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헤이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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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보수당 소속의 영국 정치인이다. 외무·영연방부 장관을 역임한 바 있다.
2. 생애[편집]
1961년 3월 26일 잉글랜드 요크셔주 로더햄에서 태어났다. 헤이그의 부모님은 탄산음료 회사를 운영했으며, 방학기간에 회사에서 일하기도 했다고 한다. 헤이그는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정치경제철학[1] 을 전공하였으며, 옥스퍼드의 보수당 청년당원 학생들의 모임인 옥스퍼드 유니언의 회장을 역임한 바 있다.
1987년 총선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이 후 1989년 재보궐 선거 리치먼드 지역구에서 당선되어 하원의원이 된다. 1995년에는 당시 총리였던 존 메이저에 의해 웨일스부 장관(Secretary of State for Wales)에 임명된다.
이 후 1997년 총선에서 노동당 대표인 토니 블레어가 승리하면서, 메이저는 총리직과 보수당 대표직에서 사퇴한다. 이러한 메이저의 뒤를 이어 당시 제1야당 보수당의 대표에 선출된다. 36살이라는, 정치권은 물론이고 일반 사회에서도 젊은 축에 속하는 나이에 이룬 일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헤이그의 영광은 오래가지 못했다. 블레어는 임기동안 정부지출을 크게 늘렸는데, 이는 후대에 부담이 됐을지언정 당대에는 경기부양에 효과적이었다. 또 금융업이 완전 자율화된 덕분에 정부지출과 함께 금융업이 경제성장을 이끈 주된 동력이 되었다. 이러한 블레어 집권기의 경제호황은 중도층들로 하여금 노동당을 지지하게 하였고, 이 때문에 헤이그의 보수당은 선거마다 연전연패하였다. 그리고 2001년 총선에서도 패배하면서 헤이그는 끝내 보수당 대표직에서 사퇴한다.
하지만 2005년에 선출된 신임 보수당 대표 데이비드 캐머런은 헤이그의 정치 인생을 성공적으로 부활시켰다. 캐머런의 그림자 내각에 헤이그는 외무부 장관을 맡았고, 2010년에 치러진 제55회 영국 총선에서 캐머런의 보수당이 승리하면서 헤이그는 외무부 장관으로 입각하게 되었다. 캐머런 1기 내각 내내 헤이그는 외무부 장관 겸 선임 장관(First Secretary of State)을 맡으며 보수당의 2인자로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모종의 이유 때문에 2015년의 제56회 영국 총선에는 출마하지 않았고, 현재는 사실상 정계를 은퇴한 상태이다.
이후 헤이그의 지역구 리치먼드는 리시 수낙이 물려받게 된다. 지역구 주민들은 두 의원 연속으로 보수당 대표[2] 를 맞이하게 된다. 참고로 헤이그는 2022년 9월 영국 보수당 지도부 선거와 2022년 10월 영국 보수당 지도부 선거 모두 수낙을 지지했다. # ##
3. 선거 이력[편집]
4. 소속 정당[편집]
5. 여담[편집]
파이온 젠킨스(Ffion Jenkins)라는 여성과 결혼하였다. 여러 차례 유산을 겪은 탓에 슬하에 자녀는 없다.
[1] Philosophy, politics and economics. 정치, 경제, 철학을 모두 배우는 융합 학과로, 옥스퍼드 대학에서 가장 인기있는 학과들 중 하나이다.[2] 다만 헤이그는 야당 대표에 그쳤지만, 수낙은 총리에까지 오르게 된다. 헤이그를 부활시킨 사람이 캐머런 총리였고, 브렉시트 이후 은퇴한 캐머런을 부활시킨 사람은 리시 수낙 총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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