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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원(광평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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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고려의 왕족.
휘는 원(源). 조선국 양헌왕 왕도와 경원 이씨[A] 의 차남이다.
2. 생애[편집]
왕원의 묘지명에 따르면 약관의 나이[2] 에 숙종으로부터, 《고려사》에 따르면 예종 6년인 1111년에 광평백(廣平伯)으로 책봉된다. 《고려사》종실열전에 따르면 순정공주(順貞公主)[B][3] 와 혼인하여 광평백으로 책봉되었다고 한다. 이후 인종 때 작위가 광평후(廣平侯)로 오른다. 인종 21년인 1143년 왕이 태자비에게 태자비 책봉을 축하하며 예물을 하사하고 연 곡연(曲宴)[4] 에 참석한다. 같은 해 6월 27일에 수태보 광평공(守太保 廣平公)의 작위와 식읍 2,000호, 식실봉 500호를 하사 받았다.
광평공 왕원은 유학과 불교에 능통했는데, 중년 이후 법화경을 읽기 시작했는데 읽은 권수가 거의 만 권에 이르렀다고 한다. 또한 의술에도 뛰어나 약으로 많은 사람을 구했다. 의종 24년인 1170년 88세의 나이로 모친에게서 물려받은 불령(佛嶺)[5] 의 사저에서 병사한다. 최종 관직은 수태부 상주국 광평공(守大傅 上柱國 廣平公)으로 식읍은 3,000호이다. 이듬해인 명종 1년인 1171년 12월 2일 백악산 서쪽 기슭에서 장사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