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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헌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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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고려 중기의 왕족.
휘는 도(燾). 문종의 아들로 순종, 선종, 숙종의 이복동생이자 이종사촌이다.
순종, 선종, 숙종의 어머니인 인예왕후와 양헌왕 왕도의 어머니인 인경현비는 자매이다.
2. 최종 작위[편집]
《고려사》에는 최종 작위가 '조선공'으로 나오지만, 차남인 왕원의 묘지명에는 '조선국양헌왕(朝鮮國禳憲王)'으로 표기되어 있다.[1] 문원대왕이나 정간왕처럼 최종적으로 왕작(王爵)이 수여되었음이 확인되는 사례이며, 왕원의 묘지명 외에는 왕으로 봉작된 사실을 파악할 수 없기에 왕작 수여 시점은 정확히 알 수 없다.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조선의 사관(史官)들이 자의적으로 고려 당시에 쓰인 표기를 고친 사실이 파악되어 있는 《고려사》보다는,[2] 고려 당시에 제작된 금석문으로 1차 사료의 성격을 갖는 〈왕원묘지명〉의 신뢰성이 더 높게 평가된다.
《고려사》에는 보통 생전에 받은 작위인 조선후나 조선공 등으로 지칭되어 있으며, 근래에는 일반적으로 시호인 양헌왕으로 부르고 있다.
3. 역임 관작[편집]
4. 생애[편집]
문종 15년(1061) 2개의 직위와 함께 조선후(朝鮮侯)에 책봉되었으며, 식읍 2천호를 하사 받았다. 문종 31년(1077)엔 공작으로 승진해 조선공(朝鮮公)이 되었다. 선종 때 식읍을 3천호로 올려주었는데, 숙종 때 다시 5천호로 올려주었다.[3]
5. 가족관계[편집]
경원 이씨[A] 이정의 딸과 혼인해 슬하에 수사공 왕자 , 광평공 왕원, 강릉공 왕온을 두었다.
또 의종의 제1비 장경왕후, 명종의 왕비 광정태후, 신종의 왕비 선정태후의 할아버지기도 하다. 이들은 모두 3남 강릉공 왕온의 딸들이다.
강릉공 왕온의 아들 왕영(王瑛)은 인종의 딸인 승경궁주와 혼인하여 공화백(恭化伯)으로 책봉되었다.
(+ 손녀사위: 의종)
- 손녀: 대령후비(大寧侯妃) 김씨
(+ 손녀사위: 대령후 왕경)
- 손녀: 광정태후 김씨
(+ 손녀사위: 명종)
- 손녀: 선정태후 김씨
(+ 손녀사위: 신종)
- 손자: 공화후 왕영(王瑛)
- 손자: 왕작(王鷟)
[A] A B C 현재는 인천 이씨. 이자연의 장남 이정의 딸이다. 양헌왕 생전엔 조선공비(朝鮮公妃)로 양헌왕 사후엔 조선국왕비(朝鮮國王妃)로 불렸을 것으로 추정된다.[1] '王'자 부분에 흠집이 있으나 글자 판독에는 무리가 없는 상태이다. 『한국금석문전문』(허흥식, 1984.)에서는 교감을 하지 않고 '正'으로 판독했으나, 『역주 고려묘지명집성』(김용선, 2001.)에선 '王'으로 판독했다. 『한국금석문전문』의 판독을 따르더라도 해당 대목에는 '正'자가 쓰일 수 없는 위치인 만큼 이를 '王'으로 교감하는 것에는 무리가 없다. 하지만 이러한 판독문 상의 문제 때문에 고려에서는 왕작이 시행되지 않은 것으로 보는 견해들은 '조선국양헌왕'의 봉작 사실을 파악하지 못한 점이 확인된다.[2] 장동익, 2010, 「高麗史의 編纂過程에서 改書」, 『退溪學과 韓國文化』 46, 경북대학교 퇴계연구소.[3] 식읍 5천호를 받은 1095년에 '조선국공'으로 언급되는데, 일반 공작에서 추후 승진이 이뤄진 것인지, 처음부터 국공(國公)이었는지는 불분명하다.[4] 인종의 장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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