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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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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전 관료, 기업인, 정치인이다.
2. 생애[편집]
1927년 1월 17일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속리에서 태어났다. 고령공립보통학교와 경북중학교, 경북고등학교, 경북대학교를 졸업하고 1963년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리고 1972년 건국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학교 교사, 대학교 교수 등을 역임하다 박정희 정권 때 경제관료로 근무하면서 1970년 세관국장(현 관세청장)을 역임하였다. 이후 대한전선 사장을 역임하였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신민당에 경상북도 고령군-달성군-경산군 선거구로 공천을 신청했으나 김종기에 밀려 공천에서 탈락하였다.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한국당 후보로 경상북도 성주군-고령군-달성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친여 무소속 이용택 후보와 민주정의당 김종기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대한전선 사장으로 돌아갔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한국당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당선 직후 민주한국당을 탈당하여 신한민주당에 입당하였다. 그러나 신한민주당에서 소외되었다는 생각에 유한열 등이 조직한 당내 계보 신보수회에 속하여 활동하였다. 1986년 유한열 등과 신한민주당을 탈당하여 민중민주당 창당에 참여하였다. 1987년 민중민주당이 다시 신한민주당에 흡수되자 잠시 신한민주당 소속이었다가 제13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다시 신한민주당을 탈당하여 민주정의당에 입당하였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대구직할시 서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통일민주당 유성환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민주자유당 지역구 공천이 강재섭에게 밀려 민주자유당 전국구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1995년 민주자유당을 탈당하여 자유민주연합에 입당하였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민주연합 소속으로 대구광역시 서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신한국당 강재섭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7]
1998년 대한지적공사 사장에 임명되었으나 1999년 각종 잡음으로 사임하였다.
2018년 10월 부인상을 당했다는 부고소식이 올라왔으며 이후 행적은 알 수 없다.
3. 기타[편집]
- 운지버섯의 운지와 한자가 같다.
4. 선거 이력[편집]
5. 둘러보기[편집]
[1] 최재욱 전 환경부 장관도 이 마을 출신이다.[2] #[3] #[4] 2018년 10월 13일에 사망했다.#[5] 석사 학위 논문 : 行政委員會에 關한 考察 : 美國을 中心으로(행정위원회에 관한 고찰 : 미국을 중심으로).[6] 박사 학위 논문 : 現代的 獨裁政治에 關한 硏究 : 그 性格分析을 中心으로(현대적 독재정치에 관한 연구 : 그 성격분석을 중심으로).[7] 무소속 서중현 후보와 표가 분산된 것이 원인이다.[8] 특히 세 번째 게시물의 경우 글쓴이가 창고를 정리하던 도중 민주정의당에서 배포한 당원용 부부수저를 발견한 것으로 봤을 때, 친인척 중에 민주정의당원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9] 1995.10. 26 민주자유당 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