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
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전이호

덤프버전 :

||
[ 펼치기 · 접기 ]
## 범례

## 1번째 줄 - 1공
파일:Brigadier General_white.png

초대

원용덕
제2대

조흥만
제3대

전이호
제4대

김재현
제5대

전이호
제6대

이강대
제7대

이찬영
제8대

정만교
제9대

이인호
제10대

정수남
제11대

김익순
제12대

최춘호
제13대

박승만
제14대

김정규
제15대

라흥도
제16대

윤장근
제17대

김만기
제18대

김진기
제19대

조명기
제20대

이동노
제21대

박희용
제22대

허신
제23대

최석립
제24대

신윤희
제25대

서철수
제26대

손태진
제27대

김영덕
제28대

류순곤
제29대

조래원
제30대

김보영
제31대

조래원
제32대

김보영
제33대

김시천
제34대

유외수
제35대

이정
제36대

한성동
제37대

홍종설
제38대

윤종성
제39대

승장래
제40대

백낙종
제41대

이종협
제42대

이재섭
제43대

이태명
제44대

전창영
제45대

박헌수

※ 명칭 변천 : 헌병총사령관 (초대) ▸ 국방부 합동조사대장 (2 ~ 11대) ▸ 국방부 조사대장 (12 ~ 24대) ▸ 국방부 합동조사단장 (25대 ~ 35대) ▸ 국방부 조사본부장(36대 ~ 현임)
※ 계급 변천 : 대령 (3, 5~8, 10, 12, 14, 15, 20~22, 28, 34, 42대) ▸준장 (2, 4, 9, 18~19, 25, 29~30, 43~ 현재) ▸소장 (11, 13, 16~17, 23~24, 26~27, 31~33, 35~41대) ▸ 중장 (초대)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1 전이호[* 대전현충원묘적부에는 전호로 등재되어 있고, 중앙일보 부음기사 등 대부분의 부음기사에서 전리호라고 했다. 이 항목에서는 독립유공자 공훈록에 표기된 이름을 기준으로 서술한다.]}}}
全履鎬
파일:전이호.jpg
출생1922년 2월 26일
평안남도 평양부 대흥면 기림리 111번지
(현 평양시 모란봉구역 북새동)
사망2013년 4월 25일
전라북도 군산시
임관육군사관학교 3기
묘소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1-1묘역-469호
상훈충무무공훈장
건국훈장 애국장

1. 개요
2. 생애
3. 참고자료



1. 개요[편집]


대한민국독립유공자, 군인. 한국광복군에 소속되어 복무한 공적으로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받았다.


2. 생애[편집]


전이호는 1922년 2월 26일 평안남도 평양부 대흥면 기림리 111번지(현 평양시 모란봉구역 북새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일본 주오대학 법학과를 졸업하고 학병으로 일본군에 징집되어 평양부 주둔 42부대에 배치되었다. 이후 중국 전선으로 옮겨졌다가 1944년 김우전, 김준엽, 노능서, 윤경빈, 이영길 등과 함께 서주시(徐州市)에서 탈출해 그해 6월 한국광복군에 입대하였다.

입대 후 한광반 제1기를 졸업해 김국주, 김우전, 차약도 등과 함께 제3지대에 복무하며 김문택, 차약도[1]와 함께 기간위원 및 훈련교관으로 재직했고, 주로 정보교육을 담당하였다. 1945년에는 초모활동을 위해 안경 지구로 진출하였다.

해방 후 김학규 지대장 휘하에서 박승헌, 한이윤 등과 함께 광복군 총사령부 주호 판서처에서 활동하였고, 김원봉 휘하 제1지대 대원인 이소민(李蘇民)[2]이 자의로 설치한 판서처를 해체하고, 상해, 북평 일대 일본군 한적 사병의 광복군 편입 및 교포들의 안전과 귀국을 담당했다.

귀국 후 대한민국 육군에 입대해 육군사관학교 3기로 졸업 후 임관했으며, 6.25 전쟁에 참전하여 충무무공훈장을 받았다. 1961년부터는 제3,5대 국방부합동조사대장을 역임하였다.[3] 대령 예편 후 낙농업에 종사하며 2005년 한국독립유공자협회 회장을 역임하는 등 광복회 및 독립유공자, 유족들을 위한 활동을 하였고, 말년에 전라북도 군산시에 내려가 여생을 보내다 2013년 4월 25일 별세했다.

1980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받아 건국포장을 수여받았고, 이어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받았다. 그의 유해는 2013년 5월 7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1-1묘역에 안장되었다.


3. 참고자료[편집]


독립유공자 공훈록
독립운동사 제6권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16 04:42:48에 나무위키 전이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해방 후 서울지구 헌병대장으로 복무 중 6.25 전쟁 발발 시 전사[2] 김원봉의 측근이며, 조선의용대 출신이다. 1946년 귀국 후 남조선로동당 활동을 하다 월북했으며 6.25 전쟁 당시 후방업무를 맡았다. 그 후 행적이 불분명한데, 숙청된 것으로 추정된다.[3] 1961년 4월 15일 김재현 준장이 국방부합동조사대장이 되면서 부부대장으로 경질되었다가 5.16 쿠데타 직후인 5월 23일 다시 국방부합동조사대장에 임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