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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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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백제의 왕족으로 토요타씨 족보에서는 법왕과 무왕 사이에 즉위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링크
2. 오우치씨 족보에서의 기록[편집]
、第二代 直支王(전지왕)、第三代 阿美王(아신왕)、第四代 腆支王(전지왕)、第五代 久爾辛王(구이신왕)、第六代 毘有王(비유왕)、第七代 蓋圖王(개로왕)、第八代 文園王(문주왕)、第九代 三斥王(삼근왕)、第十代 東城王(동성왕)、第十一代 武寧王(무령왕)、第十二代 聖王(성왕)、第十三代 威徳王(위덕왕)、第十四代 惠王(혜왕)、第十五代 法王(법왕)、第十六代 辰爾王(진이왕)、第十七代 武王(무왕)、第十八代 義慈王(의자왕)、第十九代 豊璋王(부여풍)、第廿代 禅廣(부여선광)《삼국사기》에는 무왕이 법왕의 아들이지만, 위덕왕 사후 혜왕과 법왕이 연이어 사망하는 이변이 발생했다. 위덕왕의 뒤를 이은 혜왕의 재위기간이 2년, 법왕의 재위기간이 1년[2] 밖에 되지 않고, 뚜렷한 행적이 보이지 않는 등 석연치 않은 점이 존재한다. 또한 이전부터 무왕은 위덕왕의 아들설과 손자설이 모두 있었으며, 《삼국유사》에서는 강가에 사는 과부가 검은 용[3] 과 통정하여 얻은 아들이 서동, 그러니까 무왕이라고 기록했다.
토요타씨 족보
중국 《북사》에서는 무왕을 위덕왕의 아들로
무왕과 서동에 대한 여러 이설이 존재하는 가운데 1398년 일본의 호족 오우치 요시히로가 자신이 임성태자의 후손임을 주장하며 조선 조정에 족보를 보내오면서 진이왕의 존재가 처음 알려졌다. 일본 토요타씨 계보와 《신찬성씨록》 등에는 법왕과 무왕 사이에 나타난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서 정식 국왕으로 인정되지 않았고, 시호도 없다는 점을 고려할 때, 그가 섭정이나 찬탈 형태로 올랐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를 고려하면 법왕과 무왕 사이에 공위기가 있었고, 왜국측에서는 백제왕신사의 제사장인 그를 정통성있는 백제 국왕으로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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