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백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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百濟開國已來, 未有以文字記事, 至是得愽士髙興, 始有書記

백제는 개국 이래 문자로 사적을 기록한 적이 없다가, 이 때에 이르러 박사(博士) 고흥(高興)을 얻어 비로소 서기(書記)를 갖게 되었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근초고왕 30년(375) 11월


書記

백제의 역사를 기록한 책. 근초고왕 때 박사 고흥(高興)이 저술했다고 하나 전하지 않는다.

교과서 등에서는 간단히 역사서로 설명한다. 하지만 학계에는 '서기'라고 불리는 특정한 서적을 편찬했다는 것이 아니라 공식적인 문자기록을 제도화했다고 보거나(천관우) 문자기록을 제대로 남기기 시작했다고(고병익) 여기는 학자도 있다. 한문기록의 맥락에서는 제목이 서기(書記)인 책을 만들었단 것이 아니라 '書와 記를 갖게 되었다.', 즉 이때에 비로소 역사를 기록하는 제도를 확립했단 뜻으로 해석해도 전혀 무리가 없기 때문이다.

저술자 고흥이 낙랑군 내지 동진 계열 인물이라고 추정하는데, 371년 혹은 372년에 백제에 왔다면 375년 백제의 역사서를 편찬하기는 너무 이르지 않는가 하는 의문도 있다.

반면 역사서로 보는 주요 연구가로는 이기백이병도, 신형식 그리고 김두진 등이 있다.

일본의 고대 역사서 일본서기에는 백제삼서라 불리는 백제기, 백제신찬, 백제본기가 많이 인용되었다. 고흥의 서기로 시작된 백제의 역사기록이 백제삼서 편찬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다만 백제삼서는 백제기를 제외하면 375년 이후 기록이 다수 실렸기 때문에 고흥의 서기가 백제삼서 중 하나일 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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