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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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의 2009년 방영분을 정리한 문서.
2009년을 기점으로 독립 편성 초창기(2006년 ~ 2008년) 무한도전의 아이덴티티였던 리얼 버라이어티 요소, B급 정서가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하였다. 직전해까지 시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특집과 아이템을 많이 선보였으며 무한도전이 타겟 시청 연령대를 전 연령대에서 젊은층으로 노선을 변경한 시기가 바로 이때이다. 이런 영향으로 2008년 이전까지 주 컨셉이었던 B급 정서와 유치한 상황극, 단순 몸개그가 눈에 띄게 소멸되기 시작하고, 젊은층이 공감할 만한 최신 유행어의 반영으로 프로그램 스타일을 낡은 분위기에서 세련된 모습으로 변경했다. 그래서 멤버들의 프로그램 내 역할도 더욱 풍부해졌다. 또한 추격전이 큰 주목을 받은 해이기도 했는데, 전년도에 사상 처음으로 선보인 돈가방을 갖고 튀어라 특집 당시에는 추격전이라는 개념이 아직 완벽히 성립되지 못했기 때문에 추격전이라기보다는 멤버들의 콩트 상황극에 가까웠지만 여드름 브레이크와 나 잡아봐라 특집이 호응을 얻자 2009년을 기점으로 무한도전에서의 추격전은 단골 아이템으로 쓰일 정도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그리고 노홍철이 추격전을 통해 본격적으로 사기꾼 캐릭터로 자리잡은 시기 역시 이때이기도 하다. 그래서 추격전이라는 하나의 장르에 시청자의 호기심을 자극할 만큼 스케일이 커지기 시작했다. 정리하자면 초창기 무한도전의 B급 감성과 현재 무한도전의 분위기가 공존했던 과도기 시즌이었으며, 이런 이유 때문에 무도 팬들에게 현재까지도 많은 회자를 낳고 있는 시즌이기도 하다. B급 정서를 좋아하는 팬들은 무도 초창기 때부터 2009년까지를 무도 최고 정점으로 여긴다.
이해 4월 이후에 길의 등장을 계기로 기존 6인 체제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7인 체제가 시행된 해이기도 했으며, 연도로 따지면 하하가 무한도전에 없었던 유일한 해이기도 했다. 한편 지난해 여름에 영입되어 적응을 해 가던 전진은 2009년 들어 건강 문제, 개인 사정과 부상 등으로 인해 프로그램에서 자주 이탈하여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출연 분량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이후 사회복무요원의 임무를 하기 위해 10월 31일 벼농사 마지막 편 방영분을 끝으로 완전히 하차하며 더이상 등장하지 않게 되었고, 하하가 복귀하는 이듬해 3월까지 6인 체제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 반면 새롭게 영입된 길은 부진한 전진의 자리를 잘 커버하며 괜찮은 활약을 펼쳐 팀의 분위기를 유지하는데 일조했다는 평을 받았다.
정형돈의 무한도전 내 존재감이 슬슬 올라가기 시작한 것도 이 해이다. 2006~2008년 막 버라이어티에 데뷔해 적응기간이 필요했던 지라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던 정형돈이 인생극장 Yes or No 편부터 큰 활약을 하더니 무도 내에서 존재감을 어필하기 시작했고, 다음해에 미존개오 캐릭터를 장착하며 기량이 만개하게 되는 기반을 닦았다. 이런 긍정적인 효과들을 통해 지난 해의 부진을 이겨내고 본격적인 2007년, 2011년 다음으로 무한도전의 전성기 시즌으로 평가받고 있다.
2009년은 무한도전에서 제2의 전성기가 시작된 기점이 된 해로 평가한다. 이유는 전년도에는 멤버 교체와 방송을 진행하는데 생긴 악재, 멤버 불화 등 여러가지로 부진했던 시기로서 1차 전성기가 막을 내리고, 동시에 무한도전 내에서도 매우 혼란스러웠던 과도기 시기였지만 2009년부터는 새로운 프로그램 포맷이 자리를 잡기 시작해 안정화된 상태로 한해를 출발했기 때문에 레전드 특집이 다수 나올 수 있었다. 레전드 에피소드를 보면 봅슬레이로 한해를 시작해 정신감정, 육남매, 인생극장 Yes or No, 하루만에 세계일주, 손에 손잡고, 박명수의 기습공격, 여드름 브레이크, 올림픽 대로 듀엣 가요제, 소원을 말해봐, 해양구조대, 여름방학 특집, 꼬리잡기, 무한도전 TV, 벼농사 특집, 식객 특집, 뉴욕 특집 까지 수많은 다채로운 레전드 에피소드가 다수 나와 프로그램의 부진을 이겨내고 새로운 전성기가 시작된 것이다. 2008년 이전의 무한도전은 아직 프로그램 포맷이 완벽히 자리잡기 이전인 향후 방향성을 제시하는 초창기 시기라 현재보면 유치하게 느껴지면서 다소 옛날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2006년부터 2008년까지는 일부 특집을 제외하면 딱히 기억되거나 회자되지 않는다. 하지만 2023년 현재 시점에서 무한도전의 레전드 에피소드는 다수 2009년 이후에 몰려있고, 개그 코드가 현재 시점에서도 거의 위화감이 없으며 스마트폰 보급 이전의 시대상을 볼 수 있는 시기이면서 추격전과 야외 촬영을 통해 당시 시대적 분위기를 잘보여주었고, 또한 옛날 배경에 맞게 HD 방송 이전의 좁은 화면과 구린 화질의 레트로풍이 나는 이유로 추억까지 제대로 선사하기 때문에 2009년을 최고의 레전드 시기로 평가하는 것이다. 현재 유튜브에 업로드된 무한도전 조회수를 보면 대다수 2009년 이후의 특집들이 압도적으로 높으며 초창기(2006~2008년)때의 자리를 잡아가는 혼란스러운 분위기에서 벗어나 우리가 흔히 아는 무한도전의 분위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해로 정리할 수 있다. 여담이지만 2009년은 스마트폰이 보급되기 직전이었던 시절이기 때문에 옛날 시대상을 느낄 수 있는 마지막 해이기도 하다. 2010~2011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스마트폰이 보급되어 스마트폰으로 판도가 바뀌었기 때문에 현재와 시대적으로 별 차이가 나질 않아 딱히 옛날 시대상으로 느껴지지는 않는다.[1]
다만 여성의 날 특집, 2009 서바이벌 동거동락 등 최악의 에피소드도 있었고, 갈수록 장기 프로젝트가 많이 진행되어 프로그램이 늘어지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장기 프로젝트는 봅슬레이 특집, 달력 특집, 벼농사 특집, 식객 특집, 레슬링 특집 WM7까지 총 5개가 진행되었고, 이 중 달력 특집과 레슬링 특집은 1년에 걸쳐 진행됐다. 하반기부터는 멤버들이 "일주일에 무한도전만 5번을 찍는다"며 피로 누적을 호소했으며, 신입 멤버 길의 "이걸 어떻게 5년을 했지?"의 한마디로 요약 가능한 살인적인 스케줄이었다. 즉 각 에피소드 사이 재미의 편차가 큰 시즌. 특히나 연말의 뉴욕 특집은 4박 5일 일정 내에 6주 분량의 방송촬영을 하는 등 출연진에게나 제작진에게나 고행의 시기였다고 회자되고 있다.[2]
2009년 시청률 그래프
1. 설명[편집]
무한도전의 2009년 방영분을 정리한 문서.
2. 평가[편집]
2009년을 기점으로 독립 편성 초창기(2006년 ~ 2008년) 무한도전의 아이덴티티였던 리얼 버라이어티 요소, B급 정서가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하였다. 직전해까지 시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특집과 아이템을 많이 선보였으며 무한도전이 타겟 시청 연령대를 전 연령대에서 젊은층으로 노선을 변경한 시기가 바로 이때이다. 이런 영향으로 2008년 이전까지 주 컨셉이었던 B급 정서와 유치한 상황극, 단순 몸개그가 눈에 띄게 소멸되기 시작하고, 젊은층이 공감할 만한 최신 유행어의 반영으로 프로그램 스타일을 낡은 분위기에서 세련된 모습으로 변경했다. 그래서 멤버들의 프로그램 내 역할도 더욱 풍부해졌다. 또한 추격전이 큰 주목을 받은 해이기도 했는데, 전년도에 사상 처음으로 선보인 돈가방을 갖고 튀어라 특집 당시에는 추격전이라는 개념이 아직 완벽히 성립되지 못했기 때문에 추격전이라기보다는 멤버들의 콩트 상황극에 가까웠지만 여드름 브레이크와 나 잡아봐라 특집이 호응을 얻자 2009년을 기점으로 무한도전에서의 추격전은 단골 아이템으로 쓰일 정도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그리고 노홍철이 추격전을 통해 본격적으로 사기꾼 캐릭터로 자리잡은 시기 역시 이때이기도 하다. 그래서 추격전이라는 하나의 장르에 시청자의 호기심을 자극할 만큼 스케일이 커지기 시작했다. 정리하자면 초창기 무한도전의 B급 감성과 현재 무한도전의 분위기가 공존했던 과도기 시즌이었으며, 이런 이유 때문에 무도 팬들에게 현재까지도 많은 회자를 낳고 있는 시즌이기도 하다. B급 정서를 좋아하는 팬들은 무도 초창기 때부터 2009년까지를 무도 최고 정점으로 여긴다.
이해 4월 이후에 길의 등장을 계기로 기존 6인 체제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7인 체제가 시행된 해이기도 했으며, 연도로 따지면 하하가 무한도전에 없었던 유일한 해이기도 했다. 한편 지난해 여름에 영입되어 적응을 해 가던 전진은 2009년 들어 건강 문제, 개인 사정과 부상 등으로 인해 프로그램에서 자주 이탈하여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출연 분량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이후 사회복무요원의 임무를 하기 위해 10월 31일 벼농사 마지막 편 방영분을 끝으로 완전히 하차하며 더이상 등장하지 않게 되었고, 하하가 복귀하는 이듬해 3월까지 6인 체제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 반면 새롭게 영입된 길은 부진한 전진의 자리를 잘 커버하며 괜찮은 활약을 펼쳐 팀의 분위기를 유지하는데 일조했다는 평을 받았다.
정형돈의 무한도전 내 존재감이 슬슬 올라가기 시작한 것도 이 해이다. 2006~2008년 막 버라이어티에 데뷔해 적응기간이 필요했던 지라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던 정형돈이 인생극장 Yes or No 편부터 큰 활약을 하더니 무도 내에서 존재감을 어필하기 시작했고, 다음해에 미존개오 캐릭터를 장착하며 기량이 만개하게 되는 기반을 닦았다. 이런 긍정적인 효과들을 통해 지난 해의 부진을 이겨내고 본격적인 2007년, 2011년 다음으로 무한도전의 전성기 시즌으로 평가받고 있다.
2009년은 무한도전에서 제2의 전성기가 시작된 기점이 된 해로 평가한다. 이유는 전년도에는 멤버 교체와 방송을 진행하는데 생긴 악재, 멤버 불화 등 여러가지로 부진했던 시기로서 1차 전성기가 막을 내리고, 동시에 무한도전 내에서도 매우 혼란스러웠던 과도기 시기였지만 2009년부터는 새로운 프로그램 포맷이 자리를 잡기 시작해 안정화된 상태로 한해를 출발했기 때문에 레전드 특집이 다수 나올 수 있었다. 레전드 에피소드를 보면 봅슬레이로 한해를 시작해 정신감정, 육남매, 인생극장 Yes or No, 하루만에 세계일주, 손에 손잡고, 박명수의 기습공격, 여드름 브레이크, 올림픽 대로 듀엣 가요제, 소원을 말해봐, 해양구조대, 여름방학 특집, 꼬리잡기, 무한도전 TV, 벼농사 특집, 식객 특집, 뉴욕 특집 까지 수많은 다채로운 레전드 에피소드가 다수 나와 프로그램의 부진을 이겨내고 새로운 전성기가 시작된 것이다. 2008년 이전의 무한도전은 아직 프로그램 포맷이 완벽히 자리잡기 이전인 향후 방향성을 제시하는 초창기 시기라 현재보면 유치하게 느껴지면서 다소 옛날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2006년부터 2008년까지는 일부 특집을 제외하면 딱히 기억되거나 회자되지 않는다. 하지만 2023년 현재 시점에서 무한도전의 레전드 에피소드는 다수 2009년 이후에 몰려있고, 개그 코드가 현재 시점에서도 거의 위화감이 없으며 스마트폰 보급 이전의 시대상을 볼 수 있는 시기이면서 추격전과 야외 촬영을 통해 당시 시대적 분위기를 잘보여주었고, 또한 옛날 배경에 맞게 HD 방송 이전의 좁은 화면과 구린 화질의 레트로풍이 나는 이유로 추억까지 제대로 선사하기 때문에 2009년을 최고의 레전드 시기로 평가하는 것이다. 현재 유튜브에 업로드된 무한도전 조회수를 보면 대다수 2009년 이후의 특집들이 압도적으로 높으며 초창기(2006~2008년)때의 자리를 잡아가는 혼란스러운 분위기에서 벗어나 우리가 흔히 아는 무한도전의 분위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해로 정리할 수 있다. 여담이지만 2009년은 스마트폰이 보급되기 직전이었던 시절이기 때문에 옛날 시대상을 느낄 수 있는 마지막 해이기도 하다. 2010~2011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스마트폰이 보급되어 스마트폰으로 판도가 바뀌었기 때문에 현재와 시대적으로 별 차이가 나질 않아 딱히 옛날 시대상으로 느껴지지는 않는다.[1]
다만 여성의 날 특집, 2009 서바이벌 동거동락 등 최악의 에피소드도 있었고, 갈수록 장기 프로젝트가 많이 진행되어 프로그램이 늘어지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장기 프로젝트는 봅슬레이 특집, 달력 특집, 벼농사 특집, 식객 특집, 레슬링 특집 WM7까지 총 5개가 진행되었고, 이 중 달력 특집과 레슬링 특집은 1년에 걸쳐 진행됐다. 하반기부터는 멤버들이 "일주일에 무한도전만 5번을 찍는다"며 피로 누적을 호소했으며, 신입 멤버 길의 "이걸 어떻게 5년을 했지?"의 한마디로 요약 가능한 살인적인 스케줄이었다. 즉 각 에피소드 사이 재미의 편차가 큰 시즌. 특히나 연말의 뉴욕 특집은 4박 5일 일정 내에 6주 분량의 방송촬영을 하는 등 출연진에게나 제작진에게나 고행의 시기였다고 회자되고 있다.[2]
3. 방영 목록[편집]
4. 시청률[편집]
2009년 시청률 그래프
평균: 15.3%(전국), 17.1%(수도권)
5. 편성 변경/결방 사유[편집]
6. 연출진[편집]
- 기획: 김정욱 → 여운혁 → 이민호
- 연출: 김태호, 제영재, 조욱형, 김준현
- 조연출: 노시용, 박진경, 이병혁, 이재석, 하승지, 김민종, 황지영, 손창우
- 대본: 주기쁨, 공지현
- 구성: 이민정, 김민지, 명민아, 신재경, 최혜란, 김미진, 이향숙, 서화정
7. 기타[편집]
- 2009년 초에 있었던 MBC 파업 사태의 여파와 일본 봅슬레이 촬영분 연장으로 인해 1월 3일과 1월 10일에는 2007년 6월 방송된 무인도 특집을 재방송했다. 5월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망으로 당일 한 주 결방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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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생활 면에 있어서 2009년은 2023년과 비교해 차이가 꽤 크게 나지만 스마트폰이 보급된 2010년 이후는 현재와 거의 비슷하다.[2] 후에 박명수 & 정준하 & 정형돈이 회고하길, 하루에 2시간 정도만 수면을 취하고 나머지는 전부 촬영에 올인하는 초강행군이었다고 한다. 어찌나 힘들었던지 녹화중 쓰러지는 스태프들도 있었고, 멤버들 또한 신경이 예민해져 고농도 카페인 음료를 권장량 이상 마시며 이를 악무는 심정으로 버텼다고.[3] 이외에 관객석에 에어로빅 특집 당시 강사로 출연한 염정인과 에어로빅 국가대표팀 코치 박복희, 국가대표 선수 송종근이 모습을 비췄다.[4] 음악여행 라라라에 직접적으로 출연한 것은 아니며, 아래에도 언급됐듯이 그 프로그램을 패러디한 코너 '박명수의 음악여행 탈랄라'에서 선보였다.[5] 방송 당일인 2월 21일 MBC가 낮 12시부터 밤 12시까지(뉴스데스크와 무한도전, 주말드라마 본방을 제외하고) 동명의 특집생방송을 한 것의 일환.[6] 정신과 전문의[7] 트로트 가수 겸 코미디언[8] 이 때 만났던 시민 중 1명은 그해 말 다른 프로그램에 나가 지금도 회자되는 어떤 드립을 남겼다.[9] 물론 박명수의 지분이 압도적인 수준이었다.[10] 일례로 어떤 참가자는 갑자기 뜬금없이 웃통을 벗고 마이야히~ 마이야히~(정황상 원곡보단 누나의 꿈인 듯)를 부르면서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버닝하지 않나 등등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11] 뉴라이트는 이걸 정부 비판을 하는 거라고 시비를 걸었다.[12] 여담으로 힝, 속았지를 만든 김영춘은 이후 G-DRAGON의 짝퉁인 춘드래곤으로 박명수와 함께 바람났어 행사를 뛰었다. 이전엔 시키면 한다! 약간 위험한 방송에 영춘이로 출연한 적도 있다.[13] 엘리베이터 몰카, 정준하 아기 분장 몰카, 2007년 설 특집 때 했던 목욕탕 몰카.[14] 유재석, 노홍철 - 놀러와, 정준하 - 식신원정대, 정형돈 - 스타의 친구를 소개합니다. 전진은 벌칙 수행을 하는 주에 무한도전 말고는 방송 녹화 일정이 없어서 결국 무한도전에서 벌칙을 수행했다.[15] 박명수는 벌칙 대상자가 아님에도 자신의 방송 분량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규칙을 깨고 무한도전 제작진을 불러 해피투게더에서 상어옷을 입고 출현하는 것을 시도하려다가 결국 포기하여 녹화 전에 상어옷을 잠깐 입어보는 것으로 끝냈다.[16] 각각 개인 금전에 대한 질문을 한 것과 성희롱으로 읽힐 수 있는 발언을 한 것으로, 77년생 길이 90년생 김연아를 대상으로 한 말들이라서 더욱 논란이 되었다. 특히 당시 김연아는 아직 생일이 지나지 않아 만으로 18세였다.[17] 숭례문, 독립문, 광화문 등을 비롯한 문화재와 제2롯데타워, 한강 르네상스 등[18] 원본에서는 마지막에 여드름 브레이크 예고 영상이 나오지만 유튜브판에서는 잘렸기 때문에 볼 수 없다.[19] 특히 노홍철의 경우 등부터 떨어졌는데 허리 아랫쪽은 풀장 바깥쪽의 매트 부분에 바로 떨어졌기에 조금만 더 위에서 떨어졌으면 심하게 다쳤을 수 있다.[20] 다만 후에 유재석이 말하길, 노홍철이 의도한 몸개그는 아니였다고 한다. 몸개그 각을 보고 있다가 그네가 너무 위로 올라가 실수로 떨어진 듯.[21] 사실 정준하뿐만 아니라 노홍철, 박명수도 속았는데, 제일 먼저 알아차리고 주저앉은 노홍철과 다 끝나고 이제야 눈치채고 대노한 박명수가 킬링 포인트.[A] A B 에어로빅 특집에 나온 에어로빅 강사.[22] 정준하는 이 때 뮤지컬 스케줄 때문에 촬영을 하지 못했고, 노홍철은 머리색과 수염 때문에 짤릴 뻔 했으나 편집팀에서 얘기를 못 듣고 그냥 내보낸 덕에 3초 정도 출연 분량을 확보했다. 당시 MBC 아나운서였던 김경화도 같이 카메오로 출연했다.[23] 현재는 63 파빌리온으로 리뉴얼되면서 블랙톤으로 개조되었다.[24] 사실 박명수가 먹고 싶은 게 있다고 해서 길이 그 말을 받아 박명수가 먹고 싶은 걸 뜰 수 있도록 일어난 것이다. 고로 예능사기단.[25] 정신감정 특집에 출연한 정신과 전문의[26] 염정인, 박지은, 송형석 신동훈은 심사위원으로 출연[27] 변호사 도움을 받아 각서를 만들어 왔다고 한다. 그런데 분명 제작진이 갑이고 박명수가 을인데 갑을관계가 완전히 역전된 내용에 을사조약 뺨치는 불평등 계약이었다. 결국 박명수가 PD를 끈질기게 갈궈서 4개 조항 중 산재처리 보장을 삭제하고 각서를 받아내는데 성공.[28] 참고로 각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무한도전 제작진(이하 "갑'"이라 함)과 연기자 박명수(이하 "을"이라 함)는 우호관계의 증진을 희망하며, 각 당사자의 이익을 고려하고 존경과 신뢰를 바탕으로 무한도전의 무궁한 발전과 큰 웃음을 위하여 상호 유익한 장기적 협력을 추구할 것을 다음과 같이 합의한다. 제1조: 갑과 을은 공동 운명체이다. 무한도전이 끝나는 날까지 함께 할 것을 약속한다. 제2조: "갑"은 천재지변, 전쟁, 폭동, 테러 및 "을"의 질병이 발생했을 시에는 녹화를 진행하지 않는다. '제3조: 부득이한 사정으로 "을"을 제외하고 녹화시 "갑"은 을의 자리를 위협할 만한 대타 연기자를 출연시키지 않는다. '제4조: "갑"은 "을"의 질병 발생시 산재처리를 해준다.[29] 전진은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겠답시고 무작정 물 속으로 뛰어들려고 하다가 족발당수로 걷어차이고, 정준하는 음주 상태에서 바다로 달려가다 족발당수로 걷어차이고, 길은 준비운동도 하지 않고 바다로 뛰어들려고 하다가 족발당수로 걷어차이고, 노홍철은 물에 빠진 척 살려달라고 소리지르며 물장난을 하다가 족발당수로 걷어차였다. 족발당수를 날린 다음 정형돈이 올바른 바다 휴양 수칙과 해양 구조 번호 122를 외치고 그 다음 멤버들이 모여 영계백숙의 가사를 족발당수와 122로 패러디하며 떼창하는 식.[30] 짝꿍 특집에서 S전자 임원이었다고 나온다.[31] 영화 성웅 이순신, 소령 강재구에 출연했다고 언급했다. 다만 유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조연급이나 단역 배우로 추정.[32] 방송 시점상 30세까진 과거 고백이기에 이는 사실일 확률이 높은데, 노홍철 본인이 오히려 이것을 개그 소재로 삼아 정준하의 죄책감을 덜어주고 싶다고 방송에서 말했고, 후에 정준하는 미안한 마음에 노홍철에게 고가의 안마 의자를 선물했다고 한다. 그러나 정준하는 의상한 형제에서 노홍철이 방송에서 자꾸 주식 얘기한다고 싫어하며 쓰레기 봉투를 투척한다.[33] 윈디소프트의 괴혼 온라인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노홍철이 광고도 찍었다. 광고 촬영 현장이 다이어트 특집에 나오기도 했다.[B] A B 쇼호스트[34] 참고로 미션은 다음과 같다. ESB 층수 세오기, 패셔니스타 2명과 사진찍기, 띵크거피에서 커피 사오기, 의상을 빌려와 마담 투소에 있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밀랍 인형에 걸어놓고 오기.[35] 미션의 우승자는 10월 달력의 메인모델이 된다.[36] 실제로 띵크커피 CEO가 김태호 PD에게 친필 편지를 보냈다고 했다.[37] 이후 점포는 몇개정도 더 확장되었지만, 2019년부로 1호점은 문을 닫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