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 말년에 급제하여 예부 낭중을 시작으로 관직에 올랐다. 1271년(원종 12)에는 세자 왕심[1]
충렬왕
과 함께 귀족 자제 20인이 끌려갔는데, 이중 한 명이 설공검이다. 1279년에 다시 한번 원나라로 끌려가기도 하였다. 관직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 원 간섭기가 시작되었다. 고려 고종 때부터 충렬왕 때까지 고려 군에서 다양한 관직을 지냈다. 문하시중격인 첨의중찬(僉議中贊)으로서 치사(致仕)[2]
벼슬에서 물러남.
하였고 1302년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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