 선수와 유망주 그리고 2000년부터 도입된 FA 제도를 통해 각 팀의 에이스급 선수들을 싹쓸이 했고 박재홍, 박경완, 임선동, 정명원, 정민태, 박진만과 같은 걸출한 실력을 갖춘 선수를 확보했다. 이 외에도 다른 팀 내에서 입지가 흔들리거나 갈등을 겪었던 전준호, 심정수, 심재학, 박종호, 송지만 등을 트레이드를 통해 영입하며 KBO 구단을 통틀어 역대 최고급 선발 라인업을 갖추게 되었다. 특히 양대 리그였던 2000년에는 정민태, 김수경, 임선동이 나란히 18승을 올리는 등 역대 최고급 선발진을 갖게 된다. 선발뿐만 아니라 계투진들도 뛰어났는데, 조웅천, 조용준, 정명원, 신철인, 이상열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투수력을 바탕으로 당시 기준으로 시즌 최다 승인 91승을 거두기도 했다.[35] 이 시즌에 기록한 0.695의 승률은 역대 시즌 승률 3위이며, 전/후기 리그 체제가 아닌 단일 시즌 기준으로는 역대 시즌 승률 1위의 기록이다.
현대는 1998년, 2000년, 2003년, 2004년까지 3회의 통합 우승과 양대 리그 당시 1회 우승[36] 으로 통산 네 번 우승했다. 하지만 2001년 정주영 회장의 사망과 하이닉스의 자금난 등이 겹치면서 주축 선수들이 모두 다른 팀으로 팔려나갔고 2007 시즌 이후 팀이 해체되어 최종 4회 우승으로 팀 역사를 마감한다. 그 뒤 신생 구단인 서울 히어로즈가 현대 선수단을 인수했다.
한국시리즈에서 우승 없이[37] 준우승만 6차례 기록했던 삼성은 최후의 수단으로 해태의 김응용 감독을 영입하지만 2001년 또 다시 준우승에 그치고, 그해 겨울 트레이드로 팀을 떠났던 양준혁을 FA로 재영입하고 SK에 김기태, 김동수, 김상진, 김태한, 정경배, 이용훈을 주고 좌완투수 오상민과 유격수 틸슨 브리또를 받아오는 6대2 트레이드를 단행한다. 그리고 대망의 2002년 이승엽, 마해영의 백투백 끝내기 홈런으로 마침내 창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다. 이후 2003년 준PO에서 패하고 2004년 우승에 실패한 삼성은 김응용 감독을 사장으로 승진시키고 선동열 수석코치를 감독으로 선임한다. 그리고 FA로 심정수, 박진만을 영입하며 막강한 전력을 구축한 뒤 2005년, 2006년에 통합 2연패를 달성하며 해태, 현대에 이어 세 번째로 한국시리즈 2연패를 달성한 구단으로 자리매김한다. 하지만 2007년부터 3년 동안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하며 중위권에 머물렀고 2010 시즌을 끝으로 김응용, 선동열 모두 삼성을 떠나게 된다.
이 시기 삼성은 현대, SK와 비교해도 전혀 밀리지 않는 성적을 기록했지만 언론과 팬들로부터 왕조로 인정받지 못했는데, 그 원인으로는 FA를 싹쓸이하면서 돈성이라는 안 좋은 이미지를 구축한 점,[38] 2000년대 초중반은 한국 야구의 암흑기여서 인기가 저조했기 때문에 그 시절의 삼성 라이온즈에 대한 관심도가 낮았던 점, 선동열의 지키는 야구가 삼성 팬들에게 지지를 받지 못했던 점[39] 등이 있다.
SK는 하위권을 전전하기도 했지만 나름 리빌딩도 어느 정도 완료했고 준우승의 공로가 있는 조범현 감독과의 재계약을 포기하고 김성근 감독을 선임한다. 김성근 감독은 1점을 짜내기 위한 작전과 필요하다면 도발을 걸어 상대 팀의 멘탈을 흔드는 등 승리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야구를 했다. 이는 약점이 없는 팀, 포기하지 않는 팀이라는 찬사와 비매너 야구, 번트 야구라는 비난을 동시에 받으며 논란의 중심이 되는 원인이 되었지만 4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진출해[40] 2007년, 2008년, 2010년에 통합 우승을 차지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 때 주요 선수들로 김광현, 채병용, 송은범 등이 선발을 이끌었고 정대현, 정우람, 윤길현, 이승호, 전병두, 고효준, 김원형, 조웅천 등이 불펜을 책임졌다. 타선에선 박경완, 김재현, 박재홍, 이호준, 박정권, 김강민, 최정, 정근우, 나주환, 박재상 등이 있었다.
하지만 2011년 시즌 중 프런트는 지나치게 전권을 요구하는 김성근을 중도 경질시키고[41] 이만수에게 감독 대행을 맡긴다. 사실 성적 때문에 부각이 덜 되었지 당시 SK는 내부적으로 잡음이 많았었다. 김성근과 이만수의 갈등, 프런트와 현장의 갈등 등 코칭스태프들이 따로 움직였고 팀 분위기는 무너질 수 밖에 없었다. 결국 2011년, 2012년 연속 준우승 이후 2013년에는 6위로 추락하며 전성기를 마감하게 된다.
송일수 감독을 경질하고 김태형 감독을 선임한 두산은 원정 도박 사건으로 투수진이 붕괴된 삼성을 상대로 2015년에 업셋 우승을 차지하고 2016년에는 통합 우승을 달성하며 2연패에 성공한다. 그러나 2017년에는 준우승에 그쳤고 2018년에는 압도적인 정규 시즌 우승[42] 을 거뒀음에도 SK에게 충격적인 업셋을 당하며 2년 연속 준우승을 기록했다.[43] 하지만 2019년에는 후반기 한 때 9게임차까지 벌어졌던 SK를 서서히 따라잡기 시작했고 시즌 최종전에 승리하면서 정규 시즌 우승에 성공 작년 한국시리즈의 패배를 간접적으로 설욕한다. 이후 2019년에도 통합 우승을 달성했다.
2020년에는 3위로 정규 시즌을 마치고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하였으나 준우승에 그친다. 이후 두산의 행보는 부정적으로 흐르고 있는데 모기업의 상황이 좋지가 않고 그 여파로 라울 알칸타라, 오재일, 최주환, 크리스 플렉센이 타팀으로 이적을 해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1년, 정규 시즌 4위로 와일드카드 결정전부터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해 준우승을 거두며 KBO 리그 최초로 7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2022년에는 계속되는 선수 유출로 인해 결국 9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한국시리즈 연속 진출도 종지부를 찍었으며 김태형 감독은 계약만료로 물러났다.
4.4. 대만[편집]
- 슝디 엘리펀츠: 1992~1994, 2002~2004
2010년대 후반 압도적인 전력으로 왕조를 탄생시켰다. 2017년 전기리그부터 2019년 전기리그까지 정규리그 5연속 우승을 비롯하여 2017년과 2018년에는 통합 우승을 차지한다. 시기를 넓힐경우 2012년부터 2019년까지 8시즌 가운데 6번 타이완 시리즈의 정상에 올라 2010년대 NPB의 소프트뱅크에 비견될 만큼 압도적인 전력을 뽐냈다.
4.5. 호주[편집]
- 브리즈번 밴디츠: 2015~2019
5. 아이스하키[편집]
5.1. 북미[편집]
- 舊 오타와 세너터스: 1919~1928
- 토론토 메이플 리프스: 1946~1951, 1962~1967
- 디트로이트 레드윙스: 1949~1955
- 레 카나디앵 드 몽레알: 1953~1979
- 뉴욕 아일런더스: 1980~1984
- 에드먼턴 오일러스: 1984~1990
6. 축구[편집]
아래 수많은 유럽 리그의 왕조들이 서술되어 있지만 대부분 자국 리그 한정이고, 유러피언컵과 그 후신인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기준으로 한 축구 왕조[44] 는 시대 순서대로 레알 마드리드 (1955~1960), 아약스 (1970~1973), 바이에른 뮌헨 (1973~1976), 리버풀 (1976~1984), AC 밀란 (1987~1994), 바르셀로나 (2008~2015), 레알 마드리드 (2015~2018)까지 6팀이 주로 언급된다.[45]
6.1. 잉글랜드[편집]
- 리버풀 FC: 1972~1985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1991~2003, 2007~2013
- 맨체스터 시티 FC: 2018~현재 진행 중
6.2. 스페인[편집]
- 레알 마드리드 CF: 1954~1965, 1986~1990, 2014~2018
1960년대 저승사자 군단의 시대가 막을 내리자 이번에는 스페인 국내 선수들을 위주로 팀을 구성했다. 이 정책은 1980년대까지 이어져 이른바 '독수리 5형제'가 결성되었고 울리 슈틸리케, 첸도, 우고 산체스, 호세 안토니오 카마초, 호르헤 발다노 등 뛰어난 실력의 선수들을 필두로 라리가 5연패, UEFA컵 2연패를 달성해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했다.
2010년대에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중심으로 세르히오 라모스, 루카 모드리치, 마르셀루, 토니 크로스 등과 함께 또 한번의 왕조를 구축하였다. 2013-14 시즌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의 지휘 하에 구단 역사상 10번째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차지한 것을 시작으로, 지네딘 지단이 지휘하기 시작한 2016년 1월부터 레알 마드리드는 UEFA 챔피언스 리그 3회 우승, 라리가 1회 우승, UEFA 슈퍼컵 2회 우승, FIFA 클럽 월드컵 2회 우승,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1회 우승을 달성하였다. 특히 2015-16 시즌부터 2017-18 시즌까지의 3연패를 포함해 2013년부터 2018년까지 챔피언스 리그에서 5년간 4차례 우승하는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챔피언스 리그가 현행 체제로 개편된 이후 그동안 2연패를 달성한 팀이 전무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레알 마드리드의 이러한 업적이 얼마나 위대한지 알 수 있다. 팀의 주축 멤버인 루카 모드리치는 레알 마드리드의 챔피언스 리그 3연패를 NBA 시카고 불스와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의 쓰리핏과 비교하며 레알 마드리드가 축구의 왕조라고 생각한다고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그러나 지단이 자진 사임하고 호날두가 이탈리아의 유벤투스로 떠나며 레알 마드리드의 두 번째 왕조는 막을 내린다.
- FC 바르셀로나: 1990~1994, 2008~2015
바르셀로나의 두 번째 왕조는 축구사 역대 최강의 팀 중 하나로 평가받는 팀이다. 이 기간 동안 사상 최초의 시즌 6관왕을 포함해 2번의 트레블과 1번의 더블을 해냈다. 2008년 펩 과르디올라가 부임한 후 라 마시아의 선수들을 적극 활용하기 시작하며 리오넬 메시를 중심으로 사비 에르난데스,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카를레스 푸욜, 세르히오 부스케츠, 제라르 피케, 다니 알베스, 빅토르 발데스, 하비에르 마스체라노가 팀을 구성하며 축구계의 헤게모니를 바꾼 전술인 티키타카를 사용하며 역사상 가장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축구계를 휩쓸었다. 2012년 펩이 떠난 이후 약간의 부침을 겪었지만 2014년 루이스 엔리케가 부임하고 네이마르, 루이스 수아레스가 영입되며 세기의 공격진 MSN을 구축하였고 2014-15 시즌 역사상 최초로 두 번의 트레블에 성공했다. 이 기간 동안 바르셀로나는 무려 23개의 우승컵을 가져갔다.
- 세비야 FC: 2013~2016
6.3. 이탈리아[편집]
- 유벤투스 FC: 1930~1935, 1975~1986, 2011~2020
- 토리노 FC: 1942, 1945~1949
-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1960~1967, 2006~2010
- AC 밀란: 1987~1994, 2002~2007
밀란 제네레이션 이후 한동안 부침을 겪다가 안드레아 피를로, 카카, 파올로 말디니, 알레산드로 네스타 등으로 대표되는 뉴 밀란 제네레이션으로 또 한번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5년간 챔피언스리그 우승 2회, 준우승 1회, 4강 1회, 8강 1회를 기록하여 현재까지 밀란의 마지막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룬 시기가 바로 이 시기.
6.4. 독일[편집]
- FC 바이에른 뮌헨: 1972~1976, 2013~
-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 1975~1977
6.5. 네덜란드[편집]
- AFC 아약스: 1965~1973
- PSV 에인트호번: 1986~1989
6.6. 프랑스[편집]
- 올랭피크 리옹: 2002~2008
- 파리 생제르맹 FC: 2013~
6.6.1. 논란이 있는 구단[편집]
-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1989~1993
그러나, 마르세유의 영광은 승부조작과 약물의혹 등의 스캔들로 심각하게 얼룩지게 된다.
1992-93 시즌 마지막 경기 상대인 발랑시엔 FC와의 경기에서 발랑시엔 선수들이 자수하는 바람에 마르세유의 승부조작 사실이 밝혀졌다. 당시 발랑시엔 선수인 자크 글리스만이 감독인 보로 프리모락에게 마르세유 선수인 장자크 에들리에게 자신이 매수당했다고 고백한 게 계기가 되어 드러났다. 이후 호르헤 부루차가, 크리스토프 로베르도 마르세유에 매수당했다고 고백하면서 일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이들은 에들리가 발랑시엔 선수들에게 경기에서 져줄 것과 부상 위험을 줄여달라고 부탁했다. 당시 마르세유는 5월 20일에 발랑시엔과 경기를 치르고 엿새 뒤에 챔스 결승전을 치르고자 했다. 이로써 이들은 손쉽게 리그 우승을 차지하고, 최상의 컨디션으로 유럽 정상을 노리겠다며 검은 돈을 사용한 것이다. 이에 대한 처벌로서 마르세유는 1994년 2부 리그로 강등되고 1992-93 리그 우승 타이틀을 박탈당했으며, UEFA 챔피언스리그, UEFA 슈퍼컵, 인터컨티넨탈컵 등의 각종 국제대회 참가 자격을 박탈당했다.
또한 2006년 당시 마르세유의 선수인 장자크 에들리가 자서전에서 당시 루디 푈러를 제외한 선수 전원이 금지 약물을 도핑 후 경기에 임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UEFA는 공소시효인 10년이 지났다는 것을 근거로 무혐의 처분하였다. 또한 당시 도핑 테스트에서는 음성 반응이 나왔고 해당 자서전 발간 이후 마르셀 드사이를 비롯하여 동료 선수들 또한 논란을 정면으로 반박하기도 했다. 약물의혹은 확실한 증거를 찾지 못했기 때문에 1993년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은 공식적으로 인정되고 있고, 리그 우승은 승부조작으로 1992-93 시즌만 박탈된 것이다. 승부조작과 약물의혹 스캔들이 없었더라면 왕조라는 이름에 걸맞는 팀이라 할 수 있다.
6.7. 대한민국[편집]
- 일화 천마: 1993~1995, 2001~2003
- 전북 현대 모터스: 2014~2021
7. e스포츠[편집]
7.1. 리그 오브 레전드[편집]
LoL e스포츠에서의 왕조는 이전까지는 기성 스포츠와 같이 국제 대회나 리그 대회를 각각 나눠 3연패를 거둔 '클럽 대항전' 팀을 왕조로 통칭하고 있었으나, 2023년 월즈 이후부터 국내 커뮤니티를 필두로 이전과는 별개의 기준으로 왕조를 구분해야 한다라는 목소리가 시작되었다.[67]
그 중 라이엇 게임즈 주관 메이저 최고 대회인 월드 챔피언십이 지역 리그들에 비해 비교가 불가할 정도로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고, MSI 역시 일반적인 리그와는 위상이 다르다는 점에서 LoL e스포츠의 특성상 지역 리그 3연패를 한다고 해도 국제대회에서 그에 맞는 호성적을 거두지 못한다면 왕조로써 인정해주지 않겠다라는 분위기가 급속도로 퍼지기 시작했다.
7.1.1. 대한민국[편집]
- T1: 2015 스프링~2017 MSI
2013-14 윈터와 2014년 올스타 인비테이셔널 전승 우승을 제외한 이후부터의 부진으로 반짝 활약이냐는 부정적인 시선들이 있던 상황에서. 단일팀으로의 통합과 LCK가 풀리그제로 전환된 2015 스프링부터 페이커를 필두로 벵기, 뱅, 울프가 맹활약, 탑에서도 절정의 기량에 달한 마린이 라인을 초토화시키고, 식스맨으로는 이지훈의 활약까지 더해져 많은 부분에서 활약이 두드러졌고 우승을 차지했다. 2015 MSI 결승에서 삐끗해 준우승 이후 2015 서머에서 다른 팀들을 모두 찍어누르고 우승을 차지했다. 이어진 월즈에서도 단 1패만 허용하고 우승하며 역대 단일시즌 최강팀 중 하나로 손꼽히는 기록을 남겼다. 이후 마린과 이지훈이 팀을 떠나고 벵기의 폼이 떨어지며 이전만큼의 포스를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새롭게 영입한 탑 라이너 듀크, 정글러로 블랭크가 팀에 적응하면서 점점 경기력이 좋아졌다. 그리고 포스트시즌 도장깨기에 성공하며 2016 스프링에서도 우승컵을 거머쥐고 LCK 최초의 3연속 우승을 달성함으로써 이후부터 롤판을 휘어잡는 LCK의 첫 왕조를 열었다. 이어진 MSI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2016 서머에서는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했지만, 월즈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최초의 월즈 연속 우승팀이 되었다. 2017년에는 피넛과 후니를 영입하고 2017 스프링-2017 MSI를 우승하며 기세를 올려 왕조의 건재함을 알렸다. 고로 이 시기의 SKT는 단순히 자국리그 쓰리핏 뿐만 아니라 후술할 2017년까지 국제대회 4연속 우승[69] 이라는 전무후무한 업적을 세움으로써 LCK를 넘어 세계적인 왕조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러다가 2017 리프트 라이벌즈 준우승과 서머 준우승을 기록했고, 월즈에서는 페이커의 원맨캐리로 결승에는 진출했지만 전년도 준우승팀인 삼성에게 패배하게 되고 글로벌 인준 코멘터리를 통해 SKT 왕조가 끝났음이 공식적으로 언급되었다.
- Dplus KIA: 2020 서머~2021 서머
그리고 2020년에 들어 고스트를 영입하고, 베릴이 각성하며 하체의 약점을 지우고, 2020 MSC에서 얻은 교훈으로 팀 전체가 2020 서머에 각성했다. 이 당시 담원은 거의 대부분의 경기를 20분대에서 마무리하는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정규시즌을 지배했고, 이후 결승에서도 DRX를 압도하며 서머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월즈에서도 세계 최강팀의 무력을 선보이며 우승해 3년 만에 LCK의 1부 리그 지위를 되찾아왔다. 이후 너구리가 FPX로 이적하고 FPX에서 매우 좋지 않은 폼을 보이며 은퇴하려던 칸과 김정균 감독을 영입했다. 이는 확실한 전력 악화로 여겨졌으나 그러한 여론을 불식시킬 정도로 여전히 압도적인 무력을 자랑하며 2021 스프링에서 재차 통합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MSI에서 준우승하고 서머 1라운드에서 주춤하긴 했으나 다시 폼을 되찾고 3시즌 연속 통합 우승이라는 최초의 기록과 함께 새로운 LCK 왕조를 세웠다. 이어진 2021 월즈에서도 역대 3번째 그룹 스테이지 전승을 기록하고 RNG, SKT, 삼성에 이어 역대 4번째로 2년 연속 월즈 결승 진출이라는 대기록을 세웠으나 준우승을 기록했다. 이전의 15~17 SKT에 비해 국제전 성과가 빈약하고 글로벌 해설 코멘터리를 통해 왕조로 인증되지 않았지만,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LCK-월즈에서 최정상에 올랐다는 점, 6번 연속으로 메이저 대회 결승에 진출했다는 점, 그리고 최초의 LCK 3연속 통합 우승을 기록했다는 점에서 국내 리그 쓰리핏에 어울리는 기록을 세운 팀으로 남게 되었다.
7.1.2. 중국[편집]
- Edward Gaming: 2014 스프링~2015 MSI
- JDG Intel Esports Club: 2022 서머~2023 서머
7.1.3. 유럽[편집]
- G2 Esports: 2019 스프링~2020 서머
하지만 그룹 스테이지에서 LCK의 2번 시드인 아프리카 프릭스를 잡아내며 기대감을 높이더니 결국 순위 결정전에서 플래시 울브즈를 꺾고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8강에 진출하는데 성공했다. 8강 상대는 그랜드슬램을 노리던 RNG로 많은 전문가들은 당연히 RNG의 낙승을 예상했지만 원더와 퍽즈의 신들린 캐리쇼에 힘입어 RNG를 꺾고 4강에 진출, LOL판 역사상 최고의 업셋을 일으키며 암흑 군주라는 오명을 씻어냈다.
이후 2019년에는 라이벌 팀인 프나틱의 캡스를 데려오고 퍽즈를 바텀 라이너로 내리는 등 유럽 최강 라인업으로 똘똘뭉친 2기 라인업이 완성되었다. 변칙적인 전략과 매우 넓은 챔프폭을 바탕으로 스프링과 MSI까지 우승을 차지하면서 팀 역사상 메이저 국제 대회 첫 우승을 기록했고, 안방 호랑이에 불과하다는 저평가를 받던 1기 시절때와는 달리 프나틱의 시즌 1 챔피언십 우승 이후로 8년만에 메이저 대회 우승을 기록한 유럽팀이 되었다. 이어서 서머에서도 우승을 달성하고, FPX에게 패배하기 이전까지는 월드 챔피언십에서도 결승까지 진출하는 등 역대 최초의 캘린더 그랜드 슬램[71] 이라는 대기록에 근접했었다. 그리고 2020 스프링 때는 퍽즈와 캡스를 미드-바텀 라인으로 서로 스왑하는 강수를 보이면서도 다시 우승을 차지하고, 서머에서는 원래 라인으로 돌아가 불안함을 노출하는 상황에서도 두 번째 4시즌 연속 우승을 달성하며 LEC 역사에 길이 남을 팀으로 남게 되었다.
7.1.4. 논란이 있는 팀[편집]
본인들 지역 리그 내에서 3연속 우승을 차지할 경우, 이전까지는 왕조 건설에 성공했다라고 평할 수 있었으나, 앞선 팀들과 비교해봤을때 같은 선상에 놓기 어렵거나 여러 단점들이 튀어나오는 팀들 위주로 작성되어 있다.
- Fnatic: 2013 스프링~2014 스프링
LEC 역대 최다 결승 진출팀이자 롤드컵 역대 최다 진출팀으로 유럽 최고의 근본팀으로 불린다. LCS EU가 창설되자마자 3회 연속 우승을 이뤄내며 리그 오브 레전드 e스포츠판 최초의 왕조를 이룩했지만, 2013 월즈 4강과 2014 월즈에서 그룹 스테이지로 탈락하게 되고, 로스터 전면 변경으로 팀에 대격변이 일어나게 된다.
- G2 Esports: 2016 스프링~2017 서머
- Team SoloMid: 2016 서머~2017 서머
2016 서머 정규시즌에서 1옵션 비역슨의 캐리와 특급신인 바이오프로스트의 활약에 힘입어 팀원 전체적으로 좋은 폼을 보여주며 우승을 차지했다.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이며 17승 1패를 기록했고, 포스트시즌에서도 경쟁팀을 체급 차이로 찍어눌렀다. 아직까지도 LCS 역대 최강의 단일시즌을 보낸 팀으로 손꼽힐 정도.[72] 북미 역대 최강팀이라는 평가를 받고도 월즈에서 조별리그 3승3패로 탈락해버렸지만 그래도 유럽팀은 이겼다. 17 스프링에서는 전시즌만큼 압도적인 포스를 보이지는 못했으나 여전히 북미팀 중 가장 뛰어난 개인기량을 가졌다는것을 증명하며 경쟁자 C9을 제치고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17 서머에는 초반에 휘청했음에도 팀원들이 폼을 되찾으며 아슬아슬하게 정규시즌을 우승했고, 포스트시즌에서 여유롭게 쓰리핏을 달성하면서 LCS NA 첫 왕조를 구축했다. 다만 이렇게 북미 최초의 왕조를 구축해놓고 MSI, 월즈 모두 타이 브레이커에서 패배하여 그룹 광탈을 기록하며 자존심을 구겼다.
- Team Liquid: 2018 스프링~2019 서머
하지만 2018 스토브리그에서 임팩트, 더블리프트 등 세계적인 레벨의 선수들을 영입하고 순식간에 팀의 체급과 벨류를 급격하게 끌어올렸다. 그간 소수의 몇팀이 군림하던 우승 경쟁 체제를 끊을 북미 팀으로 평가받았다. 18 스프링 정규시즌에는 기대만큼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으나 포스트시즌에서 4강 징크스를 뚫고 타팀을 압도하며 팀 첫 우승을 차지했다. 18 서머에서 메타 대격변과 북미팀들의 메타 적응실패로 대혼돈이 일어나는 가운데 더블리프트의 캐리를 앞세워 연속 우승을 거머쥐었다. 이렇듯 2018년 새로운 북미의 지배자가 되었으나 MSI와 월즈에서 크게 실패하였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2019 스토브리그에서 코어장전과 젠슨을 영입하였다. 18년보다 안정적인 경기력으로 정규시즌 1위를 차지했으며, 결승에서는 패패승승승으로 기사회생하며 3연속 우승을 차지하고 LCS의 왕조를 새로 세웠다. 이렇게 진출한 MSI에서 그룹 스테이지 내내 헤매다가 4위 막차를 타며 기대가 없었으나, 4강에서 당시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이던 IG를 3:1로 때려잡으며 결승에 진출했다. 결승에서 셧아웃 패배하고 준우승하긴 했으나 4강에서의 업셋은 18년 롤드컵 RNG와 G2의 8강과 함께 역대 롤판 최고 업셋으로 회자되고 있다. 이어진 19 서머에서 계속되는 포스트시즌 접전을 뚫고 4연속 LCS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했지만 해당 기간 내의 월즈에서의 성적이 매우 좋지 않다.
- T1: 2019 스프링~2020 스프링
- Royal Never Give Up: 2021 스프링~2022 MSI
이 팀은 여타 3회 리그 우승 팀과는 다르게 16~17 SKT와 마찬가지로 MSI 연속 우승을 기록했다는 점에서 해당 목록에 등재되었다. 특히나 2022 MSI 우승 직후 공식 글로벌 채널 마지막 장면에 나온 삽화 사진에서 "The Dream Chaser, The Dynasty Builder 번역해서 왕조 건설이라는 꿈을 쫒는 팀"으로 표기될 정도로[73] , 향후 행보를 어떻게 보내냐에 근거해 왕조 건설 여부를 주목받던 팀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이 팀이 봄이 지나고 나면 성적이 떨어지고 힘을 못쓰는 팀이라는 오명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는 것이다. 또한 2021~22년까지 MSI와 월즈에서 각종 논란과 사건사고를 일으킴으로써 전세계적인 악당팀이 되었고, 월즈 이후에는 중국 내부 여론에도 온갖 비하가 넘쳐날정도로 각종 오명을 포함해 비판과 비난들을 한꺼번에 받다가, 결국 2023년에는 몇몇 선수를 뺴고 팀 로스터가 와해되었다.
- Gen.G Esports: 2022 서머~2023 서머
이후 2023 스토브 리그에서 룰러와 리헨즈가 나가고, 그 빈자리를 페이즈와 딜라이트로 채우면서 시즌을 시작하게 된 젠지는 스프링 시즌 다시 한 번 T1을 꺾으며 우승을 차지했다. 이어 MSI에서 T1에게 2:3, BLG에게 0:3으로 패배해 국제전 잔혹사를 끊지 못했지만, 서머 시즌에서 다시 한번 T1을 상대로 결승전에서 승리해 T1, 디플러스 기아에 이어 LCK 3연속 우승을 차지하고 작년에 이어 LCK 1시드 자격으로 자국에서 열리는 월즈를 맞이하게 된다.
그렇게 시작된 월즈에서 스위스 스테이지 3R만에 단 한세트도 내주지 않고 녹아웃 스테이지로 진출했다. 정말 이 과정에서 보여준 경기력도 매우 좋았기에 이번에야말로 국제전 잔혹사를 끊을 수 있을거라고 많은 이들이 기대할 정도였고, 특히 상대가 스위스 스테이지를 간신히 뚫어낸 BLG로 결정되고 같은 브라켓에 NRG와 WBG가 포함되자 최소 결승까지는 쉽게 갈 수 있을거라고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예상했다.
그러나 국내 전문가들이 탕후루라는 별칭으로 부르던 조에 배정되었던 젠지가 조기에 탈락하게 되자 온갖 비판, 비난, 조롱을 들으면서[74][75] 시즌을 마무리하게 되는 그림으로 이어졌다. 8강 1세트부터 시작되었던 불길한 조짐에 화룡점정을 찍은 2세트 럼자오자레, 2021년 4강 EDG전이 떠오르는 '5연 자르반', 패배한 세트마다 럼블, 자르반, 오리아나 상체 조합을 연속으로 내주는 희대의 막장 밴픽, 전반적인 젠지 선수들의 경기력 저하와 이해할 수 없는 우틀않과 졸전을 보인 끝에 BLG에게 2:3으로 패배, 더 나아가 나진 화이트 실드 이후로 3315일만에 한국팀이 5중국인 팀에게 패배하는 일까지 벌어지게 되었다.
고로 2022-23 젠지는 22 서머 우승과 그 해 스토브 리그에서 상체를 그대로 은존시키면서 하체를 신예들로 구성해 그 해의 리그를 전부 제패한 쓰리핏 팀으로 남게 되었지만, 국내를 호령한 것과는 달리 국제전에서 기대치에 상응하는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사실이 곧장 드러났다. 또한 그동안의 역사를 통틀어 LCK 1시드 자격으로 월즈에 진출했던 팀들 중 가장 최악의 팀이라는 오명까지 뒤집어쓰게 되었고, 이후 스토브리그에서 쵸비와 페이즈를 제외한 기존 선수들이 팀을 떠나게 되었다.
8.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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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three" + "repeat"의 언어유희를 이용한 합성어[2] 사실 이로 인한 문제들 중 가장 큰 문제는 NBA 최초의 슈퍼스타였던 마이칸이 어느 팀에서도 영구결번이 되지 못했었다는 점이다. 마이칸은 위태로웠던 신생 NBA를 자리잡게 한 주요 인물 중 한 명이었고 농구의 여러 규칙 (3초룰, 24초 샷클락, 골텐딩 등)을 바꾼 장본인이었다.. 결국 조지 마이칸의 영구결번은 재지정되었다.[3] 러셀이 은퇴하고 1974년과 1976년에 2번의 우승을 더했다. 총 8회 우승.[4] 이후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가 2015-16 시즌에 73승으로 기록을 갱신한다.[5] 후술할 2016-17 시즌의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와 비교가 많이 이루어진다.[6] 이후 마이애미 히트로 이적하여 2006년에 우승을 추가하였다.[7] 10년 정도로 잡는 경우가 많다.[8] 샌안토니오 스퍼스가 두 기준을 모두 충족할 수 있다. 별도의 침체기없이 20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플레이오프를 개근하고 그 사이 6번의 파이널 진출, 5번의 우승을 차지했다. 또 연속 우승은 없지만 밀레니엄 레이커스가 주춤한 사이 03, 05, 07 징검다리로 5년에 걸쳐 3차례 우승을 차지했기에 99년 우승까지 포함해 9년동안 4번의 우승이라는 단기간 동안 우승을 많이 차지한 팀에도 충분히 포함될 수 있다.[9] 물론 80년대에 서부에 레이커스 이외에 2번이나 파이널에 진출한 휴스턴 로키츠도 있었지만, 2번의 파이널 진출은 상대적으로 쉬운 서부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 한 것이지 실질적으로 동부에 있었으면 정규 시즌 성적으로는 중위권 정도의 팀이였다. 보스턴, 필라델피아, 디트로이트 이외에 밀워키 벅스랑 비교해도 실질적인 전력이 아래라고 보는게 더 타당했다. 그리고 로키츠는 래리 버드를 앞세운 셀틱스와 파이널에서 2번 붙어 모두 졌다.(81, 86)[10] 이후 토론토 랩터스로 이적하여 2019 파이널에서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11] 해당 기간의 정규 시즌에 1133승 459패로 승률 71.2%[12] 우승을 차지한 1998-99 시즌에는 50경기의 단축시즌 체제였으며 이때 스퍼스는 정규 시즌에 37승을 거두었다. 그리고 2011-12 시즌은 66경기의 단축시즌이지만 정규 시즌에 50승을 거두었다.[13] 그리고 포포비치 체제하에서 스퍼스는 22년 연속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였다.[14] 2005-06 시즌부터 5시즌 동안 정규 리그에서 4번, 챔피언 결정전에서 2번 우승을 한다.[15] 2015-16 시즌 정규리그는 압도적 1위 우리은행과 연패로 6위가 된 KDB생명을 제외한 나머지 4구단이 2, 3위를 놓고 플레이오프 경쟁을 벌이는 구도가 되었다.[16] 슈퍼리그시절부터 포함하면 9연속 우승[17] 7연속 우승은 한국 프로 스포츠 사상 최장 연속 우승 기록이다.[18] 1936~1939 시즌에 4연패, 1949~1953 시즌에 5연패[19] 1998~2000 시즌에 3연패[20] 20회 우승은 양키스를 제외하면 메이저 리그에서 아무도 달성하지 못한 기록인데 양키스는 이 기간 동안에만 20회 우승을 달성했다.[21] 이 엄청난 성적은 드래프트 도입 전 엄청난 인기로 얻은 자금으로 좋은 선수들과 유망주들을 쓸어모아 이뤄낸 것으로, 1965년 이후 드래프트 도입으로 자금력으로 유망주 독식이 불가능해진 것이 양키스의 독주를 끊는 것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22] 한가지 실예로 2001년 월드시리즈에 진출하지만 7차전 혈투 끝에 마무리투수인 마리아노 리베라가 애리조나의 루이스 곤잘레스한테 끝내기안타를 내주며 패했다.[23] 1972~1974 시즌에 3연패[24] 단일 리그 시절, 현재 센트럴 리그 우승과 동급.[25] 1986~1988 시즌에 3연패, 1990~1992 시즌에 3연패[26] 세이부 홈 구장은 도쿄에서도 열차로 한 시간 정도 가야 하고, 사이타마 인구 밀집 지역에서도 거리가 있었다. 한 마디로 성적이 안 나오면 관중 수익이 폭망한다는 것.[27] 아키야마 코지, 기요하라 카즈히로, 오레스테스 데스트라데.[28] 소프트뱅크는 2003년 우승 후 2004년부터 2010년까지 7년 중 6회나 A클래스에 들었으며 그 중 3번은 페넌트레이스 1위였음에도 불구하고 번번이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 탈락해 단 한 번도 일본시리즈에 진출하지 못하며 타 팀 팬들로부터 가을의 풍물시라는 조롱이나 받는 신세였는데, 2011년 그 징크스를 깨고 통합 우승을 달성했다.[29] 삼성은 통합 4연패[30] 아직 조사 중인 사건을 두고 언론에서 인민재판식으로 십자포화를 날려대니 도저히 엔트리에 포함시킬 수가 없었다.[31] 예전에는 2군 팜이 두터웠다고 평가 받았으나 4연패로 인해 신인 지명 순위가 계속 밀렸고 우수한 유망주를 픽할 수 없었다. 2015년 2차 드래프트가 그 증거로 삼성 2군은 타팀에 비해 유출이 적었다. 타팀도 삼성 2군을 높게 평가하지 않았다는 것.[32] 다른 프로 종목은 승률 차이가 훨씬 크다. 농구와 배구는 피지컬로 학살하기 쉬운 특성 때문에, 축구는 1류 선수 싹쓸이가 가능한 개방형 리그 특성 때문에 극단적인 경우 무패 우승팀이 나오기도 한다.[33] 1986년부터 2019년까지 해태, 삼성이 2번 현대, SK, 두산이 1번씩으로 해체된 팀을 포함 12팀 중 5팀이나 달성했다.[34] 사실 실업 팀 현대 피닉스를 통해 미국의 양대 리그처럼 한국 프로야구에 새로운 리그를 만들려고 시도하였으나 그렇게 되진 못했고, 대신 태평양 돌핀스를 인수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 한국 프로야구에 입성했다. 자세한 건 현대 피닉스 참고.[35] 이후 경기수가 144경기로 늘어나면서 두산이 2016년 93승으로 경신했다. 2000년 현대는 133경기에서 91승.[36] 2000년도에는 양대 리그여서 통합 우승 개념이 모호하나 자리그와 인터리그 경기수가 동일했으며 현대는 그런 상황에서 최고 승률을 기록했으므로 통합 우승으로 칭해도 무리가 없다.[37] V1 자체는 1985년 전후기 통합 우승으로 달성했지만 한국시리즈가 열리지 않았다.[38] 당시 최강팀이던 현대에서 박종호, 심정수, 박진만을 차례로 빼온 게 컸다. 하지만 삼성은 정당한 권리로 FA선수를 영입했으며 현재 시점에서 보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애초에 돈질의 시작은 1990년대 현대가 원조다.[39] 기존 삼성의 공격적인 팀컬러에 익숙해져 있던 삼성 팬들에게 선동열식 불펜 야구는 생소했을 뿐더러 그 과정에서 배영수, 권오준, 권혁 등 많은 투수들이 혹사당했고 초반 2연패 이후 4위, 4위, 5위라는 저조한 성적, 그리고 결정적으로 양준혁에게 은퇴를 강요하는 등 삼성 팬덤에게 선동열은 좋은 감독이 아니었다.[40] SK는 이후 2011년, 2012년에도 한국시리즈에 오르며 최초로 6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이라는 기록을 달성한다.[41] 이 자체만 놓고 보면 김성근 감독의 잘못이 큰데, 프런트의 많은 배려와 투자에도 불구하고 김성근 감독은 프런트를 비난하는 뉘앙스의 인터뷰를 했고 그 결과 프런트와의 갈등이 자주 일어났다.[42] 2위 SK와 14.5게임차가 났는데 이는 85년 삼성의 18.5게임차, 00년 현대의 16게임차에 이어 역대 최다 게임차 정규 시즌 우승 3위에 해당한다. 단일 리그 기준으로는 역대 1위.[43] 14.5게임차 업셋은 역대 최다 게임차 업셋이다.[44] 예를 들면 레알 마드리드의 경우 자국 리그에서의 왕조는 1953년부터 1965년까지지만 1961년~1965년까지는 유럽대항전에서 빈약한 성적을 거뒀기에 유럽 전체의 왕조 기간에는 포함이 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아약스의 경우에는 1965년부터 자국 리그에서 강세를 보여줬으나 1970년 이전까지는 유러피언컵에서 우승이 없으므로 유럽 왕조 기간은 1971년부터로 보는 것이 옳다.[45] 참고1참고2참고3참고4[46] 이건 당시 아스널 감독과 첼시 감독이 아르센 벵거 그리고 주제 무리뉴라서 그런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위 미만의 성적을 기록한 적은 없다.[47] 2위는 세르비아의 FK 츠르베나 즈베즈다로 96경기 연속 무패를 기록했다.[48] 주요 대회가 아닌, 인터토토컵 같은 정말 마이너한 대회까지 우승해본 팀은 유벤투스가 유일하다. 애초에 챔피언스 리그나 UEFA 컵 같은 대회에서 우승할 만한 강팀이라면 리그 성적이 너무 좋아서 다른 대회에는 참가도 못할 가능성이 높다.[49] 더군다나 당시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은 1934년 이탈리아 월드컵과 193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모두 우승한, 월드컵 2연패를 차지한 최초이자 1958,1962 브라질과 함께 유이한 팀이었다.[50] 2005-06 시즌 칼초폴리로 인해 얻은 스쿠데토 포함.[51] 사실 1960년대 1964-65 시즌에 3개 대회 결승에 오르며 이탈리아 클럽 역사상 최초로 트레블 기회를 잡았으나, 코파 이탈리아에서 준우승하며 실패.[52] 사실 1970년대부터는 바이에른이 독일 원탑 클럽이라 바이에른 왕조가 지속되는 가운데, 간헐적으로 다른 클럽들의 도전이 번갈아가며 이어지는 형국이라, 바이에른의 시대를 저 시기로만 국한하는 것이 적절한가 싶기도 하나, 유럽을 제패한 시기가 이 시기라는 점이 중요하다.[53] 2021/22 시즌에는 유럽 상위 5대 리그 역사상 최초로 리그 10연패를 달성했다.[54] 미헬스가 팀을 떠나고 코바치가 맡은 시즌이었다.[55] 원래 5연속 우승을 차지했지만 후술할 이유로서 1992-93 시즌 우승을 박탈 당했다.[56] 결승 상대는 유고슬라비아의 츠르베나 즈베즈다인데 마르세유는 승부차기에서 3:5로 졌다.[57] 현재까지 프랑스 리그 유일한 챔스 우승팀이다.[58] 당시 아시아 축구 연맹에서 AFC 챔피언스 리그 준결승전까지 동아시아와 서아시아가 따로 치른다는 규칙을 신설했다. 덕분에 전체적으로 참가 구단의 원정 부담을 완화하며 전력 손실을 줄여 주었다. 거의 매년 세 개 대회를 병행하는 전북도 왕조 건설에 있어 도움을 받았다.[59] 2022년 기준 대한민국 프로 스포츠 최다 우승은 KBO 리그 KIA 타이거즈와 한국여자프로농구 아산 우리은행 우리WON의 11회다.[60] 대표와 함께 2021-2022 전북 축구의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특히 2022년에는 노골적인 선수 저격, 팬 무시 등이 매우 빈번하게 일어났다. 이길 경기는 비기고 비길 경기는 지고 질 경기는 완전히 져버리는 등 울산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때에도 승점을 많이 쌓지 못했다.[61] 김상식과 비교되는 모라이스 전임 감독에 대한 팬들의 평가가 완전히 뒤집어졌다.[62] 일류첸코 판매 후 신규 영입한 토르니케의 메디컬 테스트 탈락, 쿠니모토 음주 운전에 따른 방출 등[63] 홍정호, 김진수, 맹성웅, 박진섭 등 다양하다.[64] 감독이 김상식이기 때문이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제주 유나이티드로 이적한 최영준, FC 서울로 이적한 일류첸코의 화려하고 완전한 부활이 이러한 평가를 증명하는 대표적인 예시다.[65] 기타 사건으로는 바로우 모친상으로 인한 출국이 대표적이다.[66] 17년 만의 리그 우승[67] 2022~23년을 기점으로 LCK 쓰리핏을 기록한 젠지의 충격적인 월즈 탈락과 더불어 과거부터 뉴스 언론들이 왕조라는 표현을 남발해서 쓰고 있는 것도 커뮤니티 내 '왕조' 논쟁에 있어 더욱 큰 원인이 되었다. 예전부터 14 삼성 형제팀인 삼성 화이트와 삼성 블루의 월즈와 리그 우승 기록을 합쳐서 왕조로 취급하거나, # 아예 롤 마스터즈라는 리그제 이후부터 비메이저로 전락한 대회를 포함해 왕조라는 표현을 썼던 것도 그렇고, #, 17 삼성 갤럭시가 월즈 우승을 차지했을때도 왕조라는 표현을 다시 사용하거나, # # # 앞선 23년 서머에 들어서 LCK 쓰리핏을 달성한 젠지와 # # 23 월즈를 우승한 T1에 대한 기사를 냈을때도 아직 완성되지도 않은 왕조를 주된 기사 제목 표현으로 쓰는 등 # # 무차별적으로 왕조라는 표현을 남발하는 사례들이 계속 포착되고 있다.[68] 2016년 월즈 결승전 5세트 글로벌 해설 코멘터리와 2017년 월즈 결승전 3세트 글로벌 해설 코멘터리를 참고 바람. 그리고 SKT 시절의 T1을 제외하면 전부 공식으로 취급되지 않았다. 말 그대로 나무위키 문서에 있는 롤e스포츠 왕조들은 T1을 제외하고 쓰리핏+국제대회 우승을 기준으로 왕조의 범주에 포함시킨 비공식적인 예시이다.[69] 2015 월즈 ~ 2017 MSI[70] 정규시즌 1위 + 플레이오프 1위.[71] 스프링, 서머, MSI, 월드 챔피언십을 한해에 모두 우승하는 것[72] 여기에 그나마 비견되는건 20 스프링 C9밖에 없다.[73] #[74] 2023 월즈가 다시 한번 2022년에 이어 LCK 팀이 소환사의 컵을 차지함으로써 대회가 끝났지만 젠지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은 더더욱 증폭되었고, 믿지 못할 팀이라는 말까지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도 나오기에 이르렀다. 심지어 디플러스 기아가 스위스 스테이지에서 탈락했던 것보다도 젠지는 더욱 더 엄청난 참사를 일으킨 팀으로 부각되었고, 켈린더 그랜드 슬램을 노리던 징동에게 1:3으로 패배해 똑같이 8강에서 탈락한 KT가 경기 후 졌잘싸라는 동정 여론을 받았던 것에 비교해서 최악의 결과를 맞이했다.[75] 특히나 5년 전 자국에서 열렸던 2018 월즈 당시 LCK 1~2시드였던 KT 롤스터와 아프리카가 8강에서 조기에 탈락하는 대참사가 발생했었던 적이 있는데, 그러한 사태를 2023 젠지가 더 말도 안되는 악몽으로 재현했다는 부분까지 더해져 쉽사리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거기에다가 한술 더 떠서 젠지가 과거 2018년 월즈 당시 1학년 5반을 찍고 그룹 스테이지 탈락으로 2013 오존에 이어 그룹 스테이지로 탈락했던 전적이 있는 것과 LCK 암흑기에 신호탄을 쐈던 팀이라는 흑역사까지 재발굴되는 등, 커뮤니티에서 2018년과 2023년을 서로 비교하거나 그 이상으로 조리돌림하는 그림까지 나오게 될 정도로 여론 자체가 극악으로 변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