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개(개성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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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제왕
고려 정종의 왕자
개성후 왕개 | 開城侯 王暟
출생연대 미상
사망1062년(문종 16년) 8월 28일
본관개성 왕씨
개(暟)
부모부왕 정종
모후 용의왕후
형제자매4남 1녀 중 4남
배우자개성후비(開城侯妃)
→ 신상후비(愼殤侯妃)로 추정
자녀미상
지위제왕#諸王(諸王)[1]
직위개부의동삼사 수태보
(開府儀同三司 守太保)
상서령 상주국 개성후
(尙書令 上柱國 開城侯)
자인보리좌화공신
(資仁保理佐化功臣)
작위개성후(開城侯)[2]
시호신상(愼殤)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고려 정종왕자.

본명은 왕개(王暟)이고, 작위는 개성후이다.


2. 생애[편집]


고려 정종과, 문하시중에 추증된 한조의 차녀인 용의왕후 한씨의 삼남이다. 애상군 왕방(王昉)과 [[왕경(낙랑후)|낙랑후 왕경](王璥)의 동생이다.

1046년 부왕인 정종이 죽고 숙부인 문종이 즉위한 뒤인 1052년 10월 22일[3]에 개부의동삼사 수태보 겸 상서령 상주국 개성후(開府儀同三司 守太保 兼尙書令 上柱國 開城侯)로 책봉되고 식읍 3천호를 받았으며, 자인보리좌화공신(資仁保理佐化功臣))의 공신호를 받았다. 1062년 8월 28일에 사망하자 문종으로부터 신상(愼殤)는 시호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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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려 문종 때부터 왕위를 이을 왕자를 '태자(太子)'로 삼고 나머지 왕자들은 '제왕(諸王)'이라 칭했다. 이후 충선왕 때부터는 '세자(世子)'와 '왕자(王子)'로 개칭되었다.[2] 개성후는 형제 상속을 기준으로 왕위 계승 3순위에게 주어지는 호칭이었다. 참고로 1순위는 평양후(平壤侯), 2순위는 낙랑후(樂浪侯)다.[3] 형인 낙랑후 왕경의 책봉일은 1052년 10월 11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