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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제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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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신라 지증왕의 왕비, 법흥왕의 어머니, 성은 박씨, 이름은 불명. 삼국사기에서는 연제부인(延帝夫人), 삼국유사에서는 영제부인(迎帝夫人)이라고 불린다.
2. 행적[편집]
그녀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기록이 다양하다.
일단 미사흔의 사례에서 보이듯이 欣과 許는 통용이 가능한 한자로 본다.
삼국유사에 실린 지철로왕 이야기에서는 연제부인이 키가 7자 5치로 굉장히 키가 컸다고 나와있다. 지증왕은 음경이 너무 커서 신붓감을 찾지 못하고 있다가, 연제부인의 거대한 똥을 보고 연제부인을 찾아서 왕비로 삼았다. 자세한 내용은 지증왕 문서 참조.
그의 키 7자 5치에 대해서는, 1자를 30cm라고 한다면 약 225cm. 현대에도 거인증에 걸리지 않는 이상 이런 키는 나오지 않기 때문에 현실성이 없다 여겨진다. 그리고 1자를 18cm로 가정하면 135cm인데 이 경우는 아무리 고대라 할지라도 큰 키는 아니다. 당시 1척이라고 언급되던 물건이 23.7cm였던 적이 있으니 척의 길이를 23~24cm로 적용하면 173~180cm인데 이 키는 고대를 기준으로 생각해봐도 그런대로 가능한 키이면서 동시에 당시 기준으로는 어마무시한 여성의 키일 것이 때문에 앞뒤가 들어맞는다. 대충 170~180cm정도였는 듯.
불국사 고금창기에 따르면 528년, 법흥왕 재위 기간 중 법흥왕의 어머니 연제부인이 원해서 불국사가 건축되었다고 하며 연제부인은 그 후 비구니가 되었다고 한다.#
3. 둘러보기[편집]
[1] 지증왕이 재위 초반인 500년에 부인이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역산하면 480년대쯤에 출생했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아들인 법흥왕과 입종 갈문왕의 나이를 생각해본다면 결혼 시기는 이전이었을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거기다 지증왕이 그 시기가 되면 너무 연로해진다는 점도 감안해야 하고, 그래서 추정해본다면 박씨 가문과 연관되어 있는 신궁의 설치시기가 487년이고 이것을 지증왕이 주도했다면 이 시기를 두 사람의 혼인 시기로 잡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출생시기는 조금 더 앞당겨질 수 있을 것이다.[2] 528년 당시 연제부인이 원해서 불국사가 건축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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