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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파노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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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 생몰년: 715년 ~ 757년 4월 26일
- 재위기간: 752년 3월 26일 ~ 757년 4월 26일
91대 교황 자카리아가 사망한 후 교황 선출자 스테파노가 752년 3월에 새로운 교황으로 선출되었지만 교황으로 선출된지 3일 만에 교황 선출자 스테파노는 뇌졸중으로 사망한다. 교황으로서 주교 수품 전에 사망했기 때문에 그를 정식으로 교황으로 인정해야 하는지 문제가 있었다. 왕으로 말하면 잉글랜드의 마틸다처럼 왕으로 선출은 되었으나 즉위식을 못 치룬 것이다.
어쨌든 다시금 교황 선출이 이루어졌고, 오르시니(Orsini) 가문 출신이자 부제였던 '스테파노 2세'가 다시금 새로운 교황으로 선출된다. 교황 선출자 스테파노를 교황으로 인정한다면, '스테파노' 호칭을 쓰는 교황은 넘버링이 하나씩 밀린다. 즉 '스테파노 n세'가 아닌 '스테파노 (n+1)세'가 된다. 이 때문에 이를 의식하여 '스테파노 2세(3세)'처럼 표기할 때도 있다.
2. 생애[편집]
그가 교황 선출 뒤 당면한 문제는 롬바르드족의 침입에서 로마를 지키고 동로마 제국의 간섭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었다. 이미 동로마 제국이 아바스 왕조를 비롯한 이슬람 세력과 다른 유목 민족들과의 전투로 로마에 영향이 예전 같지 않았고, 로마를 지키면서 동시에 간섭의 장치였던 라벤나조차 롬바르드족에게 털린 상태였다.
라벤나가 롬바르드족에 손에 들어간 뒤 전임 교황 자카리아의 활약으로 어느 정도 평화가 이어졌으나 롬바르드족의 위협이 끝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확실한 보험이 필요했던 스테파노 2세는 프랑크 왕국의 피핀 3세에게 손을 내밀었다. 피핀 3세 역시 실력으로 왕위에 오르기는 했으나 정통성이 미약했기 때문에 교황을 통해 정통성을 세울 필요가 있었으므로 둘의 이해가 맞아 떨어졌다. 스테파노 2세는 754년 1월 6일 직접 파리에 있는 프랑크 궁정에까지 찾아가 피핀을 축복하며 그의 정통성을 세워주었다. 피핀 역시 그에 대한 화답으로 롬바르드족으로부터 교회를 수호하겠다는 서약을 했다. 약속대로 피핀은 롬바르드족을 밀어냈고 로마냐, 스폴레토, 베네벤토, 펜타폴리스 (리미니, 페사로, 파노, 세니갈리아, 안코나) 등 이탈리아 반도 중부를 떼어 교황에게 헌납했는데, 이것이 교황령의 시초가 되었다.
스테파노 2세는 757년 4월 26일 사망했으며, 유해는 바티칸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