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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로돔 라나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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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캄보디아의 전 총리.
2. 생애[편집]
2.1. 탄생부터 집권까지[편집]
1944년 1월 2일, 프놈펜에서 노로돔 시아누크 국왕의 아들로 태어났다. 1970년 론 놀의 쿠데타로 인해 캄보디아 왕정이 폐지되자 아버지와 함께 망명했고, 1983년 아버지가 방콕에 있을 때 대리인으로서 훈신펙을 이끌면서 정계 활동을 시작했다.
1991년 10월 파리 평화 협정 서명 후 캄보디아 최고민족이사회가 구성되면서 주석으로 취임한다. UNTAC의 감시하에 1993년 5월 23일부터 1993년 5월 28일까지 실시된 총선거에서 그가 이끄는 훈신펙이 외부의 예상을 깨고 제1당이 되었고, 기존 수상이었던 훈 센의 캄보디아 인민당은 제2당이 되었는데, 군부는 여전히 인민당이 장악한 상태였기에 타협하여 라나리드와 훈 센이 각각 제1수상과 제2수상을 맡기로 합의했다.
2.2. 총리 라나리드[편집]
1993년 9월에 시아누크가 복위하고, 라나리드를 제1수상, 훈 센을 제2수상으로 하는 내각이 공식적으로 출범했다. 그러나 1997년 7월 5일, 라나리드가 해외 순방 중일 때 훈 센이 프놈펜에서 쿠데타를 일으켰고, 시아누크 국왕이 라나리드를 해임하고 훈 센을 단독 수상으로 한다는 문서에 서명하면서, 라나리드-훈 센 공동 내각은 4년도 버티지 못하고 붕괴되었다. 쿠데타에 대항한 군인, 경찰관들이 있었으나 학살되었는데, 훈 센 문서의 관련 내용 참조.
2.3. 망명과 귀국[편집]
해외에 머무르며 국제 사회의 개입을 호소하는 한편, 라나리드파의 군대는 폴 포트파와 함께 태국 국경 지대로 피해가면서 전투를 계속했다. 국제 사회의 압력 끝에 1998년 3월 30일 시아누크 국왕의 사면을 받는 형태로 귀국하였다.
1998년 7월 26일 총선거에서 그가 이끄는 훈신펙은 인민당에게 제1당을 내주며 패했다. 같은 해 9월 인민당과의 타협에 따라 국회주석으로 취임했다.
2.4. 귀국 이후[편집]
시아누크 국왕이 2004년 10월 6일에 퇴위를 표명하면서, 국민적 인기로 차기 국왕이 유력 시 되었지만, 정치에 전념한다고 하여 사퇴했다. 그 후의 수개월 간은 노로돔 시아모니를 국왕을 선택하기 위한 9인 존왕이사회의 한 명으로 있었다.
2006년 3월 국회주석을 사임하였고, 10월 18일에 훈신펙 주석직을 박탈당하면서 11월 16일 노로돔 라나리드당을 창당하였다. 이후 2007년 3월 13일, 당의 자산을 부정하게 매각했다고 해서, 본인이 외국에 나가 있을 때 프놈펜 재판소로부터 금고 18개월의 판결을 받았다.
2021년 11월 28일, 향년 77세로 프랑스에서 사망했다.(관련 기사) 정확한 사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일부에서는 2018년에 일어났던 교통사고(관련 기사)의 후유증을 원인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