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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원(광평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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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제왕
고려 조선국 양헌왕의 왕자
고려 숙종의 부마
광평공 왕원 | 廣平公 王源
츨생1083년(선종 즉위년)
사망1170년(의종 24년) 1월 12일(향년 88세)
본관개성 왕씨
원(源)
부모부왕 조선국 양헌왕
모후 경원 이씨[A]
형제자매
3남 중 차남 [ 펼치기 · 접기 ]
배우자안수궁주(安壽宮主) 왕씨[B][1]
자녀1남
안평공 왕경
지위제왕#諸王(諸王)
작위광평백(廣平伯)
광평후(廣平侯)
광평공(廣平公)

1. 개요
2. 생애
3. 가족관계



1. 개요[편집]


고려의 왕족.

휘는 원(源). 조선국 양헌왕 왕도경원 이씨[A]의 차남이다.


2. 생애[편집]


왕원의 묘지명에 따르면 약관의 나이[2]숙종으로부터, 《고려사》에 따르면 예종 6년인 1111년에 광평백(廣平伯)으로 책봉된다. 《고려사》종실열전에 따르면 순정공주(順貞公主)[B][3]와 혼인하여 광평백으로 책봉되었다고 한다. 이후 인종 때 작위가 광평후(廣平侯)로 오른다. 인종 21년인 1143년 왕이 태자비에게 태자비 책봉을 축하하며 예물을 하사하고 연 곡연(曲宴)[4]에 참석한다. 같은 해 6월 27일에 수태보 광평공(守太保 廣平公)의 작위와 식읍 2,000호, 식실봉 500호를 하사 받았다.

광평공 왕원은 유학불교에 능통했는데, 중년 이후 법화경을 읽기 시작했는데 읽은 권수가 거의 만 권에 이르렀다고 한다. 또한 의술에도 뛰어나 약으로 많은 사람을 구했다. 의종 24년인 1170년 88세의 나이로 모친에게서 물려받은 불령(佛嶺)[5]의 사저에서 병사한다. 최종 관직은 수태부 상주국 광평공(守大傅 上柱國 廣平公)으로 식읍은 3,000호이다. 이듬해인 명종 1년인 1171년 12월 2일 백악산 서쪽 기슭에서 장사지냈다.


3. 가족관계[편집]


  • 부: 조선국 양헌왕 왕도
  • 모: 경원 이씨[A]
    • 본인: 광평공 왕원
    • 부인: 안수궁주(安壽宮主) 왕씨[B][6]

[A] A B C 현재는 인천 이씨. 이자연의 장남 이정의 딸이다. 양헌왕 생전엔 조선공비(朝鮮公妃)로 양헌왕 사후엔 조선국왕비(朝鮮國王妃)로 불렸을 것으로 추정된다.[B] A B C 《고려사》 공주열전엔 안수궁주(安壽宮主)로, 《고려사》 종실열전에는 안수공주(安壽公主)로, 남편인 광평공 왕원의 묘지명에는 순정공주(順貞公主)로 기록되어 있다.[1] 숙종의 3녀[2] 20세[3] 숙종의 3녀[4] 궁의 후원에서 가까운 사람들만 불러 베풀던 작은 잔치[5] 왕의 명이 내려진 지역이란 뜻이다.[6] 숙종의 3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