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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고궁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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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문화재청과 그 소속기관 직제
제2조(소속기관) ①문화재청장의 관장사무를 지원하기 위하여 문화재청장 소속으로 한국전통문화대학교, 국립고궁박물관, 현충사관리소, 칠백의총관리소, 만인의총관리소 및 국립무형유산원을 둔다.
제18조(직무) 국립고궁박물관은 궁중유물의 연구ㆍ조사ㆍ수집ㆍ보관 및 전시에 관한 사무를 관장한다.
대한민국의 국립 박물관. 행정조직법상으로는 문화재청의 소속 기관으로 되어 있다.
2. 역사[편집]
연혁은 1908년 대한제국 시절 창경궁 내에 만들어진 제실박물관(帝室博物館)부터이다. 경술국치 이후 이왕가미술관(李王家美術館)으로 바뀌어서 덕수궁 석조전으로 입주했다. 해방 이후 1946년에 '덕수궁미술관'으로 바뀌어 1961년 '덕수궁사무소'로 바뀌었다가, 1992년에 종전의 덕수궁사무소가 궁중유물전시관으로 개편되었다가 2005년에 국립중앙박물관이 용산구로 이사가자 현 명칭으로 개편해 현재의 경복궁 경내에 자리잡았다.
2019년 11월 내부 리모델링이 있었는데, 대한제국 전시와 고궁 전시 분량이 다소 줄어들었다. 대한제국 후반부는 아예 가벽으로 막아놨으며 조선시대 수라간 파트는 축소되고 문방구(연적, 머루), 선원록 파트는 아예 제거해버렸다. 기존에 선원록이 있던 곳은 왕의 친서가 담긴 비석으로 바꿔놨다.
2020년 6월에 소장품인 사각유리등을 온라인으로 공개했는데, 꽤 예쁘다는 반응이 많이 쏟아져서 2020년 하반기에 DIY 모형을 내놓았다. 그랬더니 물량을 내놓는 족족 매진행렬을 이어갔고, 2021년 4월 말까지 판매된 분량이 9700여 개에 달한다. 이 상품을 기획한 공무원은 적극행정 유공 포상 최우수상을 받았다고 한다. 비디오머그 관련 인터뷰
2023년 최하층 '조선의 과학' 전시실이 큰 폭으로 개편되었다. 디스플레이 기기를 다수 설치하여 시인성을 크게 높였고 설명도 친절해졌다. 동선도 획일함을 추구함으로써 기존에 불친절하게 느껴졌던 부분을 해소하였다. 큰 변화점은 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에 초대형 원형 디스플레이 특별실을 따로 두어 그 비중을 크게 높였는데, 대신에 대형으로 구현해놓았던 자격루가 종적을 감추었다.
3. 특징[편집]
관람료는 무료이며, 광화문과 경복궁을 관람하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이 우연찮게 흘러 들어왔다가 뜻밖의 볼거리를 찾게 된다. 주로 대한제국~일제강점기 왕실 의복이나 조선시대 옥새 등 조선 왕실 관련 유물을 다수 볼 수 있다. 지하 1층에는 자격루의 복원 모형을 전시하고 있는데, 실제로 징, 종, 북을 친다. 천상열차분야지도 실물[2] 도 있는데 바로 앞의 어차에 밀려 관심이 별로 없다.
대한제국 시기에 사용한 근대 유물들도 다수 소장하고 있다. 특히 제일 인기 있는 전시물인, 순종과 순정효황후가 타고 다닌 어차(등록문화재 제319호)는 100여 년 전의 실차를 복원 처리한 실물이다. 미국 제너럴 모터스가 1918년에 제작한 캐딜락 리무진으로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차종. 리플렛이나 안내도에도 특별히 표시돼 있다. 덕수궁 시절에는 실외에 지붕만 씌우고 먼지가 쌓인 상태로 무성의하게 방치했었다. 그때 많이 훼손되었고, 복원에 오랜 시간과 비용이 들었다.
내부 관람 동선을 알기가 어렵다. 바닥의 화살표 같은 안내 표시가 전혀 없기 때문. 천 원을 주면 빌려주는 음성 안내기를 통해서야 겨우 알 수 있는데, 이마저도 그다지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다른 관람객들과 동선이 엉키는 경우가 많다.
지하철로는 경복궁역이 바로 옆에 위치해 있다. 경복궁역과 지하 통로로 연결이 되는데, 꼭 이렇게 궁궐을 훼손하면서 통로를 만들어야 하느냐고 말이 많았다. 사실 지금 고궁박물관이 있는 지역은 아래에도 언급되다시피 내사복시 소속 관료들이 왕의 어가인 연과 어마 공주,옹주의 가마인 덕응을 관리하는 실무를 하던 곳인데, 언젠가 복원 작업이 시작되면 고궁박물관을 헐고 밖으로 나가야 한다. 처음부터 잘못된 위치 선정이었던 셈.
어찌 되었건 경복궁과의 접근성이 높은 덕에 외국인 관람객의 비율은 상당히 큰 편이다. 때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평균적으로 30%~40%는 차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영문 해설의 상세함은 국립중앙박물관과 비교하면 다소 빈약한 편.
참고로 경복궁 야간 개장 시 야간 관람객을 흡수하기 위해 이곳 역시 야간 개장을 한다. 그래서 평소 주중에는 오후 6시에, 야간 개장 시에는 10시에 문을 닫는다. 대신 경복궁의 휴관일인 화요일에는 야간 개장을 하지 않는다.
지하 1층의 휴게 공간은 라이엇 코리아의 후원으로 만들어졌다. 가보면 벽의 작은 판때기에 라이엇 로고와 함께 쓰여 있다.
전시물들의 온습도에 따른 보존 문제가 까다로워지기 때문에 여름철에는 그 숫자가 급격하게 감소한다. 예전에 봤던 전시물이 사라지거나 뭔가 좀 허전해졌다면 여름철일 가능성이 크다. 대부분 수장고로 향한다. 혹은 특별 전시실로 옮겨지는 경우도 상당하다.
4. 조직[편집]
- 국립고궁박물관장(고위공무원단 나급 일반직 임기제 공무원)
- 기획운영과
- 전시홍보과
- 유물과학과
5. 역대 관장[편집]
- 궁중유물전시관장
- 이명희(1992~1997)
- 김선태(1997~1998/2004~2005)
- 안희균(1998~2001)
- 강순형(2001~2004)
- 소재구(2005)
- 국립고궁박물관장
- 소재구(2005~2009)
- 정종수(2009~2013)
- 이귀영(2013~2015)
- 최종덕(2015~2016)
- 김연수(2016~2018):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이영훈의 부인.
- 지병목(2018~2020)
- 김동영(2020~)
6. 나무위키에 문서가 생성된 소장 유물[편집]
"display: none; display: 문단=inline"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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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건물에 대해[편집]
현존하는 유일한 중앙청 부속 건물.
현 국립고궁박물관 터는 경복궁 마굿간(내사복시)이 있었던 곳이다. 이 내사복시를 1910년 한일 강제 병합 이후 1916년 조선총독부 청사를 지을 때 헐려나가면서 상당 기간 동안 빈 터만 남았다. 1978년에 해당 부지를 이용해 중앙청에 근무하는 공무원들의 복지 시설 '후생관'을 지어 이듬해에 개관했다.
이후 1982년에 중앙청 내 5개 기관이 경기도 시흥군 과천면(현 과천시)로 이전한 뒤 건물 내부가 텅 비게 된 중앙청 청사를 1986년에 국립중앙박물관으로 개조하면서 마찬가지로 빈 건물이 되었던 후생관은 사회교육관으로 개편하여 박물관 학예사 연수, 박물관 특설 강좌, 이동 박물관 설치, 청소년 문화 강좌 등 각종 세미나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이후 1994년에 '조선왕궁 역사박물관' 건축을 위해 증축을 시작하여 1995년에 구 조선총독부 건물이 철거되면서 중앙청 청사 사용이 중지되었고, 구 총독부 철거 완료 이듬해에 맨 상단의 사진과 같은 외관으로 리모델링되어 약 8년을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사용하다가 2005년에 국립중앙박물관이 용산으로 이전함으로써 국립고궁박물관으로 전환되면서 현재의 국립고궁박물관 건물이 되었다.
7.1. 새 청와대?[편집]
문재인 대통령 집권 후 청와대를 광화문으로 이전할 계획을 세웠을 때, 건축가 승효상은 정부서울청사가 아닌 경복궁 내 국립고궁박물관 또는 국립민속박물관(문화체육관광부) 건물을 개조하여 새 청와대로 만들자는 주장을 했는데#, 그중에서도 국립고궁박물관 건물의 위치나 외형, 구조 등에 더 점수를 주며 국립고궁박물관 건물은 대통령 집무실과 관저, 국립민속박물관 건물은 경호실과 영빈관으로 사용하자고 하였다. 하지만 청와대는 개인의 의견일 뿐이라고 해명하였으며# 이후, 광화문 이전 계획이 전면 백지화되면서 결국엔 없던 일이 되었다.
8. 그 외[편집]
이름이 헷갈릴 수 있는데, 대만의 국립고궁박물원과 한글 끝 글자가 다르다. 한자로는 '고' 자도 다르게 쓴다. 한국 국립고궁박물관의 '고'는 古로 쓰고, 대만 국립고궁박물원의 '고'는 故로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