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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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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황해도 내륙 산악지대에 위치한 고장. 황해도의 최동단과 최북단을 이루는 지역으로, 황해도청 소재지인 해주시보다 강원도 원산시나 함경남도 함흥시가 오히려 더 가까운 지역이다. 전라북도의 무주군 만큼은 아니지만 무려 3개의 도가 접해있는 행정구역이었다.
수안군, 신계군과 산중삼읍으로 불린다.
2022년의 상황에서는 북한의 행정구획상 황해북도에 속한다. 척준경과 신덕왕후의 고향이 바로 이 곳.
2. 역사[편집]
삼국시대 초기 고구려가 차지한 후 이곳에 십곡성현(十谷城縣)을 설치했다. 일본서기에 등장하는 칠지도의 제작 과정에 언급되는 곡나철산(谷那鐵山)이 곡산군 일대의 철광산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추정이 있으나, 백제의 욕내군(欲乃郡)이 위치했던 전라남도 곡성군으로 비정하는 학설이 더 유력하다. 일본서기 기록에서 곡나가 백제의 영토로 묘사될 뿐만 아니라[1] , 백제의 유민인 곡나진수(谷那晋首)의 이름에도 해당 지명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신라가 이후 차지한 뒤 신라 경덕왕 때인 757년 전국 지명 한화정책을 시행하며 진단현(鎭湍縣)이 되었다. 일단 삼국사기 지리지의 기록상으로는 신라 9주 5소경 중 한주에 속했는데, 신라 후기에 한주와 구분되는 특수 행정구역 패강진을 신라 서북면에 설치했다는 설을 긍정한다면 이곳도 위치상 패강진 관할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762년에 태수를 두었다는 기록이 있어 현에서 진단군으로 승격한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시대에는 곡주(谷州)로 불렸다.
광복 당시 12면으로 이루어졌다. 지금의 곡산군은 곡산면·청계면·운중면·도화면·서촌면(일부), 신계군 촌면(일부)·동촌면(일부) 일대에 해당한다. 나머지 지역은 1952년에 황해북도 신평군(新坪郡)과 평안남도 회창군(檜倉郡)으로 분리되었는데, 신평군에 속하는 지역은 곡산군 상도면·하도면·이령면·화촌면·멱미면 일대이며 회창군에 속하는 지역은 봉명면이다. 세 지역 다 경지면적이 매우 좁아서 거의 밭농사에 의존하며, 광업이 주요 산업이다. 철도는 없는 대신 평양원산간 고속도로가 지나간다.
북한 치하에서는 황해북도의 별다른 특징 없는 군으로 존재하고 있다. 이곳에 곡산비행장이 존재한다.
3. 여담[편집]
- 곡산 척씨가 이 동네에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